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8화(8/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8화
동기(3)
남화연의 강의 대본을 써 준 이후로, 출근하고 나서 매일같이 대본만 쓰고 있다.
내가 쓴 대본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업무는 언제나 그녀가 직접 내려줬다. 교수에게 직접 업무를 받기 때문인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조교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내가 엑스트라 악역이라도, 이렇게까지 무시하는 건 상처받는다.
이쯤 되자 첫날에 했던 심부름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현재 남화연을 제외하고, 나에게 말이라도 걸어주는 사람은 수석 조교 정도가 있다.
교수의 밑에서 가장 오랫동안 굴러서 그런가. 다른 조교들의 눈치도 안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아무래도 저런 모습은 남화연에게 옮은 모양이다.
“오, 우리 신입. 오늘도 교수님 강의를 만드는 거야? 대단한걸.”
“……수석 조교께서 칭찬하실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음? 그럴 리가 없잖아. 교수님이 흥미 삼아서 한 번 시켰으면 모를까, 매일같이 대본을 만들라고 지시 내린 건 그만큼 네 대본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라고. 좀 더 자신감을 가져!”
등을 세게 두들기며 힘내라고 외친 수석 조교.
그는 다른 조교에게도 다가가, 어깨나 등을 두들기며 힘을 내라고 북돋워줬다. 무척이나 밝은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그가 내 등을 두들길 때마다 다른 조교들의 시선이나 분위기가 달리지는 것을 종종 느낀다.
아마 추측이지만, 왜 수석 조교가 너까지 응원해 주냐는 무언의 압박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들의 시선이 내 꼬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눈치를 주지 말고 말로 하든가.’
나는 다른 조교들의 행동에 어이를 상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해했다.
이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악역이 어떤 존재인지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악당은 주인공한테 멸해야 할 적이며, 비판받아야 할 존재.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악당 중 한 명이다.
학창 시절에 약혼녀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아 파혼당했다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흠씬 두들겨 패서 사회생활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던가. 고아들에게 다가오지 말라며 혐오감을 내비쳤다는 소문은 이래저래 유명했다.
내가 빙의한 녀석은 엑스트라 악역 중에서도 유독 질이 나빴다.
더군다나 내가 빙의한 백승우의 경우에는 개인사도 꽤나 복잡하다. 천호백가라는 거대한 가문의 존재가 나를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브가 천호백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 세계에서는 꽤나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었다. 특히 본가가 위치한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대기업부터 S급 길드까지. 천호백가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었지.’
분명 이브가 얘기하기로는 쇠퇴하고 있는 가문이라고 봤는데.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의 먹을 것이 있다고 하던가.
진짜배기들은 한두 번 망하는 정도로는 티도 안 나더라.
천호백가의 영향력은 크든 작든 칠성 아카데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교들은 나와 접점을 가지는 것을 더더욱 기피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곳의 낙하산 가주니까.
실권은 없고 이름뿐인 가주.
심지어 몇 안 되는 이권도 다른 혈육에게 빼앗기고 있는 중이었다.
인터넷에는 나쁜 소문들이 돌아다니고, 언론에서는 이를 스크랩해서 기사에 내보내기도 하고. 도대체 얼마나 무능했으면 이 사달이 났을까.
‘지금부터라도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쳐야지.’
주인공에게 죽지 않을 정도의 힘을 기르고, 가문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진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선적으로 해야 될 것들이다.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저, 혹시…… 이것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남화연과 수석 조교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어떤 용감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나 싶었는데.
“제, 제가 아직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일단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했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전혀 용감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이 그걸 증명했다.
그녀는 내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시간은 된다만, 나한테 이런 걸 부탁해도 되나?”
“네? 제, 제가 여기 온 지 며칠밖에 안 돼서 잘 모르는 게 많은데. 혹시 실례였던 걸까요……?”
“딱히 그렇진 않은데.”
대화를 해보니 나와 같은 때 입사한 동기인 모양이다.
그러니 뭣도 모르고 나한테 말을 걸 수 있던 거겠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그녀가 내민 서류를 받았다.
“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한 시간 내로 네 책상 위에 올려둘 테니, 너는 그사이에 다른 일 하고 있어.”
“아, 가, 감사합니다!”
허리를 90도 숙이고는 재빨리 걸어가는 동기.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달리다가, 넘어질 뻔하고는 주춤거리며 걸었다. 꽤 특이한 녀석이네.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고는 그녀가 건넨 서류를 훑어봤다.
신입에게 맡길 만한 간단한 서류였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서류를 처리하고 녀석의 책상에 올려놓으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타박하고 혼내는 소리.
이 부근이면 정수기와 커피포트가 있는 곳일 텐데.
“너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못 봤어? 눈은 어디에다 달고 다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지 호기심에 고개를 살짝 내밀자, 방금 전 내게 서류를 부탁한 막내가 혼나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도 넘게 지났어. 너도 눈치가 있으면 파악하라니까?!”
“죄송합니다……. 유, 유일하게 그분이 손이 놀고 계셔서 그만…….”
“하, 진짜 돌겠네. 야, 레이나. 사회생활이라는 건 말이야. 눈치가 기본이야. 너 어디서 가서 그렇게 행동했다가는 큰일 난다?”
혼나는 이유는 당연히 나 때문이었다.
아마 나와 어울려서 그런 거겠지.
“…….”
뭐라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
지금 내가 끼어들면 중재는 할 수 있겠지만, 분명 녀석의 앞날이 꼬이겠지.
그런 상황은 원치 않는다.
녀석의 책상에 서류만 올리고, 다시 제 할 일 하려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막내 조교의 눈이 동그래지며, 입이 살짝 열리자 나는 검지로 입을 막으며 서류를 흔들었다.
나는 그녀를 혼내는 사내가 눈치챌 수 없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러고는 서류를 그녀의 책상 위에 올리고, 자리에 돌아와 커피를 들이켰다.
참, 오늘도 근무하기 힘든 날이다.
* * *
힘겨운 업무를 끝낸 후, 나는 도서관을 찾았다.
“어머 오늘도 오셨네요. 또 마도서를 찾으시려고요?”
“아, 네. 제가 읽는 책이 다 그렇죠.”
“책을 많이 좋아하시나 봐요.”
퇴근한 후에는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마도서를 대출하다 보니 사서와 가벼운 대화를 할 만큼 안면을 익혔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나를 둘러싼 소문들을 모르는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종종 내 엉덩이 부근을 무섭게 쳐다보는데.
간혹 무서울 때가 있다.
“후우우, 어서 책이나 찾자.”
쓸모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마도서나 찾자.
현재 화염 마법에 대한 기초는 숙지한 지 오래다. 물론 지식으로 아는 것과 몸으로 체득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만.
슬슬 본격적인 응용에 들어갈 시기이다.
화염 마법과 조합하면 상승효과를 발휘할 만한 마도서들을 가져가야지.
나는 넓은 도서관을 활보하며, 저주 마법이나 염동 마법에 관련한 책들을 찾아 나섰다.
이제 언령에 대한 책만 찾으면 되는데.
‘이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하도 안 보여서 도서관에 있는 검색용 컴퓨터로 위치를 찾았는데도 잘 안 보인다.
언령이 워낙 마이너한 마법이라서 그런가.
눈에 잘 안 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구석진 곳에 위치한 낡은 책 몇 권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목을 확인해 보니 내가 찾던 마도서가 맞았다. 책장에서 두세 권 정도 챙기고서 사서에게 대출받으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여기에 원래 이런 곳이 있던가.”
여태까지 도서관을 오가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작은 문.
어딘가 낡으면서도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홀려 문을 열어보려고 했다.
덜컥덜컥.
손잡이를 돌리자 헛돌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열쇠가 필요한 모양이다.
‘도대체 도서관에 왜 이런 장소가 있는 거지?’
혹시 창고인가.
그런 것치고는 문의 디자인이 너무 고급스러운데.
이따가 사서한테 물어봐야겠다.
종류별로 다양한 마도서를 품에 안고 대출받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쿵─!
책을 조금 많이 가져와서 그런가, 품에서 내려놓자 제법 큰 소리가 났다. 책에 부착된 바코드를 찍던 사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총 11권. 이거 전부 다 대출하실 생각이세요?”
“네, 혹시 대출 제한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학생이라면 모를까, 조교하고 교수한테는 제한이 없는데, 원래 보통 하루에 두세 권씩 대출하지 않으셨나요?”
사서의 말마따나 퇴근하고 책을 대출한 다음, 밤새 읽어서 다음날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대출하는 것이 그동안의 루틴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인 두세 권씩만 대출한 것인데. 오늘은 사정이 좀 다르다.
“그동안은 읽으려는 분야가 확실했는데, 슬슬 다 읽어서 오늘 밤은 조금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보려고요.”
“아, 그렇구나…….”
“하하, 내일부터는 다시 원래처럼 두세 권씩만 대출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와 사서는 간단한 담화를 나누었고, 슬슬 어스름이 깔릴 시간이 되었길래 기숙사에 가려는데.
아까 보았던 고풍스러운 문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했다.
“저 혹시 문에 대해서 아시나요?”
“문이요? 무슨 문을 말씀하시는 건지…….”
“이 책들을 꺼냈던 책장 부근에서 웬 문 하나를 발견했거든요.”
나는 언령에 관련된 낡은 책들을 꺼내 보여줬다.
사서는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는 각각의 책에 부여된 식별 번호를 확인했다.
“AZ-2361……. 꽤 오래된 책에 붙이는 번호인데. 그 부근이라면 지하를 말씀하시는 모양이네요.”
“……지하?”
“예, 겉으로 드러나는 도서관은 3층 건물이지만, 실제로는 지하 1층까지 포함해서 4층 건물이거든요.”
보통의 학생이나 조교들은 모르는 사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야 저 밑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브에게 들어본 적이 있으니까.
“지하실은 출입 금지 구역으로 그 안에는──.”
“─낡은 마도서의 원본이나 학회에서 금서(禁書)로 지정된 책들이 즐비하죠.”
“어머, 잘 알고 계시네요. 하긴 책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이긴 하죠.”
이전에는 도서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읽고 대출할 수 있었으나, 보호를 위해 혹은 책에 위험한 내용이 적혀 있다는 이유 따위로 온갖 고서(古書)들을 보관하는 도서관 지하 1층.
금서고(禁書庫).
그곳에는 오래전에 실전(失傳)된 마도서도 여럿 있어서 수많은 마법사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꿈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나 그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을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나 또한 여타 마법사들처럼 금서고에 들어가고 싶다.
다만 내 목표는 실전된 마도서나 잊혀진 금서가 아니다.
‘도서관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히든피스.’
원작에서 후반부에 등장한 기연으로, 사람과의 관계나 인연 같은 무형의 것들을 제외한다면 이 아카데미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히든피스.
─뱀파이어는 내가 설정한 이종족 중에서도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종족으로 설정해 뒀어. 그런 종족의 유산이 아카데미 지하에 있다니, 두근두근하지 않아? 음? 왜 아카데미 지하에 그런 게 있냐고? 그야, 도서관 지하에는 금서고가 위치한 것이 로망이니까! 아, 참고로 정확히 뭐가 있는지는 나중에 쓰려고!
금서고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금서고니까. 책 형태의 무언가겠지.
그것은 마법일 수도 있고, 스킬북일 수도 있다.
어쩌면 뱀파이어의 보물을 숨겨둔 지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음, 뱀파이어와 관련된 것은 확실하니까. 높은 확률로 흡혈과 연관된 것일 가능성이 높겠지.’
뱀파이어는 내 종족의 전신인 천호처럼 오래된 종족이다.
설정상 수천 년 전에 멸종한 종족으로, 그 후손들 중 극히 일부가 격세유전으로 힘을 이어받으며 그들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 세계에는 뱀파이어처럼, 멸종한 종족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들의 존재는 여러 흔적으로 증명되는데, 스킬과 아티팩트 그리고 아인들이 그 대표적이 예시이다.
그 여러 흔적들 중, 뱀파이어의 유산은 단연 최고로 꼽힌다.
‘뱀파이어의 유산이 무엇이든, 그 명성만큼이나 적응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혹시 모르니 치유 마법도 익혀볼까.’
혹시 상처를 내서 피를 통해 발동하는 스킬일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치유 마법이 효과적이니, 미리 익혀두면 나쁠 것 없다.
나는 사서에게 책 한 권만 더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검색대에서 제일 대출률이 높은 치유 계열 마도서를 찾았다. 다행히 딱 한 권이 도서관에 남아 있었다.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며 검색대에서 번호표를 출력했다.
TC-7847.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앞번호가 TC로 시작하는 책장에 도착했다.
어디 보자, 7847번이면 요 근처일 텐데.
위아래를 샅샅이 훑어보자 연녹색의 산뜻한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바로 내가 찾던 책이다.
손을 뻗어서 책을 잡자, 갑자기 두 개의 손이 포개진다.
내가 양손을 포갠 것은 아니다. 세상에 누가 책을 잡는데, 자신의 양손을 포개겠는가.
장갑 위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한 소녀가 보였다.
교복은 입고는 갈색 머리카락을 묶어서 뒤로 넘긴 소녀.
어딘가 익숙한 이목구비인가 싶었더니.
“……아.”
며칠 전 나를 덮쳤던 소녀.
그녀가 확실하다.
그때는 땀에 젖은 운동복을 입고, 형광등 하나 켜지 않은 어두운 장소에서 본지라 얼굴을 분별하기 힘들었는데.
밝은 도서관에서 보니까. 확실하게 분간이 간다.
이렇게 어린 녀석이 내 목젖을 강타했다는 거지.
“……어?”
소녀를 빤히 쳐다보다 그녀도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서로가 동시에 붙잡은 책을 놓으라는 듯, 눈빛만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보냈지만. 내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더니, 기억났다는 기색이었다.
“오랜만이다. 그치?”
웃는 낯으로 책을 내 쪽으로 당기자, 그녀도 지지 않으려 책을 당겼다.
이건 절대 못 뺏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