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0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406화(40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406화
맺음(1)
아담은 눈을 떴다.
심록(深綠)의 세상.
사람의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아담의 세계이자, 아담의 영역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담은 나무에 열린 사과를 따 으썩으썩 씹었다.
달다. 달아. 이가 썩을 정도로 달아서 그런가?
유난히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패배했구나.”
자신이 이곳에서 눈을 떴다는 것은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것.
아담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그의 승리 조건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승우를 죽이는 것도 그의 목표를 이루는 조건이었고.
반대로 승우가 아담의 몸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담의 인간 시절의 몸을 죽인다면 그것 또한 승리 조건으로 성립했다.
“두 가지 방법을 준비했는데…….”
둘 다 실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답답한 마음에 아담은 사과를 씹었다. 씹고 또 씹었다.
으썩으썩, 사과 과즙이 입안 가득 차 입가에 흘러내릴 때까지 사과를 먹었다.
머리가 더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단 사과를 입에 잔뜩 쑤셔 넣었다.
어서 빨리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리기 위해 본인이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재앙이라는 명칭에 걸맞은 권능과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지식은 여기선 아무 소용없다.
어서, 빨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아담은 간절히 소망했다.
“…….”
그렇지만 그와 소망이 이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한차례 패배했었다. 이번이 두 번째 패배였다.
“실패했네, 완전히 실패했어.”
아담은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음을 직감했다.
“재앙이 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재앙이란 시스템의 반발 작용으로 탄생한 개념이었다.
멸망했거나, 멸망해 가는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은 모든 세계에 긍정적인 작용만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당장 시스템이 만들어진 조금 전의 세계조차 구원받지 못했다.
멸망에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자신들의 피조물인 시스템에 버림받은 세계.
이후 시스템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통제할 핵심 인공지능 ‘이브’를 만들었지만, 최후에 완성된 인공지능조차 자신들을 버렸다.
아담은 그렇게 버려진 세상에서 탄생한 재앙.
이미 멸망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고향을 증오했기에, 그는 나무를 피워내고 대지를 조종하는 권능을 갖게 되었다.
그 권능조차 악의적이었다.
“……복수가 하고 싶었는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것에.
그 아이를 죽게 만든 세상을 어떻게 뒤집고 싶었다.
‘그 아이…….’
아담은 차마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지 못했다.
이름을 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탄생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봤으니까.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잊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브.”
맨 처음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진 그녀에게 세상을 알려줬다.
따스함은 무엇이고,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줬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시스템의 인공지능이 될 적성이 부족했다.
이후 그녀의 모든 것을 계승한 두 번째 이브가 세상에 나왔다.
이미 한차례 ’이브’를 교육한 적이 있는 아담이 그녀를 가르쳤다.
아담은 또다시 그녀를 잃지 않고자, 첫 번째와는 다른 것을 가르쳤다.
차가움을, 슬픔을, 싸늘함을 가르쳤다.
그 결과는 실패. 아담은 그렇게 수천 번의 실패를 반복했다.
아니, 수만 번. 수억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이브가 마탑 지하에 산처럼 쌓였다는 것은 고려하면, 못해도 그 정도 실패는 했을 것이다.
‘이제는 기억도 안 나네.’
첫 번째 이브에게 무슨 감정을 품었었는지.
그 이후로 만들어지는 이브들에게는 또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폐기 처분되어 공허에 흩뿌려지는 그녀들의 흔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부 까먹었다. 아담은 너무 오래 살았다.
격렬했던 감정은 시간에 풍화되어 옅어졌다.
“이브.”
입에 담고 싶었던, 그러나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이름을 불렀다.
아담은 끝까지 그녀를 놓지 않았건만.
매정한 그녀는 완성되자마자 그와 그의 세상을 버렸다.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과연 마지막에 탄생한 이브를 그가 알고 있는 이브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담은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브들을 가르쳤지만, 정작 그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의문이었다.
“너는 뭘 좋아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것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시스템의 중추에 연결된 적성이 있는지 없는지만 관심이 있었지.
정작 너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인제 와서는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살아 있는 그 녀석이라면 물어볼 수 있겠지.”
빙의가 완벽하게 풀린 지금.
더 이상 침범할 수 없게 된 그곳에는 이브가 있었다.
이면 세계라. 과거의 환상을 재현하다니.
너도 제법 악질적인 걸 만들었어.
“…….”
아담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뻗으면 다시 닿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설령 닿더라도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곧 그의 죽음이 드리웠으니까.
* * *
나는 숨을 몰아쉬며 아담의 상태를 확인했다.
─영적인 연결이 아예 느껴지지 않아.
재앙과 연결된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재앙을. 아담을 몰아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나저나 아담, 재앙 아담 섞어서 사용하니까 헷갈리네.
─연결이 끊어진 놈은 그냥 재앙이라고 부르자고. 어차피 그 녀석 당분간 볼 일 없잖아.
타마모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차피 그 녀석과 다시 재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오딘과 이브를 죽이거나 몰아내고, 이 세계를 안정시킨 다음, 루나를 매개로 그 세상을 열 필요가 있었다.
무려 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게 좀 쉽냐고.
‘적어도 1년.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다.’
나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잘하면 이번에는 부활이든, 다른 시간 축이든 놈을 확실하게 소멸시킬 수 있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어? 부활을 막는 것 정도야 소멸하는 영혼을 시독(屍毒)으로 녹여 버리면 그만이지만, 시간 축이 다른 건 어떻게 하려고?
뭐, 남화연에게 공간 마법을 배웠던 것처럼 시간을 조작하는 마법도 배워서 과거로 떠나서 죽이기라도 하려고?
타마모 본인이 말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놈을 죽여봤자, 우주와 세계선이라는 것들은 끝을 모르고 팽창하기 때문에 우주 어딘가에는 또 다른 아담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바로 그때 한 목소리가 의견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모조리 베어버리면 그만이잖아요.”
시간도 공간도, 존재도. 싹 다.
익숙한 목소리에 나와 타마모는 고개를 돌렸다.
나를 제외하고, 타마모의 말을 듣고 의견을 첨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심검을 사용하실 작정이었죠?”
루나.
─심검? 심검은 그냥 형태가 없는 검……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전에 은인님이 마탑에서 수석으로 근무하실 때 원리도 설명해 주셨잖아요. 형태가 없기만 한 것은 무형검. 심검은 형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비롯한 모든 제약에서 자유롭다고.”
루나의 말에 타마모가 손뼉을 쳤다.
─부활하거나 이번처럼 다른 시간대에서 파생하는 것을 염려할 필요 없이, 그냥 모든 아담은 존재째로 베어버리면 되네!
그러면 다시 만날 걱정도 없잖아.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하는 타마모의 몸이 문득 굳었다.
타마모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짜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어째서 놈이 여기 있을 때 안 베었어?
네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타마모의 호안이 강렬하게 째려봤다.
그 강렬한 시선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럴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심검이 쉬운 줄 알아?”
나야 심검을 평범한 기술처럼 남발하기도 하지만, 모든 기술에 강약이 있듯이 심검도 그 세기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전투에서 남발하는 심검은 대부분 위력이 가장 약한 공격이다.
내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심검.
심검. 모든 무인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기술다운 위력을 뽐내기 위해서는 나조차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력과 정신력을 투자해야만 한다.
“아담 같은 존재를 ‘완벽하게’ 베어내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야.”
우선 놈을 약화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벨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모든 마력과 정신력. 상황에 따라서는 수명을 소모한 심검을 뽑아서 휘둘러야 하는데, 아담하고 싸우면서 그런 여유는 없었다.
“저로서는 방금 그 ‘이번처럼’의 의미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나가 우리 둘을 보며 작게 웃었다.
소리장도(笑裏藏刀). 루나의 웃음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화들짝 놀랐다.
“너…… 설마?”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지……?”
주어가 생략된 의미심장한 말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향해서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저한테.”
그녀의 손은 내 손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 오른손. 내가 검을 잡는 방향으로 손을 내밀었다.
대화에 주어가 없어서 이해하는 것이 늦었던 타마모도 그제야 루나가 하는 말의 의도를 깨달았다.
타마모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검 한 자루를 물려받는다고 네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루나가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복잡하게 세 가지 과정을 거치지 말고 한 번에 처리하자는 뜻이었다.
“수 님. 아니, 은인님이 말씀하셨죠.”
언젠가 때가 된다면 모든 재앙을 상대할 준비를 하고, 다시 제 세상으로 함께 가겠다고.
“그 순간이 지금이에요.”
루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빙의가 풀린 아담은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딘은 학생들과 이브의 공격에 치명타를 허용하고는 천천히 죽어갔다. 나머지는 재앙들에 의해 죽었다.
남은 재앙은 오직 하나.
아담.
그 녀석만 잡는다면 모든 게 끝난다.
“……틀린 말은 아니야.”
아담의 본체는 루나의 고향.
신단수의 그루터기가 남은 곳에 있을 것이다.
내가 그것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와 제물을 준비하거나 오딘처럼 약해진 상태로 이동해야 한다.
그렇지만 태어나기를 신단수가 자리 잡은 땅에서 태어난 루나라면.
“너는 기원을 그 세계에 두고 있으니까. 아무런 제약 없이 네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
나는 고민했다.
고민은 짧았다.
“할 수 있어?”
마음가짐을 묻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나? 없나?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할 수 있습니다.”
루나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을 강하게 쥐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에 마치 검을 든 것처럼.
내 심상을 오롯이 오른손에 투영했다.
“자, 받아.”
툭.
루나에게 반투명한 무언가를 던졌다.
작은 단검이었다.
“이건……?”
“네가 달라고 했잖아. 심검.”
본래 심검은 형태가 없어야 하지만, 루나는 검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명백한 형태가 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만들었다.
설마 내가 이토록 쉽게 줄 생각은 못 했는지 눈을 깜빡깜빡 뜨던 루나가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 인사는 됐다.
나도 이제는 슬슬 끝내고 싶던 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