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0)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190화(190/300)
190화. 일단 친해져 봅시다(2)
“여명회를 부수기 위해,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불러낸 겁니다.”
내 말에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당연할 것이다.
내가 ‘여명회’에 속해있다는 것을 밝힘과 동시에 ‘여명회’를 박살 내겠다고 말하는 셈이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상황.
‘……근데, 이 정도로 조용해지다니.’
말을 이어가는 게 무안해질 지경이다.
“부수다니, 여명회를 말인가?”
“예. 맞습니다.”
다행히도, 내 민망함을 달래준 것은 자하트의 말이었다.
먼저 입을 연 그는 내가 여명회 소속이란 것에 큰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미리 설명해둔 덕도 있겠지.
“혹시…… 그걸 위해서 여명회에 입단한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하트는 지팡이로 땅을 짚더니 앉을 만한 곳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마찬가지로 말을 듣던 페른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내게 되물었다.
정말이라고 묻는다면, 확실히 대답할 수 없지만, 그 의도가 있었다는 건 분명하지.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자, 페른의 얼굴엔 화색이 돋았다.
다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럼, 왜 저에게 귀띔을…… 윽!”
불안에 찬 눈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던 페른은 갑작스레 배를 부여잡았다.
내가 찌른 상처.
감정의 변화가 격한 탓에 그 부분에 통증이 도드라진 모양이다.
‘……음.’
약간 미안하군.
그래도,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마라. 두 번째 일격은 피해줬잖아.
“왜, 제게 귀띔을 주지 않으신 겁니까?”
“음.”
난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왜 먼저 말을 안 해줬냐면, 해봤자 내가 손해일 뿐이라서?
당연히도, 난 ‘여명회의 붕괴’를 위해서 조용히 단신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타인을 끌어들였다간, 괜히 골치만 아파졌을 뿐이니 말이다.
‘페른이 죽었어도 마찬가지야.’
비서실이 이 녀석에게 비밀리에 ‘여명회’의 조사를 맡겼으니, 행방불명이 되었다간 큰일이 일어날 것이 자명했다.
그 이후에도 분명, 다른 사람들을 보내서 조사시켰겠지.
페른의 죽음과 더불어 추가적인 여명회의 뒷조사를 말이다.
그렇기에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기밀 중의 기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자, 페른은 잠깐 입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일에 ‘황실’과 관계는 없다.
내 개인적인 일로 엮였고, 개인적인 일로 꼬인 것뿐.
그러니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겠지.
‘유리안은 극비 수사를 수행하고 있다.’
그 사실은 ‘누구’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는 건…… 황궁 비서실의 명보다 더 위의 명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어쩐지, 경외롭다는 느낌조차 들기 시작하는 페른의 말투.
녀석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없으나, 일단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습니다.”
“……비서실의 일보다 더 위.”
감탄스러운 얼굴로 페른이 입을 연다.
“그건 황족 직속 기밀 명령이란 소리시군요!”
뭔가 깨달은 듯한 페른의 모습에.
“…….”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에서 ‘황족’이 가지는 명성은 말로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이름을 도용하거나, 잘못 오용한다면, ‘감은 눈’ 비스무리한 녀석들이 달려와 ‘이놈~’ 한다는 소리이다.
“후후…….”
그렇기에, 페른의 말에 난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잘못 대답했다 이 녀석이 떠들고 다니면, 진짜 목이 뎅겅할 것이 분명하니까.
“역시!”
그러나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유리안’의 면상으로 짧게 웃음을 흘리면, 마치 흉계를 꾸미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나의 실없는 웃음을 더할 나위 없는 긍정으로 받아들인 페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으, 으윽.”
그러면서도 배의 통증 탓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말이다.
“유리안 경께서 제국을 배신하지 않으셨을 줄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황족의 명인가 궁금하군. 최근 훈장을 내린 오스본 저하신가? 그것도 아니면…….”
자하트는 말을 하던 도중, 말끝을 흐리더니 페른의 얼굴을 한 번 살펴보았다.
아마도 ‘칼드락’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으나 내가 그와 접촉했다는 건 비밀이었기에 입을 다문 모양이다.
‘어쩌지.’
영락없이 내 말을 믿는 둘의 모습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황족의 명에 의해 ‘여명회’에 잠입했다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내 뒤에 황족이라는 거대한 빽이 있는 거잖냐.
실상은 우리의 주인공 ‘검성’이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거듭하는 바람에 여명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아니, 애초에 유리안은 ‘여명회’에 가입했으니 이것도 운명인가?
“어찌 되었든, 누구인가 궁금하군.”
“저도 자하트 경과 생각이 같습니다.”
자하트와 페른이 계속해서 되묻자, 난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최근 접촉한 오스본이냐.
군부와의 관계 덕에 연관이 깊은 칼드락이냐.
그나마 무른 율시스냐.
누군가의 이름을 발설하든, 추후 이 상황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황족 명예훼손으로.
웃는 낯으로 처형대에 걸리겠지.
그러나 이미 이런 상황쯤은 상정하고 있었다. 이름을 말하지 않고, 넘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난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말했다.
“비밀입니다.”
그러니까 기밀이잖아!
이 눈치 없는 놈들아!
***
‘여명회’와 관련된 전말을 간단하게나마 털어낸 뒤, 헤어지기 직전 페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리안 경!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윽!”
“일단 치료에 전념하십시오.”
몸도 아픈 놈이 일어나서 뭘 하려고.
페른은 당분간 ‘무명객단’에 몸을 의탁해 치료에 전념해두라고 이야기해두었다.
‘비서실장에게는 내가 이야기해야겠군.’
페른을 살려둔 이유는 ‘비서실’에서 ‘페른의 실종’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 생각하며, 페른이 머물던 오두막을 빠져나오자 라즈롯과 마이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 땍땍거리고 조용히 해.”
“뭐? 또 땍땍거린다고 했겠다?!”
시끄러운 두 목소리가 얽혀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하던 찰나.
싸우던 둘은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휙 돌리더니 조용해졌다.
“동행하겠습니다, 유리안 경.”
“야, 너 취소 안 해?”
땍땍이.
그 별명을 잘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라즈롯이 따라붙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
녀석이 따라붙었다는 건 할 말이 있었다는 것이니까.
“목은 괜찮습니까?”
“예?”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즈롯의 목에는 페른의 손자국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예, 괜찮습니다.”
내 시선이 그의 목을 향하자, 라즈롯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사의 힘은 대단하더군요.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오러’의 힘을 빌린다면, 일반인들은 손으로도 죽일 수 있는 것들이 기사이니 말이다.
“엘레노아 아크 비숍께서 이번 비숍 선별과 관련된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고 하십니다.”
엘레노아가?
평소 직접 찾아오던 그녀가 직접 부른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아크 비숍이 된 후, 대외적으로 움직이기 곤란해져서 그런 건가.
“오늘 내로 마탑에서 뵙겠다고 전해주십시오.”
나도 마침 할 이야기가 있었다.
***
제국 마법 연구로는 굴지라고 손꼽히는 장소이다 보니, 마탑의 부지는 상당했다.
그중, 다른 이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장소도 꽤 있었다.
그 예로 ‘연구실’을 들 수 있겠다.
[음 원소 연구소]사실상 ‘음 원소’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마법사들은 그리 없다 보니, 연구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건물 입구에 보이는 푯말을 한 번 눈으로 훑은 뒤, 난 관리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디아나 드미셀]그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의사 가운과 비스무리한 옷을 입고 있는 엘레노아가 눈에 들어왔다.
“위장 마법은 사용하지 않는 겁니까?”
본래 엘레노아는 이중 신분인 ‘디아나’를 연기하기 위해, ‘음 마법’으로 자신의 얼굴에 약간의 변화를 줬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어차피 사람도 안 오는 장소니까요.”
“하긴, 음 원소 마법은 인기가 없긴 하지요. 기피 마법이지 않습니까?”
기피 마법이란 말에 엘레노아는 슬쩍 이쪽을 쳐다보았다.
뭔가 불만 어린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내 얼굴을 한 번 살펴보더니 할 말도 참아낸 느낌이다.
“데몬의 마기와 흡사한 원소인 ‘음’을 사용하는 것이니까요. 기피 할 만도 하죠.”
“뿌리는 같아도, 갈래는 다르다고 적극적으로 피력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굳이?”
엘레노아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렸다.
“어차피 어중이떠중이들이 와봤자, 쌓이는 건 없어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막강한 자신감, 엘레노아의 말투에선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리안 경.”
‘디아나’로서 이야기하던 그녀는 한 차례 호흡을 바꾸었다.
이제는 ‘아크 비숍’으로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선고한 셈이다.
“유리안 경도 아시겠지만, 총대주교께서 새로운 비숍들을 선출하려 합니다.”
“예.”
모를 리 없다.
페른의 배를 찔렀을 때, 들은 이야기니까.
그때 생각을 하니, 또 ‘테넬론’이란 인물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벽증 때문에 몸도 못 씻은 와중에 쓸데없는 일이나 시키고.’
뭐, 어찌 됐든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아마도, 새로 뽑은 비숍들은 이번에 ‘물갈이’를 경험한 비숍들인지라 총대주교에게 충성을 다하겠죠.”
“다른 비숍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귀족들은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여명회’에 가입한 것이다.
경험.
더 나아가 관계.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힘.
맹목적으로 ‘테넬론’이란 인물을 추앙하는 자들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예. 다만, 이번에 뽑는 자들은 정말로 마신을 숭배하는 광신도들만을 뽑았다는 거죠.”
아마 테넬론도 서서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여명회’에 불온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평소라면 마신의 ‘목소리’를 통해 어느 정도 해답을 낼 수 있었을 것이나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일 터.
‘조급해졌나.’
확실하다. 놈은 조급해진 것이다.
“비숍 선발이 끝나고 난 뒤에는 총대주교를 끌어내리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 유리안 경도 눈치채셨죠?”
엘레노아의 물음에 웃음을 지을 뿐이다.
“되도록, 그 전에 끝내야겠군요.”
“비숍 임명은 4일 뒤에요. 지금까지 핀텔과 콜파란 경이 두 팔을 걷고 돌아 다녀준 덕분에 준비는 모두 된 상태구요.”
엘레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콜파란 경께선 총대주교의 자리를 탐내는 것 같아서 협상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말이에요.”
“콜파란 경 정도 되는 노장이라면, 새로이 총대주교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겠지요.”
“……정말로 하는 소리신가요?”
내 말에 엘레노아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렸다.
콜파란이 ‘총대주교’가 되는 것은 불만족스러운 건가?
“물론, 전 총대주교의 자리에 엘레노아 양도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네가 하는 게 어떠냐.
그런 식으로 입을 열자, 이번에도 엘레노아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너도 싫어?’
그럼, 테넬론을 끌어내린 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누가 할 건데?
되도록, 아는 사람이 맡는 게 좋다. 어차피 ‘여명회’는 부서지고, 새로운 ‘여명회’가 자리를 잡으면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통제 가능한 사람이 좋으니 말이다.
‘뭐.’
누구든, 상관없겠지.
그때의 난 그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