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5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56화(35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56화
사지 없는 검사(1)
신단수가 뿌리내린 수많은 세계의 틈.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휘하던 나는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극한에 내몰렸다.
“……이제 일어났어요?”
그런 나를 깨운 것은 어린 엘프 공주였다.
아니지. 나는 나 스스로 깨어났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은 머리를 다쳤으니까요.”
도대체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작게 중얼거린 루나가 쓰러진 내 상처 위에 약을 발랐다.
“아, 맞다. 이거 좀 꺼내서 사용했는데 괜찮죠?”
루나가 내 상처에 약을 발랐다.
날카로운 촉수와 섬뜩한 벼락, 강대한 권능으로 인해 찢어진 상처에 처음 보는 약초를 달여서 만든 약을 흘렸다.
내 아공간에 보관된 약품이 여럿 사용됐다.
“반지는 내 소관인데 어떻게……?”
나는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반지 속 공간을 여는 것은 온전히 내 소관이다.
누군가가 열고 싶다고 함부로 열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러자 루나가 손사래 치며 부정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는 이런 작은 반지에 간섭할 능력도 없거든요. 대신에 누가 문을 열어주면 곧잘 들어가는 편이죠.”
저는 공주니까.
문은 다른 사람들이 열어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 말을 끝까지 들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타마모.”
─왜 불러.
“반지가 없어도 이 아이와 소통할 수 있었어?”
─그건 아니야.
반지 속 공간을 열 수 있는 것은 나 혼자뿐.
그렇지만 나와 줄곧 함께한 여인이라면 보물창고의 비밀번호 정도는 알 수 있을 터. 그러나 의문은 풀리지 않았으니.
바로 타마모가 루나에게 반지 속 공간을 어떤 방법으로 알려줬냐는 것이다. 내가 착용한 옥반지는 그녀와 영적으로 연결된 성유물.
이 반지가 없다면 그녀를 보는 것도, 그녀와 대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면 도대체?”
“제 능력이에요.”
루나는 이곳에 신단수를 막기 위해 왔다.
신단수를 막으면 4기사는 물론 그들 휘하에 있는 기수들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신단수를 막기 위한 루나의 수단이 바로.
“저는 만물과 소통할 수 있어요.”
대화였다.
그녀는 미생물과 무생물에게도 말을 걸 수 있었고.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개념적인 존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여우 귀신과 소통하는 것이 가능했다. 루나가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굉장히 특별한 성대죠?”
“……대단한 능력이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루나가 우쭐거리는 것을 들으며 생각했다.
바로 그때.
번뜩!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지금 내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잘 안다. 지금은 몸을 회복할 때.
깊은 생각에 잠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그나저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
“어라? 말투가 바뀌었네요. 전에는 훨씬 고압적이고 오만한 말투였는데. 지금은 제법 유순한 것 같은데요.”
“그게 질문이냐?”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질문이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루나는 그런 질문도 재미있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면도 부서진 마당에 귀찮은 말투를 계속할 이유는 없어.”
“아, 그러면 이게 원래 말투?”
“원래 말투 같은 건 없다.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말투를 정하는 편이지.”
“……필요에 따라서 말투를 정한다고요?”
루나가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들갑 떨기는.
“왜 그런 반응이지? 따지고 보면 왕족도 그러지 않나?”
“왕족이 상황에 따라서 말투를 정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명령할 때 사용하는 말투, 품위를 지킬 때 사용하는 말투. 그 외에도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사용하잖아. 그것과 별반 다를 것 없지.”
“……아하.”
루나가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내 말에 얕은 깨달음을 얻은 듯 보였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숨기는 사람이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왕족의 말투는 당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
나는 말없이 루나를 올려다봤다.
얘는 나랑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도통 모르겠다.
그녀는 내 상처에 약을 바르며 계속 말을 걸었다. 다친 사람의 환부에 약을 바르면서 하는 대화치고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감성이 약간 뒤틀린 느낌.
‘그렇구나.’
나는 루나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꽤나 이질적인 사람이다.
처음에는 종족의 신분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아니, 여우와 엘프의 차이.
그리고 보잘것없는 검수와 공주의 차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애를 닮았네.’
하지만 눈을 자세히 보니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머릿속에 한 명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보니 너 특별한 능력을 가졌네.”
이제야 알겠다.
왜 루나가 나를 따라서 신단수에 가려고 했는지.
“나는 너 같은 사람을 잘 알아. 너는 타인과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예?”
내 시선이 루나의 표정을 훑었다.
내 말에 놀란 것도 아니고, 당황한 것도 아니다.
무표정은 더더욱 아니었다.
‘당연한 소리를 왜 하냐고 되묻는 것 같은 표정.’
루나는 진심으로 대화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며, 나쁘게 말하면 철이 없는.
전형적인 철없는 아이였다.
루나 같은 아이를 일컬어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말하지.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니에요?”
“그렇긴 하지.”
맞는 말이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속마음을 바깥으로 표출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살면서 겪는 사건들은 대부분 입체적인 경우가 많아서 개인의 단편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는 오해하고 곡해하기 쉬운 것들이 많다.
이런 경우에는 각자 본 관점에 따라서 상대를 오해하기도 하지.
대화는 이럴 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용이하다.
단,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대화라면 말이지.’
대화라는 것은 단순히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다.
표정과 몸짓. 말 속에 담긴 어조와 말투. 이 모든 요소들을 통틀어서 대화라고 부른다.
나쁜 의도가 없었음에도 그날 기분이 좋지 않으면 말투나 표정이 안 좋을 수도 있다. 그렇게 오해가 차곡차곡 쌓이는 법이다.
게다가 사람이라는 족속은 간혹 대화를 하는 척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고, 정말 많이 경험한 끝에 타인과의 대화를 크게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루나는 다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제가 이런 말을 할 때면 항상 그런 소리를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네가 특별하다는 거다.”
루나가 나를 멍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 사람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표정을 통해서 선명하게 느껴진다.
‘전쟁이 발발한 지 10년이 지났다고 했지.’
전쟁의 중심에 있던 것은 얼프들의 어버이, 신단수.
엘프들의 친구, 정령들이었다. 이는 곧 그녀가 어버이와 친구들에게 크나큰 배신을 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에 새겨진 상처는 크면 클수록 아물지 않는 흉을 내는 법이고, 정신에 난 상처를 즐거운 기억으로 감춰도 계속 쓰라린 법.
분명 쓰라린 상처를 가졌음에도 대화를 통해 신단수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와 동행한 그녀는 정말이지.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별로 할 말도 없었기에 나는 순수하게 루나는 칭찬했다.
“하이 엘프의 유일한 생존자.”
“……!”
“엘프가 부모로 여기던 신단수에게 뒷통수를 맞고도 신단수와 대화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크게 다치고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만일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대화는 무슨.
신단수를 땔감으로 만들 작정을 했을 것이다.
“집에 자식이 있다.”
“……예?”
갑작스러운 돌발 발언에 루나가 화들짝 놀랐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들을 생각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화의 서순에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게다가 얼굴. 너무 젊은 얼굴로 자식이 있다고 말하니까.
느껴지는 이질감이 장난이 아니다.
“피로 이어진 자식들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으로 낳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아이들이지.”
“……아.”
루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친자식이 아니었구나. 하기야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가면을 착용했을 때는 불길한 마력과 감각을 교란시키는 가면의 능력 때문에 몰랐지만, 눈앞의 자식을 가지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어떤 의미로는 자신보다 훨씬.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신뢰하지는 못한다.”
집을 나서기 전.
보모인 백현아에게 별장의 위치를 전달하고, 별장에 온갖 마법을 설치한 것도 그들의 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의심하고 또 대비한다.
그 철두철미한 성향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지만, 반대로 그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성 있는 관계를 구축할 수 없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데 진정성 있는 관계가 말이나 되느냐?
당연히 말도 안 되지.
“그래서 네가 대단하다는 소리다.”
“……아.”
“나도 못하는 걸 너 같이 연약한 소녀가 하고 있으니까.”
내 말을 가만히 들은 루나가 머릿속으로 이를 곱씹었다.
순간 루나의 머릿속에 방금 전 전투와 최근 백기사와 자신의 휘하 기수들과 함께 연합의 본거지를 침입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분쇄하는 괴물.
루나에게 있어서 승우란 인물은 무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루나는 문득 그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승우에게는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이곳은 차원과 차원 사이의 단층.
대화할 시간은 차고 넘친다.
“혹시…… 저랑 대화하실래요?”
“무슨 대화를?”
“아무런 대화도 상관없어요!”
“너는 신단수랑 대화해야…… 아.”
아, 맞다.
말하다 말고 뒤늦게 떠올렸다.
그 나무 녀석 통째로 뜯어먹히고 남은 뿌리도 내가 봉인시켰지, 참.
더 이상 신단수와 대화할 순 없었다.
어머니 나무.
엘프들에게 신단수는 낳아준 부모와 동급.
부모님이 자식을 이 땅에 탄생시켰다면, 신단수는 엘프와 세계를 이 땅에 탄생시켰으니까. 엘프들에게는 영원한 부모였다.
그런 그녀의 찬란한 가지는 몸통과 함께 뽑혀서 하얀 날개를 단 뱀의 식사가 되었다. 그나마 남은 그루터기도 검에 베여서 그 누구도 앉을 수 없는 가시방석으로 변했다.
수많은 세계를 연결하고, 신단수를 키우기 위한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넓게 펼친 뿌리도 내 손에 의해 봉인됐다.
루나는 더 이상 그녀의 어머니와 대화할 수 없다.
“괜찮아요.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자(他者)가 필요한 이 비루한 능력도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 이상 어머니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된 소녀는, 상처를 입고 피에 젖은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루나가 나를 쳐다봤다.
“당신의 이야기를 제게 들려줄 수 있으신가요?”
나랑 대화가 하고 싶은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