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248)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248화(248/300)
248화. 물들지 않는 검정(3)
이런 X발.
창문에 설치된 철창 너머로 아름다운 황궁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욕지거리가 속에서 흘러나왔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밖인데 철창에 갇힌 자신의 꼴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다.
‘하아.’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거늘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진 않았다.
율시스가 곧장 내 처형을 맡겼더라면 모를까,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걸 보니 당분간은 괜찮은 것 같다.
‘괜찮기는 무슨.’
사실 시간문제이긴 하다. 율시스의 몸에 상처를 입힌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뜨인 눈 상태에 들어가 감정이 고양되고 말았어.’
내가 급제동을 걸지 않았더라면, 분명 ‘율시스’의 목을 베어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검성’은 유리안에게 의미가 큰 사람이었다.
‘목을 베어냈다면.’
이렇게 수감되는 형태가 아닌, 즉시 그 자리에서 내 목이 달아났겠지.
이럴 때만큼은 ‘유리안’의 본능이 참으로 버겁다. 놈의 선택 한 번으로 내 모든 걸 내던져야 한다니 말이다.
‘쯧.’
혀를 차며, 조금 전 장미 기사단의 일원에게 받은 신문을 펼쳤다.
‘2년 만에 돌아오는 개기일식.’
신문을 펼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개기일식’이란 문구다.
‘3주 후인가.’
일단, 개기일식의 날짜를 머리에 담아두고 내용을 훑어봤다. 아직 내가 원하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온갖 신문에 도배될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뒤엎을 내용이 말이다.
“어이!”
쾅, 쾅──!
신문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철창을 두들겼다. 내 감시를 맡고 있던 장미 기사단의 일원이다.
“면회다.”
그러고 보니, 자하트를 불러둔 상태였지. 전해야 할 이야기도 있었으니 말이다.
“나와라.”
철창의 문이 열리고, 난 감옥 밖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는 도중, 나와 눈이 마주친 ‘장미 기사단’의 일원이 흠칫한다.
머리 위로는 ‘공포’의 색이 보인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모르겠습니다.”
그 감정을 짚고 넘어가자, 기사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날 쳐다보았다.
“무, 무슨 소리냐?”
“면회일 뿐입니다. 손도 이렇게 묶여있는 죄인이 뭐가 그렇게 무섭습니까?”
“……그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기사라면, 그렇게 겁을 먹어선 안 되지요.”
기사.
그 말을 꺼내자, 나를 면회장으로 인도하던 기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장미 기사단’은 말이 기사지, 귀족들의 친목회에 불과하다. 그런 그들에게 ‘기사답지 않다’라는 말은 역린과도 같다.
“그만해라.”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를 보였으나, 다른 기사가 동료를 막아섰다.
“율시스 저하의 명이다. 유리안은 황실 전속 기관 감은 눈 소속,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라고.”
“쯧.”
혀를 찬 일원들을 보며, 난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율시스가 배치한 인사로군.’
그렇다면 이들 중에서 ‘신 여명회’와 연관이 있는 자들은 없을 확률이 높다.
모종의 방법으로 탈옥을 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애초에 그런 수를 썼다간 더 위험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어깨를 한 차례 으쓱한 난 다시금 면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이 광경은 색다르군.”
수갑을 차고, 간수들을 대동한 채 면회장에 들어서자 자하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도 되겠나?”
“예, 말씀하시지요.”
“너무나도 어울리는 나머지, 말이 안 나오는군.”
자하트는 수갑을 찬 내 모습을 보더니, 어울린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녀석의 말을 듣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 눈으로 제 행색이 보이기라도 하십니까?”
“사람에겐 기운이라는 게 있다네. 난 눈이 보이지 않아 그 기운을 느끼는 게 조금 더 민감하게 느끼는 편이지.”
자하트는 옅은 미소를 입에 담았다.
“감옥이란 장소는 스산한 기운이 넘실거리지. 그런 장소와 자네는…… 음.”
그는 헛기침을 한 번 내뱉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여기까지만 말하지.”
이미 다 말한 것 같은데.
“음, 그건 그렇고.”
자하트는 탄식을 한 번 내뱉더니, 면회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시가 많은 것 같군.”
그의 말대로, 면회장엔 간수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이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장미 기사단의 일원이었으나, 보통의 면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쯤은 일반인도 알 수 있었다.
“제가 워낙, 명망이 높다 보니 위에서 대우를 해주는 모양입니다.”
“위에서 대우를 해준다라.”
끌끌, 자하트는 한 차례 웃더니 말했다.
“황실과 관련된 일로 수감되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 게로군.”
“예.”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자하트도 그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나, 유리안 자네가 하는 말들은 모두 기록되는 것 같으니 중요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비밀스러운 말을 꺼내려는 것처럼, 자하트가 자세를 잡자 이곳을 보는 시선이 더욱 강렬해졌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모든 것을 기록하겠다는 일념도 느껴졌다.
“내가 이런 쪽으론 문외한이라서 말이야. 도움을 주는 건 어려울 것 같군.”
“아뇨, 괜찮습니다.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음?”
자하트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한 말을 전달할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자하트는 자신이 온 것이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니다.
지금 이 환경.
이 분위기가 나에게는 힌트가 되었다.
‘마신의 뿔은…….’
아직 되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감시를 붙여가며 대화를 엿들을 이유는 없겠지.
‘마신을 재강림시키는 것에는 절차가 필요하다.’
뿔을 모으는 것도 그 절차 중 하나지만, 더 나아가 모종의 의식도 필요하다.
‘태양신 솔라룬의 눈이 가려진 날 거대한 마(魔)가 다시금 대륙에 강림한다.’
여기서 ‘솔라룬’의 눈을 가린 날이란 3주 후에 있을 개기일식을 의미한다.
‘심지어 율시스는 마신의 뿔 네 개를 모으지도 못한 상태고.’
플뤼겔의 병실에 직접 들른 이유가 네 개의 ‘마신의 뿔’ 중 플뤼겔에게 맡겨진 것을 되찾기 위함이었거늘.
‘하긴, 그 소란이 있었으니 말이야.’
플뤼겔의 병실에선 ‘감은 눈’의 일원이 ‘천수군’에게 끌려 수감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마신의 뿔’을 찾는 것은 율시스 입장에서도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율시스.’
놈이 정말로 검성의 죽음에 일조한 것이라면.
그 생각을 다시금 머리에 떠올리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단전에서부턴 뜨거운 기운이 넘실거렸고, 동시에 불쾌함이 일렁거렸다.
또다시 그때처럼 눈이 뜨일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아내며 자하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바깥 상황은 어떻습니까?”
“딱히, 큰일이라고 할 법한 일은 없다네.”
정확히는 ‘이 상황’에서 이야기할 법한 말은 없다는 것이겠지.
“알겠습니다.”
자하트의 말을 들은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올 땐, 사식이라도 가져오는 게 좋겠나?”
“사식 말입니까?”
“그래, 일전에 내가 갇혔을 때 자네가 가져다주지 않았나.”
아, 그랬던 적이 있지.
“보답이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사이 아닌가?”
“마음만 받아두겠습니다.”
애초에 뭘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일이 끝나고 난 뒤 모든 일을 다 때려치우고 여행을 다니고 싶은 생각뿐이다.
“어차피 곧 나올 테니 말입니다.”
***
“그런 말을 나누었다고?”
유리안의 간수 노릇을 하던 장미 기사단의 일원. 그의 보고를 받은 황제의 점술사 아비게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예, 아비게일 님.”
“……곧 나올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확신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허세를 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사의 말에 아비게일은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주변의 간수들이 유리안이 나누는 대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쯤은 녀석도 눈치챘을 것입니다.”
유리안은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탓에 허세를 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도록, 수작을 부리는 것이죠.”
아비게일은 기사의 말이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목숨이 달린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있다면.’
아마도, 유리안이겠지. 아비게일은 일전에 아드라탄 황제 앞에서 어깨를 으쓱거리던, 유리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분명, 황제의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유리안은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저울에 올리는 행위에 거리낌이 없는 남자.’
그게 유리안에 대한 아비게일의 평가다.
‘……하여간, 밀레나. 네년은 죽어서도 날 귀찮게 만드는구나.’
표독스러운 생각을 품은 아비게일은 혀를 찼다.
가시 여왕인 밀레나와 얽힌 악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서 괜스레 ‘유리안’이란 이름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녀’는 ‘가시 여왕’의 혈육을 직접적으로 건드릴 수 없다.
주술로 각인된 오랜 저주. 그 탓에 ‘마녀’는 중재자인 ‘가시 여왕’의 혈육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
‘그것도 직접적일 때의 이야기지.’
그렇기에 아비게일은 방도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살려둔다면 앞으로의 계획에 지장이 생길 확률이 높다.
설령, 수감되어 있다고 해도 모종의 방법이 있으니 지금 그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아비게일은 생각했다.
“……아비게일 님, 율시스 저하께선 유리안을 수감해둘 뿐 딱히 건드리진 말라고 전하셨습니다.”
그런 아비게일의 생각이 전해졌는지, 기사가 입을 열었다.
“난 율시스 저하를 위해 일해. 그분에게 득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할 거야.”
율시스란 이름을 입에 담자, 아비게일은 상기된 얼굴과 달아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얼굴은 차가워졌다.
“뭐든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