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9)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129화(129/300)
129화. 과거엔 악질
“……젠장입니다.”
의자에 몸을 뉘운 난 콜파란과의 대화를 상기시켰다.
몇 번이나 일을 도맡아도 된다고 말을 했거늘, 콜파란은 극구 만류했다.
거기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여 봤지만.
– ‘미안하네.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나?’
라며 콜파란은 오히려 사과를 해왔다.
“……저는 진심이었는데 말입니다.”
하아. 결국 원점이다.
아니.
– ‘굉장하십니다! 오히려 콜파란 경을 밀어붙여 굴복시키다니! 이번 일로 함께하기로 한 비숍들도 확실하게 유리안 경을 신뢰할 겁니다!’
원점을 넘어, 내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그런 것 따위, 필요 없단 말입니다.”
여명회의 신뢰를 누가 좋아하겠나?
하다못해 ‘검성’이 그런 것이라면…….
‘아, 그놈도 맛이 갔지.’
이놈의 세계가 아주 미쳐 날뛰고 있다.
누군가의 신뢰로 무언가를 해결할 생각은 버려야겠지.
“결국,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일전에 콜파란의 병사들과 붙었던 일이 생각났다.
마법에 그을린 상처는 이제 다 나았고, 전투에 의한 피로는 거의 전무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안젤리카’가 불의의 습격을 막아주었기 때문.
녀석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부상으로 골골거리고 있었겠지.’
유리안의 치유력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게다가, 진짜 ‘유리안’이었더라면 그런 공격 따위는 전부 피했을 터.
‘……녀석은 어떤 검을 휘둘렀지?’
인제 와서 유리안의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하기엔 너무 멀리 왔으나, 불현듯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녀석의 검술을 볼 방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유리안’이니까.’
***
콜파란에게 사건의 중심역할을 넘긴다는 생각은 잠시 보류하고, 난 본래의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감은 눈’의 서류 업무는 딱히 어려운 것은 없지만, 그때그때 해놓지 않으면 쌓이는 잡무의 경향이 컸다.
대충 서류들에 도장을 찍어준 뒤, 그것을 넘기기 위해 오드윈 단장실로 향하자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책 한 권을 내게 넘겼다.
“이걸 중앙 도서관에 반납해주실 수 있을까요?”
‘책 반납하는 걸 왜 나한테 시키냐.’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던 찰나.
무심코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올바른 식습관과 성장의 상관관계]제목을 한 번 살펴본 난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이미 늦은 것 아닙니까?”
“……그런 말을 왜 당신한테 듣고 있어야 하나요?”
평소와 달리 어쩐지 표독스러운 말투가 된 오드윈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긴 했지만, 키가 작은 게 컴플렉스인 모양이다.
“그럼, 저도 묻겠습니다. 왜 제가 이걸 반납해야 하는 겁니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자신의 손으로 빌린 것이라면, 자신이 반납하는 게 맞지.
“하아……. 당신을 위해서니까, 일단 다녀오세요.”
나를 위해서라고?
책을 중앙 도서관에 반납하는 일이 어째서 날 위한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
계속해서 가만히 있는 나에게 오드윈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말한다.
“곧 고드 리히 가문원이 이곳에 들이닥칠 예정이니까요.”
“고드 리히 가문이라……. 그 녀석들이 왜 이곳에 오는 겁니까?”
내 물음에 오드윈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한다.
“정말 모르시나요?”
“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전 긍지 높은 황실의 ‘감은 눈’ 소속으로…….”
“당신이 ‘사고’를 쳤기 때문이죠.”
사고?
그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마도, ‘크라이파트 가문’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 모양이다.
그 호위 기사…….
“그건 정당한 자기방어였을 뿐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상대가 고드 리히 가문이라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건, 아시잖아요?”
그래, 알고 있다. 빌어먹을.
사대 가문이 가진 영향력은 제국 내에서는 황실 다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비록, 나도 ‘크라이파트’라는 사대 가문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가문의 비호를 받을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다.
‘애초에 그 자리엔 오른도 있었지.’
크라이파트 가문의 실질적인 주인.
어쩌면, 고드 리히 가문에게 징계를 내리라고 부추긴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황실에서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니라, 고드 리히 가문에서 사람을 보내는 겁니까?”
그래서인지 의문이 생겼다.
고드 리히 가문 정도의 입김, 더 나아가, ‘오른 크라이파트’가 의장으로 있는 귀족 의회의 힘이라면, 없는 죄도 만들어 비서실로 바로 호출될 수도 있다.
권위주의적인 녀석들은 그런 쪽을 더 선호할 텐데……. 굳이?
“사실 일전에 일어난 사고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사건을 키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또 다른 누군가가 그걸 일축해버렸거든요.”
“그게 누구입니까?”
“의외인데, 바로 아르바 고드 리히님이에요.”
으음. 아르바.
그 이름을 듣자, 과거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나를 바라보던.
‘니가 은혜를 갚는구나.’
성가신 일도 덮어주고 말이야.
“그래서, 일이 커지지 않도록 고드 리히 가문원들과 접촉되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이왕이면, 그들과 담판을 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도 오드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자리를 비우게 한 거예요. 아르바 경께서 일을 덮어줬는데, 당신이 다시 키워버리면 곤란하잖아요.”
당부하는 오드윈의 모습에 고심에 빠진다.
‘이곳에 온다는 고드 리히 가문원이라면, 그때 어스름 불꽃에서 봤던 녀석들이겠지.’
사실 그녀의 말마따나, 피해 주는 게 맞긴 하다.
그저 지금은 ‘유리안’스럽게 말 한마디 보탰을 뿐.
“오드윈 단장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요.”
괜스레 져주는 척을 하며 난 책을 챙겼다.
중앙 도서관은 황궁 근처에 있으니, 딱히 ‘No’라는 말을 할 정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 말이다.
“이해해주셔서 다행이네요.”
오드윈의 말로부터 안도감이 느껴졌다.
‘평소 유리안의 행실이 나쁜 탓이겠지.’
절대 ‘내’가 아니고 ‘유리안’이다.
난 나름대로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미 늦었습니다. 오드윈 경.”
“……뭐가 말입니까?”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슬그머니, 시선을 책의 제목으로 옮기려 하자. 오드윈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빨리 안 나가요?”
***
제2문인 경의문(敬意門)을 나와, 1문으로 향하는 길.
그 길에 나열된 도로의 풍경을 눈으로 훑으며, 난 중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언제봐도, 황궁의 풍경은 절경이다.
관리비로만 매년 몇십억 나르가 투입된다고 하니 당연한 일인가.
깔끔하게 관리된 도로와 화려한 건축물들.
전문 조경사들을 여럿 불러서 꾸민, 제국 팔경(八景) 중 하나인 ‘알현의 도로’까지.
그곳을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건물 한 채가 눈길을 끌었다.
“이곳이군요.”
제1문에 위치한 중앙 도서관.
아드라탄 제국의 긴 세월을 담은 지식의 보고가 그곳에 있었다.
내가 안쪽에 들어서려고 발길을 옮기자, 앞에서 일을 보던 사람들이 홍해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긴 했으나 그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살인마에 불과한 내가 왜 이곳에 왔냐는 눈빛들이 한가득 이다.
“어, 어서 오세요. 유리안 경.”
중앙 도서관에 들어서자, 입구에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데스크에서 나를 맞이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의 직원 두 눈에도 ‘왜?’라는 뉘앙스가 한가득 이다.
“반납하러 왔습니다.”
그리 말하며 책을 테이블에 올리자, 직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 보니, 다들 사색이 된 이유를 알겠다.
도서관은 지식의 보고.
그런 곳에 ‘유리안’이 왔다는 것은.
‘‘감은 눈’의 업무를 집행하려고 온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 이건, 오드윈 단장께서 빌리신 책이군요!”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 안내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을 회수한다.
그러면서도 빨리 가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처음 방문한 곳인데, 그럴 순 없지.’
주변을 훑자,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늘여놓은 거대한 방 안에 즐비한 책장과 책들.
‘검술과 관련된 서적들도 있겠지?’
그런 생각에 흥미가 동했다.
〈새로운 검성〉이란 특성을 얻은 이후, 어쩐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검’이라는 것에 조금 더 진지해진 탓이겠지.
그러나 이 몸뚱어리는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향이 있다.
애초에 ‘육체’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 필요한 건 경험, 그리고 지식.’
그리 생각한 난 안내원에게 내부를 둘러봐도 되겠냐고 묻자.
“사, 상관없습니다! 회원권이 필요하긴 하지만, 유리안 경께선 황궁의 관계자시잖습니까?”
‘감은 눈’의 복지 중 하나다.
황궁의 1문과 2문 사이에 있는 시설들은 모두 조건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안에 들어선 난 곧장 ‘검술’ 카테고리가 적혀있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검성이 쓴 책도 이곳에 있지?’
중앙 도서관에는 온갖 책이 보관되어 있다.
개중에는 ‘원전’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으며, 검성인 하이든 라이히가 작성한 책도 존재했다.
[두 눈으로 좇는 검술]검술 카테고리가 달린 책장의 깊숙한 곳.
아무도 찾아보지 않을 듯한 위치에 꽂혀있는 책이다.
이것이 바로 ‘검성 하이든 라이히’가 직접 집필한 책.
‘정말로 이곳에 있군.’
난 책을 펼치자, 가장 먼저 ‘친애하는 벗, 자하트에게’라는 말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 책은 과거 ‘맹인무사’와 함께 훈련하던 시절 슬럼프에 빠진 그를 위해 작성한 검술 서적이다.
문제라면 ‘자하트’는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라는 점.
즉, 이 책은 혈기 왕성했던 시절의 ‘검성’이 ‘맹인무사’를 골탕 먹이기 위해 만든 서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스트 에그 중 하나인데, 내용은 적혀있는지 궁금하군.’
‘하이든 라이히’를 주인공으로 플레이하는 게임 내에선 이 책을 집은 검성은.
-‘혈기 왕성했던 시절의 과오다.’
라며 넘어간다.
그 탓에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으니, 괜스레 궁금해진 경향이 있다.
‘……봐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친애하는 벗, 맹인 자하트에게.] [동시에 검에 종사하는 모두에게.]사뭇 사람의 마음을 당기는 도입부다.
‘모든 검사에게’ 전하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고귀하고 값진 문장인가.
‘글 몇 줄 읽은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구나.’
당연했다.
이 세상의 검성은 맛이 가버렸지만, 이 글을 적은 검성은 내가 알던 본연의 ‘하이든 라이히’가 아닌가?
그 탓에 고양되기 시작한 손은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대체 뭡니까?”
인사말과 도입부에 적힌 몇 마디 말 뒤로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다음 장도. 그다음 장도.
어떻게든 ‘검술’에 대한 팁을 들어보려던 나는 거듭되는 백지에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뭘…… 말하려는 거야?’
설마, ‘검의 길’에 타인의 조언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그 말도 지당하다. 아무리 틀린 길도 갈고 닦으면 그것이 정도(正道)가 되는 법이니.
분명, ‘검성’이란 이름에 눈이 멀었던 과거의 난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실제로 ‘검성’과 이야기를 나눈 난 하이든 라이히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고약한 성격이라는 걸 안다.
즉, 이 책은.
‘순수하게 자하트를 엿 먹이고 싶어서 쓴 거냐?’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