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218)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218화(218/300)
218화. 약화(2)
오른 크라이파트.
크라이파트 가문의 전(前) 가주인 그와 현(現) 가주이자, 아들인 오벤은 돈독한 부자 사이라곤 말할 수 없으나, 여타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어긋나지 않은 부자 관계였다.
그런 둘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야만인들의 고향, ‘북부 대륙’에서 온 주술사 ‘밀레나’와 결혼을 한 이후부터다.
‘이걸 모르는 제국인은 없지.’
황실을 대표하는 ‘황실 마법사’, 삼색(三色) 중 한 명이자, ‘청색’이라 불리는 헴멜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자리에 앉아있는 기골이 장대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른 크라이파트.
기사 가문인 ‘크라이파트 가문’의 전 가주인 그는 현재 ‘황실 마법사’인 자신에게 찾아왔다.
그 이유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다. 그럼에도, 헴멜은 오른을 떠보기 위해 물었다.
“오른 어르신, 이곳까지는 무슨 일이십니까?”
기사와 마법사는 사이가 좋지 않다.
라는 건, 사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신민들의 유흥거리에 불과하다.
아니, 몇몇 기사와 마법사들이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상층부’로 올라간다면 모두가 일맥상통. ‘삼색’ 정도나 되는 마법사라면 더욱 말이다.
결국, 기사는 명예를.
마법사는 연구를.
그걸 위해선, 서로를 물어뜯는 것보단 ‘협력 가능한 라이벌’로 만드는 편이 좋다.
“네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다.”
오른은 헴멜을 보며, 준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순백’의 플뤼겔보다는 당연히 나이가 적지만, 오른의 나이는 정년을 아득히 넘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풍기는 기백은 일반적인 귀족들과는 범접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게 말입니까? 그래도 인연은 있는지라, 들어는 드리겠습니다만 여부에 따라선 제가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십쇼.”
헴멜은 그런 오른을 상대로 정중한 태도를 고수했다.
귀족 의회의 눈 밖에 난다면, ‘마법사’로선 골치가 아프다. ‘마탑’은 황실의 관리를 받는 곳이나, 그곳의 연구비를 모두 ‘황실’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유리안과 관련된 일입니까?”
헴멜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자리에 앉은 뒤 본격적으로 오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의 물음에 오른의 표정은 구겨졌다. 불쾌함으로 그득한 노구의 얼굴엔 ‘더 이상 언급한다면, 찢어죽이겠다’라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듯했다.
‘역시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최근 ‘검성’의 죽음으로 시끌벅적한 제도다. 이곳, ‘마탑’까지 오른이 발길을 옮긴 이유가 그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네놈의 마법이라면, 사고로 위장하여 유리안을 처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겠지.”
“뭐, 그렇습니다.”
오른의 말에 헴멜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게 뭐냐.”
유리안을 처리한다는 행위는 그만큼 리스크를 짊어져야만 한다.
다만, ‘리스크’를 짊어질 정도의 리턴이 온다면 마법사는 거절하지 않는다.
그것을 안 오른은 다짜고짜, ‘보상’을 물었다.
원하는 것이라면 모두 들어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럼, 저는 플뤼겔의 목을 원합니다.”
“플뤼겔……?”
순백의 플뤼겔.
황실 마법사 중, 가장 고참이며 나이가 많은 현자.
다음 위계(位階)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는 제자 육성에 전념하는 그 괴짜를 이전부터 헴멜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쌓은 업적은 일반적인 마법사들이라면 따라잡을 수 없다.
결국 ‘제국 제일의 마법사’란 칭호는 늘 그의 것이며, 수명이 긴 ‘플뤼겔’은 그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겠지.
“크흠…….”
오른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불가능한 일이겠지.’
알고 있다.
헴멜이 ‘플뤼겔’을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그의 실력은 인정하고 있다.
100년이 넘게 산 마법사.
현자 중의 현자.
꺾을 수 없는 고목을 시간의 흐름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에 버금갈 정도로, 유리안을 해치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헴멜은 그런 ‘플뤼겔’을 ‘유리안’과 동선상에 두고 있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말도 안 되는 ‘악명’을 쌓은 실력.
심지어, 차세대 ‘검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량을 가진 그다.
‘불가능한 일이니까, 플뤼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거야.’
‘보수’가 아닌, ‘거절’을 돌려 말한 것이다.
“기다려라.”
오른은 곤란한 기색을 드러내더니, 잠깐 자신의 오른손 검지에 낀 반지를 다른 손으로 매만졌다.
‘마도구로군.’
그것도 말을 전달하는 전언 마법이 담긴 마도구다.
“가능하겠나?”
다짜고짜, 가능하냐는 물음에 반지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검성도 죽었으니, 더 이상 숨죽여서 기다릴 필요는 없겠죠. 플뤼겔을 죽이는 건, 제약에 걸리지 않으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다.
그것도 한 번은 들어봤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설마…….”
헴멜이 당황스러워하며 물음 것은 당연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지금 들린 목소리는 오른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북부’의 파편이었으니까.
오른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마녀다.”
***
나는 자리에 서서 주먹을 살펴보았다.
살짝이지만, 피가 묻어있다. 그리고, 그 피의 주인공을 살펴보았다.
오벤 크라이파트.
한 대 맞고, 뒤로 고꾸라졌다.
“크, 크윽…….”
입가엔 피를 머금은 채, 바닥에 쓰러진 오벤은 천천히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그의 수호기사인 노기사 에하르크에게 말이다.
왜 막지 않았냐!
그런 의문이 오벤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아니, 일전엔 유리안이 자신을 때려도 할 말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오벤을 향해 에하르크의 신랄한 비판이 전해졌다.
때려도 상관없다니,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고양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때려도 되는 거냐?
‘진정해라 이 새끼야!’
에하르크의 말을 듣더니,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이대로 말리지 않았다간, 아주 곤죽을 내놓을 심산이었다.
“내, 내가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래, 그렇고말고.”
입가에 묻은 피를 털어낸 오벤은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일어났다.
난 힘이 들어간 주먹을 쳐다보았다.
일반인이라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힘이 실린 주먹이었다. 그런데도 오벤이 멀쩡한 이유는 그도 ‘크라이파트 가문’의 가주답게 단련한다는 뜻이겠지.
“이제 속이 후련하느냐 유리안?”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어쩐지 말끝을 흐리는 오벤. 이럴 때만큼은 헤란드의 모습이 살짝 엿보인 것 같았다.
“이전엔 죽어도 좋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오벤 주인님.”
“에하르크, 너는 대체 누구의 편이느냐?”
“저는 언제든 오벤 주인님의 편이지요. 과거의 오벤님을 존중해준 것뿐입니다.”
“젠장! 또 헛소리를.”
에하르크는 오벤과 오랫동안 교류를 했는지, 주종관계가 아닌 마치 친구처럼 그를 대했다.
그럼에도.
‘살기가 대단하군.’
여유 있는 태도와 달리 내게 향하는 에하르크의 살기는 대단했다. 주먹질을 방관하긴 했지만, 내 태도를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여전했다.
‘……음.’
지금 붙으면 내가 지겠지.
마나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까 물었던 말의 대답을 듣고 싶구나.”
식사에 관한 질문.
“밀레나 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먼저 말해줄 수 있단다. 뭘 알고 싶으냐?”
“밀레나 님께선, 북부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음.
오벤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밀레나를 ‘어머니’라 지칭하지 않는 점은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 내가 ‘크라이파트 가문’의 일원으로서 ‘노스 폴’에 복무하고 있을 때 만난 인연이란다.”
말을 잇던 오벤은 다시금 아련한 눈빛이 되었다.
아, 저 눈빛.
나는 상관없는데, ‘유리안’이 자꾸 꿈틀거린다.
“야만인들의 주둔지를 부수기 위해, 원정을 떠났을 때 우린 눈보라를 마주쳤지.”
눈보라?
아, 누구의 소행인지 대강 알겠군.
“눈보라에 휩쓸려, 난 계곡 아래로 떨어졌었다.”
용케도 살아있군.
“피는 계속 나왔고, 추위로 벌벌 떨고 있었지. 출혈은 멈출 생각을 안 했고, 체온은 계속해서 떨어졌어.”
그러시군요.
“그때, 그녀가 나타난 게다.”
“밀레나 님이 말씀이군요.”
“그래, 그녀는…… 겨울보다 섬뜩한 그곳에서 봄처럼 내게 다가왔단다.”
또 아련한 얼굴하고 자빠졌네.
다만, 밀레나가 ‘주술사’라는 확신은 더욱 들기 시작했다.
그 눈보라를 뚫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색다른 느낌이군.’
그녀가 ‘가시 여왕’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들어왔으나, 이런 생생한 증언을 들으니 말이다.
“그렇게 난 그녀와 사랑에 빠졌단다. 노스 폴에 복무하며, 늘 그녀를 찾아 구애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음? 더 듣지 않을 생각이냐?”
더 들어서 뭐 하려고.
“아쉽구나. 그녀에게 받은 ‘추위를 못 느끼게 하는 반지’에 대해 이야기해주려고 했거늘.”
추위를 무시하게 만들어주는 반지.
기껏해야, 마법으로 만든 마도구일──.
“추위를 못 느끼게 하는 반지?”
난 의문을 느꼈다.
‘추위를 못 느끼게 만드는 반지’는 내가 알기로, ‘마도구’ 따위가 아니다.
“그래, 기적과도 같은 반지지. 그걸 착용하면, 혹한과도 같은 날씨에서도 추위를 느끼지 않게 만들어줬으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오벤은 품속에서 작디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밀레나가 내게 준 선물이었단다. 이런 날씨에 착용하기엔 뭐하니, 상자에 넣어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지.”
달칵──!
오벤이 상자를 열자, 그곳엔.
‘……눈 토끼의 반지.’
이전에 ‘노스 와치’에 들렀을 때, 구하려고 했던 성물이 담겨있었다.
칼드락 드 아드라탄.
그가 착용하고 있었던 반지는 눈보라 숲, 겨울의 마녀인 ‘아비샤’가 만들어준 가품이었다.
‘이 반지는 그걸 본따 만든 가품 따위가 아니다.’
순수하게.
‘기적’의 힘을 담은 성물, 진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