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71)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71화(371/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71화
다시 돌아가자(1)
“잔뜩 죽었네.”
질퍽질퍽.
바닥이 핏물로 인해 끈적했다.
지하는 제법 넓어 보이는데 바닥이 온통 이 모양인 걸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추측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얼추 계산하자면 어디 보자.’
눈에 보이는 시체는 약 6,700구.
그렇지만 바닥에 고인 핏물은 고작 사람 7,000여 명을 죽인다고 나올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그것의 배. 넉넉하게 잡아서 20,000만 명은 죽어야 나올 수 있는 양이었다.
─쓸데없이 자세하네.
‘사람이나 마물의 신체에 대해서는 빠삭하니까.’
괜히 지금까지 칼 들고 싸운 게 아니다.
“사람이 아닌 것이 핏물 속에 많이 섞였네.”
“네? 그, 그런 것도 보이나요?”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 시산혈해.
그 광경으로부터 눈을 돌려도 코를 비집고 머릿속을 채우는 악취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처참한 광경에 루나가 압도당했다.
“……겁먹었나? 무서운 모양이지.”
“예? 그야 당연하죠. 저 같은 반응이 정상 아닌가요? 이런 광경을 봤는데 놀라지도 않고, 남에게 태연하게 묻는 당신이랑은 다르게요.”
“그 전장에 10년이나 있어놓고?”
“……!”
이 좁은 공간에 칠천 명이 죽은 거.
당연히 많은 숫자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이 하룻밤 사이에 죽었다.
그렇지만 비교 대상이 전장이라면 어떨까?
전쟁에서 하루 만에 7,000명이 죽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물의 숫자까지 더한다면 전쟁에서는 하루에 수십만 마리의 목숨이 한낱 고깃덩어리와 핏물이 된다.
사람이 적게 죽은 전쟁도 있겠지만 내가 겪은 전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종의 존속을 건 치열한 투쟁. 그리고 그것은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지도자로서 전장에 나간 경험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전쟁터에 내몰린 군인이 매일 밤마다 따뜻한 곳에서 우리들을 숫자로만 본다며 상층부가 바로 너일 테니까.”
“…….”
“그렇지만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지도자인 이상 매일 몇 명이 목숨을 잃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는지 봐왔을 텐데.”
“…….”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이 침묵이야말로 그녀의 대답인 것이 아니라, 말을 고르고 골라 심사숙고하여 입을 열려는 루나의 표정이 바로 대답이었으니까.
“……파, 팔천만.
“지금까지 전쟁에서 8,000만 명 정도가 죽었나 보지.”
“아뇨. 제 휘하에 있는 사람들만 추정한 숫자예요.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세력과 종족이 제 밑에 모이기 전까지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잘 몰라요.”
“그래?”
몰라도 괜찮다.
나도 그런 건 잘 몰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인류의 3할이 죽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숫자로 말해줘 봤자. 나는 마물에 의해 멸망하기 전의 생활을 모르니까.
3할이 죽든 7할이 죽든 잘 모른다.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참여한 이후부터는 다르다.
태어나기 전은 몰라도 상관없지만, 검을 든 이후부터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생기니까. 나는 오늘 몇 명이 죽고, 정확하게 누가 죽었는지 기억하고자 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돌아갈 곳 없는 천애고아.
가족을 모두 잃은 채 복수심만 남았다가 자신의 목숨까지 활활 불살라버린 복수귀 등등 그런 사람은 제법 많았다.
나와 루나는 실력도 차원이 다르지만, 한 가지 같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죽음을 봤고 앞으로도 봐야 할 예정이기에 세상 그 누구보다 죽음 앞에서 초연하고 태연해야만 한다.
“제대로 마주해라.”
“……네.”
“어차피 선량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네. 네?”
나는 손가락으로 저편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는 수많은 방문들이 보였다.
“전부 다 연구실이야.”
“지하도 연구실인가요?”
“그것도 피비린내가 심한 연구실이지.”
“……피비린내는 여기도 심한데요.”
“이 정도 피비린내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악취가 심해.”
어우 냄새야. 이러다가 코가 진짜로 썩을 것 같아서 손가락으로 코를 강하게 붙잡았다.
반면 슬슬 피 냄새에 익숙해져 가는 루나는 자신보다 먼저 피비린내에 적응했을 승우가 도대체 저기에서 무슨 냄새가 나길래 저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
“후각이 많이 예리하신가요?”
“아무래도.”
살랑.
지금까지 주술로 모습 그 자체를 감추고 있던 꼬리가 한차례 시야에서 살랑거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허공에 녹는 것처럼 사라졌다.
“여우니까. 후각이 조금 예민한 편이지.”
“……팔미호.”
“너희 세계에도 꼬리 많은 여우에 대한 전승이 있나 보네.”
“전승보다는 동화에 가깝죠.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세상을 불타웠는데 어머니 나무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 구미호를 막지 못해서 세상에 멸망했다는 동화랍니다.”
“잔혹 동화네.”
“세상이 불탄 이후 어머니 나무는 잿더미가 된 세상에 씨앗을 뿌려 생명을 싹 틔우고, 그렇게 지금의 세상이 됐다는 얘기로 끝나요.”
“일종의 건국 신화인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왕의 상징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동화라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편하고, 그런 이야기에 자주 노출됐을 아이는 자연스럽게 신단수를 창조주 혹은 어버이로 인식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어머니 나무를 신격화하기 위한 전설이나 신화에 비하면 동화는 비교적 가벼운 수준에 속한답니다.”
“그렇군.”
짧은 대화를 나누며 지하를 걸은 우리는 이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되었다. 이 층 하나가 위에 있는 마탑 5층을 합친 것보다 넓었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였네요.”
“각 엘리베이터마다 도달하는 층이 달라.”
“정말이네요. 여기는 지하 11층까지 운행하고, 저기는 12층에서 22층까지. 66층만 운행하는 엘리베이터도 있어요.”
“보안 참 철저하네.”
마탑의 위층에는 제대로 되먹은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있는지 없는지 소문조차 돌지 않는 마탑의 지하에는 온갖 첨단 시설이 가득했다.
특히, 이곳은 지하 1층.
“밖의 마물들을 생포해서 실험하는 공간이다.”
─아, 그래서 죽은 사람에 비해 바닥에 흐르는 핏물이 비정상적으로 많았구나. 한 마리의 마물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넉넉하게 잡으면 사람 대여섯 명 분량의 피가 나오니까.
칸막이가 있는 지하 1층의 방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도 있었고, 밖에서 데려온 마물을 실험하는 공간과 사육하는 공간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목적의 공간들이 맞물린 공간이 바로 지하 1층이었다.
“신기하네요. 마물은 도대체 어떻게 생포한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도시 내부에서 생성된 마물을 실험에 사용하지는 않았겠지.”
“음? 저는 당연히 그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생각 좀 해봐라. 도시 내부에서 마력의 유동이 뭉쳐져서 생겨나는 마물은 대체로 강하지 않고, 작은 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실험당하던 마물들은 그렇지 않아.”
지하 곳곳에 마물 시체가 쓰러진 상태였다.
마물들의 시체는 심장과 장기 같은 급소에는 기다란 칼자국과 녹지 않은 얼음이 박힌 채 썩어갈 날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 그건 그렇지만, 혹시나 도시 내부에서 거대한 마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잖아요.”
“그래 어지간히도 운이 안 좋으면 도시 내부에 큰 마물이 탄생하겠지. 그리고 곧장 토벌당할걸.”
“……아.”
“네가 말했잖아. 이곳은 도시이지만 동시에 국가의 역할도 맡고 있다고. 도시 내부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타나서 치안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위협하면 어떻게 되겠어.”
이곳에서 2주 동안 생활하면서 루나는 이곳의 치안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배웠다. 우선 이 도시는 그녀가 알고 있던 ‘도시’의 상식을 깨부술 정도로 거대했다.
하나 도시는 어디까지나 도시.
국가에 비견될 바는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도시의 행정 처리는 일개 지역이 아니라 국가 수준으로 장엄했다.
이곳은 일반적인 도시보다 거대하고, 일반적인 국가에 비해 작다.
그래서 그녀는 이곳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이자 가장 작은 나라라고 명명했다.
“이를 처리할 사람들이 바로 출발하겠죠.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위험에 처했더라면 재빨리 나서서 구조하는 것이 바로 국가가 하는 일이니까요.”
생각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루나가 말했다.
이런 대답은 또 빨리빨리 나온다. 역시 한 나라의 공주님답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마물을 즉각 처치한다면.”
“놈들로는 생체 실험을 진행할 수 없지. 그렇지만 괜찮아. 이 세상에 마물을 넘쳐나잖아.”
“……아. 설마.”
“음. 이제 슬슬 입질이 온 모양이지?”
“아, 아니죠?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죠?”
“네 생각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말해줘야 알지.”
그녀에게 한마디씩 툭툭 던지니까 입질이 왔다.
아무래도 루나가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그 모습이 무언가를 하나씩 배워가는 학생과 같아서, 나는 루나가 깨달은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질문했다.
“그래서 뭘 생각했지?”
“도시에서 벌어졌던 처형. 그거 설마 이것 때문에 벌어졌던 건가요?”
“처형? 조금 더 제대로 말해보렴.”
“아, 그러니까! 사람을 투석기 위에 묶어두고 도시 밖의 마물들에게 먹이로 던져주는 이유가 그 사람을 엄히 심판하기 위한 형벌이 아니라 사실 마탑이 주기적으로 마물을 수급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막 그런 괴담 같은 이야기는 아니겠죠. 제가 생각이 너무 깊은 거 맞죠?”
“아니.”
나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정답인데.”
“지, 진짜로요?!”
“진짜로.”
이유부터 원인까지 전부 맞혔다.
“사형수의 처형은 고통에 형벌이 맞춰진 게 아니라 마물들을 가까이 불러들여서 생포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일 진짜 사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할 사형수라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만일 실험에 사용할 마물이 필요한데 사형수가 부족하다면 뭐.
까짓거 한 명 만들면 그만이지.
“……하.”
루나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어이가 없는 탓에 입에서 말이 아니라 바람만 나온 것이다.
“사람은 멍청해서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고, 유리하지 않은 정보는 금방 까먹는 동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정보일지라도.
충격적인 장면까지 까먹는 동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만 할게.”
“사람을 투석기에 올려서 발사해. 산 채로 마물의 먹이로 만드는 짓은 과연 충격적인 일일까? 아닐까?”
“……엄청 충격적인 일이죠.”
정신력이 약하다면 평생토록 PTSD에 사로잡혀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런 처형은 이 도시에서 아주 오랫동안 여러 차례 봤을 사람들은 과연 사형수가 될 만한 범죄를 저지를까?
“아, 설마.”
“루나. 원래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야.”
“이건 진짜 아니잖아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
저 너머. 사방에 널린 수천 구의 시체에서 나는 냄새보다, 아주 고약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고.
루나는 그 피비린내의 진원지에 도착하고는 현실을 부정했다.
그곳에 놓인 썩은 시체 몇 구가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있잖아.
‘말 안 해도 알아.’
네 말은 루나에게 들리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어. 하고 싶은 말은 뭔지 알고 있다.
썩은 시체에는 송송 구멍이 뚫렸다.
아이시스가 얼음 마법으로 일격으로 고통 없이 보내준 흔적이었다.
그리고 폐가 살짝 올라가고 시체가 쓰러진 모양으로 봐서는.
‘저 시체. 분명 3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아 있었어.’
몸은 썩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던 사형수들.
아니, 사형수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사람들의 시체가 내 시야를 붙잡았다.
아무래도 이 마탑 지하에 있는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지랄맞은 모양이다. 하는 수 없지.
“우리 다시 위로 올라가자.”
나는 루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런 높은 탑은 철거할 때는 원래 높은 곳에서 무너뜨려야지.
그래야 깔끔하게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