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33)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33화(33/300)
33화. 가짜 겁쟁이(1)
내게로 향하는 테넬론의 차가운 시선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활화산처럼 뜨거운 분노가 느껴졌다.
그 덕에 방 안의 공기는 질척거릴 정도로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해주겠나?”
그런 분위기를 꿰뚫으며, 입을 연 테넬론은 가면으로 표정을 엿볼 수 없음에도 심히 못마땅해 보였다.
기대했던 ‘유리안’이 혼석을 가져오기는커녕 그것을 비서실에 낼름 갖다 바친 탓에 테넬론은 불쾌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예, 아크 비숍. 전 삼각 데몬을 죽여 얻은 혼석을 황실 비서실에 넘겨주었습니다.”
“이, 이익…… 미친 것이냐! 분명 아크 비숍께서 네놈에게 한 명령은 혼석을 가져오는 것일…….”
늘 테넬론 곁에 있던 비숍 한 명이 노발대발하며 성을 내자, 테넬론은 손을 들어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나?”
조곤조곤한 말투.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소리였으나 그의 머리 위로 희멀건 붉은 빛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붉은 색, 분노.
<부정의 색>으로 보는 상대의 감정이다.
“힘을 원하는 자네와 우리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아무 의도도 없이 그런 행동을 취했을 것 같진 않을 것 같은데?”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생각으로 황실에 혼석을 맡겼나? 대답에 따라선…….”
우웅-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넬론의 몸에서는 엄청난 오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을 상상하는 것은 내게 맡기려는 듯 말이다.
“그렇군요, 제 행동에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그런 테넬론의 비수 같은 시선을 받아내며, 난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 걸음 전진을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것이라 하겠습니다.”
최대한 차분하게.
최대한 나지막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로 말을 하자 주변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런 고요한 침묵을 깬 것은 맨 처음 내게 욕설을 퍼붓던 비숍이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던 비숍은 목청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하나라도 많은 혼석을 확보해야 하는 시점에 일을 그르친 것도 모자라, 황실에 넘겼다는 것은 명백한 배반이다!”
“비숍 핀텔.”
열변을 토하는 비숍의 이름을 읊자, 그는 흠칫했다.
아마 통성명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이름을 알고 있어서겠지.
“만약 제가 배반할 생각이었더라면 이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조금 생각이란 걸 하는 게 어떻습니까?”
“뭐, 뭣……!”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그때 책임을 물어도 되는 거니까요.”
무시당한 핀텔은 표정이 기괴하게 변하며 나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려는 찰나, 엘레노아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의 말을 막았다.
“……크흠.”
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한 차례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느껴지는 부담감에 어쩐지 갈증이 느껴졌으나 최대한 의식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제가 굳이 혼석을 황실에 제공한 이유는 그들의 정보력을 이용하기 위함입니다.”
“정보력을…… 이용한다고?”
테넬론의 의문.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불쾌함이 서려 있던 그의 목소리는 황실을 이용한다는 말에 흥미가 담기기 시작했다.
“예, 제가 황실에 건넨 혼석은 ‘공식적으로’ 발견된 삼각 데몬의 첫 심장입니다. 만약 황실에서 혼석의 잠재력과 활용법을 알아낸다면, 그때부턴 어떻게든 혼석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서서히 사라지는 테넬론의 격양된 감정.
여기까진 괜찮은 모양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혼석의 위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과연…….”
고개를 끄덕이는 테넬론.
“황실을 통해서도 혼석의 정보를 얻자는 소리로군. 확실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감사합니다.”
“게다가 그 임무는 ‘데몬 토벌의 달인’인 자네가 있는 ‘감은 눈’에 맡길 테고…….”
“그렇습니다. 더욱더 혼석을 얻는 일이 편해질 테죠.”
나의 설득력 있는 궤변에 어느 정도 납득한 테넬론을 보며 난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쉽게 넘어가 준다면 다행이지.
“하, 하지만, 아크 비숍! 아무 말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판단한 점은 처벌해야 합니다!”
내 독단적인 행동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아까부터 큰 목소리로 불만을 표출하던 핀텔이 앞으로 한 발짝 옮기며 다시금 목청을 드높였다.
저 콧수염 자식, 확 뽑아버리고 싶군.
“교구의 어떠한 명령도 없이 혼자서 판단한 이 행동은 아크 비숍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본보기를 보여 주셔야 합니다!”
“예, 당신의 말대로 저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보십쇼! 자신도 인정하는……!”
“그리고! 그것이 여명회를 위한 대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뭣?”
당황한 핀텔을 뒤로 하고, 말을 이었다.
“전 여명회의 교리를 여전히 이해 못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해할 마음도 없습니다.”
“그 무슨 망발을……!”
“하지만, 이해할 마음이 없다고 ‘이해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잠깐의 말장난.
여유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뱉고 보니 별로다.
“독단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도의 이목이 제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 이번 일을 여명회에 보고도 없이 처리한 ‘표면적인’ 이유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삼각 데몬을 단신으로 토벌한 덕에 온갖 소문이 떠돌아 다니더군요. ‘감은 눈’의 기둥, 차세대 검성, 그리고…… 영웅!”
자기 자신을 ‘영웅’이라 칭하는 오만한 말투. 그럼에도 청중(聽衆)들의 눈빛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쪽팔려.’
나뿐인가 보다. 이런 오만한 말투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그리고 태양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피룬 숲을 불태웠다는 소문도 파다하죠.”
단어 선택에 낯이 간지러운 와중, 엘레노아가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한마디는 내가 말을 이어가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
“맞습니다.”
“그게 이유가 되나요?”
“보는 눈이 많으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명회가 몰락하길 바라는 건 비단, 황실뿐만이 아니니까요.”
“누굴 말하시려는 거죠?”
“굳이 제 입을 빌릴 필요는 없겠죠.”
한창 연설하듯 떠벌리던 입을 멈춘 난 시선을 테넬론에게로 옮겼다.
“아크 비숍께서도 이름을 아시는 분일 겁니다.”
“나와 말인가?”
“예, 그리고…… 저와 아주 친밀하신, 아니 친밀했던 분이시죠.”
이제는 청산한 과거라는 듯.
과거형으로 말을 하자 테넬론은 고개를 숙여 잠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짧은 신음과 함께 고개를 든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알다마다. 으드득. 곱씹어 되새겨봐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마치 심한 통증을 견디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으로 가면을 쓸어내린 테넬론.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내 얼굴을 이 꼴로 만든 장본인…… 검성, 하이든 라이히……!”
“예, 제 스승님께선 아직도 당신을 추적하고 계십니다.”
“나도 알고 있다.”
“또 제가 여명회 소속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계시죠.”
짐작일 뿐이지만, 난 그것이 사실인 마냥 떠벌렸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 그리고 이용할 것은 테넬론이 ‘검성’에게 표출하는 맹렬한 증오심. 그것뿐이다.
“그런 상태에서 삼각 데몬을 토벌하고도 전리품이 없다? 그럼 그들의 의심은 더욱 커질 터. 그렇기에 제 독단으로 혼석을 황실 비서실에 넘겨준 겁니다.”
내 꼬리가 잡힌다면, 여명회도 위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말을 덧붙이고 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 그 빌어먹을 검성은 자신의 제자였던 유리안, 자네까지 의심하고 있나 보군.”
잠시 고민을 하던 테넬론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나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의 큼지막한 체구 탓에 순간 흠칫할 뻔했으나 다행히도 당황하진 않았다.
“인정머리가 없는 녀석이지. 그딴 걸 검성이라 치켜세우며, 영웅이라 부르는 민중의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어!”
끓어오르는 분노.
활화산과도 같은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테넬론은 내게 악수를 청했다.
맞잡은 그의 오른손엔 힘을 잔뜩 실려 있었다.
아플 정도로 강한 힘은 아니다.
오히려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건 강한 신뢰였다.
그런 테넬론의 행동을 보니, 왜 이 녀석이 ‘유리안’에게 강한 신뢰를 보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검성 피해자 모임이로군.’
그는 유리안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하이든 라이히’에게 당한 인물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수정할 필요는 없겠지.
“유리안. 이제야 자네가 여명회에 들어온 이유가 명확하게 보이는군.”
그제서야 의심이 풀린 테넬론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주 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난 빙그레 웃었다.
그거 잘못 보고 있는 거야 임마.
***
혼석을 황실 측에 넘김으로써 ‘마신 바르바토스’를 되살린다는 여명회의 대의는 뒤로 미루어졌다.
그렇다고 잠재적인 위협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명회는 여전히 혼석을 원하고 있으며, 그런 여명회를 검성과 황실이 추적하고 있다.
‘나는 그 여명회의 소속이고…….’
동시에 황실전속기관인 ‘감은 눈’이기도 하지. 그렇기에 혼석을 넘긴 일로 모든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란 소리다.
똑똑──!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슬쩍 누르자, 누군가가 집무실 문에 노크를 한다.
“예,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온 건 멋쩍은 웃음을 짓는 견습 라즈롯이다.
“비, 비서실에서부터 내려온 공문입니다.”
“거기에 놔주시겠습니까?”
“네, 넵!”
바짝 긴장한 태도로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라즈롯.
잠자코,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평소보다 더 굳은 얼굴이 되었다.
“그…… 무,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유리안 경? 아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라즈롯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곳에서 업무를 보는 게 어렵지는 않습니까? 힘든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히, 힘든 일은 전혀 없습니다. 비록, 견습이지만 황실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제게 큰 영광입니다!”
“그렇습니까?”
난 깍지를 낀 양손에 턱을 괸 뒤, 넌지시 물었다.
“그럼 다른 쪽의 일은 어떻습니까? 그쪽 일에는 난항이 없으신지요?”
“다, 다른 쪽의 일……? 무슨 소리십니까?”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직감했는지, 라즈롯의 머리 위로 ‘공포’의 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라즈롯 군은 ‘감은 눈’의 견습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비서실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걸로 보이는군요.”
“예…… 오드윈 단장님과 다른 대원들은 바쁜지라 제가 대신 비서실의 연락을…….”
“그리고, 우연일 수도 있지만 제가 혼석을 갖다주던 날에도 비서실에 계시더군요.”
“그, 그렇네요.”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색으로 읽어낼 수 있는 특성이 바로 <부정의 색>이다. 물론, 눈앞의 라즈롯이 품고 있는 색은 단색(單色).
이런 감정의 색은 지금까지 목도(目睹)해온 것인지라 특별하다 할 것까진 아니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네?”
그렇지만 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비서실에 혼석을 가져간 날.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라즈롯의 머리 위로 피어오르던 감정의 색을.
그것은 지금까지 보던 일색(一色)이 아닌, ‘당혹’을 상징하는 주황과 ‘의문’을 상징하는 회색. 그 두 개를 품은 이색(二色)이다.
“저는 당신 앞에서 ‘혼석’이란 명칭을 처음 꺼냈단 사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