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7화(3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7화
나인테일 길드(2)
TV의 모든 채널은 내 얘기로 가득했다.
그건 어제도 마찬가지였지만, 속보로 나오는 내용이 이전과 전혀 다르다.
어제까지는 내 소문이나 악행에 관련된 것들이라면, 지금은 에프넬의 화원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정말로 화원을 클리어했다고?”
“하긴, 못 믿겠지. 나 같은 무능한 녀석이 미공략 던전을 클리어했다니.”
대한민국은 플레이어 강국이다.
수많은 S급 길드가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여러 랭커와 하이랭커들을 배출했다. 그뿐만 아니라, 칠성 아카데미라는 세계적인 교육 기관도 국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나라에서 클리어되지 않은 던전이라 함은,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던전이 지금 막 클리어됐다고 한다.
깜짝 놀란 백석호의 시선이 나를 훑는다.
방금과는 전혀 사뭇 다른 시선.
몸 곳곳은 찬찬히 꿰뚫어 살피는듯한 눈초리는 불쾌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만큼 녀석이 놀랐다는 증거이다.
‘완전히 경계하고 있네.’
뉴스를 틀기 이전까지는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느낌이 뉴스를 틀자마자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그리고 뒤집어진 것은 느낌만이 아니라.
백석호가 깔아둔 판도 뒤집어졌다.
녀석이 내 몸과 뉴스를 번갈아 쳐다보는 지금.
내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좋은 기회가 왔다.
“그래서 거래는 어떻게 할래?”
“설마 이걸 염두에 두고서 대화를…….”
“3대 미공략 던전을 클리어한 녀석이 실은 [나인테일] 소속이었다. 어때, 길드장의 입장으로서 나쁜 얘기는 아닐 텐데.”
“크윽……!”
백석호의 입장에서 내 제안은 꽤나 달콤했다.
이를 받아들이면 3대 미공략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것으로 얻을 명성은 물론, 그로 인한 언론과 세간의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을 수 있다.
그 대신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겠지.
여태까지 무시해 왔던.
정확하게는, 방금까지도 무시하고 있었던 놈의 제안을 덥석 물어버리는 꼴이 돼버리니까.
‘과연 녀석은 이윤을 추구할까. 아니면 스스로의 자존심을 택할까.’
진중한 얼굴을 보아하니 꽤나 고민되는 모양이다.
하는 수 없지.
선택을 종용해서 뒤를 밀어주는 수밖에.
“꽤나 괜찮은 조건 아니야? 내가 그쪽 배지를 달고 인터뷰 한 번만 해도 스포트라이트는 장난 아닐 텐데.”
“……저로서는 가주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왜? 이게 그렇게까지 정색할 만한 요구인가. 딱히 아홉 꼬리의 지위를 달라는 무리한 거래도 아니잖아?”
아홉 꼬리.
[나인테일]에서 가장 높은 간부 집단의 총칭이다.눈앞의 백석호가 바로 아홉 꼬리의 [첫 번째 꼬리]이며, 나머지 여덟 명도 수준급의 실력과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 자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된다.
설령 녀석이 받아들인다 치더라도, 허울뿐인 자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태연하게 가장 높은 자리를 언급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나는 「허장성세」에 몸을 맡겼다.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어 조건을 덧붙였다.
“그 대신.”
“음?”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이 거래의 핵심이다.
“팀장의 자리. 그리고 자율권을 보장해 줘.”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요구인지. 잘 알고 계실 거라 보고 있습니다만.”
“보통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이 길드는 조금 다르잖아.”
손으로 소파를 툭툭 두들겼다.
부드러운 감각이 손등을 감싸며, 푹 꺼지는 일도 없었다.
그것만으로 이 소파가 얼마나 좋은지 엿볼 수 있다.
소파뿐만이 아니다.
이 공간에 있는 모든 물건들.
이윽고, 이 사옥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물건들이 누구의 지갑에서 나왔을 것 같나.
“가문과 길드와의 계약. 알고 있지?”
“그야 당연하죠. 제가 이 길드의 장(長)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뒤에 이어질 말도 알고 있겠네.”
“……이런, 설마 가주의 지위로 협박하실 줄이야.”
백석호의 얼굴은 전혀 협박에 휘둘리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야 당연하다.
권력 없는 가주가 뭘 할 수 있겠냐.
그냥 되는대로 지껄이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겠지.
하지만 의외로 싫어 보이는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쁘지 않게 판단하는 모양이다.
아니, 이미 마음의 결정은 끝났나?
팀장의 자리와 자율권을 주더라도.
나를 바로 위에서 감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구실이다.
백석호는 이미 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임에도, 무심하게 대답하고 있다. 하는 수 없지.
쐐기를 단단하게 박아야지.
“그러면 조건을 하나 더 걸지.”
“……무슨 뜻이신지.”
“다음에 클리어할 던전은 ‘요툰의 불지옥’, 어때?”
오늘 클리어한 ‘에프넬의 화원’과 마찬가지로 3대 미공략 던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만 화원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불지옥은 어떻게 공략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난이도라는 거지.
‘인간이 살 수도, 함부로 다가갈 수도 없는 환경.’
용암이 흘러내리는 지형.
그 위를 태연히 걸어 다니는 불의 거인들.
던전에서 휴식은 물론, 의식주를 내부에서 자급자족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불지옥 같은 던전이다.
나는 지금 그곳을 클리어하겠다고 단언한 셈이다.
“제정신입니까, 가주.”
“지금은 가주가 아니라 한 명의 플레이어로 봐줬으면 좋겠는데.”
“……방금까지 가주의 지위를 휘두르던 사람이 할 법한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이거, 하는 수 없군요.”
여기까지 말했으면 더 이상 튕길 이유가 없다.
백석호는 하는 수 없다는 눈치로 서류 몇 장을 가져왔다.
길드 가입 서류. 집에 가져가서 꼼꼼히 읽어야지.
서류를 받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왔다.
더 이상 저 방에 있고 싶지 않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멍하니 생각했다.
확실히 내 생각보다 강하고, 까다로운 성격인 것 같다.
하지만 못할 건 없지.
‘지금은 팀장으로 만족하지만, 다음에는 전부 앗아간다.’
백석호가 누리고 있는 권력과 권위는 전부 내가 뺏을 작정이다.
길드장의 권한이건, 5장로의 지위건 상관없다.
어차피 소설 후반부에는 망할 길드.
내가 먹는다고 문제 되진 않겠지.
사내 정치가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
무력 집단에서 지휘권을 휘어잡은 경험은 차고 넘치니까.
‘오히려 기대되는걸.’
물 밑에서 치고 때리는 암투.
이건 내 전문 분야다.
내 머리와 경험은 육체처럼 약화된 것도 아니니, 오랜 경험을 살린다면 분명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길드의 사옥을 나서자, 저녁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슬슬 기숙사로 돌아갈 시간이네.
월차는 오늘 하루라서 금방 돌아가야 된다.
“……참 피곤한 하루였어.”
아침부터 회의에 끌려가지 않나.
던전에서 학생과 만나고, 고독을 이용해 암살자를 죽였다.
그다음에는 백석호와 거래까지.
아직 몸도 다 안 나았는데, 너무 혹사해 버렸다.
빠듯한 스케줄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친다.
그래도 이 정도 피로감이야, 손이 입은 부상에 비하면 심각한 것도 아니다.
“……조금 추악하네.”
나는 너덜너덜한 장갑을 벗었다.
장갑 속에서 드러난 것은, 장갑 이상으로 너덜너덜한 손.
독과 불꽃 때문에 손 전체가 화상을 입은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고독에 손을 담근 것이 치명적이었다.
독에 대한 내성이 높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화상을 입은 손을 독에 풍덩 집어넣자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
아니, 이 정도는 괜찮으려나.
살이 파이거나, 새까맣게 탄화(炭化)된 것도 아니다.
이 정도면 경우에 따라서는 패션이나 문신으로 취급할 수도…….
“없지. 이게 어딜 봐서 패션이야.”
용이나 장미, 도깨비 문신은 귀여운 수준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내 손이 가냘프고 여려서 그런가.
흉측한 화상을 입었음에도, 가까이서 봤을 때는 끔찍한 흉터에 불구했지만, 멀리서 봤을 때는 그럭저럭 볼 만했다.
아마 이대로 살아야겠지.
이 정도 흉터는 포션으로도 답이 없다.
엘릭서를 또 먹는다면 모를까.
‘죽지만 않았다면 누구나 살릴 수 있는 포션을 이런 흉터에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어쩔 수 없다.
그냥 이대로 사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평소에 장갑을 끼고 산다는 점이었다.
원래는 귀족과 가주의 품위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었는데.
장갑을 끼고 다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이건 더 이상 못 입을 것 같으니. 기숙사 가는 길에 하나 새로 사야겠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장갑을 보며 새로운 장갑의 필요성을 느꼈다.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장갑을 살까.
불꽃에도 타지 않고, 맹독에도 녹지 않는 그런 장갑 말이다.
음, 그냥 장비를 통째로 맞추는 편이 좋겠네.
오늘도 그렇고, 지난 습격 때도 그렇고.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어서 맨몸으로 싸우거나 불꽃을 무기로 조형해서 싸웠으니까.
그동안 모든 일과를 분 단위로 쪼개며 생활하느라 장비를 맞추러 갈 시간조차 없었지만. 조만간 그 사람을 찾아가야겠다.
‘지금 이 시점이면 아직, 이 근처에 있겠지?’
나는 내 기억이 맞길 바라며, 아카데미로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이번에도 같은 기사님을 만났다.
이 정도면 거의 운명인데?
그러던 사이.
나는 문득 무언가를 까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맞다. 저택에서 꼬리에 관한 문헌이나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하는 수 없지.
다음에 와서 찾아봐야지.
어차피 시간은 길고, 내가 저택에 얼굴을 비쳐야 할 날은 많이 남았다.
* * *
“……웃기지도 않는군.”
백승우가 떠나고 난 이후의 적막한 길드장실.
백석호의 새하얀 얼굴과 꼬리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대놓고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다 못해, 핏줄이 바짝 선 그의 눈은 광기마저 나타내고 있었다.
“무능한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미쳤을 줄이야.”
감히 자신에게 요구를 건네다니.
그것도 협박을 곁들이면서까지.
마음 같아서는 찢어 죽이고 싶다.
본래라면 그런 녀석 따위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고 죽였을 텐데.
이번에는 상황이 너무 나빴다.
백승우의 꼬리가 두 개로 늘어남에 따라, 1장로와 중립 세력들이 관심을 보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손을 썼다가는 1장로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게다가 지금 가문의 직계 자손 중 장자는 백승우밖에 없다.
천호백가는 오래된 관례와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오래된 가문.
그 탓에 유교적인 사상이 꽤나 깊게 깔려 있었다. 그것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가문의 가주가 반드시 남자가 되어야 한다.
장자가 죽은 것도 아닌데, 가주를 멋대로 교체하는 것은 풍조상 불가능하다. 그건 백석호의 방식도 아닐뿐더러, 가문의 실권을 휘어잡은 1장로의 눈 밖에 나는 짓이다.
백석호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백설아나 백설희의 혼례를 부추겨서, 빨리 후손을 봐야 하나.”
대리청정(代理聽政).
어서 손주를 보게 해서 그 아이를 소가주로 내정한다.
그 후에 뒤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마땅한 연인도 없이, 스스로 파혼한 백승우가 이를 거절할 리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두 년인가.”
장녀 백설아와 차녀 백설희.
백승우를 몰아내고 가주가 되려는 자신의 경쟁자들.
그 둘은 나름대로 성가시지만, 잘만 구슬리면 쓸 만한 패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가주가 되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건 백석호의 방침에 어긋난다.
“……호가호위를 부리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다.”
호가호위(狐假虎威).
호랑이의 위세를 여우가 빌려서 괜한 호기를 부린다는 속담.
그러나 천호백가에서는 앞뒤가 조금 다르다.
호랑이의 위세 따위, 천호 앞에서는 무가치하다.
그렇기에 호가호위(狐假虎威)가 아니라 호가호위(虎假狐威)였다.
여우의 위세를 빌리는 호랑이. 이것이 천호백가에서는 올바른 속담이다.
그러나 젊은 나날의 백석호는 못내 궁금했다.
어째서 여우가 호랑이 위에 있는 걸까.
그건 생태계적으로 말도 안 되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직접 경험해 보니 알겠더라.
백석호는 호랑이였다. 동산에서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는 산군(山君)과도 같았다. 그러나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아홉 개의 꼬리를 휘날리며 신통력과 점술을 부리는 구미호.
그 구미호 앞에서 산군 따위, 한낱 들짐승에 불과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날 호가호위(虎假狐威)를 이해하고 말았지.’
어린 날의 백석호가 가졌던 모든 위세는 구미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하여 감히 여우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상상치도 못했다.
한데 그 구미호가 죽었고, 아직 어린 자식이 셋이네?
다시금 도전할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야말로 여우의 위세를 꺼뜨리고, 자신이 위에 올라가리라.
그렇게 다짐했었는데.
왜 저 빌어먹을 예나 지금이나!
“예전에 비해서 생기가 도는 것이 색다르게 역겹군.”
백석호의 오래된 기억 속에서 백승우는 언제나 일관적이었나.
돌잡이 때도, 소가주 즉위식 때도, 구미호의 경지를 이룩한 제 부모가 죽었을 때도.
변함없이 죽은 눈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사람 자체가 어긋난 것 같은.
그런 기묘한 역겨움이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야말로 불쾌한 골짜기였지.”
‘불쾌한 골짜기’라는 말이 있다.
인간과 닮되, 어중간하게 닮을수록 생리적인 혐오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의 백승우는 모든 표정이 그런 느낌이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인형에 가까웠다.
아니,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