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1)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131화(131/300)
131화. 먼저 온 손님(2)
북부 전선에서 도망친 병사들은 제도에 입성하지 못할뿐더러,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고 있는 도시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전선에서 이탈한 이들은 즉시 사형감이었으니, 그들은 숨어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도망병들과 탈영병들이 나가서 만든 마을은 결국 뭐가 되겠는가?
‘산적단의 살림터나 되겠지.’
하지만 그런 산적들의 주둔지치고는 마을의 행색은 꽤 볼만했다.
나름 마나석을 이용한 가로등도 존재했고, 경제활동이나 여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주점도 있었다.
이런 마을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데몬’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도시를 다스리는 이에게 이런 마을이 주변에 있다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데몬이나 마물들이 자신들의 도시에 오지 않고 그쪽으로 향할 테니.
아무리 공명석의 결계로, 데몬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도시라고 해도, 인근에 ‘데몬’이 돌아다니는 것을 방치하고 싶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 덕에 제국은 규율에 어긋나긴 하지만, 그런 마을들을 적극적으로 소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마을을 지원하는 도시들도 있었으니, 가끔 있는 데몬의 침입을 제외하고는 이곳 사람들은 나름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정말 그래 보였다.
“아무튼, 안으로 들어오게! 밤이 깊어가고 있으니, 묵을 곳이 필요하지 않겠나!”
마을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주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저놈…….’
이곳에서 ‘검성’으로 플레이하면서 몇 번 베어본 경험이 있는데.
‘아마…… 데그리드였나?’
그럴 것이다.
OO포터에 나오는 숲지기 이름과 비슷해서, 당시에 패러디한 게 아니냐, 라는 말이 돌았으니.
각설하고 그가 안내한 곳은 마을에서도 제법 큰 건물이었다.
“우리는 이곳을 주점으로 쓰고 있긴 하지만, 방이 꽤 있어서 하루 정도 머무르는 것은 할 수 있을 걸세!”
데그리드는 다시 한번 큰 웃음을 한 번 짓더니, 안내해준 건물에 먼저 들어섰다.
“아니, 정말로 여기서 묵으실 겁니까?”
데그리드의 모습이 사라지자, 뭔가 조급한 표정을 지은 펠코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앗! 시X! 깜짝이야. 얼굴 좀 치워라.
아주 고급스러운 이놈의 상판대기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산적들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애초에 이 녀석들이 산적이라는 걸 알면서…….”
“일단 들어가시죠. 날도 어두워졌고, 전 밖에서 노숙하고 싶진 않군요. 게다가…….”
게다가?
펠코르는 역시나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차하면, 당신이 처리하시죠. 나름 기사 출신이잖습니까?”
“아니, 그건 그…… 아…… 하아.”
한숨 내쉬던 펠코르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따라 주점으로 보이는 건물에 들어섰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꽤나 잘 꾸며났는데?’
원작에서 보던 광경이랑 똑같았다.
적당한 테이블에, 왁자지껄한 소란, 정면에 보이는 Bar까지.
자신이 주인인 마냥 데그리드가 진열장에 놓인 술로 보이는 병을 꺼내더니,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추하군.’
순간, 고고한 ‘유리안’의 기풍은 역겹다며 검을 뽑아 들려 했으나.
‘제발 사고 치지 말자.’
초인 같은 자제력으로 참아냈다.
“그래, 자고 간다면 일박에 100나르는 받아야겠는데, 어찌 생각하나?”
어느새 술을 다 마신 데그리드는 빈 병을 이리저리 놀리며 당연하다는 듯 돈을 요구했다.
물론, 거절할 생각은 없다.
내가 이곳에 들른 이유는 야외가 아닌, 편하게 침대에서 하루를 묵기 위해서니까.
100나르 정도면, 싸게 먹힌 거지.
“지불하지요.”
도시도 아닌 이런 외딴곳에서의 실내 취침은 꽤 매력적이다.
“그거 좋군. 그런데 말이야.”
그때, 강한 적의가 느껴지는 눈빛과 함께, 데그리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동시에, 건물 주변에서도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주둔지에 있는 다른 산적들의 기척이겠지.’
“……쯧.”
펠코르도 느꼈는지, 혀를 차며 ‘왜 이런 곳에 왔냐’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저 녀석은 모르겠지만, 애초에 난 ‘알고’ 이곳에 들어왔다.
이 건물에 들어서면, 다른 녀석들이 기어 나올 것도…….
데그리드는 ‘유리안’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악하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군인이지?”
“그렇습니다.”
‘감은 눈’도 어떻게 보면, 군인’이라는 범주에 속하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저 옆에 있는 거구도 기사 출신인 거 같고. 걸음걸이에서부터 융통성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거든.”
저놈에게서 그런 걸 느낄 정도라니, 대단한데?
“우리를 처리하려고 온 놈들인가?”
“설마, 제도에서 당신들 따위나 잡으라고 사람을 보냈겠습니까?”
나는 도발적인 어투로 데그리드의 이목을 끌자, 곁에 있던 펠코르는 아예 전투를 대비한 자세를 취했다.
오버하기는…….
난 그럴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유리안과 상위 데몬’이 사투를 벌인 장소를 탐색하고, 그곳에 있을 ‘흔적’을 통해 ‘검성’의 가르침을 재확인하는 것.
쓸데없는 싸움으로 피로를 축적하는 삶은 영위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평화롭게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지.’
숨을 한 번 고른 난 예전에 선택했던 대사를 떠올렸다.
“저희도 북부 전선의 탈영병입니다.”
홱!
순간 펠코르의 고개를 내 쪽을 향했고.
“…….”
주변 공기는 가라앉은 채, 정적이 흘렀다.
당황한 눈치의 데그리드와 펠코르.
“너, 너희가…… 탈영병이라고?”
데그리드의 반문에 난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주변을 가득 메우던 적의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한들, 아직 의혹은 남아있을 것이다.
데그리드가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저는 북부 전선의 자하트 경의 부대인 제 3토벌 부대 소속이었습니다.”
“……제 3토벌 부대 소속이었다고?”
“예.”
“그곳에서 탈영했단 말이야?”
“예.”
경악을 넘어,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보인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아는 것이다.
맹인무사 자하트 밑에서 얘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말이다.
내가 이리 말한 이유는,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다.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 근무했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우선 소속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것도 가장 악명 높은 부대를 배경으로 말이다.
그래야 탈영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으니.
아직 의심이 살짝 남아있을 그에게 쐐기를 박는다.
“밥이 더럽게 맛이 없었습니다.”
살짝 웃음기를 뺀 진지한 말투.
그 말을 듣자, 데그리드는 크큭하고 짧게 웃었다.
“제 3토벌 부대 밥은 유명하지…… 나도 먹어본 적이 있는데, 꿀꿀이 죽이 낫더라고.”
“그곳 급양관이 본래 토벌대였는데, 야만인들에게 혀를 잘려 맛을 못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죠.”
“크하하, 그래!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야!”
의심은 무뎌져 갔다.
애초에 이곳은 ‘탈영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인 소수다.
그 탓에 비슷한 일을 겪은 이가 접근한다면, 마음의 벽은 허물어지기 마련.
혹여나 자신을 잡으러 온 군인에서
자기와 같은 경험을 한 동지로.
극에서 극으로 변한 인식은, 그 차이만큼이나 순식간에 동질감이 형성되었다.
게다가.
“망할 제국 놈들입니다.”
속으로 앙금을 품은 대상을 같이 욕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이런, 내가 동료에게 돈을 받을 뻔했구만.”
크큭, 하며 웃던 데그리드는 성큼 걸음으로 문밖으로 나가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 다들 들어와! 우리를 잡으러 온 군인이 아니라, 동료야!”
데그리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번엔 펠코르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정말로 제 3토벌대에서 복무한 적이 있습니까?”
싱긋.
난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미소 지었다.
있겠냐?
***
쓸데없는 싸움은 싫다.
이것은 ‘투쟁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순전히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선택한 일이다.
“자, 마시자고 마셔!”
“오랜만에 보는 북부 탈영병이구만! 후배 님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마시지 않고 못 배기지!”
문제는 이런 술판도 내 ‘정신 건강’을 해치는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평소라면 괜찮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리안’의 지독한 결벽증은 이곳의 환경을 극도로 부인하고 있었다.
‘……그나마 버틸 만하다는 게 다행이로군.’
게임에서 겪었던 경험으로 어떻게든 상황을 잘 흘러가게 했다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뭔가 스스로 해낸 듯한 성취감? 뭐 그런 거 말이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다 때려죽였지.’
그 이후, 핵심 키워드를 알고 나서부터는 그런 귀찮은 일은 안 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일어났었지.
“으하하하, 이 떡대 양반! 데몬 목도 휙 돌려버릴 것 같은 양반이 왜 탈영했데!”
“끅끅끅, 그러게, 말이야!”
“누가 탈영을 해! 난 그저 잠시 자리를 비운 것뿐이라고.”
“그걸 탈영이라고 하지 않아?”
“푸하하하하하하!”
처음엔 난색을 표하던 펠코르도 그 험상궂은 외모와 외형에 걸맞게, 어느새 다른 탈영병들과 잔을 부딪치며, 동지가 되고 있었다.
서로 어깨동무하며, 껄껄 웃는 모습은, 이미 산적 그 자체다.
천직을 찾았구나, 놈.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 말이야.
“그런데, 자네 말이야.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어딘가 묘하게 낯이 익어.”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이 마을의 리더는 게슴츠레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봤는데, 봤는데’를 중얼거리며.
나름, 부대에서 영향력이 있던 사람이었는지, ‘유리안’의 이목구비를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다.
봤을 수도 있고.
“그럴지도 모릅니다. 제 3토벌 부대는 워낙 발이 넓어 북부의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으니 말입니다.”
“그런가? 그…… 북부 전선에서도 크게 공을 세웠다는 유…… 뭐시기 양반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서 말이야.”
“설마, 그런 사람이 여기에 있겠습니까?”
그런 데그리드를 향해, 난 능청을 부렸다.
사실 제도에서라면, 이 ‘실눈의 악역’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데그리드와 이곳 사람들 전부는 북부 전선에서 도망친 자들이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인상착의를 알고 있다는 점은 ‘유리안’이 얼마나 유명한지 증명하는 셈이다.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나와는 반대로 과시하길 좋아하는 ‘유리안’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씰룩씰룩 움직이는 입꼬리.
절대 내가 그러는 게 아니다.
“하긴, 히끅. ‘감은 눈’쯤 되는 놈이라면 제도에서 황실 녀석들에게 손발이 사라지도록 빌고 있겠지!”
“맞습니다. 아마, 지금쯤 손가락 몇 개는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푸하하하, 맞네, 맞아!”
술을 연속으로 들이켜던 데그리드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내 잔에도 술을 부었다.
그것을 들이켜자, 알싸한 포도주의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질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난 딱히 음주에 취미가 없어, 별 감흥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히끅…… 자네 술을 아주 잘 마시는구만!? 이곳에서 나보다 술 잘 마시는 놈은 처음이야!”
마치 오랜 세월 상대가 없었던 무투가 마냥, 내 잔에 술을 퍼붓는 데그리드.
이렇게 거리감 없이 접근하는 누군가는 오랜만이라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지만.
그가 탈영병이고 산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히끅! 그래, 여기에 찾아온 이유는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우리와 같이 생활하려고 온 게냐?”
“그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피렌테 협곡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죠.”
“피렌테 협곡? 그런 위험한 곳에는 왜?”
‘내’가 아닌 ‘유리안’이 싸웠던 흔적을 통해 뭔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라고 말할 수 없으니, 대충 얼버무리기도 한다.
“이봐, 유…… 형씨! 내가 재밌는 말을 들었단 말이지!”
술에 잔뜩 쩔은 펠코르가 웃음기 그득한 얼굴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그나마, 취한 와중에도 나름 머리를 굴렸는지 ‘유리안’이란 이름이 아닌 ‘형씨’라고 바뀐 호칭.
평소와 달리 말이 짧아지긴 했지만, 취기로 그런 것이니 용납해주기로 했다.
지금은 말이다. 지금은.
여길 벗어나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커지겠지.
“이 양반들 말을 들어보니 말이야, 최근 납치한 귀족이 있는데. 아니 글쎄, 그 새끼가 자기를 크라이파트 가문의 일원이라고 했다는 것 아니야!”
“푸하하핫, 아니 크라이파트 가문의 일원이 혼자서 다니는 게 말이 되냐!?”
왁자지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녀석들.
그들을 보며,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라이파트 가문의 일원이라고?’
흥미가 생기는데?
혹시, 헤란드인가? 아니, 그 양반은 오른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서 저택에서 나올 일은 없을 것 같고.
“크큭, 푸하하핫! 형씨랑 같은 가문이잖아! 형씨가 얼굴 한 번 봐주면, 크라이파트 출신인지 단번에 알아채는 것 아니야?”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모르고 있는 듯한 펠코르.
근데 이놈이 미쳤나? 여기서 갑자기 가문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
순식간에 떠들썩한 주점은 귀신이라도 지나갔는지 고요함의 극치를 달린다.
“……뭐라고 했나?”
내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데그리드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며,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의 표정도 심상치 않게 변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펠코르, 이 새끼, 끝나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