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2)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82화(82/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82화
시조의 주술(2)
“…….”
나는 입을 꽉 깨물고 의식을 손끝에 집중했다.
푸르른 마력이 손끝에 일렁인다.
우우웅!
마력이 돌연 검게 물들며 붓으로 휘갈긴 한자처럼 휘어지더니, 이내 하나의 술식을 이루었다.
그것은 주술, 그중에서 저주의 한 종류였다. 「중독」이라는 명칭의 주술은 손끝에서 일어나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저주를 흩뿌렸다.
─세상이 미쳤구나. 미쳤어. 아무리 초급 저주라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저주 하나를 완벽히 체화하다니.
자기도 모르게 타마모가 감탄을 뱉을 수준의 체화 속도.
독 계열의 저주의 시작점과 다름없는 「중독」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마스터 했다. 아니, 마스터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었다.
나는 이미 「중독」에 「백독지체」로 만든 독의 항체를 더해, 독자적인 맹독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다다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고독’과 ‘살생석’의 변형에 불과하지만.
오늘 아침에 수업을 시작했거늘, 이제 겨우 점심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성장 속도란 말인가.
─심지어는 독기가 술자의 몸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 줄이야. 독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아무런 영향도 없는 것은 내성 이전에, 숙련도가 말도 안 된다는 증거일 터인데.
본디 저주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주술.
술자도 타인도 다치기만 하는 자살의 술법에서 비롯됐다.
그 위험성 덕분에 저주는 여러 계통의 주술 중에서도 위력 하나만큼은 으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초급 저주라도 몇 시간 만에 하나를 완벽히 익히다니.
이건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었다.
─천재적인 재능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오성이라. 만일 신이 있다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천재를 빚어낸 불공평함에 양심이 찔려서 죽어야 할 정도야. 후훗, 개인적으로 네 수련이 덜 여물기를 빌게.
질투 섞인 그녀의 입가에 한탄과 짓궂음이 맺혔다.
진심으로 세상의 불공평함을 탓하며, 내 수련이 뒤처지기를 바랐다.
나는 그녀의 말에 뒤를 돌아봤다.
그래, ‘수련’. 또 저 단어였다.
시스템도 꼬리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수련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알고 싶어도, 가문에 남은 자료와 사설에도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
수련은 그저 수련.
그것이 가문의 모든 고문서가 일컫는 수련의 정의였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아니고 말이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흐음~ 또 가르침을 원하는 거야? 좋아. 주술의 시조인 내 광활한 지식 내에서 아는 한 성심성의껏 답해주도록 할게. 물론, 이번에는 가급적 어렵게 설명해 줄 거야.
‘꼬리를 늘리는 방법이 따로 있나? 시스템은 자꾸만 수련을 언급하던데 이게 정신적인 수양을 뜻하는지, 육체적인 성장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아하…… 이건 생각지도 좋은 질문이네.
타마모는 내 어깨를 붙잡으며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 어조에는 장난 어린 짓궂음이 서리지 않았다.
오히려 대견하다는 눈치였다.
이게 그렇게 뜻깊은 질문이었나.
도대체 시스템이 말하는 ‘수련’이 뭐길래 그녀도 저런 눈치인 걸까?
─사실 수련은 어려운 개념이 아니야. 스스로를 시험할 수만 있다면 뭐든 수련이지. 예를 들어, 정신적인 수양을 통해 정기신을 합일하거나 육체적인 성장으로 탈피나 탈태하는 것 정도가 있으려나. 물론 편한 방법도 있어. 백 년 동안 탱자 탱자 뒹굴…… 아니, 한 세기라는 세월을 견딤으로써 성숙을 통해 꼬리를 하나씩 늘리는 방법도 있지.
“썩 광활한 지식에서 나온 대답 같지는 않은데.”
─말은 끝까지 들으렴. 귀는 그러라고 있는 거잖니?
“그건 그렇지.”
─그럼 여기서 질문을 낼게. 결국 이 세 가지 수련법의 공통점이 뭐라고 생각해?
글쎄다.
정기신의 합일은 보통 생에 걸쳐서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육체적인 성장만으로 탈피하는 것은 수십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해야 되는 문제가 있고, 백 년의 세월은 과연 내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드는 시간이다.
음, 그러니까. 이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야. 수련을 단기간 내로 끝내면, 그것은 수련이라 부를 수 없으니까. 하지만 요점은 아니지.
“그러면 뭔데?
─요점은 간단해.
구미호뿐만 아니라, 여우 일족의 전반에게 있어서 꼬리는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영혼과 격과 직결된 아주 중요하고 상징적인 부위.
─꼬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영혼의 격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영격이 높아지니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법이지.
그리고 꼬리가 점점 늘어날수록 수련이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처음에는 바구니에 물을 채우는 수준으로 수련이 끝났겠지만, 가면 갈수록 바구니로 호수를 채우고, 이윽고 바다를 채우는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본디 경지란 그러한 법이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친히 도와줄 테니까.
타마모는 느꼈다.
그의 꼬리와 반지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아마 꼬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반지에 엮인 그녀도 점점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사물도 제대로 만지지 못하지만, 그가 사미호가 된다면 직접적으로 사물에 간섭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그러니 그녀는 제 계약자와 자신을, 공생 관계를 위해 선심 쓰듯이 말했다.
─단 시간 내로 수련을 끝낼 수 있도록 네 수행에 여정표를 짚어줄게. 식령으로 영혼을 취하든, 영혼의 격만 높이면 되는 일이니까.
수련, 말은 좋지만 결국 영격만 높이면 해결되는 고행이다.
그리고 그 고행을 꼼수로 넘길 수 있는 방법을, 타마모는 경험을 통해 여럿 알고 있었다.
─가르친 지 두 시간 만에 이게 무슨……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물론 세상만사는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그게 나쁜 방향일 때도 있고, 좋은 방향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일 수도 있다.
─가부좌(跏趺坐)로 단전에 백(魄)을 넓히는 방법만 알려줘도 이 모양이라. 하하…… 이 정도면 알아서 잘하겠네.
계기만 뚜렷하다면 사미호는 물론이고, 오미호까지도 빠르게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 성장세.
육미호부터는 천지인과 삼위일체를 이루는 삼의 배수이기에 성장세가 확 꺾이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빠른 편이다.
이러다가 밑천 다 털리게 생겼다.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안심했다.
“그러면 좋지, 곧 중간고사가 시작될 즈음이라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었거든.”
중간고사.
보통의 학교라면 학생들이 사나흘 간 책상에 앉아 시험을 치르는 것에 불과했겠지만, 이 소설 속 세계의 중심 배경은 아카데미.
시험에서 창칼 정도는 휘둘러 줘야 하지 않겠는가.
‘창칼만 휘두르면 좋겠지만, 눈먼 칼에 학생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것이 문제지.’
‘아카데미 꼴통 천재’의 첫 번째 메인 시나리오가 칠성을 습격한 유렌과 마물들을 격퇴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시나리오는 중간고사에서 몰래 암약하는 마인과 범죄자들을 통해 일어난다. 그들은 몰래 시험에 잠입, 중간고사에서 일어날 사고 방지용 프로그램들을 죄다 다운시킨다.
그 결과, 학생들은 서로 성적을 위해서 싸우겠지만, 안전 프로그램이 전부 다운된 탓에 그들은 친구들을 죽인 죄인들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래의 새싹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칠성에 대한 신뢰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 이번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중간고사? 그건 또 뭐야?
“학생들이 치르는 시험의 일종이다. 시험의 결과는 학생들의 꼬리표가 되어, 개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되지.”
─신기하네. 신분도 아니고, 성적 따위가 평가의 기준이 되다니.
“지금은 신분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이 더 중요시 평가받는 시대야. 다들 형평성을 중요시 여기지. 그렇다고 혈연과 신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순 없지만, 실력보다 위에 있진 않아.”
─정말이지.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구나.
사람을 평가하는 천 년간의 간극에 타마모가 오랜 기억을 되짚듯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중간고사란 꽤나 신기한 제도인 모양이다.
아마 아이들이 살기 좋아진 세상에 무언가 감회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다.
타마모는 그렇게 상냥한 여인도 아닐뿐더러.
학생들은 중간고사 전에 수행평가 기간에 대부분 뻗어버려서, 형평성이고 신분이고 생각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그녀가 제안한 것이 바로 시간 개념이 없는, 심상에서 수련하는 방법이다.
─부르는 방식은 뭐든 좋아. 심상 세계, 내면 세계, 정신의 투영, 기억의 구현화. 전부 다 맞는 말이고, 뭐라 특정하기 힘든 개념의 주술이니까.
나는 그제야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타마모가 하자는 것은 결국.
“……내 심상에 직접 들어가자고?”
─그래? 왜, 들키고 싶지 않은 거라도 있어서 그러는 거야?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야 당연히 있지.
세상 누가 자신의 속내를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겠는가.
간혹 본인조차 스스로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것을 꺼리는 족속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만일 심상에서의 훈련이 그녀의 말만큼이나 효율이 좋다면, 필히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듣고 있어.
“과거의 잔상이나 기억도 심상에 구현되려나?”
─그야 당연히 가능해. ‘너’라는 인격을 쌓아 올린 것은 천성적인 성향과 지난날의 경험이지. 후후…… 오히려 그것들이 심상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이상한 녀석일걸.
그녀의 대답에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이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날들의 잔상과 기억이 구현된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잖아.’
결론에 도달하자 어느새 내 얼굴을 편안해졌다.
“정말로 그 수련법이 효과 있는 거 맞겠지?”
─당연하지. 후후, 속고만 살았니? 물론 두 번 이상 시도하면 그 효율이 반 토막이 나겠지만, 처음 시도할 경우에는 단연 그 효율이 확실하단다.
“그럼 어서 시작하자.”
나는 어서 시작하자고 타마모를 재촉했다.
처음에는 약장수의 말처럼 느껴졌던 그녀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낄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타마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되려나.”
내 심상.
나는 그곳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내 기억과 경험을 말미암아 구성되었다면, 분명 공허한 무저갱이 따로 없을 것이다.
과연 그런 곳에서도 수련이 잘되려나.
의구심은 들었지만, 굳이 타마모에게 말하진 않았다.
원래 자신의 마음은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법이니까.
수련이 안 되면, 타마모가 알아서 다른 주술이나 가르쳐 주겠지.
나는 그냥 편안하게 생각했다.
* * *
─…….
“왜 아까부터 말이 없어?”
─……하, 지금 왜 말이 없냐고 물은 게 맞아? 정녕 나랑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야 너란 나랑 같은 방향을 보고 있으니,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맞겠지. 뭐, 어딜 바라봐도 동서남북 상하좌우 다 똑같아서 풍경에 차이는 없겠지만.”
심상 세계에 들어왔다.
사람의 마음속, 그 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타마모의 기대감도 잠시.
눈앞의 풍경에 기대감이고 나발이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공허하네. 심상에 하늘과 땅도 없다니, 이게 정녕 사람의 마음이라고?
“너, 은근히 나 돌려 까는 것 같다?”
─어머, 이제 알았어? 사람 같지 않다고 말한 거야.
술법을 펼친 자신도 타인의 심상 세계에 발을 들인 경험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심상을 무어라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이토록 황량한 세계는 그 누구의 마음속에도 없었다.
심지어 연쇄살인자의 심상에도 자그마한 추억과 따스했던 기억의 흔적만큼은 있었다.
하나 그보다도 못한 이곳은 대체 뭐란 말인가.
‘혹시 심상이 너무 넓어서, 내면의 맨 끝에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 녀석의 마음을 엿보기 위해서라도, 멀리 떨어지는 수밖에.’
타마모는 은연중에 생각했다.
육신의 제약이 없는 심상 속.
그곳이라면 아직 미숙한 계약자보다는 자신이 더 강하지 않을까, 하고.
그야 그녀는 구미호가 되어 한때 드넓은 대륙과 열도를 군림한 여제였다. 또한 이곳은 마음속이라 둘 다 육신이 없었다.
타마모는 상대와 조건이 동일하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여 그녀는 계약자를 무력으로 굴복시키고, 이 세계에 빠져나가기 전에 승우의 은밀한 기억을 염탐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하면 그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평생에 걸쳐서 놀릴 수 있는 재미있는 패를 얻을 수 있을 거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이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
거대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그녀의 앞에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지금 타마모의 앞에 있었다.
거대한 무언가, 백승우는 입을 열었다.
“그만.”
바로 옆에 있는 승우.
크기가 커진 것도, 생김새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한데, 어찌하여 이토록 떨린단 말인가.
“타마모, 거기서 멈춰라.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보인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멈춰.”
이런 건 계산에 없었다.
도대체 뭐란 말이더냐.
‘이게 담담히 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였나?’
이 정도 숨겨둔 수가 있으면, 섣불리 타마모의 제안을 받은 것도 납득이 갔다. 백승우는 똑똑하다.
자신에게 돌아올 손익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이성적인 사내였다.
아마 그는 자신 내면에 이런 자신이 있음을 알고, 타마모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리라.
─믿기지 않네…… 전성기의 나도 이만한 격은 이뤄낼 수 없었는데.
이게 이제 막 천지인을 깨닫기 시작하며 삼미호에 도달한 자의 영격이라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드높고, 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했다.
이게 사람의 영격이라니.
─차라리 내가 신선이나 붓다와 같은 땡중의 마음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어. 욕심을 거세한 그것들의 속내도 이토록 공허할 테니.
“잡담은 각설하고, 본론에 들어가지.”
그녀의 계약자, 백승우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이전과 같은 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방금 전에 느낀 것이 신기루와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분위기가 단숨에 가라앉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을 쳐다보는 눈치로, 타마모는 승우를 쳐다봤다.
고작 이틀 만에 한 사람에게서 이토록 많은 충격을 받다니.
아무래도 그와 함께 있어서 지루할 일은 없을 것 같아, 입가에서 미소와 흥미가 지워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