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9)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49화(49/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49화
아카데미 괴담(4)
서예린의 눈동자가 믿음으로 번들거렸다.
이지야 원래부터 저런 눈빛이었고, 서예린이 그와 같은 눈빛을 하게 됐다는 것은 내게 큰 의미를 시사한다.
‘사제관계야 어찌 됐든, 적어도 가르침에 있어서는 내 창술을 사사하겠지.’
그녀는 가르침을 거부하는 성격이 아니다.
배울 수 있다면 뭐든지 배우는 편이다.
창술에 매진함에도, 치유학에 손을 대는 것이 그 증거다.
서예린은 가르침에 목마른 학생이다.
이지의 가정사는 잘 모르지만, 서예린은 주연이다 보니 그녀의 배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다.
‘신창의 손녀이자, 주인공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닌 자수성가의 대명사.’
그녀는 명가의 손녀로 태어났음에도 간단한 배움밖에 얻지 못했다.
원한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가문의 사조(思潮).
쟁취하지 못하면 배우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르침과 배움에 집착하며, 칠성의 수업과 성적에 광적으로 임한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필기와 실기를 더불어 전교 4등 안팎에서 놀았다는 이브의 언급이 이를 뒷받침했다.
─공부벌레 같은 캐릭터가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서 넣어봤거든. 그런데 어쩌다 보니 문무겸비의 괴물이 됐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밸런스 붕괴인 것 같아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뺐는데 뭔가 이상한 캐릭터가 됐단 말이지.
한 소설에서 주인공과 동등한 재능과 무력을 가졌다.
그것만으로 서예린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유추할 수 있다.
주인공이라는 것은 소설의 중심. 모든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는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그런 주인공과 동일시 취급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함을 넘어서 엄청난 가치가 있다. 그런 그녀를 가르치게 된 것은 무척이나 행운이다.
생각해 보면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왜 나는 굳이 내가 강해지려고 했단 말인가.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정의감 있고 재능 있는 학생들을 길러내면 되는 일이었잖아.’
내가 어째서 책임을 짊어지게 됐는지 떠올렸다.
주인공이 시나리오의 중심에 있으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죄 없는 자들이 죽어 나가서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영웅을 길러내면 될 일이었다.
더 이상 죽어가는 몸과 사용할 수 없는 기술에 한탄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익힌 모든 기술을 전수한다면, 혼자서 최종 보스는 힘들더라도 기타 악역들은 능히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과 노력이지.’
주인공을 대체할 영웅을 육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카일을 방구석으로 몰아낼 무력과 그에 걸맞은 책임감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절대로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그래도 할 수 있으면 해야지.
프린세스 메이커, 아니, 히어로 메이커인가.
꽤나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합격진(合擊陣)도 못 펼치는 녀석들이 책임감과 그럴듯한 실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졸업 이후를 노려야겠지.
“너, 내 가르침을 잘 따라올 자신 있어?”
“……응.”
아까부터 말이 짧다.
원래부터 그녀가 대화에 소극적인 성격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연장자에게 대할 태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뭐, 이전에 비해서는 나아졌으니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나는 서예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자 그녀는 은근히 좋아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과연 저 기쁨이 얼마나 가려나.
‘일주일…… 아니, 하루도 힘들지 않을까.’
내 훈련 방식은 일반적인 수련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내 기술을 기초부터 체계적인 방식으로 가르쳐야 하다 보니, 최소한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수련과는 차원이 다르리라.
하루 종일 훈련하다 보면 지금의 기쁨은 분노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서예린은 그런 내 속내도 모르게 들뜬 말투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러면…… 앞으로 스승님이라고 부를까?”
“어, 스승님은 좀 그런데……. 다른 명칭은 안 될까?”
“……응? 보통 자신의 기술을 가르쳐 주면…… 스승님인데.”
“존칭은 필요 없으니, 평소처럼 말해라.”
맞는 말이지만, 나는 ‘스승님’이라는 명칭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나 같은 녀석이 들어서는 안 되는 명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담스러워하자 서예린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멀리에서 우리 둘의 대화를 들은 이지가 한마디 내뱉었다.
“너도 드디어 선생님의 제자가, 아, 이런 표현 싫어하셨지. 선생님의 학생이 됐구나!”
“……선생님?”
“응, 선생님은 스승이란 표현보다는 선생님이라고 불리길 원하시거든.”
정말로 그렇게 불러야 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서예린.
뭔가 귀찮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나는 미심쩍었지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알았어……. 그러면 앞으로 선생님…… 이라고 부를게.”
“그러면 너도 이제 동기네. 아, 진짜 아쉽다. 우리 둘이 선생님과 사제관계를 맺었으면, 너는 내 사매가 되는 건데.”
“그치만…… 아니잖아.”
“그러니 아쉽다는 거지. 네가 내 사매가 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 사형이 사매보다 약하면 구도가 이상해지려나.”
“……너, 시끄러워.”
“뭐라고?”
이지와 투닥거리기 시작한 서예린.
귀엽네, 역시 어린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스승님도 나와 이브가 커가는 모습을 볼 때 이런 느낌이셨을까.
왠지 모를 옛 향수에 빠져, 과거를 추억하는 사이.
미묘한 기척이 있었다.
아까, 다람쥐와는 사뭇, 아니, 완전히 달랐다.
‘……뭔가 이상한데.’
전장에서 단련된 직감으로도, 높은 등급의 감각으로도 눈치챌 수 없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만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육감(六感)에 들어오는 기척이.
─후우웅
바람이 느껴졌다.
협곡과 계곡이 교차하는 바로 밑이니, 바람에 숭숭 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만 이건 조금 이질적이다.
바람이 어느 한 부분에서는 덜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바람을 등지고 서 있는 것처럼.
“……거기였나.”
“선생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너희들 뒤로 피해라.”
나는 학생들의 뒤로 걸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무언가가 서 있는 곳.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 아이들은 먼 훗날에 당첨이 확정되어 있는 복권들.
그러니 때가 무르익기 전까지, 복권이 긁어지는 것만 막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나리오의 진행을 비틀고 틀어막는 것이 내 역할.’
해야 할 일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교수님에게 조교로서 굴려지고, 매일 새벽 마법 공부로 뱀을 지새운다.
가문과 길드 사이에서 교묘하게 정치질을 하고, 시나리오를 비틀며 주인공의 개입을 틀어막는다.
다만 목표가 하나 추가됐을 뿐이다.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들로 하여금, 정해진 희생을 조금이라도 더 줄인다.
최종 보스도 쓰러뜨릴 수 있으면 좋고.
딱히 얘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다.
딱, 그 정도만 해주면 된다.
나머지는 어른들이 할 일이다.
터벅터벅, 앞을 향해 걸으며 생각했다.
바로 앞에 있는 녀석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어딘가에 숨어서 도청만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놈이지.
이것은 그런 녀석이 숨어 있을 경우를 대비해 효과적으로 위협하기 위한 수단.
나는 그 수단으로 장갑을 벗는 것을 채택했다.
장갑을 벗는다는 것은 일종의 주술적인 행위. 장갑으로 하여금, 보다 커다란 것을 한꺼풀 벗는다는 것이었다.
스윽, 검은 가죽 장갑을 벗었다.
[‘평범한 검은 장갑’을 해제합니다.] [장갑을 해제함에 따라, 그간 눌러왔던 격이 일제히 방출됩니다!] [방출된 격에 의해 자색 호안(狐眼)이 자연스레 떠집니다.] [‘여우불’로 하여금 자염(紫焰)이 일대에 드리운 어둠을 밝힙니다!]자색의 불꽃이 등불처럼 타오르자, 스포트라이트라도 받은 듯.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 앞의 꼬리가 고고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인의 맘도 모른 채로 흔들리는 꼬리는 퍽이나 신난 듯했다.
그거 스포트라이트 아니야.
* * *
돌연, 돌풍이 몰아쳤다.
전조도 없는 갑작스러운 현상에 깜짝 놀란 학생들이 무기를 꼬나 쥐었다. 어쩌면 불가사의 속 귀신의 심령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지는 땀을 뻘뻘 흘렸다.
이지는 떨리는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했다.
바로 앞에 있는 돌풍의 중심. 그곳에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껏 긴장한 마음으로 앞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원인은 의외로 싱거웠다.
“……서, 선생님?”
자신에게 배움을 하사한 은사이자, 지도 교사이신 선생님이 돌풍의 중심에 있었다. 보아하니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 같지는 않고, 대량의 마력을 방출하며 상승 기류가 일어난 모양이다.
뭐가 어찌 됐든 귀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는 것이 이지의 다리를 풀리게 만들었다.
“아니, 선생님! 아무리 담력 훈련이라도 이런 이벤트는 너무한 거 아니에요?”
“…….”
“저…… 선생님? 제 말 무시하시는 건가요?”
“야, 멍청하면 가만히라도 있어. 네 눈에는 저게 이벤트로 보이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저건 누가 봐도 이벤트 잖…….”
이지의 거듭되는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어딘가 불길함을 느낀 이사벨을 이지의 어깨를 쳤다.
그와 동시에 일행의 코를 마비시키는 냄새가 퍼졌다.
킁킁, 코를 타고 머릿속을 기어들어 오는 역겨운 피비린내.
사체에서 간을 뽑아다가, 한 입 크게 베어 문 듯한 강렬한 피비린내가 사방에 진동했다. 후각을 강타하는 냄새에 크게 놀란 그들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솨아아.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다만 이전의 돌풍과 달리 스산하게 불고 있었다.
음습하게 살갗을 훑는 괴상한 바람.
그 중심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학생들이 아는 얼굴이었다.
그야 자신들의 지도 교사인 백승우였으니까.
못 알아보는 것이 이상하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병약하고 힘없어 보이던 퇴폐적인 인상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돌변했다.
루비처럼 찬란한 빛을 품은 눈동자는 여전하나, 자수정처럼 자줏빛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돌변한 모습에 학생들은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변한 외형에 크게 당황했다.
모든 학생들이 백승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와중, 서예린과 성연화는 눈을 부라렸다.
둘은 일행 중에서도 유독 감각에 예민해 백승우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변화는 단순히 외형이 조금 변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나타내는 모든 기질(氣質)이 달라졌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만큼 꼬리를 드러낸 백승우는 평소와 전혀 다른 기색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예린이 읊조렸다.
“……구미호.”
천호백가의 혈족들은 흔히들 아인종(亞人種)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파고들면 틀린 말이다. 그들은 아인종보다 위에 있는 족속들이다.
여우는 꼬리를 늘릴수록, 환상의 종족이라 불리는 환상종(幻想種)에 가까워진다.
이윽고, 구미호에 다다라서는 드래곤이나 하이엘프에 버금가는 지고종(至高種)이나 절대종(絕對種)으로 승격한다고 전해진다.
어디까지나 전해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미호 정도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인간과의 격의 차이는 여실했다.
화르르, 갑자기 그의 등 뒤로 불꽃이 솟구쳤다.
영혼을 땔감 삼아서 저주를 흩뿌리는 아홉 갈래의 불길, 「여우불」.
그 저주의 불길이 달빛과 손전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거둬냈다.
그리하여 드러난 상대의 모습.
해서 얼굴을 올려다봤는데, 안면이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서 이목구비가 안 보인다는 뜻이 아니라, 얼굴 자체가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가면은 아닌 것 같았다.
딱히 본인이 벗을 의사도 없어 보였다.
“……그러면 불태워야지.”
「파이로키네시스」
허공에 불꽃이 일렁이며, 꼬리처럼 그의 등 뒤에 서성였다.
불꽃은 일반적인 화염 마법보다 높은 밀도와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법에 조예가 깊은 이사벨이 허공을 올려다봤다.
“……술식의 난이도는 중급, 아니, 중상급에 가까우려나. 원본의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어.”
그녀의 눈에 허공에 떠오른 마법은 누더기처럼 보였다.
오로지 위력과 효율만 챙긴 마법. 그 안에는 마법사 본인을 보호할,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쳤다, 미쳤어.
이사벨 또한 약혼자를 떠나보내고, 마법에 미쳐 살았다고 자부할 만하지만. 그는 도대체 얼마나 미친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저런 마법은 완전히 분신자살자의 것이지 않은가.
화르르륵──!!
물리력을 가진 거대한 불꽃의 화구.
이 정도 크기와 질량이라면, 같은 크기의 돌덩이와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백승우는 그걸 아무런 망설임 없이 던졌다.
─콰과광!
화구가 바닥에 꽂혔다.
산사태 속 낙석과 비슷한 규모의 굉음과 먼지가 사방에 자욱하게 퍼졌다. 보통의 야생 동물이라면 곤죽이 되고, 저위계 마물이라면 사지를 잃을 법한 공격.
뿐만 아니라,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는 화구를 던진 만큼.
주변의 풀밭으로 불똥이 튀며 화상을 유발했다.
킁킁, 냄새를 맡자 고기가 타오르는 냄새가 느껴지진 않았다.
이 말인즉슨, 불꽃을 맞은 상대가 마법을 방어했거나.
저벅저벅.
화상을 입을 살갗조차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검붉은 연기를 지나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
녀석은 말 그대로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