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273)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273화(273/300)
273화. 위기의식(1)
우르하르의 턱 밑으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 내려왔다.
매장되었던 키쿠바드는 살아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살아 돌아온 그가 던진 말은 우르하르의 목에 검을 들이민 것과 같았다.
“내가 몇 번째 검은 기사건, 해줄 말은 없어.”
긴장을 투기로 바꿔 우르하르는 입을 열었다.
진짜 ‘검은 기사’건, ‘검은 기사’를 사칭하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율시스를 거역하는 행위다.
키쿠바드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에서 처형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율시스’에게 알려 자신을 처형장으로 끌고 가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끌끌, 그 비밀을 지키는 게 목숨보다 중요한가?”
키쿠바드의 물음에 우르하르는 생각했다.
누가 ‘진짜’건 말할 생각도 없거니와 여기서 ‘검은 기사’를 배신하는 말을 내뱉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기로 했다.”
상처가 욱신거리나, ‘오러’를 사용한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그런 확신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그래?”
키쿠바드가 우르하르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흐르는 침묵.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은 분위기가 방안에서 흘렀고, 우르하르는 언제 검을 뽑아도 이상하지 않게 자세를 잡았다.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야겠구먼.”
하나, 예상과는 달리 키쿠바드는 ‘검은 기사’에 대한 안건을 여기서 끝내기로 한 모양이다.
왜? 그런 의문이 피어오르던 찰나, 키쿠바드는 ‘퇴직서’를 우르하르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역시 반려하지. 우르하르, 자네처럼 제국을 생각하는 사람이 남아야 이 망해가는 나라가 그나마 구실을 하지 않겠나?”
끌끌거리며, 간신과도 같은 웃음을 흘렸으나 키쿠바드가 내뱉은 말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그 간극에 우르하르는 키쿠바드를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지하에선 세상이 망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말하더니.”
“음? 그렇게까지 정신 나간 녀석이라고 생각했나?”
풀고른의 저택. 그때 나누던 대화를 꺼내는 것만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시인하는 것이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우르하르는 의문을 해소하기로 결심했다.
“응.”
“……그렇게 보이다니, 흠.”
키쿠바드는 턱을 한 번 쓸어 넘겼다.
“내 조국이 망하는 것이 상관없다니, 그건 정신 나간 머저리나 제 4황자 같은 마마보이나 할 법한 생각이지 않은가?”
“무, 무슨……!”
“진정하게. 어차피 너와 나, 둘밖에 듣는 귀가 없는 곳이니 말이야.”
휘둘리는 기분이 들어, 우르하르는 헛기침을 하더니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런 사람이 왜 율시스 저하를 돕고 있는 거지?”
뚝.
순간, 분위기가 가라앉는 게 아닌 심해로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분위기의 시작점이 키쿠바드라는 것을 우르하르는 금방 알아챘다.
“그야, 증명하기 위해서지.”
증명?
물어보려고 했으나,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검의 길을 걷는 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싶지. 이 일탈은 그걸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어디에 증명을 하겠다고…….”
“세상에!”
말을 나눌수록, 우르하르는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적으로 돌려서라도, 내 검 하나로 이 위기를 타파한다면 내가 세상을 꺾은 셈이 되겠지.”
평소 키쿠바드와 그리 많은 말을 섞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 사심을 털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게 다행이었다. 이렇게까지 정신 나간 생각을 하는 사람일 줄이야.
“본래 제국 제일검을 꺾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지만, 어쩌겠나? 그자는 죽어버렸는데.”
제국 제일검.
그게 ‘검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그의 눈 아래 깊게 팬 주름들은 ‘로얄 나이츠’로서 무수히 많은 재판과 처형의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눈빛은 어둡고 짙은 그늘을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엔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길 같은 광기가 번뜩였다.
“최근, 그 제국 제일검과 흡사한 녀석을 만났지 뭐냐.”
키쿠바드는 자신의 검술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제국의 신민들을 제거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살기가 검집을 타고 흘렀다.
“그래서, 네놈을 살려주는 거야 우르하르.”
키쿠바드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네가 살아서, 검은 기사에게 정보를 넘겨줘야 내게 도달하지 않겠나?”
입가에 슬며시 번진 미소는 그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살아서, 새로운 검성. 새로운 제국 제일검이 탄생하는 걸 지켜봐야 하니 말이야.”
***
혹시 모를 ‘대지 오염’을 위한 의식장. 그곳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선, 장비가 필요하다기보다는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문제다.
그것도 많은 발품을.
최대한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기 위해선 혼자의 힘으로는 힘들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핀텔을 호출했다. 돌아간 직후 다시금 호출하는 셈이 된 것이라 조금 미안했지만 녀석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다면, 저! 유리안 경의 충신 핀텔이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 내 생각을 말하고, 사람들을 풀어 조사해야 한다 하자 갑작스레 핀텔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큰소리로 자기주장을 펼쳤다.
충신이라니, 언제부터 그런 거추장스러운 게 필요한 입장이 되었냐 난.
“말해주십쇼, 핀텔 경.”
“예! 유리안 경께선 제도 내부를 샅샅이 뒤질 사람이 필요하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결성된 유리안 경의 친위대인 ‘땅거미’를 이용해보시는 것이……!”
“안 됩니다.”
역시, 이 녀석에게 상담하는 게 아니었다. 난 호들갑을 떠는 핀텔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왜, 왜……!?”
“일전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감은 눈’은 친위대와 같은 사병 조직을 결성할 수 없습니다.”
‘신 여명회’의 우두머리에 서지 않으려는 것은 눈에 띄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있지만, ‘감은 눈’의 규율에서 어긋나기에 그런 것도 없잖아 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해야 할 일이 맞지 않습니까? 아크 비숍 핀텔.”
“그,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해야 할 용무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지요. 최근 조직된 ‘신 여명회’는 여러모로 ‘아크 비숍’의 손길이 필요할 시기니까요.”
“정론…… 이십니다.”
한 차례, 불이 붙어서 언성을 높이던 핀텔은 내 말에 점차 주눅 들기 시작했다.
“현재 신 여명회에선 핀텔 경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신뢰하는 핀텔, 당신이 중심을 잡지 않는다면 누가 신 여명회의 기둥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잘 해보려고 생각해서 내뱉은 말이었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괜스레 주눅든 모습이 보기 싫어졌다.
“그, 그렇습니까?”
“예, 핀텔 경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아크 비숍들은 핀텔 경만큼 주도적이진 않으니 말입니다.”
확실히 핀텔은 도움이 된다. 녀석이 활개를 치는 바람에 골치 아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
심지어, ‘신 여명회’를 장악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으니 어찌 내칠 수 있겠는가.
“오오……!”
핀텔은 내가 한 말을 듣더니, 주먹을 파르르 떨고 존경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조울증이냐, 감정이 왜 이렇게 급격하게 변해.
“그렇다면, 페른 경이나 다른 교단원들에게 수소문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옆에선 라즈롯이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에선 머리가 많을수록 좋다. 그 생각을 반영해 라즈롯도 불러둔 상태였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
라즈롯의 말에 핀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은 그게 가장 쉬운 수단이겠지.
‘일단은 그렇게 할까?’
그리 생각하며, 난 다시 한번 핀텔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땅거미’를 사용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감정이 핀텔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맺혀있었다.
***
크라이파트 가문의 삼남, 헤란드는 가주인 아버지의 호출해 저택을 찾았다.
그가 어릴 적 뛰어놀던 그 정원의 나무들은 여전히 우람한 모습으로 그를 맞이했고, 석조로 된 큰 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에게 스며든 것은 아련한 추억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의 무게였다.
‘……으윽.’
현재 가문의 원로였던 ‘오른 크라이파트’는 모종의 이유로 북부로 쫓겨난 상태다.
그의 공백은 제국 사대가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크라이파트 가문’의 현 상황을 좀 먹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헤란드는 아버지 오벤이 자신을 호출한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챘다.
“부르셨습니까 아버지?”
어정쩡한 자세로 응접실에 들어서자, 오벤이 그를 맞이했다. 곁에선 노기사 에하르크가 헤란드를 향해 목례를 올렸다.
“너를 부른 이유가 있다,”
오벤이 말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게감이 있었다.
“이 가문의 미래를 생각할 때, 이제 네가 나를 이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이런 말을 꺼낼 것이라고 헤란드는 예상하고 있었다.
‘가주’의 자리를 자신에게 넘기고, ‘오른’으로 인해 공석이 된 ‘귀족 의회’의 의장직을 오벤이 가져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생각이라고.
‘본래라면…… 두 명의 형님들 중 한 명이 이어받아야 하지만.’
세간에선 이런 말이 있다. 과거, 제국의 역사와 함께 영광을 쌓아 올린 크라이파트 가문은 외세나 내부 정세로 몰락하는 것이 아닌 자식 농사를 실패하는 바람에 망할 것이라고.
그런 소문이 떠돌 만큼, 가주인 오벤이 낳은 첫째와 둘째는 엉망이었다.
곱추와 알코올 중독자.
어느 쪽이건, ‘가주’의 자리를 잇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 저에겐 너무 막중한 일입니다 아버지.”
하나, 헤란드는 주제 파악에 능했다.
겁쟁이에 검술도 못하며, 리더쉽도 없는 자신은 누군가의 머리 위에 설 수 없다. ‘귀족’이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축복받은 태생 덕분에 얻은 자리일 뿐.
절대 열등감에서 비롯된 어두운 생각 따위가 아니다. 헤란드는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차라리, 요슈아에게 맡기는 편이 더……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요슈아는 너무 어려. 너도 알지 않느냐?”
오벤의 정론에 헤란드는 입을 꾹 다물었다.
“크라이파트 가문을 위해서 1년 만이라도 좋으니, 가주의 자리를 맡아줄 수 없겠느냐?”
힘으로 밀어붙여도 되건만, 간청하는 오벤의 태도에 헤란드는 움찔했다. 그런 그의 뇌리에 한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유리안은 어떻겠습니까?”
이미, 가문 회의에서 ‘유리안’에 대한 가문원들의 생각을 들은 적이 있다.
의외로 크라이파트 가문원들의 ‘유리안’에 대한 반발은 크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황족들만 내릴 수 있는 훈장과 함께 그와 큰 인연이 있는 ‘칼드락’이 제도로 귀환했으니.
“혀, 현 상황에선 유리안이 가주를 맡는 편이 가문을 위한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헤란드의 말투엔 약간의 불안이 서려 있었으나, 동시에 단호함이 느껴졌다.
그것을 본 오벤은 잠시 당황한 듯 멈추어 서서 아들을 바라보았다.
오벤은 헤란드가 거절할 줄 몰랐다. 다만, 그의 눈빛은 점점 부드러워졌고, 입가에 이해하는 미소가 번졌다.
“정말로 유리안은 가문의 일원으로 수용하고 싶은 게로구나.”
‘가주’가 된다면, 아무리 ‘프라손’이라는 멸칭이 있어도 그를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헤란드는 그 점을 노렸다.
“가, 가족이잖습니까.”
오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번 건은 네게 부탁하마.”
아버지의 말에 헤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안과 쉽사리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오벤이었기에 그의 상황을 이해해준 것이다.
“헤란드.”
자리를 일어나려던 헤란드였으나, 오벤이 불러 잠깐 멈춰 섰다.
“난 아버지, 오른 경과는 생각이 달랐다.”
“예?”
“내가 낳은 아들 중에선 네가 가주의 자리를 제일 잘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 하하…….”
오벤의 낯간지러운 말에 헤란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가문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두 세대의 이해와 존중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