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5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58화(358/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58화
사지 없는 검사(3)
결국 내가 체력을 회복하고 전투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무기들을 만들 동안 루나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처음 그녀와 대화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었지만, 이후 그녀와 다시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을 때 루나는 스스로 대화를 거절했다.
나한테 화가 나서 그런 것보다는.
‘대화가 중요하지 않아서 거절한 느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녀와의 대화보다 무기를 만들고 타마모와 의견을 나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처럼, 루나 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 그러면 슬슬 밖으로 나갈까?
부상도 전부 회복했겠다.
폭탄을 비롯한 고화력의 소모품들도 잔뜩 만든 김에. 타마모는 재앙에 맞서 싸울 의지를 다짐했다.
─이번에는 나도 작정하고 도와줄게.
‘네가? 평소 나를 도와주더라도 주술의 보조만 펼치던 녀석이?’
─그야 평소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타마모는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구미호다.
그녀는 천 년 묵은 여우.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주술을 창안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세운 시원(始原)의 주술사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진리였다.
─나는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천 년을 살아오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버린 지 오래였다.
하나 타마모에게도 두려운 것이 하나 있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지식의 부재였다.
─네가 재능은 가히 절대적이야. 이대로 백 년을 산다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생전의 나와 같은 영역에 도달하겠지.
“백 년은 너무 길다.”
─그래서 말했잖아. 아무런 노력도 없이 도달할 경지가 그 정도라고. 그렇지만 너는 수면 시간도 체계적으로 쪼개면서 연구에 몰두하는 미치광이잖아? 백 년은 무슨. 십 년도 안 걸릴걸.
“십 년도 너무 길다.”
─야. 나는 지금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천 년이라 걸렸거든.
살랑살랑~
타마모가 자신의 꼬리를 흔들었다.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서 흔들리는 아홉 개의 갈색 여우꼬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 꼬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온전한 구궁(九宮)의 묘리.”
─그거 다른 사람들은 못 봐. 지금 네 꼬리 개수를 봐봐.
타마모가 내 뒤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천호백가의 새하얀 꼬리나 타마모를 비롯해서 가문 방계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갈색 꼬리와 다르게. 마치 저주라도 받은 듯. 칠흑빛이 넘실거리는 검은색 꼬리 여덟.
─팔미호는 이제 겨우 팔괘를 몸에 익힐 경지야. 그렇지만 너는 아직 팔괘를 온전히 꼬리에 녹여내지도 못했어.
“그래도 사상과 오행은 제대로 녹여냈어. 이제는 마법과 주술을 시행할 때 아무런 준비 없이 오행의 화합을 온전히 다룰 수 있어.”
─육합은? 칠성은? 너. 지금 네가 얼마나 빠르게 경지를 올린지 몰라?
“알고 있다. 엄청 빠르게 성장했지.”
비루했던 일미호가.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팔미호의 경지에 도달했다.
열 개의 꼬리. 천호의 경지는 닿지 못할 정도로 까마득하니 사실상 일족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경지인 구미호의 영역에 이제 겨우 한 발자국만 남았다.
딱 한 경지만 넘으면 구미호다.
─그래. 그러면 그 사실도 알고 있겠네. 지금 네 몸이 경지를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구미호의 꼬리에는 각각 의미가 있다.
태어날 적에는 첫 번째 꼬리에 무극을 품고, 두 번째 꼬리를 만들어낼 적에는 음양과 양의를 비롯한 온갖 묘리들을 녹여낸다. 각 개체마다 꼬리에는 다양한 이념이 녹아 있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지나온 날들이 생생하다.
세 번째 꼬리를 만들어낼 때 삼위일체의 이념을 꼬리에 품고, 다섯 번째 꼬리에는 오행을 엮어 자신을 강하게 담금질하던 시절.
그러나 아무리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었어도 갈 길이 바빴던 나는 언제나 끝마무리가 아쉬웠다.
─괜히 여우들의 성장이 느린 게 아니야. 보통 꼬리 한 개를 늘릴 때, 신체에 적응시켜야 할 묘리를 녹여내는 데 백 년의 시간이 걸려.
물론, 백 년의 시간은 수련을 통해서 단축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1년 이상의 세월 동안 수련을 반복하며 그 묘리를 체내에 완벽하게 녹여낼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과정을 전부 생략하면서 지금까지 몸에 온갖 묘리들을 때려 박았다.
굳이 묘리를 녹여낼 필요가 없다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묘리 위에 새로운 묘리를 세우고.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젠가를 쌓는 것처럼 위태로운 탑을 끊임없이 쌓아나갔다. 그럼에도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던 나는 꿋꿋이 위태로운 젠가탑을 이륙했다.
그렇지만 이제 한계가 왔다.
─계약자. 나는 진리를 원해. 죽는 건 두렵지 않아.
타마모가 나를 향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그 어떠한 감정의 편린도 찾을 수 없었다.
인형보다 무뚝뚝하다. 적어도 인형은 강제적으로 표정을 지을 수라도 있지. 지금의 타마모는 마치 표정을 만드는 근육이 죄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것 같았다.
─나는 진리를 엿보는 것에서 끝났지만, 너라면 분명 진리에 다가갈 수 있겠지. 그 광경을 꼭 끝까지 지켜보고 싶으니까. 나는 너를 도와줄 거야.
“……본론만 꺼내.”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녀석 평소와 다르게 말이 너무 길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말을 길게 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야.
그녀가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저 괴물로부터 도망치자.
“……뭐?”
순간적으로 나는 귀를 의심했다.
체력을 회복하고, 부상을 치료하고, 무기를 만든 다음에 한다는 말이 도망치자는 말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와 타마모의 관계가 공생이라는 것을 떠올리지 깨달았다.
나야 뜻을 품고 죽는다면 그 어떤 순간이라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타마모는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죽으면 반지 속의 영혼만 덩그러니 남는다.
적성이 맞는 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녀는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셈이다. 더군다나 만일 내가 재앙들과의 전투에서 반지를 잃어버리거나 부서진다면 어떨까?
“죽는 게 무서워? 반지 속에 홀로 남는 게 무섭나?”
─그런 건 무섭지 않아. 너 없이도 반지 속에서 오랫동안 주술을 연구하면서 살았거든. 앞으로도 그렇게 혼자서 살 자신은 있어.
“그러면 왜…… 도망치라는 말을 한 거야.”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너 나 잘 알잖아. 그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타마모가 말했다.
─말했잖아. 나는 진리를 보고 싶다고. 그런데 제대로 완숙되지 않은 경지의 네가 아무라 발버둥 쳐도, 너는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을 거야. 결국 재앙이라고 부른 놈들에게 죽고 말겠지.
“한 마리라도 더 많은 재앙을 죽일 수 있다면, 진리 같은 거 상관없어.”
뒤틀린 굳은 결심.
타마모는 이럴 줄 알았다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승우를 뒤에서 지켜봤다.
뒤에서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가끔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객관적인 시점으로 승우를 관찰했다. 그 결과 타마모가 얻은 결과는, 승우는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하지만 내부는 완전히 미쳤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 미친 성격이 주술을 성장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어서 가만히 두고 봤는데. 이번에는 가만히 못 있겠구나.
아무리 독하게 마음먹은 사람이라도 매일매일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자신의 시간을 연구와 공부에 투자하는 것은 어렵다. 연구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승우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수면을 포기하고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연구에 투자했다. 모든 것을 오로지 자신이 강해지기 위해서.
승우는 광인처럼 강해지는 것에 매달렸다.
─가만히 못 있겠는데.
그런데 뭘 어떡해야 설득할 수 있지?
지금 당장 타마모의 머릿속에 떠오른 수단은 그의 아이들을 들먹이며 부성애를 자극하는 것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아이들 얘기를 꺼내도 큰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한 마리 더 잡고 가겠다는 열망만 띄워줄 것 같다.
하는 수 없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주장에 감화되는 수밖에.
타마모가 혀를 차며 눈을 감았다.
반투명한 그녀의 영혼체가 은은한 회색 기운을 사방으로 방출했다.
나는 그 기운을 말없이 쳐다봤다. 마치 먹구름 같은 이 기운은 주술의 일종으로서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춘 주술이었다.
다만 타마모의 주술답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구름은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학습해서 주인에게 주입한다.’
이 주술을 수시로 급변하는 전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술이다. 전쟁은 언제나 전황이 뒤바뀌니, 정확하고 재빠른 정보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내 몸을 훑는 주술이었다.
─…….
“어지간히도 날 설득하고 싶은 모양이네.”
원한다면 주술을 막거나 반사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주술 실력이 상당히 무르익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타마모를 능하기까지는 한참 남았다. 내가 그녀 앞에서 무슨 주술을 펼치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다.
만일 그녀에게 정보를 주고 싶지 않았다면 쉽지 않아도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겠지만, 좋은 의도로 나를 설득하겠다는 사람의 수법에 제 손으로 훼방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마모가 나를 어떻게 설득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
말없이 구름이 없어질 때까지 그녀를 기다렸다.
다행히 구름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순식간에 펼쳐졌던 구름은 필요한 정보를 재빨리 추출하고는, 그보다도 빠른 속도로 타마모 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과연 주술의 시조다운 속도였다.
─…….
정보를 받아들인 타마모의 미간이 핏줄이 올랐다.
이내 입가가 움직이며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기 직전.
─……아하.
타마모는 알겠다는 눈치로 중얼거렸다.
아무대로 습득한 정보들을 토대로, 나를 설득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떠올린 모양이다. 과연 타마모는 어떤 말로 나를 설득할까?
머릿속에 궁금증이 스멀스멀 떠오르는 그때.
─너. 합당한 묫자리를 원한다고 했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마모의 말마따나 내 목표는 다른 동료들처럼 안식을 얻는 것이다.
그저 안식을 원하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내 목을 베어도 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안식은 내 동료들처럼 누군가를 의한 그럴듯한 족적을 남기는 것이지.
제 목을 조르는 게 아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판을 더 키우는 편이 좋지 않겠어?
“뭐……?”
판을 더 키워?
이미 내 묫자리를 위한 판은 충분히 거대하다.
내가 살던 세계를 지옥으로 몰고 갔던 일곱 재앙이 그대로 이 자리에 있다. 이들을 무려 셋이나 처단했으며, 잘하면 한두 마리 더 잡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판을 더 키우는 것은 무의미해. 이미 판은 충분히 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재앙들을 겨우 한두 마리 더 잡고 죽을 생각이냐는 소리야. 기왕 잡을 거 전부 다 잡고 죽는 게 어때?
“……!”
지금 내가 가진 수단으로는 아무리 비틀어도 다섯 마리가 최대다.
운이 좋으면 다섯 마리를 죽이고, 나머지 두 재앙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끼치고 눈을 감을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일곱 재앙과 동귀어진이라면 어떨까?
─어때? 나쁘지 않지? 그렇지?
타마모는 내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나를 설득할 방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그 설득 방법이라는 것은.
“……좋아.”
내게 아주 효과적으로 먹혔다.
─그러면 어서 놈들로부터 도망치자. 지금 네 실력으로 동귀어진은 꿈도 못 꾸는 망상이야.
타마모는 생각했다.
승우의 목표를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목표를 자극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나와 타마모는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우리는 탈출을 위한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