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4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44화(34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44화
세계로 뻗는 가지(4)
검이 신단수를 갈랐다.
엘프들이 세계수라며, 어머니라며 호들갑 넘치게 찬양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생각보다 허망한 최후였다. 무슨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검기를 크게 휘감아서 날린 것으로도 신단수는 반으로 잘렸다.
“그런데도 안 죽었네.”
신단수의 잘린 절반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쿵!
나무 파편이 떨어지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이 진동했다. 순식간에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었다. 거대한 폭탄을 온 천지에 동시다발적으로 터뜨린 것 같은 충격.
그 여파는 지진을 일으킬 정도였지만.
애석하게도 신단수를 죽이기에는 위력이 한없이 모자랐다. 나무의 몸체가 반으로 잘리고, 무성한 나뭇가지가 반으로 꺾였어도 땅속 깊이 뿌리 박힌 신단수는 꿈쩍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살아남으려고 더 게걸스럽게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 같군.”
방금 검기를 날린 충격으로 나무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고, 땅이 파이면서 신단수의 뿌리 상당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땅속 깊은 곳까지 드러났음에도 신단수의 뿌리는 그 끝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신단수는 아주 깊게 뻗은 뿌리를 이용해서 숲의 모든 식물들을 흡수했다.
“……하. 미쳤어.”
푸르르고 우거진 숲이.
거대한 산림이 신단수에서 가까운 구역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죽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방금 일어났던 일을 부정했다.
‘뭐지,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녹색의 숲이. 단숨에 회색으로 물드는 광경.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앞으로 다시는 보지 못할 광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야 이런 짓은 저 신단수만 가능한 짓일 테니까.
“……땅속에 있는 영양분만 흡수한 게 아니라, 숲에서 자생하고 있는 식물들을 전부 흡수했다.”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고작 나무 한 그루가 벌인 짓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대규모의 에너지 흡수. 그렇게 신단수가 흡수한 숲의 면적은 가히 대도시 2, 3개를 합친 것이 필적하는 넓이였다. 더 놀라운 점은.
그것조차 시작에 불과했다.
“이걸로는 모자랐던 모양이네.”
생기가 빨려서 회색으로 변한 식물들.
앙상한 죽음으로 뒤덮인 식물들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뿌리는 더욱 게걸스럽게 영양분을 탐했고, 숲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뭘 어떡하지.
한 번 더 잘라?
아니면 가만히 방치하고 있어?
‘……잘 모르겠네.’
무언가 하고 싶어도 정보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다.
‘루나는 자고 있고.’
지친 루나는 아직도 기절한 상태다.
귀에 들리던 시스템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정보를 얻기가 요원한 상황이 닥쳤다. 바로 그때, 하늘 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지만.
‘올 게 왔군.’
인기척의 주인을 확인한 순간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조금 늦었네.”
“인. 간. 드. 디. 어.”
“……?”
쿵!
하늘 위에서 붉은 물체가 떨어졌다.
한 발자국 뒤로 피하며 싸울 자세를 취하자, 하늘에서 떨어진 적기사가 기괴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저거. 말하는 게 좀 이상한데.
다른 기수들처럼 갑주의 목 부분을 진동해 말하는 것까지는 똑같지만, 그걸 제외한 다른 부분은 많이 이질적이었다.
‘목소리가 조금 거슬리지만.’
딱히 중요한 점은 아니었다.
나는 망가진 마력 회로를 보듬으며 다음 공격을 날릴 준비를 했다.
준비를 하는 한편, 적기사를 바라보며 실컷 비웃었다.
“나는 네가 진작에 나가떨어진 줄 알았지 뭐야.”
“우. 쭐. 대. 지. 마. 라. 인. 간.”
“네가 할 줄 아는 말은 그게 전부야?”
“무. 슨. 소. 리. 지.”
“인간 인간 계속 그렇게 말하는 거 우습지도 않아?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썩 창피할 것 같은데.”
분명 놈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시작한 말이었지만, 처음 들어본 적기사의 말투는 진짜 이상하다.
세상에 누가 대상을 부를 때 그 종족을 저렇게 연호해. 저건 마치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 이름이 아니라 ‘너는 참 복슬복슬 하구나, 강아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평생 말 안 하고 산 티가 나네. 역시 정령이라서 그런 가봐?”
“정. 령. 이. 라. 는. 옛. 호. 칭. 으. 로. 부. 르. 지. 말. 라.”
“그걸 부정하는 걸 보면 스스로도 평생 잘 말을 안 해서 말투가 이상하다는 걸 인정하는 모양이네.”
나는 시간을 조금 더 끌기 위해 적기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른 기사나 기수들은 그대로 말을 퍽 잘하던데. 그런 걸 보면 정령과 기수가 태생적으로 말을 잘 못 하는 종족은 아닌 것 같고.”
“그. 입. 다. 물. 어. 라. 인. 간.”
살살 긁자 결국 열이 뻗친 모양인지.
적기사는 제 갑주처럼 붉은 화염과 분노를 한사코 토해냈다. 갑주의 입 부근에서 지옥불처럼 거대하고 질척거리는 화염이 나를 향했다.
“말도 못 하는데 맞추는 실력도 없군.”
가볍게 불꽃을 피한 나는 피하면서도 적기사를 자극했다.
가면에 내장된 능력이 적기사의 신경을 서서히 자극하면서, 결국 내 비아냥을 무시하지 못하고 완전히 걸려들고 말았다.
쿵! 쿵! 쿵!
갑주가 연신 땅을 두들기며 내게 돌진했다.
직선으로 돌진하는 적기사의 움직임은 내게 필적하는 속도였다.
쾅─!
적기사의 돌진이 바로 내 뒤에 있던 나무에 틀어박혔다.
필사적으로 적기사의 돌진을 회피한 그 순간.
우두둑!
적기사가 돌진한 나무가 뿌리째로 뽑히다 못해 허공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자기가 무슨 황소인 줄 아나?
‘아니, 황소도 이렇게는 못해.’
무작정 돌진한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쾅─!
적기사가 또다시 몸을 날렸다.
그 무시무시한 돌진을 피하자 이번에도 뒤에 있던 것이 날아갔다.
이번에 날아간 물건은 꽤 거대한 바위. 한눈에 봐도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바위는 적기사와 부딪힌 순간 공중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공중으로 떠오른 바위는 그 즉시 산산조각이 났고.
퍼버버벅!
조각난 바위 파편은 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아니, 이건 좀……!”
서걱!
나는 검으로 날아오는 바위들을 베어냈다.
서둘러 검을 휘두른 덕분에 눈먼 바위의 파편에 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이대로는 살짝 위험하다. 나야 이렇게 돌진을 몇 번 피해주면서 적기사의 체력을 떨군다면 이득이지만.
‘나무 밑에서 잠에 든 루나가 문제다.’
거친 운전으로 멀미가 아주 심하게 온 루나는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다. 만일 방금처럼 눈먼 바위의 파편 같은 게 그쪽으로 날아간다면, 나는 이 신단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눈앞에서 잃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저 아이를 잃을 순 없지.’
별 수 없다.
놈이 성질을 긁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정직하게 놈을 베어서 죽인다. 나는 하체에 힘을 주고, 자세를 살짝 숙였다. 손에 든 검에 힘을 온전히 줄 수 있는 자세.
“드. 디. 어. 싸. 울. 생. 각. 이. 든. 모. 양. 이. 지!”
“……그래.”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하자, 줄곧 몸으로 돌진하며 나무와 바위 같은 자연물들을 박살 내던 적기사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둘렀다. 붉은 금속 갑주 위에 한층 덧붙은 불꽃의 갑주.
한눈에 봐도 무지막지하게 단단해 보인다.
저걸 어떻게 해치우면 좋을까?
‘다행히 놈은 내가 왜 갑자기 싸움에 임하려고 하는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황소처럼 무식하게 돌진하는 성정과 행동으로 볼 때.
적기사의 성격은 비교적 단순하고 무식하다. 상대하기는 가장 까다롭지만, 막상 손아귀 위에서 계략을 펼치면 인지하지는 못하는 타입.
그 부류에 속하는 것이 바로 적기사다.
‘내 생각대로다.’
적기사의 시야는 먼 곳을 보지 못한다.
당장 눈앞의 내가 본격적인 전투 자세를 취하자, 이에 응수하는 것이 적기사의 행동이었다. 이처럼 그의 시야는 매우 근시안적이었다.
“간다.”
나는 곧장 하체에 힘을 줬다.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가장 먼저 적기사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어. 디?”
갑자기 사라진 내 모습에 적기사가 깜짝 놀랐다.
끼릭!
갑주 내부에 생물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적기사의 투구는 360도로 회전하며 사방의 모든 시야를 확보했다.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시야를 확보했지만 정작 상대가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어디에 숨은 거지?
“나. 와. 라!”
적기사가 쇠가 진동하는 비명을 지르며 크게 외쳤다.
직후 몸을 휘감은 불꽃 갑주를 반경 500m에 폭풍처럼 휘둘렀다.
굳이 눈으로 찾을 필요가 없던 적기사는 내가 숨을 곳을 주지 않겠다는 눈치로 모든 자연물을 불태웠다.
나무와 잡초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고, 거대한 바위마저 적기사의 열풍에 표적이 된 순간,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나. 오. 지. 않으면 내가 간. 다!”
슬슬 금속 성대가 풀리기 시작했는지.
적기사가 생각보다 유창하게 말하면서 불꽃의 범위를 순식간에 더 키웠다. 급속도로 퍼지는 불길. 삽시간에 숲은 아름다운 녹색을 잃어버리고 지옥 같은 적색으로 휩싸였다.
화르르르륵───!
불꽃이 끝을 모르고 타오른다.
이건 적기사의 불이 매우 뜨거운 이유도 있었지만, 신단수가 무너진 제 몸을 수복하기 위해 반경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들의 영양분을 바짝 흡수해서 숲을 통째로 메마른 건초 지대로 만든 것이 크게 한몫했다.
‘환경이 상대에게 많이 유리하네.’
평소였다면 몰라도 지금처럼 마력 회로가 많이 다친 상황에서 예전 같은 불꽃을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주술을 사용하면 어떻게 사용할 순 있지만, 적기사에게는 그러한 제약도 없었다.
다시 말해, 필드가 지나치게 적기사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나는 몸을 숨기는 것은 고사하고 제 몸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겠지. 화염 마법을 통달하면서 얻어낸 화염 내성이 있지만, 적기사의 불꽃은 내 화염 내성을 상회하는 온도를 자랑했다.
생각보다 뜨겁고 따끔하다.
‘남의 불꽃에 닿아서 이런 적은 처음인데.’
이동하는 과정에서 적기사의 불꽃이 손가락 끝에 살짝 닿았다.
내가 이륙한 화염 내성은 상급 마법의 화염도 무시하는 수준이었지만, 적기사의 불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제대로 당하면 위험한 수준이다. 머릿속에 놈의 위험도를 한 층 올린 나는 주변을 훑어봤다.
일대가 완전히 불에 휩싸인 판국.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신단수 부근에는 불꽃이 침입하지 않았다. 신단수가 가지고 있는 신성한 함이 불꽃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 것도 큰 이유였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적기사가 신단수 근처에는 제 불꽃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꼴에 어머니 나무라고 진짜.”
효자라도 될 셈인가?
이미 방화범인 시점에서 아무리 봐도 효자는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신단수 근처에 몸을 숨긴 나는 곧장 허리춤에 검을 뽑았다.
기존의 검은 신단수 주변을 두른 불꽃에 집어던졌다. 검이 녹는 속도로 불꽃의 온도를 추정할 생각이었지만, 검이 불꽃에 닿은 순간.
파스슥.
검은 가루가 되었다.
“!!!!”
그 검은 가루도 오래가지 못했다.
눈 깜짝한 사이 검은 가루도 불에 삼켜져서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온도야. 계산하던 와중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여기서 나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신단수와 함께 날려 버려?
진지하게, 그거 말고 방법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