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0)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50화(50/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50화
아카데미 괴담(5)
“갑주를 입은 기사?”
“갑주보다는 군복처럼 보이지 안 나요?”
“몸이 온통 새까만데, 갑주고 군복이고 어떻게 구분해.”
“……뭐가 어찌 됐든, 적의는 없어 보이는데?”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으로 엿본 상대의 실루엣.
그건 사람을 닮은 검은 무언가였다.
녀석은, 아니, 녀석들은 협곡과 계곡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놈을 발견하니 다른 녀석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녀석들은 차례로 순찰하고 있었다.
“혹시 새로운 형태의 마물인가? 지난 습격 때, 이곳에 둥지를 틀어서 번식했을지도 몰라.”
“아니, 저것들은 마물이 아니야.”
“……선생님?”
저것은 마물이 아니다.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색은 분명히 사람의 것이다.
정돈된 복장과 무기를 어깨에 걸치며 일정한 걸음걸이로 움직이고 있다.
저건 전형적인…….
“그림자로 만든 위병인가.”
그림자 위병, 누군가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수호하고 있는 녀석들임은 분명했다. 마력으로 구성된 몸체를 보아하니, 마법이나 스킬에 의해 만들어진 것 같다.
사람들 눈에 잘 띌 만한 녀석임에도 경비원들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교수들 중 한 명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화연이나 타이거, 에밀리아 교수의 작품 같지는 않아. 그렇다면 이사장인가. 아니, 이사장 같지도 않은데…….’
수십 명의 교수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뱀파이어도 아니고, 그림자를 주특기로 다루는 교수는 이 자리에 없다. 그렇다면 혹시 칠성 내부의 방범 시스템인가.
그것도 아닌가.
‘그랬다면 지난 습격 때 움직였겠지.’
방범 시스템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림자는 계곡 주변을 지키며, 사주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선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우리를 적으로 판단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내가 불꽃으로 타격한 녀석도, 불꽃을 막아내고는 순찰을 마저 하고 있었다.
“이게 불가사의의 실체였어? 그런데 저것들은 대체 뭐지.”
“지난 습격 이후로 보충한 경비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 그러면 어쩌지. 결국 되게 허무하게 끝났잖아.”
뭐가 어찌 됐든 담력 훈련을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진짜 귀신이 있던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의 방범 경비로 보이는 것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런 소득 없이 기숙사로 내려왔다.
나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뱉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어째 주머니가 너무 가볍다.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느낌이다.
“……아, 내 지갑.”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바지와 셔츠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손수건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바닥에 떨군 모양이다.
“서, 선생님 지갑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다시 찾으러 가야지.”
“같이…… 가줘?”
“하, 칠칠치 못하게 지갑을 잃어버리긴.”
지갑을 잃어버리자 이지와 서예린이 나를 걱정했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얘들이라서 그런가.
다른 학생들보다 나를 걱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도대체 얼마 많이 받아보는 온정이냐.
감동한 나머지, 마음속으로 펑펑 울었다.
당연하지만 진짜로 울지는 않았다.
애초에 난 지갑을 잃어버린 적도 없으니까.
그저 다시 협곡에 발을 들일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손을 흔들며, 홀로 계곡을 타고 협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뒷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지갑의 감촉을 애써 무시한 채로.
* * *
학생들을 기숙사 근처로 인도한 나는 곧장 지갑을 찾으러 협곡에 도착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혼자라서 그런가.
유난히 봄바람이 싸늘하게 느껴진다.
“……어디 보자.”
길을 걷다 보니, 조교 신분증이 있어야 열 수 있는 구간이 드러났다.
지갑을 잃어버렸으면 열 수 없는 것이 정상이지만.
띡,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내 손에는 가죽 지갑과 신분증이 들려 있었다.
태연하게 신분증을 지갑 속에 보관하고,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걸었다.
“어라, 내 지갑이 어디 있더라.”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천천히 걸었다.
어느 바닥에 지갑을 떨어뜨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행여나 다람쥐가 지갑을 들고 달아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나무 위도 꼼꼼하게 살펴봤다. 도대체 어디 있지?
‘그림자는 분명 이쪽에서 뻗어 나온 것으로 보였는데.’
달빛과 사물에 늘어진 그림자들을 훑었다.
그것만으로 그림자 위병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의 몸은 달그림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림자가 생기기 위해서는 빛과 물체가 필요하다.
협곡과 계곡에는 온갖 지형지물이 있으니, 토경(兔景)의 위치만 고려하면 그림자 위병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내 눈으로 확인한바, 그림자 위병들은─
땅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지들이 무슨 두더지도 아니고.”
주변의 모든 단서들이 땅속을 가리키고 있다.
진짜로 두더지는 아닐 테니, 땅속에 토굴이라도 지어져 있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더 이상 지갑을 찾는 연기를 할 필요는 없어졌다. 일단 한 방 갈기고 보자.
“타올라라.”
입을 열자 목구멍을 통해 마력이 빠져나갔다.
대량의 마력은 내가 내뱉은 언어를 따라, 현상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마력은 내가 말한 대로 ‘타올랐다’.
마법으로 불꽃을 구현한 것도 아니고, 마력 그 자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허공을 단검으로 긋듯이 얇은 상처가 났다.
그 틈으로 붉은 피처럼 타오르는 마력이 흘렀다.
위에서 아래로, 중력을 따라 떨어지는 붉은 마력은 거세게 타오르며 원형의 마법진을 이뤘다.
「파이로키네시스」
「여우불」
마법진의 내용물은 간단했다.
내가 만든 마법과 스킬을 적절히 섞은 마법.
다만 효율과 위력이 말도 안 됐다.
마법진에 여러 술식과 문자가 온전한 형태를 이루자.
화르륵, 마법진을 시작으로 일대에 거대한 화염이 몰아쳤다.
자색 화염이 땅바닥에 쏟아졌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땅거죽이 뒤집혔다. 식물은 타오르고, 암석은 붕괴했다. 반파된 일대 속에서 거대한 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하게는 여러 굴을 하나로 이은 토굴이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
거대한 지렁이가 땅을 파먹은 것 같은 장엄한 토굴.
이만한 규모의 토굴을 만들었으면, 지반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경비원들과 교수들에게도 발각됐을 텐데. 어떻게 내가 뒤엎을 때까지 존재할 수가 있는 거지.
토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이 칠성 7대 불가사의의 일각을 담당하고 있는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귀신이 아니라 토굴에 밤바람이 들어가 귀곡성처럼 들렸거나, 누군가 토굴을 타고 움직이는 소리였겠지.’
생각해 보면 귀신에 관한 불가사의는 어딘가 이상했다.
귀신이 엮인 불가사의에는 그럴듯한 괴담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 협곡에는 어떠한 괴담도 떠돌아다니지 않았다.
학생들이 입에서 입으로 협곡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를 구전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 낭설에 불과했다.
말하는 사람마다 얘기가 달라지는 괴담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학생들이 떠드는 협곡에 얽힌 괴담은 제각기 달라서, 무엇 하나 귀담아들을 것이 없었다.
‘아니, 하나 정도는 맞았으려나…….’
지난 습격 때 살아남은 마물이 드넓은 아카데미의 부지 어딘가에 숨어서 복수를 꿈꾸고 있다.
협곡의 귀신 얽힌 불가사의는 그때 죽은 마물들의 원혼이 살아남은 마물에게 한탄을 토하고 있다는 괴담. 이건 비교적 최근에 덧붙은 뜬소문이었지만, 마냥 거짓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원혼은 몰라도 복수를 꿈꾸는 마물은 발견했거든.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럿을.
─취이익, 너무 밝다. 벌써 출구에 도착했나?
─아니다. 모두 저길 봐라!
─이, 인간이다……!
고블린, 오크, 리자드맨 따위의 마물들이 토굴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지각이 무너지며, 굴의 내용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나는 눈가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은 전부 지난 습격 사태에 활개치던 마물과 정확히 똑같은 개체들이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지난 습격의 남은 잔당.
설마 땅속에 숨어서 그 역겨운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나.
정말,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너희들은 이걸 지키고 있던 거냐?”
그림자 위병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제스처였지만, 고작 그림자 따위가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까. 하지만 이걸 만든 사람에게 위협의 메시지는 전할 수 있다.
“네가 누군지도 모르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는 불태우고 생각하자.
내 방화를 말리고 싶으면, 그림자들을 이용하거나 직접 나타나도 된다만. 그런 것보다 내 불장난이 더 빠를 것이다.
“타올라라.”
저주를 품은 거대한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은 마물의 살과 뼈를 녹이며, 그들의 영혼을 태워 더 크게 번졌다.
음산한 귀곡성이 자염을 타고 더 넓게 퍼졌다.
그러나 아직 토굴을 완전히 뒤덮기에는 모자랐다.
마물들이 필사적으로 토굴을 달린다.
살기 위한 발버둥. 난 그 꼬락서니가 한심하게 보였다.
그런다고 너희들을 놓칠 것 같아?
“거세게 타올라라.”
‘거세게’라는 간단한 수식어가 덧붙은 시동어.
시답지 않은 언령이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내 목이 잠기며 더 많은 마력과 거대한 마법진이 허공에 새겨졌다.
아직 미완성의 시동어였으나 그 위력은 가공할 만했다.
쿠구궁, 땅거죽이 뒤집히다 못해 토굴이 무너져 내린다.
갱도를 무너뜨리는 것을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감상과 함께 흙과 돌, 자갈 따위가 굴을 메우며 그 무엇도 지나갈 수 없게 되었다. 만약 토굴을 지나가고 있는 생물이 있었다면 생매장됐으리라.
설령 생매장당하지 않았더라도, 화염으로 지반을 뒤집은 덕분에 산소가 없어서 금방 질식사할 것이다.
이걸로 토굴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
“이제 문제는 이 녀석들이려나.”
나는 흩어져 가는 그림자 위병을 노려봤다.
불꽃으로 태웠건만,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사지가 잘려도 대기 중의 마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이 근처를 수호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수호의 대상이 아카데미 내부의 마물이라면, 이 녀석들을 만든 사람은 적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카데미 부지 내에 마물을 보호한다는 미친 생각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
“……배신자, 혹은 내부 공작원의 것인가.”
깊게 생각해 보면 세계 5대 아카데미가 유렌 따위에게 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습다.
모든 교수와 대부분의 경비원들이 없더라도 칠성은 칠성이다.
쉽사리 함락당해 주지 않는다.
하물며 그 상대가 수천 마리의 마물과 S급 빌런 따위라면 더더욱.
마인, 그것도 작위를 받은 괴물들이면 모를까.
나한테 죽은 유렌이 습격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교수들과 협회의 공무원들은 해당 사태를 유렌의 단독 범행으로 종결해 버렸다. 무척이나 뒤가 구린 상황.
나는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배신자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가능하다면 그림자 위병들을 신문하고 싶지만, 고문도 통하지 않는 그림자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나한테 당한 녀석들은 그림자의 신체 구성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아마, 이 시간대에 또 이곳에 오더라도 그림자 위병들을 볼 수 없겠지.
나는 답답한 마음에 먼 산을 쳐다봤는데.
샤샤샥,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뭐지?”
분명 「요마안(妖魔眼)」에 무언가 잡혔는데.
시선을 그쪽으로 집중하니 사라져 있었다.
빠른 속도의 마물은 아니었다.
마력의 흔적 자체가 보이질 않았으니까.
마치 신기루, 아니, 유령이나 귀신같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에이, 아니겠지.”
제아무리 이 눈이 영적인 개념을 관측하는 일종의 영안(靈眼)이라지만, 진짜로 귀신을 포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억울한 학생들의 영혼과 내 손에 죽은 유렌의 원혼을 먼저 봤으리라.
그래도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도 잠자기는 글렀네.”
새벽에 할 일도 많거니와, 오늘따라 유난히 잠자리가 사나울 것 같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기숙사에 들어가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마도서 몇 권 읽고, 얘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체계적인 계획을 짜야겠다.
더 이상 할 것도 없겠다.
헤집은 땅을 하급 원소 마법으로 다듬은 나는 곧장 기숙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태여 뒤를 돌아볼 이유가 없어서, 앞만 보고 있었기에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
커다란 두 개의 눈이 지그시 내 뒤통수를 노려봤다.
어째 뒤가 따가워서 긁었지만, 별건 아니겠지.
그냥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