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6)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6화(6/300)
6화. 적응(1)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저택으로 돌아오자 사용인들이 마중을 나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입던 코트를 벗어주자 헐레벌떡 다가와 양손으로 받았다.
“저녁이 늦으셨는데, 준비할까요?”
“아뇨, 저녁은 됐습니다.”
“예? 아…… 알겠습니다.”
신기하게 저녁을 먹지 않았음에도 배는 그리 고프지 않았다. 심지어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유리안’의 단련된 육체는 평범을 넘어선 탓이겠지.
대한민국 평범한 남성이었던 때와 비교하자면 천지 차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난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잠을 자고 싶은 마음도, 뭘 먹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나 생각할 것들은 잔뜩 있었다.
먼저 오늘 ‘원로회가 보여준 행보’에 대해서다.
“저를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헤란드 형님을 보낸 건 알고 있었지만…….”
허리춤에 매어둔 검을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금속이 닿는 짤그락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설마, 입단 테스트에도 원로회의 입김이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군요…… 군요, 군요! 젠장입니다!”
혼잣말도 존댓말로 치환하지 말란 말이야.
입을 손으로 한 대 툭 쳤다.
슬슬 적응할 법도 했지만, 여전히 이 거지 같은 존댓말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적어도 혼잣말은 평범하게 나와도 상관없잖아.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쉬고 하던 생각을 재개했다.
원로회를 장악한 크라이파크 가문이 날 내치려고 하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유리안의 이전 행보는 가문의 눈살을 찌푸리기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그 속내를 드러낼 줄이야.
몇 번이나 말했지만, 지금 가문에서 쫓겨나면 큰일이다.
‘유리안’이란 아성(牙城)에 금이 가는 순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되어선 곤란하지.’
가뜩이나 보는 눈이 많다.
오늘 보았던 ‘아일린 드 도나시엥’을 포함해서 제국 내에 유리안에게 원한을 품은 자가 지천에 넘쳐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크라이파트 가문’에 관한 일까지 생각할 정도로 여건이 좋진 못하다. 최대한 미루고 나중에 도모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 넘어갈 수 있을까?
‘적어도 입단 테스트. 그 조건을 조금 손봐두는 편이 좋겠네.’
‘감은 눈’ 소속인 이상 앞으로도 입단 테스트 교관 노릇은 몇 번 정도는 할 터.
적어도 이것만큼은 조치 취하는 게 좋을 듯했다.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는 건 곤란하니까.
“내일 테스트 결과를 보고하면서 이야기를 좀 해야겠군요.”
생각을 정리한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검집을 쳐다보았다.
‘유리안’이라는 인물을 구성할 때, 그 뼈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물건.
그가 표출하는 자존심과 자만심은 이 ‘검’을 다루는 실력인 검술에서 온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무력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든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도 적을 많이 만들어도 목이 붙어있는 거지.
‘나도 그런 힘이 있어야 한다.’
다른 이들을 억제할 강력한 무력.
나는 검의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그립감을 늘리기 위해 덧댄 가죽 위로 금속의 딱딱함과 서늘함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입단 테스트에서도 검을 손에 잡긴 했으나 그땐 입단 희망자들을 겁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도구였다.
‘심지어 발검(拔劍)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이번이 처음으로 검을 뽑는 거였다.
묘한 긴장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스르릉─
금속과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도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뽐내는 검의 자태는 실로 요사스러웠다. 마치 자신을 휘둘러 달라는 듯 간청하는 것 같았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도구인데, 그런 느낌이 들다니.
어쩐지 간담이 서늘했지만 동시에…….
“미려하군요.”
달빛을 은은하게 반사하는 도신은 실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어떻게 검을 휘둘러야 하는지 그 길이 보였다.
검로(劍路)라고 할까? 그런 것이 말이다.
‘이거 때문이겠지.’
이유는 대강 알고 있다.
유리안이 보유하고 있는 특성 때문이겠지.
▶ 특성, 「 타고난 검사 」
등급 : 고유
▷ 당신은 태어났을 때부터 검에 익숙합니다. 검의 길을 걷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 ‘검’의 형태를 한 것이라면 종류에 불문하고 뭐든 다룰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마왕을 죽입시다>에서 등장하는 네임드 검사 캐릭터들의 고유 특성.
이를 지닌 캐릭터들은 어렸을 때부터 검술에 두각을 드러내는 편이다.
당연히 검성 하이든 라이히의 눈에 띌 정도였던 유리안도 ‘타고난 검사’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휙─!
눈에 보이는 검로(劍路)를 따라 검을 휘두르자 서늘한 소리가 밤공기를 울렸다.
“이거론 부족합니다.”
유리안의 검술 실력은 뛰어났지만, 이 정도 수준은 제국에 넘쳐흘렀다.
당장 생각나는 네임드 캐릭터만 해도 검성 하이든 라이히를 포함하면 수십 명.
더 나아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까지 생각하면 수백 명에 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리적인 사고를 지닌 녀석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웬만한 캐릭터들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특출난 강점이 있었기 때문.
바로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한 눈과 ‘오러’에 대한 압도적인 이해도 덕이다.
“오러를 다루기 위해선 마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난 가만히 서서, 심장에 존재하는 ‘마나’라는 요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유리안의 몸을 가지고 있다.
기억이 없다고는 해도 녀석이 이루었던 모든 것들은 이 몸에 저장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이걸 되살릴 수만 있다면 오러를 다루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그런 단순한 사고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설정으로만 알던 ‘마나’를 이리도 쉽게 느낄 수 있을 줄 상상도 못 했으나, 어찌 보면 이게 ‘유리안’이 가진 재능이겠지.
‘마나를 이렇게 쉽게 느낄 줄이야. 그럼 그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욕심이 생겼다.
‘마나’를 이리도 쉽게 느낄 수 있다면 유리안이 사용했던 특기도 쉽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유리안의 특기, 월광검(月光劍).
본래 무기에 오러를 휘감으면 날 테두리에 은은한 빛만을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리안의 오러는 달랐다.
날의 테두리만이 아닌 도신 그 자체가 푸르스름하게 빛을 띄웠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경의와 공포를 담아 ‘월광검’이라 불렀다.
그 모습이 마치 달빛을 머금은 것과 같아서 말이다.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어차피 ‘유리안’이라면 갖춰야 할 무기 중 하나.
그렇다면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거다.
어디까지 가능한지 가늠이 돼야 대책을 마련하든 할 테니까.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증명해 보여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눈을 감고, 다시금 체내에 마나가 집중된 심장에 집중했다.
<지금부터 마왕을 죽입시다>의 설정을 꿰고 있는 난 당연히 ‘오러’라는 녀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심장에 저장된 마나를 체내 마나 기관인 ‘마나혈’로 운반하면 된다.
물론 말로만 설명하면 쉬워 보인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식물인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자칫 잘못해 마나가 마나혈로 가지 못하고 역류하면 그대로 뇌를 포함한 주요 장기를 망가뜨려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할까. 그러니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체내에 존재하는 마나혈은 총 38개.
거대한 강줄기와 같은 ‘대혈맥’ 6개.
조그마한 시냇물과 같은 ‘소혈맥’이 32개.
이중 ‘오러’라고 부르기 위해 활성화해야 하는 것은 심장과 머리의 대혈맥인 ‘개문’과 심장에서 머리로 이어지는 ‘휴문’.
‘줄줄 꿰고 있는 설정이긴 한데 말이지…….’
이론은 잘 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다고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마나혈’을 활성화하는 데는 큰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그렇기에 덜컥 겁이 났다.
나도 오러를 활성화하다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던 자들처럼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그렇지만…….
‘몸이 알려주고 있어.’
유리안의 몸이 내게 ‘오러’에 대한 감각을 속삭여주고 있었다.
그 덕에 나와 이 몸 사이에는 모종의 연결 고리가 생겼다.
머리는 ‘이론’을.
몸은 ‘실전’을.
이미 시도하기 전부터 완성되어 있었다.
굳이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던 거다.
나는 숨을 들이마신 뒤, 대혈맥인 ‘개문’과 ‘휴문’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마나가 타고 흐르는 기묘한 감각은 실로 생소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곧 전신에 알 수 없는 힘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마나에 의한 신체 강화.’
이것 또한 ‘오러’의 일부.
그러나 유리안의 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전매특허라고 불러도 좋을 무기, ‘월광검(月光劍)’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집중하자.’
다시금 눈을 감은 난 양손으로 검을 잡고 감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크윽…….”
마나혈 때와는 달리 ‘검’에 집중하자, 마나가 거부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혈’은 어디까지나 내 신체의 일부지만 검은 내 육신의 일부도 아닐뿐더러 유기물도 아니다.
다른 매질로 마나를 옮기는 건 생각 이상의 반발을 수반하는 작업이었다.
근데 잘도 이런 작업을 아무렇지 않게 하네.
그래서 괴물, 강자 등으로 불리는 거겠지만.
그렇게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기를 잠시.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함이 찾아왔다.
드디어 안정화된 것인가.
난 천천히 눈을 떴다.
“……월광검.”
⇒ 새로운 특성, 「월광검 : 미완성」을 습득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청아한 푸른빛의 도신.
‘달빛을 머금었다.’라는 표현이 허풍이 아니기라도 한 듯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두말할 것 없는 유리안의 월광검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데몬들의 목을 날려버린 예리함의 결정체이자 유리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비기.
걱정한 거에 비해 구현은 쉽게 성공했다.
단지 문제가 하나 있다면…….
“초승달입니까?”
그 ‘월광검’으로 변한 면적이 실로 작았다.
보름달보다는 가느다란 초승달이 뜬 것 같은 밝기였다.
“하하, 이런…….”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진짜 ‘월광검’에는 못 미칠지라도 이로써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증명했다.
게다가 1일 차다.
애초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는 건 자만이다.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군요……. 군요, 군요! 이 빌어먹을 주둥아리…… 대체 언제까지 지랄할 겁니까!?”
철썩! 참지 못한 나는 손바닥으로 입술을 한 대 후려쳤다.
이놈의 주둥아리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