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0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407화(40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407화
맺음(2)
나는 공간 마법을 전개했다.
가뜩이나 심검을 만들기 위해 없는 마력과 정신력을 쥐어짜 냈는데, 이 상태에서 공간 마법까지 전개하려니까 죽을 맛이다.
이게 마력이 좀 들어야지.
─괘, 괜찮아……?
“왜. 안 괜찮아 보여?”
─응.
“사실 죽을 것 같아.”
아담과 싸울 때도 이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충격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장기 파편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은 게 전부였다.
억지로 성역을 펼쳐서 놈의 권능을 틀어막을 때는 내 장기도 함께 익는 줄 알아서 괴로웠지.
‘……어라?’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거 포탈을 만들기 전에도 위험했잖아?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나를 지켜보던 루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지금 포탈 만들겠다고 완전 무리하셨죠?”
“내가 지금 이걸 누구 때문에 만드는데 웃음을 터뜨려.”
“당연히 당신을 위해서죠.”
루나가 손가락으로 내 가슴팍을 찔렀다.
“다시 아담과 만날 일이 없도록 제가 심검으로 약해진 녀석을 소멸시키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은인님이시잖아요. 안 그래요?”
“쯧. 마음에 채무라도 달아두려고 했건만.”
얘가 마탑에서 너무 많이 구른 탓에 눈치가 빨라졌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마탑에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
능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지난 1달 동안 학생 한 명 더 키운 기분이었다.
“은인님.”
“……선생님.”
“예……?”
“은인님은 너무 딱딱하잖아. 선생님이라고 불러. 그게 싫으면─”
나는 잠시 고민 끝에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던가.”
스승님.
내 옛 상처가 짙게 담긴 명칭이었다.
“스승님? 지금 스승님이라고 하셨어요?”
루나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지금 대화에 놀랄 게 뭐 있어?
내가 이상한 눈치로 그녀를 쳐다보자 루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까지 제가 마탑에서 장난삼아 스승님이라고 부를 때 싫어하셨잖아요!”
“어…….”
내가 그랬나?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마탑에 있는 동안은 연구에 미쳐 살아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내가 스승님이라는 표현을 워낙 싫어하니까.
장난으로도 듣고 싶지 않았겠지.
“그러면 이번에만 허락한다고 생각해. 어차피 우리가 다음에 또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녀의 세계로 갈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과수원의 열쇠에 저장된 좌표로 이동하는 것.
그렇지만 과수원의 열쇠는 한 번 사용하니까 망가져서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그 세계의 주민인 루나를 ‘축’으로 삼아서 공간을 여는 것인데, 그것도 그녀가 떠나면 불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다시 말해 오늘 이후로 두 번 다시 루나를 만날 수 없는 셈이다.
“그동안 수고 많았고, 정말 고생했다.”
루나의 보좌 덕분에 수많은 연구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포탈을 열 수 있는 것도 루나 덕분에 공간 관련 연구를 빠르게 진행한 덕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의미였다.
“……사실 엄청 힘들었지만, 그래도 고마웠어요.”
덥석.
루나가 내민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다양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꾸욱.
한창 웃고 다닐 나이의 어린 엘프가 저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작은 손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을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좋은데 말이야.
타마모가 뚱한 표정으로 뒤를 가리켰다.
─저기 쟤네들. 방금 네가 한 말 들은 것 같거든?
타마모가 가리키는 곳에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뚝. 뚝. 뚝.
그것도 목 잘린 오딘을 들고서.
야야, 목 자른 부분에서 피 떨어진다.
“…….”
“……쌤.”
“…….”
“……하, 이럴 줄 알았어. 진짜.”
“……저희한테는 안 된다고 하셨으면서.”
나랑 루나가 말없이 학생들을 쳐다봤다.
타마모가 입을 열자 우리 둘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기억나? 쟤네들이 스승님으로 부른다니까 네가 거부한 거?
귀찮게 됐다며 타마모가 나를 쪼았다.
나와 루나의 시선이 갈라졌다.
내 시선은 땅바닥을 향했고, 루나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헤에.”
루나가 대충 알겠다는 눈치로 중얼거렸다.
“원래도 스승님이라는 표현에 엄격하셨군요, 스승님.”
“……!”
마지막 ‘스승님’에 힘을 주고 말하자 학생 중 이사벨의 반응이 격했다. 순간,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너 번개 아니야. 네 빛 속성이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마른하늘에서 번개가 또 하나 내려왔다.
그 모습에 루나가 작게 웃음을 지었다.
나를 애처롭게 만들던 표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제 갈 때가 됐네요.”
루나가 포탈을 향해 걸어갔다.
신기하다며 포탈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만진다.
입구를 살며시 만지던 루나가 중얼거렸다.
“스승님.”
“……왜?”
“사실 그거 아세요?”
루나가 포탈 쪽을 쳐다보고 있어서 이쪽으로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스승님이 사용한 ‘수’라는 이름은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가명이에요.”
협곡의 영웅, 수.
루나가 이끌던 연합과 마주했을 때 내가 사용하던 현지의 이름이었다.
장본인이 등장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들어서 사용했었는데.
“아버지가 따분한 왕 노릇이 싫어서 가명을 짓고 종종 외출하셨는데.”
루나가 나를 돌아봤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 이름을 스승님이 사용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입가에 걸친 미소는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그거 아시나요?”
저희는 은인을 치켜세울 때 특별한 존칭을 사용한답니다.
사람이 이름 뒤에 공(公)을 붙여서 높이는 것처럼.
저희는 어머니나무의 자식들인 만큼, 은인을 위대한 어머니의 뿌리가 땅에 내려 사람의 형태로 빚어졌다는 의미로.
“루트(Root).”
그런 식으로 이름 뒤에 붙이곤 한답니다.
“수르트.”
뭔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하필 내가 불을 다뤄서 더 그렇네.
실제로 세계수를 태우기도 했고 말이다.
“그냥 그렇다고요.”
별로 특별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루나는 그걸로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다 전했는지.
무척이나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포탈에 들어갔다.
* * *
짹짹!
새가 지저귄다.
‘도시’에서 사는 동안에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푸르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눈을 두들겼다.
“흐아아아아…….”
부드러운 잔디밭에 누웠던 루나가 기지개를 켜며 부스스 일어났다.
“…….”
한숨 푹 잔 사람처럼 눈을 비비는 루나.
그녀는 말없이 주변을 살폈다.
푸르른 초목과 뛰노는 동물들.
“……!”
그 광경에 루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신단수가 땅의 모든 영양소를 흡수하며, 수많은 초목이 시들고 동물들이 죽어 나갔다. 연합을 결성해 필사적으로 자연환경을 지키던 시절에도 이토록 평화로운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바로 그때 루나의 머릿속으로 승우의 말이 지나갔다.
─너를 축으로 삼아서 재앙들이 침범하기 전으로 이동한다면.
재앙들로부터 연합을 구할 수 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루나는 당연히 1달 전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쓸데없이 평화로운 광경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만약, 연구 끝에 승우의 공간 마법을 다루는 실력이 향상됐다면.
다 같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루나 혼자 이쪽 세계로 돌아왔다면.
“…….”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루나가 생각에 잠긴 그때.
“……나!”
숲 너머 소리가 들렸다.
야생동물의 울부짖음과는 확연히 다른, 지적 생명체의 목소리.
심지어 그것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다다다다!
그 목소리를 들은 루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숲을 가로질렀다. 살면서 이토록 빠르게 달린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
“야, 너 뭐 해! 오늘 공주님 생일인 거 몰라? 조금 조용히 말해!”
“네가 제일 시끄럽거든!”
“뭐라고 했냐?! 한번 시험해 봐?”
긴 귀의 선남선녀 넷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모습. 루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주저앉았다.
“……나히, 진, 미루, 루한.”
내, 내 소중한 가신들.
루나와 형제자매처럼 자란 엘프들이었다.
그리고 10년 전 그날. 불타버린 엘프들의 왕국과 함께 재가 되어버린 내 가족들. 그들이 저기에, 저기에 있다. 살아 있다.
“이런, 몰래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려고 했는데 들켰구나.”
“아, 아, 아버…… 읍!”
뒤에서 들린 목소리와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루나.
숨이 끊어질 정도로 울먹거리는 루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루나 뒤에 선 중년의 사내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루나. 우리 모른 척 조용히 해주자꾸나.”
올해 네 생일은 꼭 서프라이즈로 하겠다면서 일주일 동안 저 모양이니까. 이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우리 딸은 착하니까.
“……아아.”
우리 딸.
이 말을 도대체 몇 년 만에 들어보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내 아버지.
왕국과 함께 눈을 감으신 내 아버지.
‘이, 이게 꿈은 아니겠지?’
루나가 손으로 눈을 비볐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나서 눈을 비빌 때도 손에 들려있던 단검.
‘스승님의 심검.’
그래, 현실이다.
이 검이 있는 이상 이 순간은 현실이었다.
“알았어요. 모르는 척하고 있을 테니까. 저는 잠시 산책 좀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오려무나.”
“……네.”
이번에는 꼭 아버지 곁에 있을게요.
루나는 눈가를 비비며 나뭇가지 위를 달렸다.
“꿈이…… 아니야.”
루나는 지난 순간을 떠올렸다.
지난 한 달은 하이엘프로 살아왔던 길고 긴 인생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인상적인 나날의 연속이었다.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죽는 그 날까지도.
‘나히, 진, 미루, 루한.’
이 검이 내 손에 있는 이상 무슨 서프라이즈를 벌여도 놀랍지 않을 거야. 나는 이미 가장 놀라운 선물을 받았거든.
루나는 심검에 정신을 집중하며 나무 위를 달렸다.
심검이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 위치는.
“신단수.”
우리들의 어머니나무.
그 아래였다.
“여기 작은 샘물이 있었구나?”
심검이 신호를 보냈다.
이곳이라고. 이곳에 무언가가 있다고.
그 신호를 받은 루나는 곧장 샘물 근처를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스르르륵.
바닥을 기는 검은 뱀을 발견했다.
검은 뱀. 그 존재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았다.
루나는 본능적으로 단검을 들어.
푹!
검은 뱀의 머리 위에 박았다.
뱀은 저항하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는 듯.
소리없이 눈을 감았다.
뱀이 죽었다는 것을 확신한 심검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끝났나?”
이걸로 끝인가?
정말로?
“…….”
멍하니 뱀을 내려다보던 루나는 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독이 땅과 풀을 녹이는 것을 봤다. 단순히 녹는 게 아니었다.
시드는 것처럼 녹아들었다.
그런 피가 샘물로 흘러들어 가려고 한다.
저 피가 샘물에 들어간다면, 샘물이 오염되어 곧 어머니나무가 그 더렵혀진 물을 흡수하리라.
화르르륵!
루나는 정령의 힘 없이 손가락으로 불꽃을 피웠다.
스승님의 곁에서 불꽃을 피우고, 다루는 방법을 지켜본 그녀는 뱀의 사체와 피를 흔적도 없이 불태웠다. 잿더미조차 남지 않도록, 그 영혼마저 불태울 수 있을 화력으로 사체를 태웠다.
“……끝났다.”
이제야. 모든 게 끝났음을 확신했다.
털썩!
루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내 정신적으로 지친 그녀는 하늘을 보며 바닥에 누웠다.
아버지가 본다면 공주가 무슨 체면으로 바닥에 눕냐고 잔소리하겠지만.
“저는 그냥 공주가 아니라고요.”
나는 스승님의 제자다.
그것도 처음으로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받은 제자.
단순한 공주님이 아니었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즐겨도 되겠죠?”
이제 말단 연구원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스승님?
루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두둥실 떠오른 구름.
그녀는 그 구름 위로 자신의 감정을 흘려보냈다.
“안녕.”
내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