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6)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56화(56/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56화
구야자(1)
구야자(歐冶子).
중국 출생으로, 수많은 명검과 요검을 만든 희대의 대장장이.
역사나 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파이스토스나 로마 신화의 불카누스와 견줄 정도의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뭐, 헤파이스토스와 불카누스는 동일 인물이긴 하지만 어쨌든.
‘위인도 아닌 장인이, 그것도 실제로 살아 있던 인간이 신과 동등한 취급을 받는 것. 그만한 업(業)이 어디에 있을까.’
이 점에 착안한 시스템은 그와 버금가는 야장술을 가진 대장장이에게 랭커의 지위와 함께, ‘구야자’의 칭호를 부여했다.
구야자는 죽었지만, 그 이름은 칭호로써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었다.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구야자라고? 저 사람이?”
“……전혀 그렇게 안 생겼는데.”
“그럴 리가 없어. 시리우스 가문에서도 발 벗고 찾아다니던 장인이 이런 폐인이라니. 말도 안 돼.”
물론, 폐인 같은 모습과 폐허가 된 용광로는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장장이의 수족과 같은 망치는 녹슬어 본래의 광채를 잃었고, 대장장이의 숨통과도 같은 용광로는 불쏘시개를 담는 화로로 전락했다.
그 전설적인 구야자의 이름을 계승했다고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내 말에 귀를 의심했고, 심지어 나조차 의심했다.
이 노인이 정말로 구야자가 맞는 건가.
혹시 옆집인데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지만, 노인이 굽은 허리를 펴고 입을 열자 그 의심은 단번에 축소되었다.
“네놈들은 누구지? 귀티 나는 얼굴을 보아하니, 날 쫓아온 사채업자로 보이지는 않다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는 노인의 목소리.
그러나 그 안에 미묘한 위압감은 숨기려야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 업계에서 상위 0.1%에 해당하는 S급 플레이어. 그들을 ‘따위’로 전락시킬 수 있는 위압감은 랭커와 그 위에 군림하는 자들만의 특권이었다.
노인에게서는 그들의 그림자가 엿보였다.
저 노인이 왜 저런 꼴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구야자라는 확신을 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구야자, 의뢰를 하러 왔습니다.”
“사람 잘못 찾았으니, 가줬으면 좋겠다네.”
“아, 선입금이 필요했던가? 진작에 말을 하지 그러셨습니까.”
[고객님의 계좌로 1억이 입금되었습니다.]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커다란 액수에 놀란 노인은 얼굴을 쓸어내렸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이 정도 금액은 그에게 있어 푼돈에 불구하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길드와 가문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돈을 불러왔던가.
그런 거금에 비교하면 1억은 그렇게 큰 가치가 없었다.
그저 이렇게 어린 놈이 아무렇지 않게, 선입금할 정도로 경제관념이 파탄 났다는 것에서 오는 경악일 뿐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
“음? 하긴, 1억은 너무 적나. 그 구야자의 실력이라면 그 배는 줘야겠죠.”
[고객님의 계좌로 10억이 입금되었습니다.]10억.
절대로 간단히 볼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보통의 사람은 십 년에 달하는 세월을 갈아 넣어야지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금액. 그 거금을 눈앞의 애새끼는 아무렇지 않게 입금하고 있었다.
애초에 계좌는 어떻게 알아낸 거지?
묻고 싶은 것은 산더미같이 많았지만, 노인은 우선 상대를 내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걸로도 부족하십니까?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불안하기 짝이 없는 말에 노인이 다급하게 손을 젓기도 전에.
[고객님의 계좌로 100억이 입금되었습니다.]입금은 완료되었다.
“11억으로도 부족했다면 말하지 그러셨습니까. 나한테 있는 거라고는 돈뿐인데.”
“이런 미친 애새끼가.”
노인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침침한 눈을 대신해, AI 음성인식 서비스가 입금된 액수를 부르자 학생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군가는 평생 동안 만져볼 수도 없는 액수에 놀라고, 또 누군가는 그만한 거금을 아무렇지 않게 입금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111억, 어때 이 정도 선금이면 얘기할 마음이 생기셨으려나? 아직도 부족한가? 그러면 선금이 아니라, 계약금으로 취급하죠.”
“……나한테 무슨 볼일이냐.”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구야자를 찾으러 왔다고. 그러면 당연히 의뢰를 맡기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하, 그래. 내가 구야자다, 이 고얀 놈아. 이제 만족했냐?”
“네.”
노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 잠시 애들을 어른들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며 밖으로 내쫓았다.
지금부터 할 대화는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제삼자가 들어봤자 좋을 일이 없었다.
이 폐허 같은 공간에 나와 노인만 남자, 그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
“그래서, 나를 찾은 이유가 의뢰 때문이라고 했지? 안타깝지만 내 야장술은 더 이상 칭호를 따라가지…….”
“음, 저기 잘못 이해한 것 같습니다만. 저는 당신한테 무기 의뢰를 맡기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나를 찾은 이유가 뭐지?”
“협업에 관한 의뢰.”
뜬금없는 말이었으나 이 자리에 있는 노인과 나는 ‘협업’이라는 말이 가진 뉘앙스를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숨기고 있는 것이, 참 많았고.
나는 그것들을 알고 있으니까.
“<나인테일> 길드 소속, 전 전담 대장장이. 그러나 2년 후에 일방적으로 버려졌죠. 덤으로 아내와 딸도 잃어버리고.”
“너……!”
“가족의 복수하고 싶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네놈 같은 맹꽁이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
“왜냐하면 제가 천호백가의 가주거든요. <나인테일>의 물주가 바로 접니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서류상에 불과하지만 말이죠.”
“……뭐시라?”
순간 노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번듯한 직장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었다.
그런데 여태까지 절실하게 죽이고 싶었던 족속들의 수장.
그놈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혹시 모를 이 날을 위해 만들어둔 마검이나 요검을 이용한다면 바로 목을 자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스윽, 손을 은밀하게 의자 밑으로 뻗었다.
혹시나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불한당들이 이곳까지 쳐들어오면, 자신의 죽음만큼은 스스로 끝내기 위해 준비해 둔 단검.
한 번에 자살하기 위해, 유독 날카롭게 벼려둔 단검이 구야자의 손끝에 느껴졌다.
그는 단검의 손잡이를 잡기 위해 손을 움직였고.
당연히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던 나는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절 죽이고 싶나요?”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그 저주스러운 가문의 주인인 네가, 우리 같은 서민의 고통을! 아내와 딸내미를 볼모로 잡혔다가, 살해당해서 모든 것을 잃은 괴로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냐는 거냐!”
구야자가 울부짖었다.
보통의 성대로는 낼 수 없는, 가족과 친지를 잃은 자만이 낼 수 있는 울부짖음.
저것은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의 증거.
가정을 꾸리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고통이든, 같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은 자들끼리는 나름 통하는 것이 있었다.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웃기는 소리 마라! 천호백가의 가주인 네놈이 내 고통을 어찌 안다는 것이야!”
“그야, 저도 그놈들한테 당했으니까.”
“뭐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쇼. 당신, 그렇게까지 멍청하지 않잖아요. 제가 정말로 <나인테일>의 실세였으면, 여기서 당신이랑 독대를 하겠습니까? 저를 죽이고 싶어서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살기를 과감하게 내뿜는 노인이랑?”
단검을 잡은 노인이 순간 입을 닫았다.
복수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노인의 피가 빠르게 돌았다.
젊었을 적의 혈기 이상으로, 뜨거운 피가 시야와 이성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나는 교묘하게 노인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단검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행여나 상대가 자신과 같은 상처를 입을 사람일까 봐 손속을 망설였다.
하하, 행동과 살기와는 다르게 상냥한 노인이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믿든 말든, 그건 그쪽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겠어요?”
나는 끊임없이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의혹이, 의혹은 미혹이 되어 그의 가슴속에 파문을 남겼다.
노인은 크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런 면은 그 양반들이랑 똑같네.’
구야자는 내 조언을 통해 탄생한 인물이다.
이브는 대장장이 인물을 조형하는 과정에서 보다 사실적인 정보와 묘사를 원했고, 그 과정에서 내 언급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구야자는 내가 아는 대장장이들의 집합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원하는 방향으로 자극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아니, 그보다도 쉽다.
‘수틀리면 살기부터 내뿜는 성격은 양 노인을 닮았고, 의외로 팔랑귀인 점은 신 노야와 똑 닮았어.’
단순히 내 지인들을 닮은 수준이 아니다.
장점과 단점, 하물며 새끼손가락으로 머리를 긁다가 손뼉을 치는 사소한 버릇까지 완전히 동일하다.
그야말로, 그 양반들의 환생이나 다름없었다.
내게 검을 비롯한 여러 무기를 만들어주신, 할아버지 같은 그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분들의 환생과 다름없는 구야자를 자극하는 것은 간편했다.
“당신의 그 검으로 내 목을 치면 전 죽겠죠. 이 얇은 팔로 감히 막을 수 있을까요? 장담하건대, 단번에 즉사할 겁니다.”
하지만 난 그의 성격을 잘 안다.
그는 내 목으로 만족할 양반이 아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내 목을 치는 것 정도로는 성이 안 차잖아요. 그렇죠?”
전부 알고 있다는 듯.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자, 구야자의 표정이 흔들린다.
나를 둘러싼 그의 살기마저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제 조금 남았다.
회심의 한 방이면 끝난다.
“저 하나로는 만족이 안 되잖습니까. 그러면 모두에게 복수하는 겁니다. 당신을 지금의 모습으로 추락시킨 녀석들에게.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죠.”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
“대장장이의 본분이 뭡니까. 무구와 장비를 만드는 것이지 않습니까.”
“내가 만든 무기…….”
“그래, 당신은 대장장이잖아요. 천천히 상상하는 겁니다. 당신이 만든 검이 녀석들의 사지를 자르고, 당신의 창이 그들의 목을 꿰뚫는 장면을.”
도끼로 머리를 참수하고, 총으로 뼈와 살을 뚫는다.
상상만 하더라도 손발이 덜덜 떨린다.
그의 마음속에서 자그마한 복수의 짜릿함이 피어 오른다.
단순히 상상한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짜릿한데, 진짜로 복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구야자는 잘 알고 있다.
그건 결단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
“─망상 따위가 아닙니다. 당신이 만든 자식들이, 그 예리함으로 녀석들의 몸을 도륙 내는 광경. 보고 싶지 않습니까?”
“……!”
“제가 도와드리죠.”
나는 구야자에게 복수를 제안했다.
그가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을 수 있는 짜릿한 복수를.
혹자는 복수가 무의미하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복수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망발이다.
진정으로 복수를 계획하고, 그걸 실제로 이루었을 때.
오직 그것만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나는 가려운 곳만 귀신같이 긁어주는 안마사처럼 구야자의 가려운 부위를 슬슬 긁어주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뭘 하면 되지?”
“당신이 할 것은 언제나 하나뿐입니다.”
달궈진 쇠를 두들겨, 그리고 오직 나만을 위한 무기를 만들어.
오직 복수를 위한, 나만의 무기들을.
만일 그렇게 해준다면.
“당신의 복수. 제가 당신의 자식들로 이뤄드리도록 하죠.”
복수에 눈먼 노인에게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
그는 이 제안이 제 목덜미를 조이더라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복수의 성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버렸다.
평생토록 망상으로 치부했을 일이, 현실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기회.
비록 그가 잡는 것이 썩은 동아줄일지라도, 그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평생토록 망설일 만큼 망설였다.
이제는 복수를 다짐할 때였다.
“…….”
결심에 찬 노인의 눈동자.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나는 슬며시 웃음 삼켰다.
정말이지, 쏙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