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7)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57화(57/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57화
구야자(2)
“선생님, 이제 얘기 다 끝났어요?”
“그래, 이제 다들 들어와라.”
나는 구야자의 복수를 해주고, 구야자는 나를 위해 무기를 만들어준다.
간단명료한 계약을 나눈 직후, 밖에 대기하고 있던 이지가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들어와도 된다고 하자, 애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밖에 꽤 추웠던 모양이다.
이제 4월도 끝나가는데, 왜 저렇게들 추위에 약한지.
“……조, 조교님이 아이시스 옆에서 계속 서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하.”
그러면 인정이지.
여하튼 추위를 녹이기 위해 학생들은 용광로 주위로 둘러앉았다.
다섯 명의 학생이 자리를 잡았는데, 한 명이 어디 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이사벨이 구야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녀는 꽤나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장과 담로, 간장-막야는 어디에 있나요? 천하의 보검들을 구경할 기회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올 줄이야.”
“……아가씨, 내가 만든 검에 대해서 잘 아는군.”
금발의 전형적인 아가씨, 이사벨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에 초췌한 눈빛의 구야자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금발에 하얀 피부. 어딜 봐도 동양인은 아니다.
심지어 그녀에게서는 일반인에게 느낄 수 없는 귀족 특유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레온하르트의 여식인가. 그 집 딸내미도 슬슬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가 되었었지 참.”
“레온하르트라뇨! 그런 근육 뇌의 사자들과 같은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고귀한 천랑, 시리우스의 핏줄이라고요!”
“음? 아니었나.”
“그야 당연하죠! 그런 품위 없는 족속들과는 전혀 다르다고요!”
이사벨이 격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타인에게 유독 차가운 그녀가, 나 이외의 사람에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본다. 애초에 오랜 만남도 아니었지만.
‘하필이면 이사벨의 역린 중 하나를 건드릴 줄이야. 신 노야의 성격을 바탕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배려심이 없군.’
사자의 가문, 레온하르트(Leonhardt).
독일에 자리 잡은 대가문이다.
시리우스나 천호백가처럼 구천세가의 일가이며, 타고난 신체 능력과 기동력으로 유명한 가문이다.
레온하르트의 혈족들은 한 명 한 명이 타고난 전사이며, 독일의 길드나 군의 최정상과 최전방을 담당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독일의 군권은 레온하르트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규모의 자본력을 떨치는 천호백가와 유럽을 총괄하는 시리우스 가문에 비하면 한 끗발이 아쉽긴 하지만.
그들도 제 영역인 독일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떨친다.
어디까지나 자국 내의 얘기일 뿐이지만.
뭐가 어찌 됐든 스스로가 시리우스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프라이드를 느끼는 이사벨에게, 구야자의 발언은 꽤나 모욕적인 언사였다.
그녀가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시리우스 가문은 레온하르트를 숙적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레온하르트가 아니라는 말이지?”
“당연히 아니죠.”
“그나저나 반응이 흥미롭군. 아가씨는 레온하르트가 그렇게 싫나?”
“그야 당연하죠!”
구천세가의 아홉 가문들은 서로를 견제하게 마련이다.
귀족으로서의 절대적인 권력을 침해할 수 있는, 동등한 위치의 경쟁자의 존재는 언제나 불쾌하게 마련이다.
어릴 적에 태중혼약을 맺은 백승우와 이사벨이 독특한 케이스다.
시리우스와 레온하르트 가문처럼 서로 싸우는 것이 정상적이다.
다만 두 가문은 정치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형질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갯과의 시리우스.
고양잇과의 레온하르트.
애초에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는 조합이다.
여우도 엄밀히 따지면, 갯과에 속해서 레온하르트와의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시리우스에 비하면 약과다.
저 두 가문은 진심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있다.
“그런가, 이거 미안하네. 예전에 봤던 지인 딸내미와 쏙 닮아서 말이야.”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무기들은 어디 있죠?”
“나도 몰라.”
“예?”
구야자가 코를 파며 말했다.
그는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을 덧붙였다.
“채권자나 암살자들에게 쫓기면서 대부분의 무기를 잃어버리거나, 자금을 마련하려고 마구잡이로 팔아버렸지. 아마 지금쯤 어느 부자의 수집품에 속해 있거나 보검의 가치도 알아보지 못하는 촌뜨기에 의해 녹아서 주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군.”
“이, 이럴 수가…….”
이사벨이 고개를 떨구었다.
둘의 대화를 먼발치에 듣고 있던 서예린과 성연화도 순간 고개를 떨굴 뻔했다.
구야자의 명작이자, 세기의 보검이라고도 불리는 검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검사나 창술사, 하물며 마법사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회가 이리도 허무한 이유로 사라지다니.
너무나도 억울했다.
뭔가 분위기가 처졌다는 인상을 받은 구야자가 팍 인상을 썼다.
“뭐야, 내 검이 그렇게도 보고 싶었어? 그래 봤자 선조의 물건을 따라 만든 레플리카에 불과하거늘.”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법이죠. 진정한 명작은 수백 년의 세월에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 법이니.”
“……그것도 맞는 말이야.”
구야자는 학생들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장(魚腸), 담로(湛盧), 승사(勝邪), 태아(泰阿), 촉루지검(屬鏤之劍) 등등. 유명하고 대단한 보검이기는 하나, 결국 그가 만든 것은 월나라의 구야자가 만든 것의 모작에 불과했다.
모작치고는 그 능력이 대단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원본의 능력이 엄청났기에 가능했던 일.
원본의 발끝을 겨우 따라가는 검들을 왜 저렇게까지 보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짜증 나는 얼굴의 첨언 덕분에 깨달았다.
진정한 명작은 유행과 세월 앞에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후대인 자신의 것이라고 한들, 구야자의 보검이란 수식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에 머리를 박박 긁고는 바닥에 손을 뻗었다.
덜컹! 바닥 위의 무언가를 만지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튀어나왔다.
계단은 깊지 않았고, 그곳에 무엇이 보관되어 있는지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지하에서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그 광채를 잃지 않았으니 말이다.
“저것들은……?”
“검, 창, 방패, 반지. 저거 설마 전부 다 할아버지 작품이야?”
“이곳에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기름칠을 먹이지도 않은 고물들이지만, 한창때 만든 녀석들이니 성능은 확실할 거다. 어쩌면 내가 만든 보검 중에 한 자루는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지.”
구야자가 만든 장비들.
심지어 ‘한창때’ 만들었다고 한다.
전성기 시절의 그의 작품은 어떨까.
어쩌면 막야와 같은 보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에 얘들이 지하에 홀린 듯이 내려갔다.
검이나 무구를 만지며 뛰어난 품질에 놀라 다들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어난가.
어디 나도 한번 만져볼까.
나는 학생들의 뒤를 따라 지하실에 입성했다.
구야자가 지금의 폐인이 되기 전에 만들었던 작품이라서 그런가.
확실히 무기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용 살해자」
등급: A+
설명: 장인, 구야자가 만든 대검입니다. 용 살해란 전승을 바탕으로 제작된 검으로, 검신을 따라 도룡지기(屠龍之技)가 흐르고 있습니다. 투박하고 거대한 검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용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 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다면 용살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도룡지기
용을 죽이는 기술이자 기운이되, 용을 죽인다는 헛된 망상의 집합체입니다. 따라서 이 검의 존재 의의는 무가치하며, 이걸 휘두르는 자 또한 까막눈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느껴야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법. 그날이 오기까지 도룡지기는 헛된 망상과 환상을 베어버릴 것입니다.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서 바닥에 눕힌 대검.
「성창」
등급: S
설명: 장인, 구야자가 만든 성스러운 창입니다. 기다란 장창으로, 성스럽고 단단하며 상당한 탄력감을 자랑합니다. 성창인 만큼 삿된 것을 부정하는 힘이 있어야 하지만, 내구성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나머지 아무런 능력도 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냥 이름만 성창일 뿐입니다.
순백의 하양과 황금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성스럽게 느껴지나, 막상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는 창이 벽에 걸려 있었다.
마치 신앙심이 결여된 배교자의 무구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네.
이외에도 여러 무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전부 대충 만든 흔적이 역력했으나, 그 안에 담긴 기술만큼은 진짜였다.
이것이 바로 구야자의 야장술.
학생들은 그런 그에게 무기를 주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듯했다.
“여기, 화살 좀 봐봐. 일회용품인데 엄청 정교하게 깎여 있어!”
“이 멍청아. 일회용품이 아니니까 그렇지. 화살촉에 되돌아오는 마법이 적힌 거 모르겠어?”
“검도 대단해요! 이 정도 실력이라면 제 검만큼이나 대다난 검을 만들 수 있게써요!”
“여기 있는 지팡이도 대단해. 끝에 박혀 있는 보석이 예사롭지 않아. 이것도 손수 가공하신 거겠지?”
다들 이런저런 무기를 만지며 감탄하기 바빴다.
칠성에서 보급되는 C급의 양산품과 비교하기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내가 녀석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 사이, 구야자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물건이 뭐지?
“그쪽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
“전부 다?”
“네, 전부 다.”
검, 창, 갑옷, 도끼, 방패, 총…… 뭐든 좋다.
이 세상에 내가 다루기 어려워하는 무기는 있어도, 다룰 수 없는 무기는 없으니까.
구야자가 만든 장비라면 뭐가 됐든 부족했던 내 전력을 보충할 수 있으리라.
“구체적으로 원하는 수준은 어느 정도지.”
“최소한 S급은 넘겼으면 좋겠는데, 장비 자체에 내력을 담고 있으면 더 좋고요.”
일반적인 장비들은 F부터 S등급까지가 끝이다.
그러나 장비 자체에 특별한 내력이나 이야기가 담길 경우, 보다 상위의 장비로 취급받는다. 무구 자체에 담긴 내력과 이야기를 기준 삼아 차례로, 시스템이 명명한 다섯 등급.
비화(祕話), S급을 넘어 장비 자체만으로 숨겨진 비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장비에게 붙여진다.
일화(逸話),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의 주역이거나 그에 준하는 성능을 가졌다.
서사(敍事), 명칭 그대로 서사시에 나오거나 무구에 담긴 내력과 성능만으로 능히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 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전설(傳說), 고대 혹은 상고라 불리던 시절부터 구전을 통해 전승되던 설화의 주역 내지는 그에 얽힌 물건에 부여되는 등급이다.
신화(神話), 인간의 표상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등급.
그야말로 신화에 나오거나,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가진 물건에만 붙는다.
이렇게 다섯 단계로 분류된다.
스킬은 F부터 S까지 밖에 없으면서, 왜 장비는 추가로 5가지 등급이 더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건 작가 마음이지, 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저 등급의 장비들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뿐이다.
“가능하다면, 서사 등급의 장비도 의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불가능하다.”
도리도리.
노인은 고개를 돌리며 부정했다.
못 한다.
절대로 못 한다.
과거의 구야자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늙고 병들었다.
폐허처럼 망가진 대장간이 그의 현 상태를 암시했다.
지금의 그는 손에 들려 있는 낡고 녹슨 망치와 같았다.
“나는 절대로 못 만든다.”
“어째서죠? 전설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서사까지는 가능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구야자’의 칭호를 받은 것도, 서사 등급의 무구를 만들어내서가 아니었나요.”
“서사는 고작 대장장이 한 명이 구현해 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서사란 곧 영웅의 사시(史詩). 그에 걸맞은 재료와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구에 녹여낼 이야기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가 서사 등급의 무기를 만들었던 것은 순전히 기적이었다.
전설적인 월나라의 구야자가 만들었다던 보검을 재현하려고 했다가, 우연히그 보검에 진짜 구야자와 얽힌 전설이 깃들면서 원본보다 한 단계 낮은 작품으로 후세에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 서사 등급의 무기를 만든 것이 아니다.
선조, 아니, 피도 섞이지 않은 옆 나라 대장장이의 작품을 베끼다가 원본에 영향을 받았을 뿐.
그 이후에 만든 서사 등급의 무기들도 전부 구야자가 만들었다던 보검이나 요검의 이름을 따왔으니, 순전히 노인의 힘으로 만든 무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노인은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이미 구야자의 작품들은 전부 그의 손을 거쳐 현대에 재탄생했다.
그가 서사 등급의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던 이유는 구야자가 만들었다던 검들을 하나씩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명품들은 하나의 진품만 있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의 검들을 더 만들었다가는, 하나뿐인 물건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양산품으로 전락해 버린다.
서사시에 나오는 대단한 무기들은 오직 주인공 한 명에게만 있어야 가치가 있는 법. 서사 속 모든 인물들이 같은 무기를 들고 있다면 그 무기의 가치는 전락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구야자는 더 이상 서사 등급의 장비를 만들 수가 없었다.
음, 무슨 말이지 알겠다.
나는 노인의 사정을 헤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제 알 바입니까.”
“……뭐라고?”
“우습네요,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더니만. 결국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겠다는 소리와 다른 점이 뭐죠? 당신의 복수심은 고작 그 정도였나요.”
“…….”
나는 그를 자극했다.
타인의 복수심을 자극하는, 아주 뻔한 말이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대를 자극할 때는 이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적어도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그랬다.
“……만들어주면 확실하게 복수할 수 있다는 뜻이냐?”
“물론이죠.”
당장 구야자를 봐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가 흐리멍덩한 눈에 싸늘한 오기가 생기는 것이 아주 잘 먹혔다.
내가 이래서 상대를 자극하는 말버릇을 못 고친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