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7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76화(37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76화
여기서 보고 싶지 않았다(1)
이브. 내 친구.
유일하게 살아남은 내 전우.
─전에 죽여 버린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다시 만나면 한 대 세게 쥐어패고 싶은 개자식.
‘나를 이런 미친 세계에 집어넣다니.’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고마우면서도.
우리가 지켜낸 세계 못지않게 단단히 미쳐 버린 세계를 보다 보면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다고 녀석이 진심으로 죽기를 바란 적은 없다.
─전에 그랬던 것 같은데.
자꾸 분위기에 초 치지 마.
그리고 녀석은 내가 죽인다고 공격해도 살아남을 녀석이다.
검 한 자루로 무예의 끝을 봤을 무렵. 유일하게 나와 호각을 이룬 존재들은 재앙들 중 우화(羽化)를 끝마친 아담과 일대의 모든 공간을 자신의 마력과 마법으로 점거한 이브. 이렇게 둘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둘에게 패배하는 일은 없었다.
아담은 치열한 소모전 끝에 판정승으로 내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승리했고, 이브가 다스리는 신비들은 내가 죽음에 다다를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둘 다 나와 상성이 안 좋다고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브는 특별해.’
그녀의 마법은 불가해.
해석할 수 없는 신비 그 자체였다.
마법사로서 일가를 이룬 나조차 하늘을 수놓은 그녀의 마법들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그 여자보다 대단해?
‘남화연 교수?’
─내가 본 주술사. 아니, 마법사 중에서 그녀를 능가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어. 아마 소싯적 주술과 연구에 미친 나라도 그녀처럼 지식에 매몰되기는 힘들겠지.
‘네가 의외로 약한 말을 하네.’
─물론, 내가 진심으로 지식을 축적하고 지혜를 쌓는 것에 몰두한다면 그렇게까지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그렇게 살아서야 재미없잖아.
재미없는 삶. 타마모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남화연의 삶은 일과 연구 그리고 마법. 그렇게 세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그 정도로 마법에 진심인 남화연이지만.
‘그런 그녀라도. 이브에 비할 정도는 아니야.’
─음? 나는 그 이브라는 여자가 행사하는 마법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그 정도야? 남화연 그 여자조차 비교 선상에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해?
‘글쎄. 이브가 마법을 사용하며 전장을 누빌 당시의 나는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으니까. 누가 더 대단한 마법을 사용했는지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
─그렇지만 너는 이브라는 여자를 더 위에 두고 있잖아.
‘아, 그건 말이야.’
별거 아니다.
나는 이브와 똑같이 생겼지만, 결코 이브가 아닌 여성이 잠든 유리관을 매만지며 읊조렸다.
‘걔는 화력이 다르거든.’
─화력이?
‘타마모. 너.’
유리관 너머로 보이는 여인.
그리고 우리 표면에 맺혀서 반사되는 내 눈빛 속에는 아직도 이브가 자랑하던 마법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양한 마법을 구사하던 이브. 그녀가 마물의 대군을 쓸어버리기 위해 화염 마법을 넓게 방사하던 순간.
‘세계가 타오르는 걸 본 적 있어?’
나는 일곱 재앙 그 이상의 위협을 목격했다.
* * *
우리는 서로에게 첫 번째 친구였고.
또한 유일하게 끝까지 남은 친구였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갈 때. 승우와 이브는 각자의 기술을 연마하고 단련했다. 손에 닿는 사람들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함께 동고동락한 그녀이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이브를 닮았지만 이 여자는 내 친구가 아니다.”
유리관 속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외모는 분명 이브 그 자체였지만 그 사람을 나타내는 기질이 이브와 완전히 달랐다. 이브를 둘러싼 기질이 드넓은 우주처럼 광활하다면 유리관 속 여인의 기질은 투명했다.
아예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순하고 투명한 기질.
기질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그 어떤 기질도 찾아낼 수 없었다.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무엇을 익혔는지. 그 사람의 생애를 드러내는 단서가 무엇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막 태어난 신생아라고 할지언정 부모로부터 계승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엘프라면 그 아기를 나타내는 기질은 우선적으로 인간과 엘프가 될 것이다.
그 엘프가 정령술을 익혔다면 정령술의 적성을.
불의 정령과 계약을 맺었다면 아기는 불의 정령에 미약하게나마 적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먼 조상의 능력이 후세에 전해져 부모와는 전혀 다른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기질은 그 사람을 드러내는 증거이자 신분증과 같다.
막 태어난 신생아도 자신만의 기질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런 기질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부모도, 조상도 없이 홀로 태어난 것과 같다. 아니지. 정말로 그렇다면 태어났다는 표현보다는 탄생했다는 게 더 적절할지도.’
머릿속에 점점 복잡해진다.
이 단서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생각에 집중하고 싶은데 하필이면 유리관 속 여인이 이브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라 당최 집중이 되질 않는다.
하아아, 진짜 어쩔 줄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는 그때.
“설마 여러분도 지하 연구원 출신이었나요?”
“……응?”
“어쩐지 입사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마탑주가 됐다는 말에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출신이 이쪽이라면 그럴 수도 있죠! 이야, 드디어 탑주께서 후계를 찾고 선정하셨군요.”
─얘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렇다.
그렇지만 굳이 그 오해를 풀어줄 이유는 없지.
지금처럼 분위기가 좋다면 말이야.
“어째서 저를 묶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를 제대로 이브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겠죠.”
얘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납치당하고 정보 좀 뱉어내다가 살해당하는 엑스트라치고는 아는 게 좀 많은 것 같은데.
“…….”
잠시 침묵에 잠겼던 나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너. 앞으로 뭐라고 부르면 되지?”
“네? 그냥 지금처럼 ‘연구원’이나 ‘저 녀석’이라고 불러도 됩니다만.”
“내가 불편해서 그래. 내가.”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 캐내야 할 정보가 더 남은 것 같다.
그렇다면 계속 연구원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장 이 탑에 있는 연구원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새로운 마탑주로 역임한 나도 연구원이고, 조수라는 명목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루나도 연구원이다. 슬슬 차별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 그냥 말단 연구원 48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말단 연구원 48? 혹시 그게 이름인가요? 특이하네요.”
“아뇨. 그냥 코드 같은 것입니다. 제가 말단의 48번째라서.”
“그렇게 부르기도 귀찮으니까. 그냥 이름을 알려달라고. 설마 이름이 없거나 엄청 길어서 자기도 말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겠지?”
엄청 길어서 말하기 어려운 이름.
살면서 딱 한 번 본 적 있다.
아마 한국어로 64자가 넘었다. 그 정도면 거의 문장이다.
속사포로 자기 이름을 말하던데. 자기소개할 때마다 이름이 조금씩 바뀌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래도 녀석이 이름을 말할 때마다 내뱉는 중요한 강세가 있어서, 그 부분을 머릿속으로 외웠다.
‘정작 그 녀석은 전장에서 금방 죽어버려서 그 이름은 외울 필요도 없게 됐지만.’
이름이 더럽게 긴 탓에 묘비에 이름 적어줄 때 철자 틀릴까 봐 조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설마 이 녀석도 걔랑 같은 족속은 아니겠지?’
정말이라면 듣고 싶지 않은데.
그냥 말단 연구원 48호라고 불러줄 자신 있다.
“이름이 있고, 그렇게 길지도 않습니다!”
다행히 그 녀석하고는 다른 모양이다.
그래, 그런 미친 이름이 또 있겠어.
살면서 한 명 본 것으로 충분하지.
“그렇지만 좋은 이름은 아닙니다. 뜻도 없거든요.”
“그게 뭐 어때서요? 요즘 세상에 뜻 없는 이름도 많아요.”
“아, 그런가요? 저는 고아라서 제가 직접 멋있어 보이는 이름을 직접 지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저 혼자만 이름에 뜻이 없어서…….”
고아 같은 쓸모없는 정보는 됐다.
─어차피 나도 천년 넘게 사느라 부모 같은 건 이름도 잊어버렸고.
“저도 부모님을 여의어서 혼자거든요.”
나도 마찬가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고아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어라? 너는 밖의 세계에 부모가 있다면서.
“……아.”
그렇지 맞다, 참. 깜빡할 뻔했네.
거의 1년 동안 이 몸에 있느라 혼동했다.
부모님이 없는 ‘나’는 이쪽 세계의 백승우고, 내 진짜 부모님은 잘 살아계신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나 혼자만 부모님이 살아계시네?’
순간적으로 주변이 무겁게 느껴졌다.
뭐지 이 가시방석은. 분명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찔린다.
“다들 저와 같은 처지셨군요. 저희 다 같이 부모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아는 사람들인데, 적어도 어깨. 어깨 쪽의 밧줄은 조금 약하게 다시 조여주실 수 없나요? 너, 너무 세게 조여서 아파아아아아!”
“아, 미안. 더 세게 조여달라는 말인 줄 알았지.”
“묶였는데 더 세게 조여달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 어딘가에는 있던데?”
우리처럼 연인 없는 놈들과는 무관한 일이지만 말이야.
무표정으로 밧줄을 더 세게 묶는 그때 타마모가 내 귀에 속삭였다.
─화제 전환하려고 일부러 그랬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네.’
─아까 마음속으로 다 들렸어.
‘그래, 관심법 쓰는 너한테 뭘 숨기겠어.’
─관심법이 아니라 반지에 의해 영적으로 묶였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라니까? 그리고 나 혼자만 안 게 아니야.
‘……?’
─저기 좀 봐봐.
‘…….’
타마모가 어느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별반 생각 없이 그곳을 쳐다봤더니.
“……하.”
루나가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 눈빛.
‘쟤 왜 저래.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갑자기 저런 눈빛을 할 이유가 없는데.
아, 잠깐만 배신?
설마.
‘우리들끼리 보이지 않는 공감대가 있다고 여겼는데, 타마모의 말을 엿듣고 그 공감대가 박살 나서?’
아, 진짜. 엄청 이상한 생각 같은데 맞는 것 같다.
아니, 세상에 무슨 공감대를 부모 없는 걸로 가져?
쟤도 참 이상한 애야.
─네가 할 말은 아니야.
“됐고. 너. 이름이나 마저 말해.”
“아! 이름부터 얘기하고 있던 중이었죠.”
그래도 분위기 이상하니까 화제 전환이나 하자.
“조금 창피하지만 저는 제 이름을 두 글자로 지었습니다.”
두 글자 이름 좋지.
이름 짓기도 편하고.
“많은 이름들 중 고민했지만 저는 스스로 시몬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래, 시몬 좋지.”
시몬.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마교의 추종자. 광신도. 그 녀석도 그런 이름이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시스템의 인격 그 자체였다.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여기서 또 듣게 됐네?
“……야. 뭐라고?”
“제 이름은 시몬입니다. 사실 아담이라는 이름도 고민했지만, 시몬이 제 마음에 조금 더 들더군요.”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아. 제발.
진짜 첩첩산중이다.
“참고로 저 애완 뱀도 키웁니다.”
사람 돌아버리게 만드는 그 미친 이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어디 보자. 굳이 꼽자면 사과를 제일 좋아합니다. 혹시 신상은 이 정도면 충분히 밝혔으려나요?”
─……설마 이거.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응.
여기도 하나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