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68화(68/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68화
경매장(3)
그림자가 있었다.
그 속에 있던 검은 형태의 무언가.
그것은 밤하늘 위에 떠오른 달빛을 따라 길게 늘어지고는, 절뚝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딘가 가랑이가 아파 보이는 녀석의 이름은, 일영.
아니, 심영.
그는 몇 주 전, 대한민국 3대 미공략 던전인 에프넬의 화원에서 두 형제와 모든 것을 잃은 5장로의 그림자’였다’.
“……하, 백승우.”
였다.
명백한 과거형.
지금 심영은 5장로의 수하도, 나인테일 소속의 비공식적인 암살자도 아니었다. 그는 모든 동료를 잃고, 자신의 상징성도 잃고, 죽기 직전까지 갔다 온 패배자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해 주마…….”
꿈을, 희망을 잃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멍청하고 무능해서 자신보다 밑이라고, 은연 중에 깔봤던 백승우에게.
그러니 너에게도 똑같이 되갚아주마.
“나인테일의 그림자가 될 수 없다면, 칠성의 그림자가 되어 네 뒤를 쫓으며 때를 노리겠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협곡.
들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벌레들의 날갯짓도 들리지 않는 이 협곡은 넓디넓은 칠성의 구역 중 한 곳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칠성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불리는.
바로 그곳이었다.
─바스락바스락.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
보통의 사람이라면 바람이나 작은 동물 때문에 난 소리라며 제 갈 길을 가겠지만, 가랑이가 허전한 탓일까.
왠지 모르게 싸늘하다고 느낀 심영은 수풀을 마구 파헤쳤다.
갈 곳을 잃은 그는 당분간 이 협곡 밑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백승우의 등 뒤에 비수를 꽂기 전까지.
그의 생활은 당분간 이곳에서 지속될 예정이다.
심영은 안락한 생활을 위해, 시끄럽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우는 야생 동물들을 전부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스락바스락.
저거 봐라.
지금도 이리저리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있지 않던가.
그는 이런 미세한 소리가 너무 싫었다.
암살자로서 평생을 살아오며, 훈련받은 그의 청각은 보통 사람의 몇 배. 자그마한 소리에도 놓치지 않고 똑바로 듣는 것이 습관화된 그에게 야생동물은 해악이었다.
심영이 그림자로 단검을 만들고.
─푹!
몸을 숨긴 야생동물에게 푹, 찍은 순간.
“어라?”
살을 뚫는 감각이 몰캉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수풀에서 튀어나온 무언가.
‘그것’은 단검이 꽂힌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리 위의 달빛을 가리고, 밤하늘을 덮을 정도의 크기.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된 심영이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도 이전에.
그것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리를 내뱉었다.
“나. 쁜. 말. 하. 면. 못. 써.”
억지로 사람의 성대를 따라 하는 듯한 괴음.
도망쳐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심영의 몸은 깊은 그림자 속으로 잠수하고 있었다.
이윽고 달빛을 가린 ‘그것’이 사라졌을 때는 협곡에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사라졌다.
“나. 쁜. 아. 이. 는. 체. 벌. 해. 야. 돼.”
다만, 기분 나쁜 목소리만이 나지막이 협곡을 공허하게 울릴 따름이었다.
* * *
경매가 과열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결국 경매는 사치에 불과한 소비니까.
그러나 이 물건만큼은 달랐다.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가격은 멈출 기색도 없이 150억, 200억, 300억, 350억…… 대부분의 일반인들의 인생을 갈아 넣어도 살 수 없는 금액을 향해 나아갔다.
“52번, 492억 원!”
“82번, 497억 원!”
“하하, 100억도 못 올리는 녀석이 입만 살아가지고는… 3번, 620억 원. 아니, 720억 원!”
“이, 이런 미친…!”
지배인의 입을 거치지 않고, 고객들이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외칠 정도로 경매는 점점 심화되어 갔다.
“66번, 721억 원.”
“이런 고얀 것들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좁은 지하까지 행차했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18번, 722억 원.”
“말을 하면 좀 들어라. 이 빌어먹을 것들아…!!”
그러나 그것도 700억 원이라는 거금을 초월하자, 조금씩 잠잠해졌다.
제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에는 한도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 한도가 너무 커서 평소에는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치, 칠백…! 3번에 740억…!!”
“18번, 741억 원.”
“66번, 742억 원.”
“이것들이…! 올릴 거면 화끈하게 올려…!! 왜 1억씩 찔끔찔끔 올리는 거야! 3번, 800억…!!”
경매에 붙은 불은 꺼질 줄을 모르고 타올랐다.
후반부터는 나도 감당이 안 돼서 손을 뗐다.
미안하다 블랙카드.
본래 카드에는 믿음으로 답해줘야 줘야 하거늘.
슬슬 네 잔고가 불안하기 시작했어.
“그나저나 저 3번 할배는 누구길래 저렇게 돈을 펑펑 써대는 거야.”
“조교님 모르세요? 최가의 가주잖아요.”
“최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선생님, 1학년 중에 최진철 아시나요?”
“아, 그 유망주? 따로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적은 있어.”
1학년 입학 석차 4위, 최진철.
녀석은 이브에게 들어본 적도 없는 엑스트라 1이었다.
좋게 쳐준다면, ‘공부 잘하는 아카데미 엑스트라 A’ 정도의 단역으로 취급해 줄 수 있겠지만.
결국은 엑스트라.
그것도 세계관의 창조주인 이브가 내게 언급 한 번 한 적 없는 엑스트라 중의 엑스트라다.
여하튼 녀석이 나고 자란 최가(崔家)의 가주라는 말인가.
그저 그런 졸부 가문이려나.
개인적으로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녀석이 엑스트라 1의 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실낱같은 희망을 보았다. 그래도 내가 엑스트라의 할아버지보다는 돈이 많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말이다.
“어디 잔고 좀 확인해 볼까.”
나는 뒷주머니 속 핸드폰을 두들겼다.
곧장 앱을 이용해, 블랙카드 속 계좌를 확인해 봤다.
너만 믿는다.
[도지 은행-‘백승우’ 님의 계좌]─잔고 : 2,575억 5000만 8900원.
잔고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 정도면.
‘……차고 넘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여기서 이미 사용한 1,000억을 제외하면, 적어도 회심의 한 방은 날릴 수 있을 정도의 잔고는 충분하다.
나는 곧장 손을 들었다. 몇 분이고 손을 뻗지 않았던 내 재입찰 의사에 66번과 3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고.
“18번, 1,000억 원.”
그들의 눈동자가 일순, 동태처럼 거대해졌다.
도저히 내 입에서 나온 금액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돈! 더 많은 돈을 가져와…! 1,000억 이상이 필요하단 말이야…!”
“회, 회장님 더 이상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회사 자금을 가져와…! 티끌을 팔아서 번 돈을 가져오란 말이야…!”
“억 단위의 회삿돈을 마음대로 다뤘다간 위에서 눈치챌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그 돈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불법 경매장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이 그들의 귀에 들린다면 가문은 그 날로 끝입니다!”
“끄응…….”
정장을 입은 비서의 말에 3번 노인의 이마에 핏줄이 드러났다.
3번 노인은 크게 화를 내고 있었으나, 그 눈동자는 조금씩 고요해지고 있었다. 돈을 충당할 방법이 없었다.
노인은 1,000억 원을 총알로 내세운 나를 노려봤다.
그의 눈가에서 번들거리는 살기는 유독 질척이고 끈적였다.
참, 나이도 많이 드신 분이 집착이 심하시네.
‘어차피 살생석은 내 것이 될 텐데 말이야.’
더 이상 잴 것도 없다.
3번은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 추가 입찰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 66번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져온 총알은 1,000억 원 미만이었는지, 나를 노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처, 천, 천억 원! 역대 최고 경매가를 아득히 뛰어넘는 액수입니다! 이 이상 높은 금액이 나오기는 힘들 것 같군요. 10초의 시간이 흘렀으니, 세 번의 호가 이후로도 입찰하실 분이 없으시다면 18번 귀빈께 낙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경매한 물건들은 전부 합친 가격과 비슷한 액수에 눈이 뒤집어진 지배인. 그는 최대한 평정을 가다듬으며 경매를 진행했다.
─18번, 1,000억 원.
나는 고개를 돌려 66번을 살펴봤다.
그들은 지금 이상의 돈이 없는지, 완전히 포기한 기색이었다.
의외다.
칠성에서 도둑질을 벌일 사람인만큼, 수틀리면 훔칠 줄 알았는데. 그런 기색조차 없었다.
─18번, 1,000억 원.
이번에는 고개를 위로 올려, 가장 높은 좌석에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3번 할아버지를 눈에 담았다.
그는 전화를 돌리며,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으려는 것 같은데.
이미 티끌을 모아서 1,000억 원이라는 산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18번, 1,000억 원. 세 번의 호가 동안에도 추가 입찰자가 없던 관계로, 이번 옥션의 하이라이트 ‘살생석’은 18번 귀빈께서 낙찰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결국 경매의 승자는 내가 되었다.
모든 경매를 통틀어, 2,000억 원이라는 거금을 쏟아붓긴 했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싼 가격에 이만한 물건들을 구했다는 사실에 뿌듯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자, 이걸로 이번 경매는 끝입니다. 아, 18번 손님. 정말 많은 물건들을 구입해 주셨고, 특히 저희 경매장 역대 최고 금액의 물품을 구입해 주신 관계로 스테이지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돈 많이 쓰면 그런 이벤트도 있었나.
사양할 이유가 없던 나는 가볍게 수락했다.
“그전에 살생석을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아, 예, 물론이죠. 제 자리까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지배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명의 수행원들이 사방을 호위하듯이 나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수행원 네 명 전부 나보다 약한 오합지졸이지만, 왠지 에스코트 받는 기분이 짜릿했다. 이야, 부자들이 괜히 돈 지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
질투, 부러움, 경악 따위의 감정이 하나 되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런 시선은 생에 걸쳐서 수없이 받아왔지만,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이게 부자들의 시야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곧장 중앙 스테이지에 섰다. 혹시 모를 상품의 가치 훼손의 이유로 살생석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살생석을 훑어봤다.
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품이다.
“저, 18번 고객님. 물건 수령에 원하시는 방식이 있으십니까?”
“예시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저희 경매장 같은 경우에는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라 거래했다는 증거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장부도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손님들을 그 자리에서 직접 가지고 가십니다. 물론, 가끔 상품의 크기가 너무 거대해서 배달로 옮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음…….”
마땅히 좋은 방법이 없었다.
경매품들을 하도 많이 샀기도 했고, 심지어 「살생석」은 거대한 크기의 구미호 석상이었다.
내가 들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면 남은 수단은 배달인데.
배달로 물건을 수령하기에는 내 거취가 문제였다.
우선 천호백가의 저택은 온전히 내 영역이 아니며, 그곳에 배달했다가는 온갖 트집을 빌미로 죄다 뺏길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기숙사에 배달하기에는 살생석을 보관해 둘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이거 그냥 구야자의 공방을 주소로 쓰고 배달 받을까?
어차피 대부분 그 양반한테 장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재료들이었다.
남는 주물 있으면, 공짜로 주겠다고 말하면 먹히려나.
머리가 복잡해지는 사이, 내 눈에 무언가 꺼림칙한 것이 들어왔다.
살생석의 구석에 기형학적인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폭발의 룬?”
룬, 오래된 마법의 언어.
그 해석과 각 단어의 기원에 따라 천차만별의 능력을 가지는, 아직까지도 해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고대의 신비가 살생석에 적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룬을 읽기는커녕, 룬인지조차 모르겠지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읽은 여러 마도서에 적혀 있던 룬의 해석.
살생석에 그려진 것은, 여러 룬 문자들 중에서도 수류탄급의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왜 돌에 그려져 있는 걸까.
그런 뻔한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치이이이이익!
마치 불판 위에 고기를 굽는 듯한 소리.
전쟁터에서 여러 화기들을 다뤄본 나는 곧바로 알았다.
고기를 굽는 소리 따위가 아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소리다.
소리의 근원지는 살생석에 새겨진 룬, 그 자체.
이런 제기랄.
“다들 숙여!!”
경매장을 가득 울리는 소리에 모두가 흠칫하는 것도 잠시.
숙이라는 소리가 무색하게, 폭발은 곧바로 일어났다.
퍼어어어어엉──!!!
거대한 폭발에 지하 경매장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딱히 무너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해봐야, 그저 머리에 뿔 달린 집단이 나타났다는 정도려나.
경매가 1,000억 원짜리 물건의 폭발치고는 약소한 충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