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6)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126화(126/300)
126화. 전지적 교육 시점(1)
‘테넬론을 끌어 내린다.’
엘레노아가 총대주교를 상대로 그런 불경한 생각을 품긴 했으나,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여명회의 움직임은 여전히 ‘총대주교’의 손에 달려 있기에, 섣불리 움직일 경우 ‘아크 비숍’이라는 직위는 좋은 표적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만큼은, 유리안을 포섭한 걸 다행이라 생각하게 되네요.’
든든한 우군(友軍).
아니, 우군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흩날리는 바람이며, 언제 내려칠지 모르는 천둥과도 같다.
재해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
그의 검 끝이 자신에게 향할 수도 있다는 건, 엘레노아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건 그렇고, 펠코르는 요즘 뭐 하고 있는 거지?’
자신의 특기이자, 저주.
‘매혹점’으로 인해 사로잡았던 몬시뇰, 펠코르의 행방이 묘연해진 탓에 엘레노아는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
“에라이, 병신같은 년! 내가 이 막대 두 개로 마나를 운용하라 하지 않았느냐!”
“으아악, 때리지 말라고! 이 정신 나간 노인네야!”
“오냐, 정신이 나갔으니 더 때려주마! 이 고얀 년!”
“으아아아악!”
마탑의 복도를 거닐던 엘레노아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옮긴다.
‘……플뤼겔?’
그곳엔 마탑의 중추이자, 마법사들이라면 하늘처럼 우러러보는 플뤼겔이 어린 티를 아직 못 벗어난 여자아이를 지팡이로 휘둘러 패고 있었다.
‘저 양반……, 성격이 고약한 건 알고 있었는데……, 저런 사람이었나?’
평소 시니컬한 나머지 냉기마저 흐르던 플뤼겔이다.
그런 그가 저렇게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는 모습은 엘레노아도 처음 보는 것이다.
“자, 따라 해봐라! 두 개의 마나봉에 서로 다른 원소를 흘려보내는 게야!”
“자~ 뜨르 흐브르~”
“누가 그걸 따라 하라고 했냐, 이 멍청한 년아!”
“으아아아악!”
‘나이도 많은 사람이 아직도 정정하시구나.’
엘레노아는 그리 생각하며, 조금 더 광경을 지켜봤다.
플뤼겔은 소녀에게 몇 마디 더 일갈하더니, 으름장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
“아야야…….”
통증을 호소하던 소녀는 플뤼겔이 떠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노인네.”
그 후, 그녀는 플뤼겔의 말대로 마나봉을 양손에 잡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체내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마나혈에 벽을 두었다고 생각하면서 접근하면 쉬울 거야.”
기묘한 장면을 보아서일까? 엘레노아는 평소와 달리 오지랖을 부리고 말았다.
소녀, 마이어는 고개를 들어 엘레노아를 한 번 쳐다보더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응?”
그러자 두 개의 봉은 서로 다른 색을 희미하게 품기 시작한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말이다.
“정말이네? 벽을 세운다는 느낌으로 하니, 조금 낫네!”
팁을 주긴 했으나, 단번에 익히다니.
‘그런데…… 이 아이.’
일전에 본 기억이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확실하다.
‘유리안이 데려왔던, 무명객단의 아이구나.’
이름이 마이어라고 했던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탑에선 ‘엘레노아’가 아닌, ‘디아나’로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이 아이가 이곳에 있는 거지?’
엘레노아는 마이어에게 흥미가 생겼다.
무명객단은 빈민가의 집단, 귀족의 전유물인 마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마이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아마도 유리안이 손을 썼겠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유리안이니.
“고마워. 언니! 꽉 막힌 마법사들치고, 센스 있는걸?”
“하, 하하…….”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엘레노아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 소개로 마탑에 들어온 거니?”
“나? 그………”
잠깐 고민하는 마이어.
머릿속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걸러내고 있는 것일까?
엘레노아는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유리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테넬론의 대척점이라고 해도 좋을 그가 다음엔 어떤 행보를 이어나갈지 조금이라도 알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잠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유리안이 독불장군이기는 하지만, 그간 겪어 본 바, 세간의 소문만큼 이해 못 할 선택을 내리는 자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크 비숍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협조해준 것도 그야.’
지금까지 자신의 직위와 ‘여명회’의 존속을 위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던 그녀는 점차 바뀌는 여명회 내부의 분위기에 순응하기로 결심했다.
“아, 네 재능을 플뤼겔 님이 알아보신 거구나? 대단한데?”
뒷공작은 필요 없다.
지금 끌어내려야 하는 우선순위는 정해져 있으니까.
***
‘콜파란을 만나 그에게 반란의 축을 넘긴다.’
그런 계획을 잡아두었으니, 이제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
“그럼, 안내해주시겠습니까. 콜파란 경에게 말입니다.”
알 하사르에게 말을 하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이려 할 때.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유리안 경.”
핀텔도 동행하겠다는 말을 입에 담는다.
“콜파란 경이 아직 저희의 편에 선 건 아닙니다.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을 바꾸는 것이 귀족.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기특한 말이다. 하지만 난 반대했다.
콜파란을 찾는 이유는 그에게 중책을 넘겨버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핀텔이 동행할 경우, 괜스레 말을 꺼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그, 그렇지만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일이라.
신상에 생기는 위험 정도는, 이제 내 선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핀텔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콜파란과 이야기를 나누다, 수가 틀어질 경우 그가 무슨 짓을 할 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면 안 되겠지.
“핀텔 경, 저 유리안입니다. 저에게 위해를 가할 자는 제국에 없습니다. 게다가 하사르 경도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 말하며, 하사르를 한 번 쳐다보자, 그의 몸이 살짝 움찔한다.
응? 반응이 약간 이상한데?
‘공포’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눈치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사르 경.”
그 탓에 궁금해진 난 하사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또다시 움찔하는 녀석의 얼굴.
그것을 보자, 모종의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콜파란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모양이군.’
작 중, 여명회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나 크게 드러나는 구석은 없었던 콜파란이다.
그 이유는 권력을 쥐고 있는 ‘테넬론’의 입지가 너무도 탄탄한 나머지 드러날 틈이 없어서일 거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테넬론의 입지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잃고 있었으니.
그 덕에 고개를 내밀지 못하던 자들까지 서서히 얼굴을 드러내고는 자신에게 떨어질 권력의 편린을 주워가려고 할 것이다.
‘오히려 딱일 수 있겠는데?’
조심스러운 엘레노아와 달리 마음껏 날뛰어 주는 이가 있다면.
나도 발 빼기 쉬워질 테니까.
***
‘노림수가 있다면, 얼마든 해봐라.’
그런 생각으로 알 하사르의 뒤를 따르던 난 산길을 오르는 바람에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곧 콜파란 님의 별장입니다.”
자신의 가문인 데미아스의 저택에서 만남을 가졌다간, 의혹을 살 수 있으니 별장에서 보는 게 어떻겠냐?
그것이 콜파란 측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런 인기척이 드문 산길을 걷는 것은 예상외의 일이다.
‘의도가 너무 뻔하잖냐.’
이럴 줄 알았다면, 핀텔을 데려올 걸 그랬나.
아니, 생각해 보니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데도 데려오지 않은 거다.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유리안 경. 저 언덕만 지나면…….”
“하사르 경, 실망입니다.”
계속해서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하사르.
그에게 실망감을 표출하며, 지긋이 쳐다보자 녀석은 살짝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먼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말이다.
“콜파란 경의 명으로 절 찾은 것은 알겠으나, 이런 첩첩산중까지 발길을 옮기게 하다니. 저를 뭘로 보는 겁니까?”
이어지는 말에 하사르의 얼굴은 당혹으로 물들었다.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알고 계셨습니까?”
“이런 인기척이 드문 곳까지 와야 한다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 하사르는 몸을 내 쪽으로 돌리더니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사르의 머리 위로 ‘공포’의 색이 피어오르려던 찰나, 능선 위에서 뒷짐을 진 노인과 무장한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허허허, 내가 무례하기는 했지. 미안하구려 유리안 경.”
지금 이 상황에서 저자가 ‘콜파란 데미아스’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다.
“콜파란 경.”
“하지만 조금 전 자네의 말대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취하라, 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지금 이 상황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콜파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이 지금의 총대주교를 끌어내리기 위해 움직이려는 것은 알고 있지.”
“콜파란 경도 원하시던 것이 아닙니까?”
“맞아, 나 또한 여명회에서, 그의 행보에 반대한 지 오래되었다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을 취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보단 콜파란의 행보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굴러온 돌에게 모든 걸 내줄 만큼…… 내가 이곳에 박혀있던 시간이 짧지 않아서 말일세.”
“그렇다면 여기서 절 죽이시려는 겁니까?”
“아니,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지. 자네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을 테고.”
잠시 미소 짓던 콜파란은 표정을 굳히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여명회의 흐름은 테넬론과 자네. 두 축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말이야.”
나름의 생각이 있는 모양이군.
그의 말대로 ‘총대주교’를 끌어내리고, 여명회를 꿀꺽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나를 죽이는 건 하책 중 하책이다.
본의는 아니지만, 지금 여명회의 여론 흐름이 나에게로 모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교육할 생각이라네. 자네가 허튼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아주 착실하고 확실하게 말이야.”
콜파란의 말이 끝나자, 사방에서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무장한 병사들.
하긴 ‘유리안’을 상대하는데 저 정도도 준비 안 했으면 내가 실망할 뻔했어.
활을 지닌 병사들은 활시위를 당긴 채 나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으음…… 곤란하군요.”
녀석을 만나려는 목적이 내게 온 흐름을 넘기려는 것이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말로는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콜파란이 말한 ‘교육’에 순응한다면 그것도 ‘유리안’이 가진 자존심에 거대한 흠집이 생길 터.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과거의 나라면 순응하고, 말로 넘기려는 선택지도 고민했을 것이다.
싸움은 피한다.
폭력은 지양한다.
연기를 하더라도, 최대한 피를 보는 것은 금한다.
하지만 동화(同化)가 진행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나’라는 인간도 이제는 이런 환경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리안’의 성격은 그 짜증을 기폭제로 삼아 모종의 편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감정이 고조되었습니다.
⇒ 특성, 〈뜨인 눈〉이 발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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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도 콜파란 경이 말한 ‘교육’에 일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죽음을 선고하는 듯한 내 발언에 주변의 공기가 싸늘하게 굳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