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0)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180화(180/300)
180화. 손가락 부수기(4)
몸이 가라앉는 느낌.
차갑고, 무겁고, 어둡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공간.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검고, 질척거리는…….
그 이질적인 느낌은 다른 무언가가 연상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뚜렷하고, 깊은 어둠이었다.
그것을 느낄수록 내 정신이 깎여나가는 것 같았다.
온몸에 넓게 퍼져있는 통증.
동시에 뇌를 주무르는 듯한 역겨운 느낌.
그런 불쾌함이 전신을 뒤덮는 순간, 이 ‘어두움’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마신 바르바토스.’
<지·마·죽>에 존재하는 만악의 근원.
죽어서 잔재 사념만 남아버린 데몬의 신께서 친히 〈마왕의 그릇〉 특성이 있는 ‘유리안’을 보러 온 것이다.
‘마왕’이 될 수 있는 그릇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
눈앞에서 느껴지는 마신의 ‘잔재 사념’은 고작 내 상태 같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덥썩──!
검은 구체에서 튀어나온 것은 희멀건 이형의 손.
마치 ‘데몬’의 것과 비슷한 그것은 내 목을 움켜잡더니 힘을 주기 시작했다.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로.
‘커, 커어어억……!’
빌어먹을 자식.
클로드와 전투할 때는 시스템이 그렇게 방해하더니.
어째서, 〈마왕의 그릇〉인 유리안을 이렇게까지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무서운 건가.’
그럴지도.
지금의 난 ‘유리안’의 몸을 빌린 누군가.
마신이 ‘나’란 존재를 파악하고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녀석과 난 서로 감응할 수 있으니.
‘놈도 알고 있을 거야.’
‘이시후’란 ‘미지’의 존재를 말이지.
자신의 ‘그릇’임과 동시에 다른 ‘그릇’을 깨부술 수 있는 이례(異例)의 변칙성을 가진 존재.
가끔 생각했었다.
내가 왜 <지·마·죽>에 들어왔고, 유리안에 빙의되어 이 난리를 치고 있는지.
그리고 가끔 제멋대로 나타나는 시스템은 무엇인지.
마신 바르바토스.
‘그래, 그럴 수도……. 아니, 마신의 잔재 사념이 만들어낸 무언가…….’
클로드와의 전투에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방해했던 것도.
‘내가 네놈의 그릇을 모두 깨부술까 봐.’
……그 이유 때문이지?
이 자식은 겁이 난 것이다.
모든 ‘그릇’이 부서지고, 자신이 부활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까 봐.
‘걱정하지 마라.’
네놈 생각대로.
‘다 부숴줄 거니까.’
내 목을 조르던 ‘마신 바르바토스’의 잔재 사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머리라고 생각되는 그 위로 ‘공포’의 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보아, 확실해졌다.
이 녀석이 어째서 이리도 날 죽이려고 안달 난 건지.
클로드 또한 〈마왕의 그릇〉특성 보유자.
‘그릇’끼리 부딪힌다면, 한쪽은 깨지기 마련이니 그 전에 손을 쓰려는 것이다.
‘크, 크으으윽…….’
그런데, 실수… 했나?
너무 도발했나 보다.
보랏빛이 계속 일렁대고 있었지만, 목을 조르는 ‘마신’의 손에도 점차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다시 생각해보니 전부가 아니라, 반 정도만 부수는 걸로 할…….
파직──!
그때 마신의 ‘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샤아아아─!
자그마하던 금색의 빛이 점점 커지더니, 사념에게 다가간다.
빛에 닿는 순간, 내 목을 조르던 손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마신의 손’과는 다른 이질감.
다만, 어느 정도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밀레나?’
유리안의 어머니.
일전에 유품과 회상에서 느껴본 그녀의 기운이 그 ‘금색’의 빛에서 느껴졌다.
그리곤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이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응? 무슨 말이 들리는 것 같은데.
– ‘미안해. 유리안, 네가 살 수 있는 길은 이것뿐이었어.’
===
⇒ 특성, 〈마왕의 그릇〉이 사라졌습니다.
⇒ 새로운 특성, 〈그릇의 주인〉을 손에 넣었습니다.
===
그 아련한 목소리에 ‘나는 유리안이 아니다’라고 대답할 뻔했으나.
시야가 점멸하더니 눈앞엔 어두운 제도의 풍경이 들어왔다.
쏴아아아아──!
비가 내리고 있다.
차가운 비의 감촉이 몸에 닿기 시작했고, 동시에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으나.
“허, 허어어어…… 억.”
비 때문에 그리 느낀 게 아니다.
몸에서 모든 피가 다 빠져나간 느낌.
과다출혈로 인해 몸이 죽어가고 있었기에, 추위를 느끼고 있던 것이다.
X 같은……!
욕지거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깜빡이는 기억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
“다시 지껄여 봐. 이 망할 새끼.”
칼리나의 두 눈에는 맹렬한 분노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걸 본 클로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리군. 아니, 최연소 기사단장다운 것인가?’
기사 중에서도 문제아들만 모이는 기사단인 ‘낙인 기사단’의 역대 최연소 단장.
그 소문은 익히 들었다.
기량은 문제없으나, 도덕적인 부분이 결손 된 자들.
그런 자들을 한데 모아 꾸린 기사단이 바로, ‘낙인 기사단’이다.
그곳의 기사단장이 이 어린 계집이고.
“말한 대로다. 녀석은 내 손에 죽었다.”
“지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칼리나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상대방과의 거리는…… 적어도 6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리였지만, 칼리나를 자신이 뽑은 검을 휘둘렀다.
찰칵, 찰칵, 찰칵!
기계적인 소리와 함께 뻗어나가는 검신들.
채찍처럼 길어진 그녀의 검은 뱀처럼 어금니를 날름거리며, 클로드에게 달려들었다.
‘사복검인가!?’
귀찮은 게 나타났군.
클로드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자신에게 달려든 사복검을 쳐냈다.
캉──!
‘암성철검’이 사복검을 튕기자, 허공에 불똥이 튀겼다. 이대로, 칼리나와 거리를 좁히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저쪽도 그런 단점쯤은 인지하고 있겠지.’
굳이 클로드는 빈틈을 보이는 칼리나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지금 바쁜지라 다음에 만나면 그때 숨통을 끊어주지.”
기사에 대한 혐오심을 역력히 드러내며, 클로드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벌벌 떨고 있던 당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새끼, 도망치냐!? 남자답게 붙어!”
“따라와라. 비밀 통로는 안전하니까.”
“야! 내 말 안 들려!?”
다시 한번, 칼리나가 사복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금속처럼 두꺼운 껍질의 지네가 그녀의 뒤에서 기습을 해왔다.
“이, 이이익……!”
클로드를 공격하려 휘두른 사복검을 회수하고, 지네의 공격을 피한 칼리나.
그 모습을 보던 클로드는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로커스트, 정리하고 따라와라.”
“……예, 두목.”
파사사삭.
분노에 입술을 파르르 떨며, 이쪽을 노려보는 칼리나를 뒤로 하고, 클로드는 당테스를 데리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당테스를 연합국으로 인도하는 것.
동시에, 자신도 연합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괜한 시간 낭비를 통해 이곳에서 발목을 잡힐 이유는 없다.
“여, 여기…… 는?”
“제도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지.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내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네가 묻혔을지도 모르니까.”
죽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린 이상 더 이상의 존대는 없었다.
쏴아아아──!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에 당테스는 인상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이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짙게 깔린 어둠은 둘을 반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 탓에 클로드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네 보았지만, 당테스는 별 반응 없이 입술만 파르르 떨 뿐이었다.
공포에 젖은 두 눈.
그것이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굳이 물을 이유도 없었다.
“가지. 연합국까지 갈 이동 수단은 준비해뒀나?”
“제, 제도의 남쪽…… 거기에 마차를 준비시켜뒀다.”
“그럼, 거기로 가면 되겠군.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그 마차에서 받을 수 있겠지?”
“그, 그래. 무사히 도착만 한다면…….”
당테스는 기진맥진한 말과 함께 빗속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클로드가 뒤따랐다.
공동묘지를 내려가, 빈민가를 통과해 남쪽으로 향하던 도중 갑작스레 당테스의 발길이 멈추었다.
“갑자기 왜 그러지?”
“……라즈롯.”
라즈롯?
영문 모를 이름이 당테스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클로드는 의문을 표했다.
듣자 하니, 사람의 이름 같은데.
자세히 보니 비 넘어, 가로등 아래엔 아직 성인이 채 되지 못한 소년이 서 있었다.
마치 유인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저 녀석, 이대로 보내면 안 돼!”
“……그게 무슨 소리요?”
“라즈롯, 저 눈치 빠른 놈이 여기 있는 걸 보면 대강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거야. 지금 총대주교에게 보고가 들어간다면…….”
총대주교? 그 여명회에 관한 일인가 보지?
그렇다는 건, 저 소년도 여명회의 관계자인 모양이군.
“도망친다!”
당테스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라즈롯’이란 소년은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잡아야 해!
그리 소리친, 당테스는 라즈롯이 도망친 곳으로 냉큼 달려가기 시작했다.
‘……쯧.’
클로드는 연신 쏟아져 내리는 비와 함께 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괜스레,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유리안이 나타나, 처리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뭔가 계속해서 어긋나고 있었다.
세계의 흐름이 틀어진 느낌.
마치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안 될 거 같은 느낌.
거대한 운명을 거스른 듯한 느낌을 받은 클로드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뭘 놓친 거지?’
놓치지 않았다.
겉과 속이 다른 기사들을.
그 풍토를 강요한 귀족들을.
그리고 황실을.
어떻게든, 무너뜨리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황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린 애를 죽여서라도?’
머리로 품던 의문을 입 밖으로 토로하려던 순간, 빗물에 씻기듯 잡생각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무슨.’
클로드는 허리춤의 검집에 손을 얹은 뒤, 당테스와 라즈롯을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