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9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397화(39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397화
너였구나(2)
“가장 알고 싶은 것은 확인했고.”
제약이 있는 모양인지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시스템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그다음 질문해도 되지?”
“응, 그런 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질문이라는 게 그렇잖아.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대답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고, 서로 하나씩 선문답하는 경우도 있고, 질문에 제한이 있기도 하잖아.”
“경우의 수 진짜 많네.”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너는 저 많고 많은 경우 중 어느 경우에 속하는지 알고 질문해야 되잖아.”
“하기야 너처럼 의심이 많은 애는 그것부터 알려줘야겠지.”
이브가 손가락을 활짝 펼쳤다.
무슨 뜻이지?
‘질문이 다섯 개라는 뜻? 선문답을 다섯 번 진행해야 된다는 의미인가?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혹시나 싶어서 입을 열었다.
“설마…… 질문에 제한이 없다고?”
원래 이런 질문에는 으레 제약이 있는 법이다.
지난번에 이브를 만났을 때도 제약이 있었는데, 설마 이번에는 없을까 싶지만…… 혹시 모른다.
“에…….”
이브가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손가락을 다섯 개나 펼쳤는데 그걸 단번에 알아낸다고?”
와, 진짜 재미없어.
이브가 툴툴거리며 손을 내렸다.
“당연히 질문이 다섯 개인 줄 알고 고심하고 고심하면서 질문을 고르다가, 돌연 두 번째 질문을 허무하게 날린 것에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귓속말로 사실 질문에 제한이 없다고 말하자마자 배신당한 표정이 보고 싶었는데!”
“……참.”
보고 싶은 모습도 많았구나.
그런데 이걸 어째? 하나도 못 봤네.
“그렇게 보고 싶었으면 차라리 거짓말로나마 부정하지 그랬어.”
“거짓말해 봤자 네가 바로 알아차릴 거 아니야!”
“그야 그렇지.”
거짓말 정도는 쉽게 간파할 수 있으니까.
아무리 살인적인 훈련을 받은 스파이나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 능숙한 사람이라도 내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일부로 최대한 에둘러서 표현했는데…… 망했어.”
“손가락 다섯 개가 에둘러서 표현한 결과물이라고?”
그건 너무 양심 없지 않니?
맞힌 나도 혹시나 몰라서 찍어본 거였는데.
나는 시무룩한 표정의 이브를 어이없다는 눈치로 쳐다봤다.
‘그래, 얘 원래 이런 녀석이지.’
옛날부터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도통 사라질 줄 모르는 이브의 장난기.
이브는 이런 사람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총괄하는 인공지능으로 태어났음에도.’
자신의 출신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도 여전한 장난기는 그녀가 변함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너는 변함이 없구나.’
나 또한 그랬다.
어려서부터 검을 들고 살육을 일삼았다.
처해진 환경 자체가 투정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다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어른스러워지는 것이 먼저였다.
덕분에 내 신념은 가슴속에 빠르게 자리 잡았고, 정서적인 불안감 없이 오로지 기술의 연마와 성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러다가 결국 마모됐지.’
어려서부터 어른스러워진 탓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짐을 어깨에 메고 말았다. 너무 일찍. 너무 많이.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처럼 대의를 실천하고 행하는 죽음.
선열(先烈) 같은 게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처럼 눈을 감고 이만 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바뀌었어.’
옛날부터 변하지 않는 이브와 다르게 나는 이 순간에 다다라서야 바뀌고 말았다. 늦은 사춘기라도 봐도 무방했다.
‘오래간만에 너와 이렇게 마음을 놓고 차를 마시니까.’
내 마음이 더더욱 확실해졌다.
“이브.”
“왜 차 한잔 더 줘?”
“나. 조금 더 살고 싶다.”
“……차가 아니라 술이 필요하다고? 알겠어, 금방 꺼낼게.”
아니…….
“조금 더 살고 싶다니까.”
“아, 승우야 미안해. 요즘 일이 바빠서 그런지 술을 마시지도 않고,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해서 환청이 들리는 모양이네.”
이브가 허공에서 와인을 한 병 꺼냈다.
그녀가 좋아하는 술이었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이브를 위해 장인들이 공을 들여서 만든 술이기 때문에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싼 술. 그렇지만 정작 이브는 물처럼 마시는 술이 눈앞에서 찰랑거렸다.
“야, 너 그거 뚜껑 따지도 않았어.”
완전히 처음 까는 술이네.
밀봉이 완벽한데 취하기는 뭘 취해.
“아, 그럼 분위기에 취했나 보지.”
“장미로 가득한 넓디넓은 화원에서 홍차를 들이켜며 잔잔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즐기는 이 분위기에 취한다고?”
“취할 수도 있지. 그게 아니라면 내가 들은 환청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데.”
그 백승우가.
전쟁이 끝났음에도 죽지 못해서 사는 야차처럼 죽은 눈으로 공무를 처리하던 그 백승우가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살고 싶다고 말한다고? 하, 듣지 못할 말이 따로 있지.
“그런 말은 환청이 뭐야. 꿈속에서도 못 들어!”
이브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한번 말한다만.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가능한 오랫동안 살고 싶다.”
설마 진짜로 승우가 그 말을 했을 줄은.
“……뭐?”
이브의 반응이 한차례 늦었다.
정말로 화들짝 놀랐다.
설마하니 내가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눈치였다.
사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다.
당장 내가 지금까지 마법을 열심히 수련하고 연구한 이유가 앞선 동료들처럼 의미 있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일 정도로 삶의 의지가 박약했는데 갑자기 태도가 변했으니까.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가지.
그렇지만.
“귀, 귀가 문제인가? 술이 아니라 귀가 문제일지도 모르겠네?”
자기 귀를 세게 잡아당기는 저 반응은 좀 그렇다.
“……야.”
적당히 해, 이 녀석아.
눈을 부릅뜨며 이브를 노려봤다.
화들짝 놀랄 정도로 강렬한 시선에 결국 그녀는 현실을 직시했다.
“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그래, 이제 알겠냐.”
“……차라리 잘못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뭐라고?”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이브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흔들었다.
“아니, 내 말은 그런 의도가 아니고!”
하여튼 장난기 많고 시끄러운 녀석 같으니라고.
이브와 대화하면 재미는 있지만, 지금은 대화를 조금 짧게 끝내는 게 좋겠지.
이곳에서 나가서 해야 할 일도 있으니까.
나는 지금 이 분위기를 이용해서 내 머릿속의 모든 의문들을 질문했다. 이브도 분위기를 읽었는지 잔말 없이 핵심만 대답해 주었다.
그 결과, 나는 내 눈앞에 막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이제 곧. 이 막을 내릴 때가 머지않았다.
‘끝이네.’
이걸로 끝이다. 여러모로 말이지.
담소의 끝.
그리고 여정의 끝.
지금까지 바라 마지않았던 끝이 다가왔다.
나는 그 끝을 맞이하기 위해서 검을 치켜들었다.
“이 심상 부숴도 되지?”
이 심상 세계에는 출구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가고 싶은 사람이 직접 만들어야지.
“그거 얼마나 무리수 같은 질문인지 알고 말하는 거지?”
“심상을 부수면 폐인이 된다는 거? 우리 정도 괴물이라면 심상이 부서져도 괜찮잖아.”
나도 심상을 제 손으로 부쉈는데 멀쩡하다.
우리 정도 수준이라면 신념이 지나치게 확고해서 심상이 부서진들 죽음에 다다르는 타격을 입지 않는다. 조금 따끔할 뿐이다.
“그러면, 내 심상은 어떻게 부수려고?”
“당연히 검으로 베어야지.”
아직 내 마법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그 말을 들은 이브가 작게 웃었다.
“내 심상을 검으로 벤다고?”
“그래, 못 벨 거 없어. 내 심상도 검으로 베었으니까.”
내 손에 하얗게 점멸하는 검 한 자루가 들렸다.
성검(聖劍).
저 하늘 위에 단 한 줌의 별빛이 없어도, 스스로 별빛을 내뿜는 신성의 검이자 별빛의 검. 나는 성검을 강하게 붙잡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른 검으로도 깔끔하게 벨 수 있는데, 성검이라면 베인 줄도 모르게 할 수 있어. 너라면 10초 만에 회복할 수 있을걸.”
“그 말이 아니야.”
“그러면 뭐 다른 의미가 있어?”
“당연히 있지.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말을 걸었겠어.”
이브가 성검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내 심상 속에서 검은 통하지 않아.”
“그게 무슨 소리……?!”
“이것 좀 봐. 성검의 주인인 네가 만들었는데도 벌써부터 검의 형상이 흔들리기 시작했잖아.”
지지직!
심상에서 구현한 흰색 성검이 마구 흔들렸다.
마치 이 세계가 성검의 구현을 용서하지 않는 듯한 모양새.
일반적인 심상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는데, 이 심상의 주인이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니까.
“……너.”
“살짝 눈이 불손한데. 설마 지금 네 검이 사라지려는 게 내 심상이 사람의 심상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아니.”
“사실 맞아.”
사람의 심상이 아니라서 그래.
이브가 내 귀에 속삭였다.
“내 심상은 설계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어. 내게 허락된 수단은 오로지 마법. 다른 것들은 내 세계에 간섭할 수 없어.”
“……그러면 어떻게 나가라고?”
왜 뭐 내 마법으로 네 심상을 부수라고?
내 마법이? 네 심상을?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왜? 마법으로 부수고 나가면 되잖아.”
“너 설탕과 찻주전자를 꺼낼 때 자연스럽게 마법을 사용했잖아.”
“응, 그랬지.”
“그 말은 곧 네 심상 속에 마법이 아주 깊게 새겨졌다는 뜻이지.”
“그게 왜? 무슨 상관인데, 그래.”
무슨 상관이냐고?
당연히 지금 상황과 상관이 있지.
아주 큰 상관이 말이다.
“네 심상은 곧 네 마법. 그렇다면 나는 네 심상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네 마법을 뚫어야만 한다.”
검을 사용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조건이다.
문제는 이 심상 속에 깊게 새겨진 이브의 마법이, 이 심상에서는 오로지 마법을 원한다는 게 큰 문제다.
“내가 네 마법을 뚫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뚫어.”
나는 손에 든 성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에 얇은 틈이 벌어졌다.
정확하게 공간의 ‘면’을 인식하고 베어내자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후오오오오오옹─!
탁자에 앉은 나와 이브를 등지고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폭풍이 옆으로 회전하는 게 아니라 위아래로 회전한다는 것이겠지.
매서운 폭풍이 화원을 뒤집고 땅거죽을 엎었다.
폭풍은 거대한 도시 하나 분량의 땅을 헤집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사람이 검 한 자루로 벌인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광경.
이브는 그 광경을 보고는 혀를 찼다.
“쯧쯧쯧. 그렇게 성질이 급해서야.”
“이 정도 가지고 뭘.”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사람다워졌지만, 여전히 성미가 급하네. 검 한 자루로 만사를 해결하려는 습관은 아직도 못 버렸어?”
“그 부분은 많이 개선됐어.”
검을 쓰고 싶어도 검을 사용하질 못하는데, 검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는 검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었다.
검술을 더더욱 갈고닦고 싶다. 연마하고 싶다.
그런 식의 열망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의미했다.
검 한 자루. 딱 한 자루만 있으면 눈에 닥친 난관들을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을 텐데. 그 마음이 종종 머릿속을 맴돌았다.
요지는 검이 아니라 사건의 해결에 있다.
검은 내가 다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
사용하기만 하면 무슨 난관이든 헤쳐 나갈 자신이 충만했다.
그런 걸 최근까지 강제로 봉인당했다가 이번에 다시 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회복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주고 뺏는 건 좀 아니지.”
이럴 거면 나 왜 회복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