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6)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206화(206/300)
206화. 은밀하게 위대하게(3)
난 테이블 위에 올려진 흘러내리는 붉은 액체를 쳐다보았다.
홍차의 향과 맛을 내고는 있지만, 맹독의 성분을 머금은 액체다.
그것도 일반인이었더라면, 마시는 것만으로도 속이 타는 통증을 느끼고 얼마 가지 않아 신체 능력이 정지될 정도로 강렬한 맹독.
‘마기’조차도 다룰 수 있는 ‘마나혈’이 없었더라면, 이것을 마시는 순간 천국으로 직행했겠지.
‘……그래도, 퍼포먼스를 위해 마시겠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안 마셨다. 내가 미쳤냐? 독이 든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 잔을 들이키게.
이 세상에는 유명한 명언이 하나 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이론’으로는 이 독이 내게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도 그것을 직접 입에 털어 넣는 정신병자가 어디 있겠냐.
‘그냥 입 안에서 안젤리카를 호출해낸 것뿐이야.’
그렇게 한다면, 안젤리카가 ‘맹독’을 흡수해줄 것이고 난 괜한 도박수를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근데 말이야.’
덕분에 안젤리카의 상태가 이상해진 것 같지만 말이다.
크르르, 키킥──!
괴상한 웃음과 함께 안젤리카는 이리저리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눈들은 미소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이가 갈리는 소리인지, 그게 아니면 기괴하게 웃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연신 안젤리카에게서 들려왔다.
다만, 뇌 정지가 올 것 같은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는 여전했다.
나의 온몸을 휘감듯, 꿈틀거리던 녀석은 마치 쓰다듬어 달라는 강아지처럼 느껴졌다.
‘설마, 취했나?’
독을 마시고 취한다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데몬’의 신체 구조를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지금은 취한 듯한 안젤리카를 뒤로 하고, 난 찻잔을 보며 벌벌 떨고 있는 겐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는 와중, 밖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자하트가 정리를 해준 모양이다.
“조용해졌군요.”
아마도, 자하트가 당했을 리는 없겠고. 겐닌이 준비한 사병들과 여명회의 교단원들이 당한 것이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내 물음에 겐닌은 잔에 담긴 ‘안젤리카’의 파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녀석의 두 눈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놈에 비친 내 모습은 대화가 안 통하는 웃는 처형대 그 자체겠지.
‘어쩌겠냐.’
네가 이 꼴을 자처했는데.
지긋이 겐닌을 쳐다보자, 놈의 머리 위로 ‘공포’의 색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공포를 의미하는 ‘보라색’이 이렇게나 맹렬하게 흔들리는 건 또 오랜만에 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뭘 말입니까……?”
“잔을 비우시겠습니까.”
손가락으로 ‘안젤리카’의 파편이 담긴 잔 표면을 훑자, 겐닌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렇지 않으면 총대주교와 나누었던 대화를 말해주시겠습니까?”
‘데몬’을 마신다는 것은 ‘그릇’이 아닌 자들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 설정을 모르더라도, 데몬을 먹는 자살 행위를 할 멍청한 놈은 없겠지.
“말, 말하겠습니다! 제가 총대주교와 나누었던 대화를 모두……!”
그래, 그래야지.
황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겐닌을 보며, 잔 안에 들어간 ‘안젤리카’도 회수를 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습니까?”
간단한 질문이었다.
겐닌이 이렇게나 과격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총대주교’의 지령이 있었다는 것. 그 지령의 전말이 어떤지, 확실하게 묻기 위해 겐닌과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모두 말한다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겐닌은 협상하기 위해 비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능성은 생기겠지요.”
“가, 가능성 말입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면 그 가능성조차 없다는 걸 알아두십쇼.”
꿀꺽.
겐닌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테, 테넬론 경께선 비숍들을 모두 정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비숍들을 정리하길 원한다고?
“자신에게 적대하는 비숍들을 말하는 것이군요.”
“아, 아뇨. 말 그대로, 모든 비숍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비숍이라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겐닌, 본인도 여명회의 ‘비숍’ 계급일 터인데.
‘당연히 복종을 맹세했다면 포함되지 않겠지.’
정말로 모든 비숍을 교체할 생각이라면, 이렇게 ‘총대주교’에게 협력하지도 않을 터이고.
‘그런데, 역시 이상하군.’
테넬론이 갑작스레 이런 일을 저지른 이유가 말이다.
최소한 눈엣가시 같은 나를 치워내는 건 ‘비숍 선발’ 이후가 될 줄 알았는데.
‘너도 검성이 제도로 복귀한 탓에 마음이 조급해진 거냐?’
심지어 테넬론은 ‘목소리’도 안 들리게 되었다.
게임 내 설정 상, 가장 ‘마왕’에 가까운 ‘그릇’만이 들을 수 있다는 마신의 목소리를 말이다.
“후우, 힘들다 힘들어.”
사념에 잠겨 생각을 정리하던 차, 밖에서 일을 끝낸 펠코르와 자하트가 저택의 안으로 들어섰다.
격한 전투를 겪었을 텐데도, 자하트와 펠코르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실력의 차이가 어마무시했나보다.
‘맹독을 너무 신뢰한 것 아니냐?’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겐닌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금 자하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들 처리하셨습니까?”
“일단은 보이는 것들은 싹 다 정리했다네. 이거야 원,”
끌끌거리며, 자하트는 지팡이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왜 이렇게나, 이교도에 눈이 먼 인원들이 많은 건지. 누가 보면, 제국의 국교인 줄 알겠어.”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여명회’가 수면 아래에서 준동하는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그 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페, 펠코르!?”
겐닌은 자하트와 함께 들어온 펠코르를 보더니,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네, 네놈은 몬시뇰이 아니더냐? 왜 이 자리에…….”
머쓱한지 펠코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렇게 됐수다.”
그렇게 시원스럽게 말할 거면, 머쓱한 척을 할 필요가 있었냐.
“알아낸 건 뭐 있나, 유리안?”
“지금 알아내고 있습니다 자하트 경.”
일단, 보는 시선이 많아지자 난 재빨리 ‘안젤리카’를 몸으로 회수해두었다.
보여줘도 상관없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데몬’을 몸에서 기른다는 괴상한 상황을 들키고 싶진 않다.
“이왕이면, 손톱 하나 정도는 뽑은 뒤 이야기해도 되는 것 아닌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끔찍한 말을 내뱉는 자하트였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은 군인 출신이었지.’
어차피, 겐닌은 공포에 굴복한 상태다. 조금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세 토로할 것이 분명──.
‘음?’
난 겐닌의 얼굴을 한 번 살펴보았다. 아까처럼 벌벌 떨던 인상이 아닌, 잠에 빠지기라도 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상태다.
더 이상한 건.
‘공포의 색이 보이지 않는다.’
위화감이 느껴진다.
다른 건 몰라도, 〈부정의 색〉으로 본 ‘공포’는 손쉽게 사라진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커, 컥…… 컥…….”
그리고, 그 위화감은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니었다.
거품을 무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든 겐닌의 두 눈은 초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몸에서 한껏 뿜어져 나오는 이질적인 기운.
‘마기.’
확실하다. 겐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기다.
“뭐야, 쟤 왜 저래!?”
“쓸데없는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모양이로군.”
눈치 빠른 자하트는 겐닌의 상태를 보더니, 순식간에 판단을 내렸다.
“큭, 크르르륵…….”
계속해서 겐닌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뱉었다. 의식은 잃은 지 오래, 아무래도 ‘겐닌’ 그 자체가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데몬화가 일어나고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겐닌이 ‘데몬’이 되기 전에 숨통을 끊기 위해 월장검을 뽑아 들었다.
‘응!?’
그것을 휘두르기도 전에 먼저 ‘안젤리카’가 달려들었지만 말이다.
– 키킥, 키키킥!
비웃음에 가까운 목소리와 함께 데몬화가 되던 겐닌의 목을 물어뜯는 안젤리카. 피가 한 움큼, 녀석의 목에서 꿀렁거렸고 ‘데몬화’로 인해 꿈틀거리던 육신은 점차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녀석이.’
아마도, ‘독’의 영향일 것이다. 취해서, 개가 됐다는 뜻이다.
– 헥헥, 헥헥!
진짜 개가 됐다.
겐닌을 쓰러뜨린 안젤리카는 다시금 내 발밑으로 돌아오더니, 쓰다듬어달라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원반던지기를 한 뒤의 개를 보는 것 같았다.
“유, 유리안 경 설마 그건…….”
“으음.”
문제는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둘이다.
펠코르는 ‘안젤리카’를 보며, 당황하고 있었고 자하트는 맹인인 탓에 보지 못했지만 ‘안젤리카’를 오러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데몬…… 아닙니까?”
– 캬아아아아아!
펠코르가 손가락질을 말하자 안젤리카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러 개의 눈을 번뜩이며 으르렁거렸다.
진짜 개가 따로 없다.
“데몬이지. 데몬이 확실하지.”
“어, 얼씨구? 댁은 처음 보는 게 아니야!?”
자하트는 펠코르와 달리 ‘안젤리카’를 느꼈음에도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보는 게 아니지.”
“그럼, 언제 봤는데!?”
“아직 처음 보지도 못했다네 이 얼빵한 놈.”
“……뭔 소리야 그게?”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본단 말이냐 쯧.”
정론이로군.
다만, 자하트의 태도를 보아하니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자하트 경께선 어느 정도 알고 계셨던 모양이로군요.”
“모를 수가 있겠나.”
지팡이 검을 한 번 쓸어 넘기며, 자하트는 곤란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다루는 오러는 색적과 탐색 그런 쪽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되었으니 말이야.”
즉, 자하트는 내 몸속에 ‘데몬’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해준 것이었다.
“말해주기 전까진 기다리고 있었지. 이전에도 말했듯, 은인에게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다네.”
나름의 배려. 자하트에게 어쩐지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어졌으나 어벙벙한 펠코르의 표정을 보니 거기에 더 관심이 갔다.
“나만 몰랐……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