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269)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269화(269/300)
269화. 남은 행방(1)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하기 전에 끝을 보고 싶다니.
조금 전, ‘검은 기사’의 답변은 자신이 ‘시한부’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 탓에 여러 가지 감정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검은 기사.”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와 통증을 간신히 이겨내고, 우르하르는 입을 열었다.
“하나만 알려줄 수 있어?”
복잡한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도 잊었다. 그만큼, 눈앞의 남자가 가진 신념의 굳건함에 감탄하고 만 것이다.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답한다.”
“혹시, 몇 살인지 알려줄 수 있어?”
지금까지 ‘검은 기사’에 대한 나이가 궁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어리건, 아니면 생각한 것보다 늙었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당사자라는 것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숭고한 이상에 배경 따위는 필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가치를 저울질하는 행위라고 여겼으니까.
그렇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제도의 영웅이 ‘시한부’라는 사실은 그의 마음은 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나이를 물었다. ‘이상’의 가치가 변절하더라도.
검은 기사는 탐탁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왜 궁금하지? 내 정체를 캐볼 셈인가?”
그의 물음에 우르하르는 화들짝 놀랐다.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나, ‘검은 기사’의 말을 들어보니 그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아…… 윽!”
손을 저으려던 찰나, 키쿠바드에게 당한 상처가 욱신거렸다.
상처를 부여잡고 얕게 신음하는 동안 검은기사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답한다. 답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답하지 않는다.”
검은 기사의 태도는 확실했다. 자신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발언이라면 최대한 피하기 위해 한발 물러선 것이었다.
‘누구인지.’
알 생각은 없었다.
그것을 묻는 것이 아닌, 단순히 ‘시한부’라는 생각에 나이를 물은 것이었다.
하나, 어떠한 해답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우르하르는 감동했다.
시간이 사나운 풍파처럼 자신을 휩쓸어도,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검은 기사는 자리를 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등 뒤로 무너진 풀고른의 저택으로 시선을 주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우르하르 폰 아이너.”
그런 검은 기사를 보며, 우르하르는 나무에 자신의 몸을 지탱하며 겨우 일어섰다. 그런 우르하르를 보며, 검은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이름과 가문이야.”
검은 기사는 답도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까지 통성명을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한 것뿐이야.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마.”
“예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 이름을 말해줄 생각은 없다.”
“아니, 말해주지 않아도 돼.”
우르하르는 입가에 흐르던 피를 닦아냈다.
“그냥 말하고 싶어서 말해준 것뿐이야. 정말 그것뿐.”
이상한 놈이군.
검은 기사가 그리 말하는 것 같았으나, 우르하르는 개의치 않았다.
“다음에는 이렇게 꼴불견처럼 당하진 않으마. 상대가 상대인지라, 오러를 사용할 수 없었어.”
“오히려 꼴사납군. 패배한 이유를 설명하려는 건가?”
“아니, 오러를 사용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꼴사납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한 번 더 나를 이용해달라. 그리 말하고 싶은 거야.”
“우습지도 않군.”
검은 기사의 말투엔 의아함이 담겨있었다. 마치, 눈앞에 보이는 ‘우르하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였으나, 별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도움이 되고 싶다면, 유리안을 찾아가라. 그가 네게 할 일을 알려줄 테니.”
차갑게 쏘아붙이는 말과 함께 검은 기사는 사라졌다.
유리안.
자신이 끔찍이 싫어하는 동창의 이름을 ‘검은 기사’에게서 듣는 것은 여전히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납득하자고 우르하르는 생각했다.
***
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를 취합할 수 있지는 않지만, 나름 ‘여명회’와 ‘황실’의 단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던 라즈롯은 제도를 휘감는 불온한 기운에 민감히 반응했다.
‘……전쟁인가.’
황위 계승권을 비롯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면서, 여러 귀족들의 활동이 움츠러든 것은 알고 있다.
허튼 수를 부렸다간, 다른 이들에게 선사하기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탓에 귀족들은 움츠러들었다. 대외적인 행동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황자 중 누구 한 명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전까진 쥐 죽은 듯이 지낼 것으로 보였다.
‘율시스 저하가 폭주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분명, ‘천수군’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황실 관계자가 율시스의 편에 서면서 상황은 ‘제 4황자’의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더불어 라즈롯은 ‘비서실’을 통해 ‘점술사 아비게일’이라는 존재를 알아냈으며 아드라탄 황제의 비호를 받는 그녀도, 율시스의 편에 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제의 비호’를 받는 아비게일을 이용한다면 ‘제 4황자’라는 어중간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율시스가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론이 기운 순간.
‘생각하지도 않았던 폭주가 일어났지.’
폭풍이 빨리 지나기를 빌었건만. 율시스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야 만 것이다.
물론,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닐 것이다. 모종의 목적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게 황위를 잇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가?’
라즈롯은 의아했다.
아드라탄 황제의 자리는 누구나 우러러보는 권력의 금자탑이다. 그런 권력욕을 마다할 수 있는 강렬한 감정은 무엇인지 의문조차 생길 지경이었다.
‘후우.’
아무튼 다행인 점은 지금 몰아치고 있는 ‘폭풍’에 ‘유리안’이 휩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드라탄 제국의 어두운 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여명회’의 관리자.
동시에 밝은 부분이라 말할 수 있는 ‘황실 전속 기관’의 실질적인 주인.
어떻게 보아도 ‘황위 계승권’에 중요한 키가 될 그가 황족 중 한 명에게 밉보인다면 그를 필두로 ‘여명회’와 관계된 모든 것이 뿌리째 뽑힐 위험이 있다.
‘그 안에 나도 있고.’
칼 위에서 춤을 추는 듯,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지라 오늘 아침도 눈을 뜰 때 두려움에 벌벌 떨며 일어났던 라즈롯이었다.
비록, 자기 한 몸을 지키기 위해 검술을 단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 개미가 태산에 거스를 수 있겠는가.
“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감은 눈’의 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즈롯은 갑작스레 안으로 들어선 낯익은 얼굴에 당황했다.
“핀텔 경.”
여명회의 아크 비숍인 핀텔 오브라딘. 그가 웬일로 ‘감은 눈’의 막사에 온 것이다.
처음엔 당황했으나, 그의 얼굴을 보자 금세 이유를 알아챘다.
“유리안 경은 계시나?”
역시나. 라즈롯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이십니다. 아마, 조금만 기다리시면 다시 돌아오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 그럼 기다리도록 하지.”
그리 말하며, 핀텔은 팔짱을 끼더니 근엄한 얼굴로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유리안의 개인적인 집무실에서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으나, 본인이 그걸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거북한데.’
그런 핀텔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라즈롯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상, ‘엘레노아’와 ‘에이든’ 사이에서 밀정 노릇을 했었기에 ‘핀텔’과는 연이 없었던 라즈롯이다.
그가 비숍이었을 때부터 그저, 성질이 더러운 ‘비숍’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그게 딱 걸맞은 평가였다. ‘유리안’과 엮이기 전만 해도, 핀텔은 성질이 더럽기만한 귀족이었으니 말이다.
“라즈롯.”
“예, 옛!”
핀텔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라즈롯은 화들짝 놀랐다.
속으로 그의 험담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켰는 줄 알고 말이다.
“이 인원들 중에서 실력이 괜찮은 몬시뇰이 있나?”
핀텔은 품속에서 명단을 꺼내더니, 라즈롯에게 보여주었다.
모두 ‘몬시뇰’이었으며, ‘테넬론’이 여명회를 지휘하고 있었던 시절이라면 ‘비숍’에 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자들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유리안 경의 사병 친위대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니, 실력이 있는 자들로 구성하고 싶은데 내가 안목이 부족해서 말이다.”
아.
그의 물음에 핀텔이 이 자리에 찾아온 이유가 나름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유리안 경의 사병 친위대’는 ‘땅거미’를 의미할 것이다. ‘유리안’을 만나려는 이유는 ‘땅거미’로 점찍어둔 인물들 중 괜찮은 이를 뽑아달라고 묻기 위함이겠지.
잠시 동안 명단을 훑어보며 할 말을 신중히 고르던 라즈롯이 이내 결심을 굳히곤 말했다.
“……핀텔 경, 외람된 말씀이지만 땅거미와 같은 특수한 집단은 실력보단 충성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
라즈롯은 자기가 생각하던 것을 핀텔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보여주신 인원들의 무력은 저는 넘볼 수 없는 강자들이지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유리안 경을 이용할 녀석들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는 건?”
“차라리, 말단 단원들을 등용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들 중에서도 원석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다시 한번, 핀텔은 탄식을 흘렸다.
“그 말도 맞군.”
그 탄식과도 같은 말을 언짢음이라 느낀 라즈롯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제, 제가 하기엔 과분한 간언이었습니다. 핀텔 경께서 생각하신 대로 진행하셔도…….”
“아니,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핀텔은 가져온 명단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방향성을 바꿀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한 차례 중얼거린 핀텔은 다시금 라즈롯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최근 황실의 움직임은 어떠냐.”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라도 했는지, 핀텔은 순식간에 주제를 바꾸었다.
그의 물음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있다. 아무래도 ‘황실 계승권’과 ‘제 4황자’의 행보 때문이겠지.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황족분들의 행동 모두가 비서실에서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거야 다행이군. 핀텔은 조용히 그런 말을 덧붙였다.
“하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다. 율시스 저하께서 어떠한 행동도 없는 것을 보니, 수감되었던 유리안 경이 빠져나왔더라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아 하시는 것일 수도 있지.”
핀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수감되었던 유리안이 칼드락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상태다.
‘황족을 모욕하고, 그의 얼굴에 상해를 입힌 것.’
그것이 유리안이 저지른 만행이라고, 보고서를 통해 본 적이 있던 라즈롯이었기에 율시스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였다.
“실례합니다.”
인적이 드문 ‘감은 눈’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감은 눈’의 대원인가, 그게 아니면 이번에도 ‘여명회’의 일원인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손님의 얼굴을 보자 라즈롯의 시선엔 ‘로얄 나이츠’의 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도 아는 자다.
우르하르 폰 아이너.
황제, 황족들의 친위대인 ‘천수군’의 수장들이자 현재는 ‘율시스’의 수족이 된 자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우르하르의 등장에 라즈롯은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