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9)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59화(59/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59화
구야자(4)
살생석(殺生石).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검이나 갑옷처럼 특별한 물건이 아니라 일종의 돌이다.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돌.
다만, ‘살생’이란 수식어가 붙은 만큼 평범한 돌은 아니다.
그 돌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수백에서 수천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니, 이름대로 살생에 특화된 돌덩이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깊은 연관이 있지.’
원작 속, 일회성 엑스트라 악역이었던 백승우는 성적 부진으로 아카데미에서 자퇴했다.
유망주였으나 미친 속도로 성장하는 주인공에게 꺾여, 날개를 잃고 추락하던 그는 결국 손을 대서는 안 될 물건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살생석이다.
“살생석이 뭔지 알고 있나?”
“구미호가 죽으면서 둔갑한 돌덩이. 굳이 따지자면 사리(舍利)에 가까운 물건이죠.”
“생각보다 자세히 아는구먼.”
“구미호의 유산 중 하나니까요. 뭐, 정확하게는 일본 정부의 보물이지만.”
백면금모구미호, 일본의 삼대 악귀로 불리는 여우다.
그녀와 얽힌 전승과 과거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그중 단연 확실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일본에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이다.
사후 그녀의 시신은 돌이 되어 강력한 원념과 저주를 흩뿌리는 독석(毒石)이 되었다.
그 독이 어찌나 강한지 대부분의 대장장이는 가공하기도 전에 중독되어, 아무도 가공할 수 없다는 소재로도 유명하다.
뭐, 애초에 일본 정부의 보물이라서 일개 대장장이가 함부로 가공을 시도할 수도 없겠지만.
“그런 위험한 것이 왜 국내에, 그것도 경매장에 있다는 겁니까?”
“난들 알겠냐. 나도 건너 들은 것뿐이다. 경매일은 오늘이니까, 알아서 하도록.”
“…….”
그의 말에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백승우의 타락과 죽음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살생석.
난 본래의 백승우가 어떤 과정에서 살생석을 취하고, 타락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소설을 읽은 것도 아닐뿐더러, 자신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의 최후에 깊게 파고들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 걸 알아봐야 기분만 찜찜할 뿐이다.
“……돌겠네.”
살생석을 취할까, 아니면 방치할까?
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르는 양자택일의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허와 실을 구분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내게 그런 능력과 지식은 없었다.
“…….”
나는 눈을 감고 고민했다.
무엇을 고를까.
전자를 선택하면 살생석을 내가 보관할 수 있다.
구미호와 깊은 연관이 있는 유산은 가문에서도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강력한 장비를 제조하거나 일본 정부의 코를 꿰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
후자는 내게 아무런 이익도, 불이익도 없다.
원작 속 백승우가 타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내 곁에 있어 봤자 크게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있더라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클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라서 내 갈 길을 인도했다.
[메인 퀘스트 : 결단] [설명 : 당신은 행동은 어설프고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주인공은 예정대로 각성하고, 연관 없는 학생들이 시나리오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이 길을 마저 걷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 결단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클리어 조건 : 1. 사전에 새로운 에피소드에 개입할 것, 2. 주인공의 개입을 배제할 것.]기존에 받았던 퀘스트가 떠올랐다.
반투명한 창은 흐릿하게 반짝이더니, 새로운 메시지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메인 퀘스트와 새로운 시나리오 간의 교차점을 발견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 결단’에 시나리오가 덧붙으며, 새로운 메인 퀘스트로 재정립됩니다.] [‘메인 퀘스트 : 살생석’을 출력합니다.]……
[메인 퀘스트 : 살생석] [설명 : 당신은 지금까지 예정된 시나리오를 비틀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제 그 노력에 대한 결과를 볼 차례입니다. 당신의 준비가 충분했는지, 여전히 부족했는지는 결과가 판가름해 줄 것입니다.당신의 목표는 오직 하나, 지하 경매장에서 ‘살생석’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을 취하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돌을 통해, 당신이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 일 테니까요.] [클리어 조건 : 1. ‘살생석’을 손에 넣을 것, 2. 다른 경쟁자들에게 빼앗길 여지를 주지 않을 것.] [성공 시 : ‘포인트 상점’ 개방, ‘특성 카탈로그’ 증정, ‘작가의 답글’] [실패 시 :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보상을 본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더 이상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없었다.
이놈의 상태창은 내게 오직 한 가지 선택만을 강요하고 있었다.
* * *
인간과 마인 사이에는 절대적인 격차가 존재한다.
인간도 수련과 수행에 따라서는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할 수 있지만, 마인은 탄생과 변태(變態)의 순간부터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진다.
비록 마인들을 이끌어야 할 존귀하신 귀족분들이, 시스템의 제재로 빌어먹을 섬에 갇혀있긴 하지만.
그 휘하의 마인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도심을 활보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아무 대책도 없이 양지에서 활동하다가는 협회나 길드의 눈에 밟혀서 사살당하기 십상이었지만.
“오늘도 칙칙한 동굴에서 접선입니까. 이건 꽤나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군요.”
“죄, 죄송합니다! 그 용병이 실패하면서 눈에 불을 켠 협회와 <나인테일>에서 지부들을 죄다 부순 탓에……!”
“아, 딱히 책망하려 드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저 이곳에 기거하시는 마인 분들의 건강이 염려되는 것뿐이지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언제 끊어졌는지도 모르는 어두운 동굴.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한 명의 사람과 여러 마인들이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사람이 납치당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무언가 이상했다.
머리에 뿔 달린 마인들이 인간을 향해 굽신거리고 있었다.
마인들에게 둘러싸인 인간이 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일반인보다는 강했지만, 이 자리에 모인 그 어떠한 마인보다도 약했다.
법과 도덕 대신, 힘의 논리만이 전부인 마인들의 생태와 반하는 행동. 보통의 사람이 이 광경을 봤으면 눈을 비비며 현실을 부정했을 거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인 행동을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인간 사내가 품에서 서류를 꺼내 마인 쪽으로 건넸다.
그러자 방금까지 굽신굽신하던 마인이 공손하게 서류를 받아 읽었다.
서류의 정체는 한눈에 알아봤다.
다음 행선지와 목표가 적혀 있는 서류였다.
“황금 난쟁이의 반지에 뱀의 꼬리를 뜯어서 만든 검에 저주받은 돌까지…… 이 정도면 일본 정부에서 안 걸렸을 수가 없었을 텐데. 미쳤군, 미쳤어.”
“본디 인간이란 족속들이 그런 법이지요. 조금만 구슬리면, 제 욕심에 나라의 보물마저 팔아먹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경매장의 주인은 실로 인간답군요. 제정신으로 이런 물건들을 경매에 내놓을 생각을 하다니.”
종로 지하 경기장.
머리에 뿔이 난 마인은 서류 맨 위에 적힌 장소를 몇 번이고 읽으며 감탄했다.
이곳의 주인은 도대체 어떤 강심장이길래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인가.
자신도 인간을 그만둔 마인이라지만, 이런 미친 짓을 함부로 저지를 수 있는 패기는 없었다.
이번 경매장에 나오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일본 정부가 아끼는 보물들. 그런 보물들을 브로커로부터 전달받고, 당당하게 팔 생각을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어쨌든 이번 경매품들은 꼭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설령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저주받은 돌을 꼭 회수하시길 바랍니다.”
“아, 네! 손이 남는 C급 마인들부터 A급 마인들까지 전부 부르겠습니다!”
“하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마교에서도 솔선해서 참가자로 위장해 주시겠다는 순교자분들이 계시니까요.”
나긋나긋한 말투의 인간 사내에게 마인이 땀방울을 들키지 않으려 손을 훔쳤다. 순교(殉敎)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
그 숭고한 희생을 몸소 실천한 자는 순교자 내지는 치명자(致命者)라 불린다.
그런 존재를 인간 사내는 미리 차출했다고 한다.
무척이나 당연한 것은 말하듯이, 제 종교에 속한 교인을 아무렇지 않게 사지로 내모는 모습에 마인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광기를 느꼈다.
“제가 이 정도로 관여했으니, 해당 사항은 이 이상 다룰 필요 없겠지요? 다음 만남 때는 서로 웃으며 만나길 바랍니다.”
“아, 예, 예! 사, 살펴 가십시오!”
“하하, 정말이지 제가 경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거늘. 다음에는 그 말투도 좀 편하게 교정됐으면 좋겠네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인간 사내는 동굴을 나섰다.
연약한 그의 발걸음에 주변을 둘러싼 마인들이 눈을 찌푸리며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오히려 방금까지 대화를 하고 있던 마인이 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인간 사내가 나갈 때까지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고.
인간의 기척이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며 한탄했다.
“하하, 시발 언제부터 우리 판데모니움의 위상이 이렇게까지 떨어진 걸까.”
“서,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숨은 붙어 있다.”
“아니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 녀석이 뭐길래 인간 따위에게 굽신거려야 하는지…….”
“하아? 너 시몬을 몰라?”
“……시몬?”
그 이름을 모르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다시금 물었다.
“마교 숭배자(魔敎崇拜者), 시몬. 처음 들어보냐?”
“아! 시몬이라는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이명은 어디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마교 숭배자.
세간에서는 악질적인 사이비 광신도로 유명한 수배범이다.
수배 등급은 C급, 플레이어 협회에서 B급 랭크 테스트를 통과한 플레이어라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무력만 따졌을 때는 말이다.
“너는 왜 녀석의 수배명에 ‘마교 숭배자’라는 이명이 붙었을 것 같냐?”
“그야, 그런 이명을 붙이는 편이 방송이나 기사에 자극적으로 쓰기 좋아서가 아닐까요?”
“하, 병신 새끼. 내 후임이란 놈이 이런 새끼라니. 앞길이 막막하네. 잘 한번 생각해 봐라.”
방금 전까지 굽신거렸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인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날카롭고, 폭력적인 모습이 되돌아왔다.
후임은 선임의 그런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나지막이 생각했다.
숭배자나 광신도는 마교에 시몬 말고도 많다.
그런데 어째서 시몬이란 인간에게만 그런 이명이 붙었을까.
아직 마인 경력이 짧은 그로서는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저, 그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하, 그래 네가 뭘 알겠냐. 나도 그 양반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녀석 세 치 혀라고 하더라고.”
“예? 말본새가 대단하다고요? 그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진짜 멍청한 놈. 내가 여기까지 말했으면 알아서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요즘 얘들은 왜 척하면 척이 안 되는지…….”
“죄, 죄송합니다!”
선임은 머리를 박박 긁으며 후임도 함께 긁었다.
요즘 마인들은 왜 이렇게 빠진 건지 모르겠다.
거기까지 말해줬으면 알아서 이해해야 되는 거 아닌가.
나 때는 저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는 꼰대 같은 생각을 품으며 크게 비관했다.
이게 다 협회와 <나인테일>이 마인들의 비밀 지부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좀 더 나은 후임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런 더러운 동굴에 몸을 숨기거나, 시몬이라는 인간에게 모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도 됐었을 텐데.
“마법사 사냥꾼, 그 녀석이 반만 성공했더라도……!”
이 모든 것은 ‘마법사 사냥꾼’, 전부 그 녀석의 실패로부터 비롯됐다.
칠성을 습격하기 전에 <나인테일>이 관리하는 던전 중 하나를 습격하며, 대량 학살을 일으키며 기사에도 실렸던 마법사 사냥꾼.
그가 칠성에서 비명횡사하지만 않았더라도 계약에 따라 마인이 된 그는, 그 존재만으로 든든한 역할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마인이 되어 더 강해진 그의 존재 탓에, <나인테일>은 더 큰 화를 입을까 제대로 된 후속 대처와 보복을 할 생각은 꿈도 못 꿨겠지.
협회가 건수를 제대로 잡아, 길드와 협력해서 모든 지부를 박살 내고 불태우는 지금과 같은 배짱을 보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지 않습니까?”
“희망? 우리들 마인이 귀족분들의 봉인을 깨우는데, 선두 하지는 못할망정 인간의 종교 따위에게 굽신거리는 지금 상황에 희망이라고?”
“유, 유럽 지부에 있는 용장 후보께서 오신다고 합니다.”
용장(勇將), 이건 판데모니움에서 사용하는 은어였다.
귀족분들이 외딴섬에 봉인된 지금, 타 세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인 판데모니움을 이끌어줄 네 명의 선봉장들.
그중 한 분을 일컫는 말이다.
“그거 다행이군. 그분의 용력이라면 잠시나마 귀족분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겠어.”
용장 후보라면 어지간한 S급 플레이어보다는 강하다.
랭커에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후보들의 잠재성을 고려한다면 랭커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그리 먼 얘기는 아니리라.
그 정도라면 대업을 성사시키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비록 우리 <판데모니움>의 위세가 잠시나마 흔들렸어도, 귀족분들이 시스템의 제재에서 풀려나실 그 날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날까지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리 같은 하등 마인들은 평민들은 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옳다. 우리들의 몸속에 흐르는 피는 그분들을 위해 존재한다.
극도의 귀족주의적인 사상의 마인이 뒷말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은 귀족분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