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04)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404화(404/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404화
끝을 향해(4)
더 이상 알아낼 것은 없었다.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게 아니라, 알아낼 필요가 없었다.
스릉.
그냥 아담을 여기서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검을 뽑아서 휘둘렀다.
“이런, 성질도 급하셔라.”
부드러운 궤적을 그리던 검이 아담의 손에 막혔다.
금속이나 마물의 외피보다 두껍고 단단한 피부.
과연 일곱 재앙 중 전투에 특화된 재앙다운 신체능력이었다.
빙의 때문에 조금은 약해졌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정말로 ‘조금’ 약해지는 것으로 그치다니.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니까.
“내 손에 닿은 검. 그만 거둬주지 않으려나? 나랑 힘 싸움 좀 한다고 내 피부를 자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인간 사회에서 사이비 종교를 퍼뜨리면서 제법 머리가 전략과 전술이 다양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무예에는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야.”
“뭐?”
이런 간단한 이치도 눈치채지 못할 줄이야.
아담의 손과 부딪히며 작은 불꽃을 튀기던 검이 돌연 부드럽게 손목을 파고들었다.
유(柔).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손목을 거의 다 잘라낸 검이 아슬아슬하게 손목뼈를 반만 자르고 튕겨져 나왔다. 나 또한 검의 움직임에 따라서 뒤로 움직였다.
“……뭐야 그거?”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제압한다.
검술을 비롯한 다양한 묘리를 학생들에게 전수할 때 가장 먼저 가르쳐 줬던 묘리가 바로 ‘유’의 묘리였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강의 묘리를 먼저 익힌다.
하체와 허리를 고정하고, 손목에 강한 힘을 주는 것으로 펼칠 수 있는 강의 묘리는 입문 난이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의 묘리는 그렇지 않다.
손목의 힘을 줄인다고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드럽게, 자신의 모든 힘을 부드럽게 펼칠 수 있는 것.
입문 난이도는 다소 높을지 모르지만, 유의 묘리를 제대로 익힐 수 있다면 다른 묘리들도 금방 터득할 수 있었다.
부드럽다는 것은, 유하다는 뜻이고.
유하다는 것은, 물 흐르듯이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이런 순서의 습득 방식을 추천했다.
‘물론 그렇게 묘리를 습득해서 유의 묘리를 펼칠 수 있다고 한들.’
나처럼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서걱!
돌연 아담의 왼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오른손에 박혔던 검을 뽑아내기 위해서 휘둘렀던 왼팔이 잘렸다.
깔끔한 절단면. 누가 봐도 칼에 잘린 흔적이었다.
“……어떻게.”
“어때. 잘린 줄도 몰랐지?”
나는 히죽 웃으며 칼을 세웠다.
아담이 오른팔에 박힌 검을 뽑기 위해 왼팔을 거칠게 휘둘렀을 때, 나 또한 마냥 당해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살며시 왼손에 마력을 응축시켜서 무형검을 만들고, 아담의 강력한 완력을 맞받아치며 살며시 무형검을 휘둘렀다.
물 흐르듯이 부드러웠던 후발제인(後發制人)의 무형검.
덕분에 아담은 자신이 베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인지했다.
“하, 여전하네.”
아담은 내 실력에 감탄하며 손뼉을 자기 왼팔이 없어서 주춤거렸다.
“역시 팔은 없으면 불편해.”
수시로 말투가 변하는 미치광이가 바닥에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땅의 축복.’
내가 불꽃에 엄청난 적성을 가진 것처럼, 아담은 토(土)와 목(木)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허, 지랄 같네.
‘먼발치에서 녀석을 봤을 때 번개에 적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설마 흙과 나무. 두 가지 적성을 더 보유하고 있을 줄이야.
심지어 둘 다 나와 동등한 수준의 적성이었다.
화염을 수족처럼 다루다 못해, 불꽃이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득했던 내 적성과 동등한 재능을.
‘아담은 세 개나 가지고 있다.’
와, 내가 예전에 저걸 죽였다고?
나랑 동등한 적성을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가지고 있는데?
‘새삼 놀랍네.’
도대체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검에 미쳤던 것인지 모르겠다.
정신적인 경지는 예나 지금이나 동등하다.
차이가 있다면 검술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육체.
죽어서라도 놈을 죽이겠다는 광기. 그 정도밖에 없었다.
“역시 깔끔한 검술이야. 먼지 한 톨 내려앉지도, 녹 하나 쓸지 않았어.”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은 존재 그 자체로 한 자루의 무기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나는 한 자루의 검. 그것도 천하제일의 명검이었다.
아무리 명검이라도 방치하면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슨다.
그렇다면 명검이라도 평범한 수준의 검이 될 수도, 관리에 따라서는 그것보다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관리를 잘한 편이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예를 갖추어야겠지.”
쿠구궁!
바닥에서 줄기가 올라왔다.
땅을 부수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났다.
중세 풍경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던 빌딩 숲은 순식간에 사과나무가 물씬 풍기는 화원으로 돌변했다.
“이 사과. 기억하겠지?”
아담이 나무에서 사과를 하나 땄다.
사과를 닦지도 않고 곧장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아삭.
아담이 사과를 씹을 때마다 그가 입은 상처가 치유되고, 소모된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담의 사과나무.
그가 가진 권능 중 가장 까다로운 권능.
결국 저게 튀어나왔다.
“이토록 탐스러운 사과나무가 열렸다면 나무를 지키는 파수꾼도 있어야겠지.”
스르륵.
바닥을 기는 검은 뱀이 아담의 몸에 올랐다.
파수꾼이라. 저 검은 뱀이?
신화의 원전을 아는 내게는 우습기 그지없었다.
스르르르.
몸에 올라탄 뱀은 곧장 아담의 손에 들렸다.
그게 무엇인지 깨달은 나는 곧장 뒤로 바닥을 박차고 이동했지만.
“어딜 그렇게 가시나.”
아담이 뱀을 휘두르자 길이가 늘어났다.
저 뱀은 살아 있는 뱀이 아니다. 사과나무와 마찬가지로 아담의 권능이다.
아담이 뱀을 튕겼다.
가볍게 음속을 돌파한 채찍이 검을 휘감았다.
“쯧.”
혀를 찬 나는 손에서 검을 떨어뜨렸다.
순간적으로 검에 담긴 무게가 확 늘어났다.
어지간한 속도라면 감당할 자신이 있었지만, 반사적으로 검을 놓고 말았다. 도대체 채찍을 얼마나 빠르게 휘둘렀는지 감도 안 잡힌다.
“이런 검수가 손에서 검을 놓았네.”
아담이 날개를 펼친 즉시 내 뒤에서 나타났다.
그렇게 검을 함부로 손에서 떨어뜨리면 안 되지.
훙─!
손에 든 채찍으로 위로 들며 아래로 내려쳤다.
검은 뱀에 담긴 엄청난 탄성이 비명을 지르며 공기를 찢었다.
뱀처럼 교활한 눈웃음을 짓던 아담의 표정이 돌연 딱딱하게 굳었다.
드물게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륵!
내 손끝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왜. 검이 없으면 못 막을 줄 알았던 모양이지?”
검 정도는 직접 만들 수 있는데 말이야.
자색으로 타오르는 저주의 불꽃.
양손에 자염(紫焰)을 두른 나는 외손을 뻗어서 불꽃을 창으로 만들었다.
스릉!
창의 표면이 활활 타오르는 와중에서 시퍼렇게 선 날은, 내 손에 들린 것이 불꽃의 형상을 한 창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일단은 녀석의 어깨에 하나.’
채찍을 막아냄과 동시에 아담의 몸이 작게나마 뒤로 밀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나를 왼손을 크게 휘둘러 놈의 어깨에 창을 쑤셔 박았다. 관절에 깊이 박힌 창.
그와 동시에 아담의 어깨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륵─!
지옥의 용암처럼 흘러나오는 불꽃이 아담의 옷을 전부 녹였다.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번진 불꽃은 삽시간에 아담의 성역과도 같은 사과나무로 번졌다. 사방에서 진동하는 탄내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이걸로 네 전매특허 기만질은 못하겠군.”
본인은 과실로 상처와 마력을 회복하고, 상대에게는 과실의 폭탄을 끼얹는 아담의 기만질이 봉쇄되었다.
그 말에 아담이 열불을 토했다.
“내 사과나무가 고작 불꽃에 타올라 잿더미로 남을 것으로 보이나?!”
아담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피어오르는 녹색 꽃잎과 마력.
저것이야말로 사과나무의 근원. 아담의 권능이었다.
“이 정도 화상은 금방 다른 나무로 대체할 수 있다!”
“나도 알아.”
사과나무의 영역은 대마법사의 성역과 같다.
자신만의 율법은 내세우고, 권능을 강화하는 영역.
사과나무는 단순한 회복 수단이 아니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아담을 보조하는 서포터이자, 그의 권능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는 성소였다.
“그래서 나도 펼쳤거든.”
불꽃.
세상의 온천지가 화염으로 가득했다.
내가 보유한 화염 적성이 일구어낸 나만의 성역. 불지옥.
「게헨나」
온통 화염으로 가득한 세계에서는 아담의 권능조차 나무를 피워낼 수 없었다. 그의 나무는 피워내자마자 곧장 타오르고 말았다.
“나도 처음 펼쳐보는 것이니까. 영광스럽게 여기렴.”
성역, 「게헨나」가 사과나무를 억제했다.
나만의 율법을 세우거나, 능력을 강화하는 부가적인 효과는 모조리 사과나무를 억제하는 데 투자했다.
오로지 하나의 권능을 파훼하기 위해 사용하는 성역.
낭비도 이만한 낭비가 없었다.
‘그렇지만 단기전으로 끝낼 때는 이것만 한 게 없지.’
사과나무의 회복 능력과 폭발로 인한 견제를 사전에 막는다.
시간 오래 끌어줄 생각 없다.
“빠르게 빠르게 가자고.”
바닥을 박차고 아담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이 채찍을 휘둘렀을 때 발생했던 충격파보다 훨씬 강력한 충격이 불에 타고 있는 사과나무들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불이 잦아들었다.
놀란 아담이 손을 교차하며 머리 위를 막았다.
얼마나 빠른 검을 휘두르는지 몰라도.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다.’
몸에 내구성과 근력으로 다투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기민함과 판단력으로 승부를 보는 속도전. 아담이 선호하는 방식의 전투였다.
필사적으로 검이 양손을 자르는 것을 저지하고 그대로 발을 뻗어서 내장은 잔뜩 뒤흔들 작정이었지만, 나는 아담에게 도달하기 직전에 웃어주었다.
“……설마!”
웃음에 표정을 구긴 아담이 생각했다.
어쩌면, 설마, 위로 치켜든 손아귀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
찰나의 생각은 곧바로 판단으로 이어졌다.
교차하며 머리를 보호하는 양손 중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만일 손에 든 것이 검이 아니라면 곧장 반응하기 위함이었지만, 이미 자세를 취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젠장! 검수가 쌍수호박(雙手互搏)으로 검을 안 써?’
아담의 지척에 다가온 두 개의 손길.
양손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왼손은 장(掌)을 펼치고, 오른손으로는 주먹을 쥐었다.
양손에 서로 다른 무예를 펼치는 쌍수호박.
익히기도 어렵지만, 수준급의 무인이 양손에 다른 무예를 펼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쌍수호박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양손으로 펼치는 무예의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
한 우물 파는 것도 힘든데, 다른 우물을 팔 여유가 있을 리가.
“그래서 검을 손에서 놓고 맨손으로 덤비다니. 어지간히도 얕보였구나!”
아담은 분노했다.
승우가 아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담도 승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온갖 무예에 정통한 것도.
그런데도 검을 극한까지 파고들어서 검성이라고 불리게 된 것도, 전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네 장법과 권법이 대단해도 검보다는 못하겠지!”
아담과 승우의 전투가 성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승우가 검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든 그는 사람 자체가 달라졌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면 아담과 맞붙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죽기 전의 세계에서, 승우 혼자서 아담과 대적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승우를 호적수라고 생각했던 아담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쉽다.’
자신이 열게 될 새로운 지평선.
그 단초로 자신을 죽였던 그의 목숨을 취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건만.
‘고작 변수 창출을 위해서 검을 내려놓다니.’
아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공격을 모두 받은 다음, 가까이 접근한 승우를 일격에 참살할 작정이었다. 팔다리와 목이 다소 망가지겠지만,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내놓을 각오가 되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검을 몇 년을 휘둘렀는데 그걸 모를 것 같냐?”
나는 작게 웃으며 양손에 화염을 휘감았다.
바닥을 발차며 미리 영창해 둔 마법이 손에서 타올랐다.
“처음부터 칼질할 생각 없었어.”
“……!”
지금의 나는 마법사다.
마법사가 무슨 검이야.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여야지.
손바닥과 주먹이 아담의 몸에 닿자 그의 몸에서 평생 본 적 없는 규모의 거대한 화염이 솟구쳤다.
─그런 것치고는 잘만 휘둘렀으면서.
어허.
나 정도 경지면 검술이 아니라 마법이라도 불러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