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5)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45화(45/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45화
세상에 좋은 조는 없다(5)
이지를 비롯한 조원들은 강의가 겹쳐서 종종 만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알지만, 친하지는 않은 미묘한 거리감 때문에 인사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들이 많았다.
하여 담력 훈련을 가기 전에 조원들끼리만 모여서 만남의 장을 열었다.
“자, 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고, 나는 바닐라 라떼, 저쪽은 카라멜 마끼아또…….”
이지가 양손 가득히 커피를 가져왔다.
그는 사전에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미리 커피를 주문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두 명이 없을까.
분명 원하는 음료도 물어봤는데.
“어라? 예린이랑 연화는 안 왔나?”
“아직 톡 못 봤어? 둘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온대.”
“……아, 그러네.”
[서예린─야외 강의라 시간 내로 못 맞출 것 같아……. 나 빼고 얘기들하고 있어. 오후 4:11] [星蓮花─죄송하지만, 저도 오늘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갈 것 같아요! 오후 4:15]같은 학년이라고, 모두가 같은 강의를 듣는 것은 아니다.
반에 따라서 강의 편성이 조금씩 바뀌게 마련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연락 좀 주지.
괜히 아까운 돈만 날렸다.
그나마 서예린은 비교적 값싼 핫초코를 요구했지만, 성연화 얘는 아이스스토리베리바나나더블샷스무디라는 뭔지도 모를 비싼 걸 요구했다.
이름은 또 왜 이렇게 긴 거야?
“이거 너무 아까운데. 환불할 수 있으려나?”
“환불이라니? 안 먹을 생각이야?”
“당연하지. 나는 바닐라 라떼로 충분한걸.”
“그러면 나 주라.”
아이시스가 손을 뻗자, 이지는 조금 망설이다가 이름 긴 음료를 건넸다. 환불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거, 누군가 대신 먹어줄 수 있다면 괜찮지만.
“너 카라멜 마끼아또도 시켰는데,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이 정도는 거뜬해. 열량은 모르겠지만, 당은 충분히 섭취할 수 있어.”
“충분히 섭취하는 게 아니라, 치명적인 수준으로 섭취하는 것 아닐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음료는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혹여나 뺏길까 봐 있는 힘껏 빨대를 빠는 모습에 이지는 생각을 그만뒀다.
그래, 당뇨에 걸리든 알아서 해라.
달달한 음료를 양손 가득 든 아이시스를 뒤로하고, 이지는 정면을 바라봤다. 각자 음료를 홀짝이던 노유라와 이사벨.
둘 다 커피를 마시는 모습만으로 화보와 같다고 생각하는 그때.
어딘가 둘의 분위기가 불편해 보였다.
마치 지난번에 선생님과 이사벨 때처럼.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어머, 누가 들으면 내가 널 일부러 불러낸 줄 알겠다. 그냥 친구들끼리 모인 거잖아.”
딱딱한 이사벨의 말에 노유라가 사근사근하게 다가갔다.
그런데 어째 그 사근사근한 태도에서 불길한 느낌만 들었다.
“하, 친구라고? 어제 톡으로 시비를 건 주제에?”
“시비라니. 톡방 어디를 살펴봐도 그런 말은 없을 텐데.”
“단톡 말고 갠톡 말이야. 나보고 그 녀석이랑 떨어지라면서. 그걸 왜 네가 정하려 드는 거야?
“아하, 조교님에 관한 얘기구나.”
둘의 대화에 이지는 어딘가 싸늘함을 느꼈다.
분명 날붙이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둘의 입가가 서늘한 날붙이처럼 느껴졌다.
어우, 나는 저 대화에 함부로 못 끼겠다.
“그래, 왜 자꾸 나를 그런 녀석이랑 엮냔 말이야.”
“……그 녀석?”
돌연 싸늘하게 이사벨을 째려보는 노유라.
이내 그녀는 소매로 입을 가리곤, 후후 웃었다.
“어머, 아까부터 자꾸 조교님께 그 녀석이라니. 시리우스는 자식에게 예절 교육도 안 시키나 봐?”
“뭐라고?”
“혹시 하는 말인데. 조교님한테 미련이라도 남았어? 그래서 그렇게 까칠하게 구는 거야? 그러면 널 돌아봐 줄까 봐?”
“미, 미쳤어?! 내가 왜 그 녀석한테 미련이 남아……!”
과열되는 분위기.
깜짝 놀란 이지가 둘을 말리려고 입을 열었다.
“조, 조금만 진정하자.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
“넌 좀 빠져 있어.”
“지금 쟤랑 얘기하는 중이잖아.”
“……미안.”
제대로 말 한마디 꺼내보지도 못하고 입을 다문 이지.
그의 머릿속에 그리운 사람이 한 명 떠올랐다.
‘선생님 보고 싶어…….’
이지는 두 여학생의 기 싸움 사이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카페 안이라서 푸른 하늘도, 반짝이는 별도 없지만 그저 천장을 올려다봤다.
처음에는 여자애들 사이에 껴서 좋았는데, 이제는 너무 싫다.
한편 그 일련의 과정을 말없이 지켜보던 이가 한 명 더 있었으니.
“오…….”
오물오물, 아이스스토리베리바나나더블샷스무디를 마시던 아이시스는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거 맛있다.”
같은 조의 기 싸움은 그녀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상큼한 딸기와 부드러운 바나나에 씁쓸한 맛이 섞인 복잡미묘한 맛에 빠진 그녀는 빨대를 쪽쪽 빨았다.
이지만 힘든 상황.
그는 어서 백승우가 보고 싶었다.
적어도 선생님이 계셨다면, 이렇게까지 힘들 일은 없었을 텐데.
어디서 뭘 하고 계신 걸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 * *
야밤에 몰래 괴담의 진실을 파헤치자며 결심한 당일.
오늘 밤에는 마도서를 읽은 시간이 없어서, 근무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어디 보자.
‘12분 뒤에는 보고서 작성을 끝내고, 시간이 남는 8분 동안 87~102p까지 읽고, 보고서를 출력해서 교수님이 계신 연구실까지 가져가면…….’
대략적인 스케줄을 검토하고, 곧장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런저런 파일들을 훑으며, 정리된 자료를 조리 있게 써냈다.
손가락에 통증을 느낄 때 즈음, 보고서를 완성했다.
나는 완성한 보고서를 USB에 옮기고, 곧장 출력을 시작했다.
지이잉,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A4용지에 보고서를 인쇄하는 프린터.
뽑아야 할 보고서가 한두 장이 아니었기에, 나는 미리 핸드폰으로 찍어둔 마도서를 읽었다.
교무실에서는 부피가 큰 책을 일일이 들고 다닐 여유조차 없었다.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렇게 됐을까…….”
나는 한탄과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그 와중에도 눈을 갤러리에 저장된 마도서를 훑고 있었다.
한탄과 비관을 하되, 책을 읽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시간을 칼같이 사용하는, 정상인이라면 가질 수 없는 사고관 때문인가.
어느샌가 내 몰골은 피곤에 찌든 대학원생처럼 돼버렸다.
남화연은 그런 모습에서조차 퇴폐미가 느껴진다고 칭찬했지만.
지금 내 몰골에 반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이상성욕을 가진 성도착증 환자가 분명하다.
‘이거 이러다가 얘들이 나를 보고는 귀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라, 마도서를 읽다가도 카메라 앱으로 지금 내 모습을 살폈다.
새하얀 피부,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에, 검을 머리칼.
거기에 피골이 상접하기 직전인 몰골은 왠지 모를 미학이 느껴졌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귀신으로 오해받기 다분했다.
하는 수 없지.
학생들과 만나기 전에 밥을 먹고, 30분 정도 취침을 하고 만나야겠다.
나는 추가적인 스케줄을 계획하며, 제시간 내로 마도서를 읽고자 눈을 재빨리 움직였다.
삑삑!
마침 지정한 페이지를 다 읽자, 프린트가 끝났다.
이제 이걸 교수님께 전달하면 된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서류 다발을 가지고 이동했다.
“이거 생각보다 무거운데……!”
분량이 수백 장을 넘겨서 그런가.
서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무거웠다.
오죽하면 다리가 저려서 넘어질지도 모를 정도──
─쿵!
“……어라?”
나 방금 넘어진 건가.
왜 무게 균형을 못 잡았지.
아무리 피곤하고 무거워도, 갑자기 넘어질 정도로 쇠약해지진 않았을 텐데.
“괘, 괜찮으세요……?!”
“하하, 괜찮습니다. 실수로 넘어진 모양입니다.”
“그래도 크게 넘어지셨는데…….”
교무실에서 크게 넘어진 탓에 일부 조교들은 내 몰골에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머지들도 웃고 싶지만, 내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오직 눈앞의 여인만이 나를 걱정했다.
아, 그때 봤던 동기였네.
기억에 있던 사람이다.
며칠 전, 내게 업무를 도와달라고 했던 여인.
선임한테 깨지고 있던 이후로는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의 진심 어린 걱정에 감사를 표하려던 순간.
바로 그때였다.
우으읍!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나도 모르게 토악질이 나왔지만, 여기서 뱉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화장실에 도착해야지……!
“우웨엑! 우윽!”
필사적으로 화장실까지 달렸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런가, 달리는 게 영 시원치 않다.
나는 결국 바닥에 쓰러져서 목에 찬 무언가를 게워냈다.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아침은 걸렀고.
요 며칠간 업무와 수련 때문에 정상적인 식사를 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목과 뱃속에서 무언가를 게워냈다.
눈물이 나오고, 호흡이 딸려서 숨이 턱턱 막히는 와중.
무언가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 우으웩…… 이, 이게 뭐야.”
바닥에는 음식물의 찌꺼기조차 없었다.
토사물에는 따가운 위산과 타오른 목탄처럼 검붉은 피로 가득했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순간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을 느껴 평정을 유지했다.
“…….”
내가 뱉은 피는 생각보다 많았다.
일반적인 각혈인가.
아니, 그렇다고 보기에는 피가 너무 탁하다.
내장 조각이나 파편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장기에 손상을 입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검붉은 피를 토해낸 거지.
머릿속의 의문이 꽈리를 틀고 꿈틀거렸다.
‘마치 타다 만 목탄처럼 검붉은 색…….’
스으윽, 손으로 바닥의 피를 훑었다.
그러자 손에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
그 순간, 무심코 지금의 상황을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시한폭탄이었나.”
내 혈액은 「태양절맥」 때문에 양기로 가득하다
이로 인해, 나는 화염 마법에 한해서 엄청난 친화력을 얻었다.
몸 자체가 거대한 장작과 다름없는 셈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 대가로 내 피는 산소를 운반한 여력이 타인보다 부족하고, 신체 능력을 올릴 수 없는 부작용을 앓고 있다.
라고, 여태까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잘못됐다.
“신체 능력의 정체(停滯)가 문제가 아니었어.”
[막대한 양강의 기운에 혈맥이 틀어막히다 못해 꼬이고 망가지는 불치병, 태양절맥(太陽絶脈)의 소유자입니다. 모든 신체 능력의 성장에 제약이 생기며,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치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계속 방치할 경우, 목숨에 이상이 생길 것입니다.]*세맥(細脈)이 점점 막혀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세맥이 완전히 막힌다면, 맥을 통해 빠져나가지 못한 양강의 기운이 안에서 터져나갈 것입니다.
‘계속 방치할 경우, 목숨에 이상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안에서 터져나갈 것입니다……? 난리 났네, 진짜.’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무시무시한 문구가 추가됐다.
신체 능력의 제약 따위는 마지막에 비해 가벼운 부작용에 불과했다.
이거 큰일 났네.
“어떻게든 이 몸을 치료할 방법을 궁리해야 돼.”
죽지만 않으면 모든 병을 치료한다는 엘릭서조차 「태양절맥」을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양기로 인해 절맥증에 걸렸다면, 음기로 중화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뿐이다.
음기를 품은 음식이나 내단 정도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불치병이 괜히 불치병이겠냐.
강렬한 음기로 임시방편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병 자체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방법을 찾는 수밖에.”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에게 칼침을 맞아서 죽거나.
중간 보스나 최종 보스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병사(病死)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