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299)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299화(299/300)
299화. 유리안(2)
‘검은 기사’가 나타나자, 소란스럽던 알현실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명성과 제 1문에서 벌어진 일을 정리해준 덕분에 모든 신민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무릎을 꿇으며, 경배하는 이들도 있었다. 신화 속에서만 등장하던 ‘영웅’의 현현(顯現)은 그들의 심금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검은 기사라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핀텔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탈력감과 상처로 인해 온몸이 욱신거렸으나, ‘검은 기사’가 등장하자 그것들은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기사는…… 분명, 유리안 경이었을 터인데!?’
핀텔은 바로 옆에 서 있는 유리안을 쳐다보았다. 고고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유리안. 그는 ‘검은 기사’가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따위 내비치지 않았다.
“거, 검은 기사께서 나타나셨다!”
“우리를 대신해서 유리안을 처단하시려고 나타나신 게 분명해!”
“검은 기사!”
“검은 기사!”
모두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신민들의 환호를 등에 진 채, ‘검은 기사’는 천천히 핀텔 쪽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자신들을 처단하려고 나타난 것일까? 애초에 ‘처단’이라는 말도 어이없게 들리는 상황이었지만, 핀텔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 어서 저자를 죽여라 검은……!”
“웃기지도 않는군.”
어떤 귀족의 외침. 그것을 끊으며, 조용히 걸어오던 ‘검은 기사’는 입을 열었다.
“뭐, 뭐!?”
“너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뭐냐?”
자신에게 향하던 검은 기사가 갑자기 발을 돌려, 군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모습에 핀텔이 움찔했으나, 이내 진정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범인을 찾는 게냐? 그게 아니면, 소란을 뒤집어쓸 누군가를 찾는 게냐?”
“그, 그게 무슨 소리……!”
“유리안은 이번 소, 소소…….”
크흠.
‘검은 기사’는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유리안은 이번 소란의 범인이 아니다. 이번 소란의 범인은 제 4황자.”
말을 하며, 시선을 돌린 검은 기사는 죽은 마왕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마왕’이 되었던 탓에 데몬의 흔적이 잔뜩 남아 인간이라고 분별하긴 어려웠으나 얼굴의 윤곽만큼은 제 4황자 ‘율시스’가 분명했다.
“율시스 저…… 율시스의 소행이다.”
‘검은 기사’의 발언에 주변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제 4황자가 범인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어떻게 율시스 저하가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거냐!”
“너, 너도 유리안과 한패였구나!”
귀족들이 검은 기사를 손가락질하더니,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곤, 주변을 한 차례 두리번거리더니 다른 이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 녀석을 끌어내지 않고!”
검은 기사를 끌어내리라 외치는 귀족들. 하지만, 아까처럼 황군과 기사들, 신민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오히려, 검은 기사가 내뱉은 말을 믿기 시작하는 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유리안’이란 이름에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난 알지 못한다만.”
한 차례, 뜸을 들인 검은 기사는 다시금 말했다.
“이번 사태에서 그가 없었더라면, 제국은 멸망할 수도 있었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웅성웅성.
검은 기사의 말에 군중들의 소란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거짓말하지 마라!”
“지금 네놈들끼리 짜고,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
울분을 토하며, 말하던 귀족들은 싸늘한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끼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검은 기사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검은 기사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어.”
흉흉했던 공기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직도, ‘유리안’을 처리하지 못해 아쉬운 귀족들은 분을 삭이지 못해 몸을 부르르 떨었으나,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신민들에게 ‘검은 기사’는 불가침의 성역이다. 그런 그의 말을 정면에서 반박했다간, 후폭풍을 맞이하는 것은 되려 자신이라고.
“일이…… 어떻게든 일단락된 것 같습니다 유리안 경.”
“그래보이는군요.”
핀텔은 유리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여전히 달관한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마왕’과 관련된 소란이 끝나기는 했다만, 황궁은 해결해야 할 큰 난제 하나가 남아있었다.
제국 권력의 금자탑인 아드라탄 황제와 황자의 죽음. 그것을 세간에 밝히고, 그로 인한 여파를 어떻게든 줄였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로 인해, 비서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그렇군. 그런 일이…….”
당연히도, 비서실장인 세든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인다. 이런저런 서류를 뒤지며, 확인을 하던 그는 안경을 겨우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알현실에서 있었던 일은 잘 알았네. 이 모든 게 율시스 저하가 꾸민 일이라는 것도.”
세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녀석의 눈가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밤이 깊을 때까지 사람들을 부르며, 심문했으니 이럴 법도 하지.
“자네는 지친 구석이 안 보이는군.”
“뭘, 저도 꽤나 지쳤습니다 세든 경.”
“그래?”
잠시 안경을 벗은 세든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두 눈을 지그시 눌렀다.
“이만 돌아가도 되네. 자네에게 들은 건 별로 없으니 말이야.”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세든은 두 눈을 누르며 대답했다.
“이런 말을 내가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알고 있네. 세간에 떠도는 악명과 달리, 자네는 제국에 해가 될 법한 일은 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담고 이야기하는 세든.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살짝 난색을 표했다.
‘……그런가?’
하지만, 좋게 봐주고 있으니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세든에게 감사 인사를 표한 뒤, 난 비서실을 빠져나왔다.
밤이 된 황궁의 풍경이 날 맞이하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 시간에 ‘황궁’을 본 경험은 잔뜩 있지만, 이렇게나 초토화가 된 풍경은 처음이다.
‘게임 속에선 여러 번 있었지만.’
역시, 현실이 되니 새로울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유리안 경!”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핀텔이 마중을 나왔다. ‘땅거미’인 림 하사르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괜찮으십니까? 혹시나, 비서실에서 불경한 짓을 저지르지는…….”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핀텔 경?”
“예? 아 예……!”
“림 하사르 경은?”
림 하사르와 함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땅거미’들을 살펴보았다. 상처가 있기는 했지만, 거동이 불편하지는 않아 보였다.
“오늘 하루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들 피곤하실 테니, 돌아가시는 게 좋아 보이는군요.”
“저희가 저택까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핀텔이 호위를 해준다고 했으나, 다른 땅거미 대원들보다 상처가 많은 그였다.
비틀거리는 그를 보며, 나는 말했다.
“땅거미 여러분들은 핀텔 경을 호위해주십쇼. 저는 혼자 돌아갈 터이니.”
지금까지 기다려준 핀텔과 땅거미들에겐 매정할 수 있었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기분이다.
돌아가는 길. 싸늘한 밤공기를 몸으로 맞으며, 난 생각했다.
‘앞으로는 어쩌지?’
마왕도 죽였고, ‘마신의 뿔’도 밀레나의 도움으로 소멸시켰다.
아직 ‘마신 바르바토스’의 유해가 남아있으니 데몬이 사라지진 않겠으나, 이전처럼 다량의 데몬들이 출몰하지는 않을 터.
로젠다 대륙은 평화로워졌다는 소리이며, 즉.
‘검성은 필요 없어졌다는 소리지.’
생각대로, ‘마왕’이 힘을 잃자 ‘검성’ 특성도 사라졌다. 더 이상, 이 세상이 ‘검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 생각에 조금은 혀끝에 씁쓸함이 맴돌았다. 이 세상에 오게 된 계기와 ‘나’ 자신이 쓸모가 없어졌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것까지는 아니겠지.’
‘밀레나’와의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느꼈다. 이 세계를 제대로 마주해야만 한다. 그 탓에 ‘검성’이란 이름에도 과몰입을 하고 만 것이겠지.
‘과몰입이 뭐 어때서.’
내가 품은 생각에 혼자 반박한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내두를 때쯤,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인기척은 하늘에서 떨어졌다.
“검은 기사께서 다시 등장하셨군요.”
땅에 착지한 검은 기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후,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정체도 알고 있으면서, 굳이 그렇게 불러야겠어?”
가면을 벗자, 우르하르의 얼굴이 나타났다.
“무슨 섭섭한 소리를. 알현실 앞에서 당신은 누구보다 ‘검은 기사’이지 않으셨습니까?”
“크흠.”
우르하르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알현실에 나타난 ‘검은 기사’의 정체는 당연히도 내가 아니었다. 우르하르에게 부탁해 ‘검은 기사’의 역할을 수행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황궁에 돌입한 이유는 율시스를 죽이기 위해서다.’
아무리 율시스가 ‘마왕’이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황족은 황족이다. 그를 비호하는 수많은 율법이 있었으니, 나 또한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게 바로, ‘검은 기사’다.
필시 황실 내부엔 신민들이 몰릴 터. 그런 신민들의 눈길을 받는 상태에서 ‘검은 기사’가 내 변호를 해준다면, 아무리 황족이라고 해도 쉽사리 날 처형할 수 없을 것이다.
“설마, 거기까지 예상하고 이런 연기를 준비할 줄이야.”
우르하르의 말에 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황자의 목을 치러가는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최악의 일은 염두에 두는 편이 좋았지요.”
“……확실히.”
황자의 목을 친다.
그 말을 들은 우르하르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난 무엇을 위해, 로얄 나이츠가 되었는지.”
“그렇게나 의문이 남는다면,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일전에 사표를 내려고 했지만 역시 로얄 나이츠를 그만두는 건 좋지 않겠어.”
왜입니까?
그리 묻자, 우르하르는 어정쩡한 웃음을 지었다.
“보수가 나쁘지 않으니까.”
“속물적인 이유로군요.”
피식하고 웃자, 우르하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 짐작일 뿐이지만, 이번 일을 부탁받았을 때 깨달은 게 있어.”
그런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은 기사.”
‘검은 기사’의 정체를 알아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혹여나, 알았다고 해도 딱히 부정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르하르 정도면 진실을 알아도 되겠지.
“……검은 기사는 너무 위독해서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 거지?”
이건 또 뭔 소리야?
***
제도에서 벌어진 혼란스러운 사건의 전말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원흉이 ‘제 4황자 율시스’였다는 것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당황한 황실의 관계자들은 잔뜩 있었다. 그 유약해 보이던 제 4황자가 이런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제국 건국 이후, 이례적인 사건으로 인해 황궁의 모든 부서는 일 처리를 위해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건, ‘감은 눈’도 마찬가지였으며 ‘감은 눈’의 단장인 오드윈 발라디르도 포함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게 뭡니까?”
다크 서클이 짙은 두 눈으로 그녀는 유리안을 올려다보았다.
유리안은 평소처럼 웃음을 지었다.
“보면 모르십니까? 사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