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144)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144화(144/300)
144화. 준동
안내를 맡은 이가 길을 헤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건 아카데미를 재학 중인 린네도 아는 것이지만, ‘자하트’의 사정을 전해 들은 그녀는 칼드락 황자의 명이 있었음에도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사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불쑥, 유리안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고 했으나 금세 그 의도를 알아챘다.
제국의 기사면 황실의 명을 당연히 우선시해야 하는 게 정당한 일.
저 음흉한 실눈 악역은 그것을 어겼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하트 님과는 저도 아는 사이니까요.”
게다가 자하트 말에 의하면 이들은 그저 데몬의 처리를 위해 황자의 명을 거역하는 게 아니었다.
소중한 이를 잃은 것에 대한 복수.
그 일을 위해, 이 음흉한 이가 자하트를 돕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하트 님의 아들이잖아요. 거기에 제가 뭐라 할 말도 없고,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맘도 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저도 가족에 관련된 ‘일’ 때문에 하이든 라이히 경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스승님의 변절로 꽉 막힌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모양이군요.”
톡 쏘듯 말을 내뱉는 유리안을 쳐다본 린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제 와선 별 감흥조차 들지 않는다.
고결한 검성의 변절과 데몬화.
그 일이 있던 이후,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하니까.
후후, 하고 짧게 웃으며 앞장서서 능선을 걷기 시작하는 유리안.
그의 등을 보며, 린네는 대체 누구를 잃었기에 이리도 ‘여명회’의 꽁무니를 쫓았나 묻고 싶어졌다.
– ‘……저는…… 잃었습니다.’
– ‘……그 사건 이후 저는…… 아니, ’유리안‘이란 인물은 죽은 셈이 되겠군요.’
예전 알파스와의 전투에서 깨어난 후 들었던 유리안의 독백.
‘관두자.’
지금은 자하트가 처리해야만 하는 ‘데몬’을 중점으로 생각해야 할 상황.
게다가.
“……눈보라가 그친 건 좋지만, 다른 손님들이 찾아왔군.”
능선 위로 보이기 시작하는 ‘데몬’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시간이 아니라며, 그녀의 의식을 현실로 끌고 들어왔다.
‘오러 소나’ 덕분에 가장 먼저 알아챈 자하트가 지팡이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데몬들의 무리라니, 이런 눈보라가 몰아치는 숲에서 어떻게 무리를 형성할 수 있는지.”
“아마도, 외팔 데몬의 능력 덕분일 겁니다.”
‘외팔 데몬’이라는 삼각 데몬의 능력을 꿰고 있는 것처럼 유리안이 중얼거렸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능선 끝자락에 시선이 도착했을 무렵.
“……보이지 않는군요.”
드글거리는 데몬들 사이로, 원하던 목표가 없자,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나도 느껴지지 않네.”
그건 자하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불길한 ‘마기들’이 눈 덮인 능선을 타고 멀리서부터 준동하기 시작했다.
예사롭지 않은 기세.
그것이 북부 전선의 장벽, ‘노스 풀’의 가까운 곳에서 퍼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자, 자하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이렇게 나오시겠다.
‘노스 풀’ 장벽에서부터 느껴지는 ‘마기’를 캐치한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 ‘마기’는 데몬의 것과 유사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정확히는 ‘인간’이 만든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녀’가 내뿜는 것이다.
즉, ‘마녀’는 자신의 ‘마기’를 사방팔방에 뿌려 ‘외팔 데몬’을 불러내는 중이다.
“라지드, 이놈…… 설마.”
그것을 눈치챈 자하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난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결단을 내렸다.
“지금부터 저희는 ‘노스 풀’ 장벽으로 가겠습니다. 저 능선에 보이는 데몬들이 추격할 수 있으니, 펠코르.”
“예, 유리안 경.”
“당신이 정리해주시지요.”
펠코르는 데몬의 무리를 한 차례 확인하기 시작했다.
일각의 데몬들이 간간이 보이기는 했으나, ‘이각’이상의 데몬이 없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한 그는 안도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스 풀’ 장벽보단 이곳이 안전하다고, 나름의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게다가 대머리에 간혹 멍청한 짓을 하기는 하지만, 그도 몬시뇰에 뽑힐 정도로 강한 기사이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죠.”
그래, 그러면 된 거다.
펠코르에게 대답 대신 고개를 한 차례 끄덕여준 뒤, 나와 자하트는 즉시 ‘노스 풀’ 장벽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 ‘마녀’가 흩뿌리던 마기와 ‘외팔 데몬’의 전파(傳播) 능력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 말은 즉, ‘노스 풀’ 장벽에 외팔 데몬이 도착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후드!”
‘노스 풀’ 장벽으로 뛰어가는 와중, 따라붙은 린네가 나를 보며 외쳤다.
‘감은 눈’의 정치적 입지를 알고 있던 그녀였기에 해줄 수 있는 충고였다.
신속하게 후드를 눌러쓴 난 장벽에 도착하자, 짙은 피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끔찍하군.’
데몬의 역한 피 냄새.
그리고 그것보다 많은 사람의 참담한 모습.
예상대로 ‘외팔 데몬’은 북부의 장벽인 ‘노스 풀’의 안쪽에 있었다.
‘1관문이 뚫렸어.’
게다가 상황은 더욱 안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놈이 안쪽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던 탓에 제 1관문의 엄중한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 사이로 들어온 북부의 데몬들과 야만인들이 병사들을 상대로 학살극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크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는 데몬들은 농성하던 병사에게 달려들었으나, 그것이 결실을 보는 일은 없었다.
자하트와 린네가 달려든 데몬들을 베어내며 병사들을 구조했기 때문이다.
‘……쐐기들은 어디에 있지?’
난 그런 광경을 눈으로 좇으며, 1관문 안쪽에서 벌어진 참상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죽어있는 인간들은 대부분 일개 병사들.
간간이 ‘마기’가 체내에 과도하게 돌아, 쓰러진 ‘야만인’들도 보였으나, 그것들을 제외하더라도 모두 일반 병사들이다.
‘정신 나간 새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을 죽이다니.
칼드락에게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그럴 말할 시간도 부족한 상황.
그렇게 장벽 끝 이곳저곳에 시선을 옮기던 난 칼드락이 이곳을 내려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자네는 가만히 있게.”
칼드락의 시선을 확인하던 차, 자하트가 날 배려하기 위해 싸움에 나서지 말라는 의향을 밝혔다.
“감은 눈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 법. 그것도 ‘감은 눈’의 얼굴이라 불리는 자네가 모습을 보인다면, 처지가 곤란해지는 건 나도 알아.”
그리 말한 자하트는 단신으로 학살극이 벌어지는 한복판에 뛰어들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성과 동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그의 검은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몰려오는 데몬의 군세를 단신으로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다.
‘겁에 질린 병사들의 사기를 다시 올려, 방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칼드락’과 ‘쐐기’의 지휘가 필요불가결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정신적인 구심점이 필요하기 마련이거늘.
칼드락은 그저, 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 “역시, 올 줄 알았네.”
그렇게 현 상황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할 때, 칼드락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리기 시작한다.
움찔.
살짝 당황스러웠으나 난 금세 적응하기 시작했다.
마녀의 마법을 이용한 전음(傳音).
이미 알고 있는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지켜만 보고 계실 겁니까?”
그런 그를 향해 물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녀의 전음은 마찬가지로 내가 내뱉은 말도 그에게 전달될 것이다.
– “아직, 외팔 데몬이 관문 내부까지 오지 않아서 말이네.”
“내부까지 온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포획해야지. 그걸 위한 희생인데.”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면서도, ‘쐐기’를 내보내지 않는 칼드락.
그는 지금 이 광경을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니, 뭔가 권태로움이 깃들어 있다고 해야 할까.
‘뭐지? 느낌이 싸한데.’
그러나 티 낼 수는 없는 노릇.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 “뿔이 붉어지기 시작한 삼각 데몬에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없다고 해도, 마녀가 ‘만들어’ 줄 테고 말이야.”
얼마 전 얘기해본 바로, 이 녀석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삼각 데몬’의 ‘적귀화’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근데 어떻게?
현재 ‘적귀화’가 관측된 적이 있었나?
– “게다가,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저 멀리서 칼드락이 나를 내려보는 게 느껴졌다.
– “저 데몬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이미 ‘몇 번’ 경험하지 않았나?”
혹시나 했던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간다.
진열장에 없던 ‘눈 토끼의 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이며, 적귀화에 대해 알고 있는 모습까지
흐릿했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기분이다.
– “그러니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아무렴, 이 탁 트인 장소에서 자네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감은 눈’, 자네일 테니. 하하하.”
이곳, ‘노스 풀’ 장벽에선 내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쐐기’를 포함해, 복무하는 병사들 모두 말이다.
분명 별도의 명을 내렸겠지.
내가 진영에 진입하거나, ‘외팔 데몬’의 일에 개입하게 되면 황실의 규율을 어긴 ‘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북부 야만인들과 데몬의 준동으로 ‘외팔 데몬’을 찾기도, 잡으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직접 이리로 부른 거겠지.’
마녀를 통해서 말이다.
게다가 내 개입을 배제할 수 있도록 판을 짠 것이고.
‘어차피 제도로 복귀할 때 필요한 건 이곳에서 쌓은 공과 쐐기들 뿐이니.’
자기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버릴 수 있는 판단력.
그것은 내가 알던 ‘칼드락’과는 살짝 거리가 멀게 느껴졌으나, 그건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
‘물러선다.’
그게 최고의 판단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곳에서 물러선다 한들, 칼드락은 자신이 있는 2관문까지 돌파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안으로 들인 ‘외팔 데몬’을 포획하기 위해 ‘쐐기’들을 투입할 것이고, 그렇다면 상황을 머지않아 종료될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외팔 데몬은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겠지.’
이후, ‘외팔 데몬’의 처리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적귀화의 연구’를 위해서라면 감금을 해두겠지.
분명 자하트가 원하지 않는 일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이제는 내 역량 밖이다.
‘안전을 위해선 일단 정체를 숨기고, 물러서는 게 맞아.’
알고 있다.
분명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꾸 머리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칼드락에게 뭔가 있는 게 확실하지만, 그 차이는 명백해.’
녀석의 목적.
적귀화 데몬의 포획과 마녀를 통한 연구.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 자체가 칼드락이 나보다 ‘알고’ 있는 것은 적다는 확신이 들었다.
황자로서 내 앞에 섰다면 한발 물러섰을 것이다.
그 권력을 일방적으로 휘두른다면 ‘감은 눈’의 단원으로서 위험한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비슷하게 행동한다면.
‘실수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