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1)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171화(171/300)
171화. 부스러기(2)
달빛에 어울리는 코발트블루 색의 코트를 두르고, 이곳으로 걸어오는 인영.
이곳의 관계자인지, 아닌지 알 방도는 없었으나 그것으로부터 느껴지는 압도적인 기운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마치…… 두목에 흡사한…….’
콰아아아앙──!
그리 생각한 로커스트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듯, 압도적인 기백의 향연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몸속에서 기르던 벌레들이다.
순도가 높은 ‘마나’에 반응해, 자동적으로 ‘마법’을 방어하도록 만든 ‘수호충’이 체내 밖으로 나오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수호충’은 ‘마법’에 ‘적중’당했을 때 반응하도록 설계한 벌레들.
그런 벌레들이 마법에 ‘닿지도’ 않았건만.
그저 흘러나오는 오러에 반응해, 미리 입력해둔 ‘명령’을 이행하려고 한 것이다.
‘이 무슨 괴물 같은…….’
항거할 수 없는 힘.
로커스트는 그것을 느끼고, 입안이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진정해라.’
로커스트는 황급하게 ‘수호충’들의 움직임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자동 방어’ 능력은 강력한 방어 수단이기는 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에선 마나만 소모하는 능력일 뿐이다.
“흐음, 제가 온 타이밍이 그리 좋지 않은 모양이로군요.”
오감(五感)이라는 날을 바짝 세운 로커스트는 다가오는 남자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나무 그늘, 달빛, 그늘, 달빛.
필름을 영사하듯 지나치는 그의 얼굴은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고.
로커스트는 어처구니가 없는 웃음을 지었다.
‘유리안 크라이파트 프라손…….’
사실, 실제로 본 적은 없어서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데몬을 죽이고, 귀족들의 부정을 초토화시키는 황실의 사냥개.
누군가에게는 신화적인 존재감을 과시할 테지만.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에게는 맞닿는 것조차 거부하는 그런 존재.
‘끌끌, 저 여우 년이 부르기라도 한 건가?’
즈즈즈즉.
지팡이를 땅에 끌며, 유리안에게로 몸을 돌린 로커스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인질’의 어깨에 다시금 손을 얹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쪽을 향해 어떠한 망설임 하나 없이 다가오는 그를 보니.
‘소용없겠군.’
피도 눈물도 없다는 ‘웃는 처형대’에게 고작 빈민가의 아이가 인질이 될 수 있을 리가.
‘그렇다면……, 사면초가로구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자가 자신의 ‘마법’에 대해선 모른다는 것.
로커스트는 나름의 자신이 있었다.
갈고 닦은 마법이란 숨겨진, 하나의 ‘비수’와도 같으니까.
상대가 자세히 모른다면, 아무리 기량의 차이가 있더라도 한 방 먹이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가 있더라도, 이기는 것이 천박한 농담은 아니라는 소리다.
“로커스트, 여섯 손가락의 약지.”
그러나 유리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그의 몸은 경직되었다.
단순히 자신의 직위와 이름을 읊조린 것일 뿐이지만, 로커스트는 그 말이 흡사 ‘사형 선고’와도 같이 들렸다.
‘나를…… 알고 있다고?’
이름을 안다는 건, 소문을 안다는 것.
소문을 안다는 것, 자신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있다는 것.
그 연관 관계는 자신이 유리안을 이길 수 없는 이유를 반증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안나루이의 복수를 하러 온 겁니까? 아니면, 명월관에 용무가 있어서 온 겁니까?”
“……끌끌, 그게 자네랑 무슨 상관인가?”
“상관이 있지요.”
은은한 달빛 사이로 악마와도 같은 미소가 드러났다.
“어찌 되었든, 죽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순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반응해 ‘수호충’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즈즈즈즉.
당황한 로커스트였으나, 이것을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
양손의 소매를 걷은 뒤, 그것을 땅바닥으로 향하자, 흘려보냈던 지네 두 마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사용하는 ‘오러’처럼 특유의 경지에 이른 능력에는 ‘고유(固有)’라는 영역이 따라붙는다.
그것이 지금 로커스트가 사용한 것도 그 경지에 이른 ‘고유 마법’.
정적성 금충(靜寂性 金蟲)
‘자율 공격 의사를 가진 두 마리의 금충들.’
이 녀석들은 입력해둔 ‘명령’을 무조건으로 수행한다.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으며, 주변의 적을 말살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징그럽군요.”
스스스슥──!
잔디 바닥을 훑고, 그림자처럼 유리안에게 달려드는 한 마리의 금충.
유리안은 그것을 두 눈으로 좇더니, 검을 뽑아 들었다.
‘……보석?’
그가 뽑은 검은 일반적인 금속이 아니었다.
시선을 빼앗는 미려한 형질의 검신은 그것이 ‘금속’이 아닌, ‘보석’임을 반증하고 있었다.
‘내 금충은 제아무리 단단한 검이라도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유리안은 검사.
저 검을 부러뜨리기만 한다면, 승기를 잡는 것도 가능할 터.
그럼에도 로커스트의 머릿속에선 저 ‘보석 검’이 부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샘솟았다.
깡──!
그것을 증명하듯, 유리안이 휘두른 ‘보석검’은 금충의 신체를 튕겨내었다.
“마, 말도 안 돼!?”
강도가 약한 보석검이 부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로커스트의 시선은 그가 쥔 검을 쫓았다.
달빛과도 같은 오러가 휘감긴 검.
평범한 ‘오러’가 일방적인 형상을 띠는 것에 비해, 유리안의 오러는 하늘에 뜬 ‘달’처럼 방향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난반사?’
나름 실력자답게 로커스트는 그 비밀을 깨달았다.
그의 검신엔 ‘오러’가 톱날처럼 빼곡하게 박혀있었고, 그것이 움직이며 ‘파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러의 파도.
그것들이 난반사를 일으킨 탓에 보는 이로 하여금 ‘달빛이 깃들었다’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오, 온다……!’
금충 하나를 튕겨내고 다시 자세를 잡은 유리안.
팟.
땅을 박찬 그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로커스트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 어디지!?’
적을 시선에서 놓친다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거늘.
혀끝에서 맴도는 쓴맛을 뒤로 하고, 로커스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콰지지직──!
몸에서 흘러나온 ‘수호충’의 반응.
동시에 방어에 돌입한 ‘금충’의 몸통이 무엇인가를 튕겨냈다.
‘……날 노렸던 건가?’
확실하다.
지금 전의 공격은 금충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두 눈으로 식별할 수 없었던 사실에 로커스트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어, 어디냔 말이다!’
분명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임에도, 로커스트는 그 상황에서 열외되어, 여전히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콰지직──!
다시 한번 충돌이 이어진다.
여러 차례 튀기는 불똥에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젠장! 젠장!’
죽음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거늘.
자신은 그 옷자락 하나, 눈으로 좇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던 이유는 잘 성장시켜두었던 ‘수호충’과 ‘금충’ 덕분.
이 두 개가 없었더라면 당장 목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파지지지직──!
다시금 튀는 불똥.
금충의 단단한 갑질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금충’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든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계책 또한 마련되어 있었고.
스멀, 스멀.
정신을 집중하자, 로커스트의 체내에 있는 모든 벌레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볼 수 없다면…….’
모든 벌레를 풀어 이곳을 뒤엎을 수밖에.
신체에 존재하는 마나혈들을 모두 동원한 로커스트는 ‘마나’를 먹이로 잠자는 벌레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허공에서 불똥은 튀었다.
상처를 입기 시작하는 ‘금충’과 ‘수호충’들.
평범한 벌레들이었다면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기를 느끼고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지만.
그 ‘벌레’들은 멈추지 않고 로커스트의 몸을 보호했다.
피가 튀기고, 견갑이 떨어져도 말이다.
“끌끌,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내 벌레들은 피하지 않을 게다. 유리안!”
로커스트가 지배하는 벌레들은 공포도 느끼지 않을뿐더러,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주인을 지켜야 했다.
“아무리 그 잘난 검술로 통증을 주더라도, 내 몸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시한다는 소리다!”
그것이 벌레들에게 주입된 ‘명령’이니.
그리 외치던 로커스트는 빠르게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한다.
단전에서 마나혈로, 마나혈에서 전신으로.
이윽고, 기르던 벌레들 대부분이 준동하기 시작하자, 로커스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지금 네 행동은 무용지물이란 소리다! 아무리 발광해도, 벌레들은…….”
“벌레는 공포를 못 느껴도.”
팟──!
“당신은 느끼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속도 탓에 눈으로 좇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유리안.
그의 얼굴이 갑작스레 눈앞에서 보이자, 로커스트는 집중이 풀려버렸고, 그 탓에 마나혈에 모으던 마나가 체내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쿨럭!”
여파로 인해 로커스트의 입 밖으로 피가 한 움큼 흘러나왔다.
리바운드 현상.
한계까지 회전시킨 마나가 어떠한 ‘마법’도 맺지 못하고, 체내에서 흩어질 경우 생기는 현상.
덕분에 마나혈에 큰 손상이 생긴 로커스트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는 지팡이를 유리안에게 휘둘렀으나.
콰지지직──!
보석검의 검신에 지팡이가 닿자, 번개가 내려친 것처럼 균열이 생기더니 산산이 부서졌다.
“무, 무슨…….”
파편이 되어 부서진 지팡이를 보며, 로커스트는 아연실색한 표정이 되었다.
저항을 위해 남은 손잡이를 휘둘러 보지만, 이번엔 ‘보석검’이 자신의 가슴팍에 박혔다.
“커어어억!”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
‘여섯 손가락’의 일원으로서 누구에게도 쉽게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로커스트였다.
아집과도 같은 생각을 엮어내며, 어떻게든 반격을 위해 마나를 보아봤지만, 유리안의 손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 으읍……!”
유리안은 가슴에 박힌 검을 뽑은 뒤, 이번에는 로커스트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지른다.
다른 이들에게는 항거할 수 없을 정도의 ‘괴물’로 군림해온 그였으나.
‘진짜배기’를 보자 순종할 수밖에 없는 허탈함이 몰려왔다.
괴물들은 이 세상에 넘치고 넘쳤다.
‘난 부스러기였나.’
보석검이 로커스트의 목을 베어내는 순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