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Gumiho is a mag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9)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9화(9/408)
아카데미 구미호는 마법천재 9화
동기(4)
우선 책은 내 명의로 대출했다.
도서관 사서도 슬슬 퇴근해야 했기에, 대출 가능한 책에 제한이 있는 학생보다 조교인 내가 빌리는 편이 나았다.
물론 이 책을 누가 가져가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그 책. 내가 먼저 찾았어.”
“먼저 책을 잡고, 대출한 것은 내가 아닌가? 하룻밤 만에 읽고 빌려줄 테니, 슬슬 자러 가는 게 어때?”
“아니. 내가 읽고, 내일 빌려줄게.”
둘 중 아무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나 같은 경우에는 빌린 책이 워낙 많아서, 굳이 오늘 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며칠 전에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괜히 뺏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우리 치유학 교수님의 저서. 강의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해.”
“학생 필독 도서였나? 분명 수행평가나 학업에 관련된 책들은 사전에 따로 비치해 둘 텐데.”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내가 읽을 책.”
아, 난 또 수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인 줄 알았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이 넘겨줬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글쎄다. 내가 저 얘랑 잘 지내보려는 것도 아닌데, 굳이 양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내 명의로 대출한 책이 아닌가? 그러면 내가 읽어야지.”
“……정 그러면 지금 반납해. 내가 대신 대출할 테니까.”
“이미 사서는 퇴근 준비를 맞췄을 시간인데. 반납과 대출은 어떻게 하려고?”
“으……. 그걸 알고, 일부러 그쪽 명의로 대출했구나.”
소녀가 당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의기양양한 티를 냈다. 사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허장성세」가 발동한 까닭이다.
그녀는 분하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번 일. 마음에 새겨둘 거야.”
열 받았는지 교복 위에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는 어깨에 걸쳤다.
봄이라도 밤바람을 싸늘했는데도, 꽤나 열이 오른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소녀의 왼쪽 가슴팍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호기심이 들어서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돌리고, 학생 기숙사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너무 빨라서 잘 안 보였다.
‘……아마, 서예린이라고 적혀 있던 것 같은데.’
서예린, 서예림. 둘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아마 내 눈이 맞는다면 서예린이 아니었을까.
원작 속 주연 중에서도 비슷한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굉장한 우연이네.
“……?”
주연과 같은 나이에 같은 이름. 심지어 똑같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다.
다른 거라고는 원작의 외모 묘사뿐이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나는 최악의 결론을 생각하며 말을 내뱉었다.
“……잠깐만.”
서예린과 창.
이 두 가지는 어느 조연을 뜻한다.
내가 왜 이런 중요한 것을 놓친 거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애초에 새벽에 창을 들고 훈련할 사람이 몇 없긴 하지.’
─원래 아카데미 장르에는 히로인이 여럿 있어야 하는 법이잖아. 주인공에게 도움받는 히로인도 좋지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히로인도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음, 그래도 주인공보다 강한 히로인은 너무했나. 에이 몰라, 그냥 이 설정 밀고 나갈 거야.
이브는 말했다.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창을 휘두르는 무신.
신창(神槍), 서예린.
소설 초반에는 주인공보다 강하며.
먼 훗날에는 창 한 자루로 산을 깎고, 마물의 대군을 가볍게 짓뭉개는 괴물 중의 괴물. 작중 설정으로 순수한 재능만으로는 세계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녀석이다.
내가 그런 녀석하고 실랑이를 벌였다고?
“망했네…….”
지금이야 풋풋한 소녀티가 역력한 1학년이지만, 앞으로 1년만 지나면 어지간한 현역도 우습게 볼 수 없는 플레이어가 된다.
아니, 지금 당장도 기도만큼은 훌륭했다.
그런 학생과 우호적으로 지내도 모자랄 판국에 이따위 책 한 권으로 다투다니.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던 모양이다.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시간은 흘렀다.
속이 안 좋아서 저녁도 거르고 책을 읽었다.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당연히 연녹색의 책.
그 서예린과 실랑이를 벌이면서까지 가져온 책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별거 없네.”
교수 본인의 노하우나 조언 같은 것도 없는 전형적인 교과서 스타일.
이럴 거면 차라리 교과서가 나은 수준이다.
아직 메인 스토리는 시작도 안 했는데, 주연 한 명이랑 관계를 망치면서까지 얻은 물건이 무가치했다니.
나는 손으로 머리를 잡으며 절망했다.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이브에게 서예린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둘 걸 그랬다.
당연하게도, 오늘도 잠을 못 잤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
* * *
텅 빈 거대한 공동(空洞).
주변에 사람이 있었단 흔적은 역력하지만, 그곳에 살아 숨 쉬는 생명체는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남아 있었다.
“에이, 쓸모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인걸.”
흐르는 선혈로 샤워라도 한 듯, 붉은 피로 물든 사내.
그는 손에 들린 보석을 바라보고는 허탕을 쳤다며 바닥에 던졌다.
시중에 팔면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겠지만, 그건 사내의 관심사가 아니다. 괜히 피만 뒤집어써서 불쾌했다.
피부와 옷에 흐르던 피는 딱딱하게 굳은 지 오래였다.
아, 이러면 빨아도 안 지워지는데. 새로 사야 되나.
“새로 사긴 귀찮은데. 가까운 매장이나 습격할까.”
좋은 생각이었다.
굳이 돈 쓸 필요도 없고, 옷이든 장비든 원하는 대로 가져갈 수 있으니까. 습격하는 김에 선물도 몇 개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을 주웠다.
여기에다가 선물이라도 담아 가면 되겠지.
가방을 탈탈 털자 포션이나 폭탄 같은 일회용품이 잔뜩 나왔다.
보아하니 이 가방의 주인은 무척이나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 봤자 방금 전에 눈에 뵈는 사람은 전부 죽여서 무의미하지만 말이다.
포션이 깨지고 폭탄이 바닥에 떨어지는 와중에.
──땡그랑!
무언가 전혀 다르게 생긴 것이 떨어졌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무언가.
“음? 뭐지. 얘만 다르게 생겼는데.”
호기심에 주워서 살펴보니 작은 로켓(Locket)이었다. 작은 버튼을 누르자 안에 내장되어 있던, 사진이 드러났다.
중년의 사내와 여인.
그 사이에 어린아이가 한 명 있었다.
“자식이 있던 건가. 근데 둘 중 누구의 물건이지?”
사내의 시선이 공동 한쪽 벽면을 향했다.
벽에는 온갖 종류의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인간과 마물 따위의 살점과 뼈가 뒤섞인 무더기에서 사람의 얼굴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저 시체더미 속에는 중년의 사내가 있을 수도 있고, 중년의 여인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부부가 사이좋게 나란히 죽었을 수도 있겠지.
부부는 일심동체. 백년해로를 약속한 사이로서 영원히 함께이니까.
──땡그랑!
사내는 손에 쥔 로켓을 던졌다.
아티팩트라면 모를까. 이따위 쓰레기는 필요 없었다.
어차피 오늘 획득한 전리품은 많았다.
이중 쓸 만한 것을 골라내고 있는 가운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익숙한 발소리. 익숙한 숨결. 익숙한 심장 박동.
귀에 들리는 모든 정보가 사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아, 뿔 달린 놈 왔어?”
“……네놈은 언제나 무례하구나.”
“별 새삼스럽게시리.”
피로 물든 사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정장을 입은 사내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사적인 사내였으나, 그의 머리 위에는 이질적인 뿔이 달려 있었다.
할로윈 분장이나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따위가 아니다.
저 뿔은 사내의 신체 일부.
생리 작용을 하는 엄연한 육체 조직이다.
“그런데 마인이 이런 장소에 와도 돼? 여기 나인테일 길드 관할이잖아.”
“당연히 정보는 모두 조작하고 왔다. 너야말로 여기에서 학살극을 벌여놓고 괜찮겠나. S급 길드의 구역에서 살인이라니. 살아남기 어려울 거다.”
“괜찮아. 보이는 족족 피하고 도망치면 되는걸.”
둘은 태연하게 섬뜩한 대화를 나눴다.
마인이니, 살인이니 길 가던 행인이 들으면 기겁할지도 모르는 단어들.
그나마 다행이라면 둘이 있는 장소가 폐쇄된 던전이라는 점일까.
적어도 제삼자가 대화를 엿들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까진 왜 온 거야. 이번에도 의뢰 맡기려고?”
“당연하지. 너 같이 하찮은 용병을 직접 만나러 올 일이 그것 말고 있을 것 같나.”
“그래서, 용건은?
뿔 달린 사내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피투성이의 사내는 종이를 받고는 내용물을 펼쳤다. 손에 묻은 핏자국 때문에 글씨가 번졌지만,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 이해하는 데에는.
──스릉!
피투성이 사내가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뿔 달린 사내의 목에 가져다 댔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움직임.
“……지금 제정신이야?”
피투성이의 사내가 물었다.
경박했던 이전과 달리, 그의 말투는 진중하고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아카데미를 습격하라고? 그것도 칠성 아카데미를?”
미친 짓이었다.
차라리 S급 길드의 본사에 침입해 테러를 벌이는 편이 저 나을 정도로.
여타 아카데미를 자체를 습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칠성 아카데미를 습격하라는 의뢰라니.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의뢰다.
생존 가능성 0%. 수십 년간의 용병 활동과 청부 살인으로 단련된 감각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너, 혹시 나랑 싸우고 싶냐?”
방금 막 흘린 선혈처럼 질척거리는 살의가 사내의 몸을 감쌌다.
그러나 그 또한 인의를 등지고, 마인이라는 별개의 명칭으로 불리는 괴물. 이 정도 살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길 수 있다.
“하하, 걱정하지 마라. 일주일 내로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외부로 나갈 테니까.”
“……그거 진짜야?”
교수들은 아카데미의 최고 전력.
한 명 한 명이 경계해야 할 악분자(惡分子)에 가깝지만, 그놈들만 없으면 아카데미 습격도 해볼 만하다.
“그야 당연하지. 내가 여태까지 허투루 말했던 적이 있나?”
“……경비원과 고학년들은? 교수가 없더라도, 그것들은 충분히 변수야.”
“마물들을 빌려주지. 자작께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으니까.”
“자작? 그 엉덩이 무거운 귀족 나리가 움직였다니. 이거 꽤나 큰 사안인가 보네?”
여전히 경박한 사내의 말투.
뿔 달린 마인은 어떻게든 그 말투를 참았지만, 귀족을 향한 무례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도리어 마인 쪽에서 짙은 살기를 내뿜었다.
“천박한 놈에게 예절을 요구하진 않겠지만, 계속 그렇게 가벼운 입을 놀리다간 조만간 명줄이 끊길 것이다.”
“걱정 마. 내 명줄은 아직도 상당히 남은 게 보이는걸.”
“하! 정말 이런 녀석에게 큰 작전을 맡겨도 되는 건가…….”
마인은 두통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 경박한 사내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멍청하고 무능해 보이는 주제에, 가진 바 능력이 뛰어나서 위대하신 귀족들조차 눈독 들이고 있는 용병.
자신의 마음에 드는 타입은 아니지만, 자작께서 직접 하명하신 대업(大業)이다. 사사로운 자의로 대업을 그르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상황.
마인은 이 대화를 마무리 짓기 위해, 사내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던졌다.
“만일 의뢰를 성공적으로 달성한다면, 네가 노래 부르던 보상을 주마.”
“그게 뭔데?”
“네가 원하는 것.”
“좋아, 거래 성립이네.”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마인이 자리에서 떠나려는 순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뭐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아니, 의뢰는 받았는데 정확한 성공 조건을 듣지 못해서 말이야.”
보상에 눈이 멀어서 일단 수락하고 봤는데.
의뢰 달성 조건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그냥 칠성 아카데미만 습격할 뿐인 의뢰는 아닐 거란 말이지.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응, 습격이라고만 했지. 조건은 말한 적 없어.”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마인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음, 생각보다 조건 개수가 적네.
사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도서관 지하 1층의 책을 가져오는 것이다.”
“책? 아무 책이나 상관없어? 그러면 야한 책 가져온다?”
“검은 책이다. 검은 가죽과 검은 종이로 이루어진 책이 한 권 있을 거다. 그걸 가져와라.”
“그리고? 조건 두 개라면서.”
사내의 말에 마인의 입가가 찢어지며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상상만으로 즐거운지, 군침이 싹 도는 모양새였다.
“1학년의 몰살.”
마인이 입맛을 다셨다.
“차세대 영웅이라 불리는 새싹들을 죄다 짓밟으면, 꽤나 볼 만한 상황이 나오겠지.”
광기 어린 대답에 사내는 문득 생각했다.
역시 마인이라서 그런가, 미친놈인 것 같다.
“오케이, 나중에 뒷말하기 없기다.”
물론 그 제안을 망설임 없이 수락하는 자신 또한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