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64)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64화(64/300)
64화. 일촉즉발(1)
“고생하셨습니다. 베이런. 이제 다시 들어가시죠?”
“수고하셨습니다, 유리안 경. 근데……, 이번 일도 있고, 어떻게 감형이나…….”
쓸데없는 말을 하는 베이런을 다시 수감 시킨 뒤, 감옥을 지키던 경비병들에게 경례를 받은 난 황궁을 빠져나왔다.
그 과정에서 난 코트의 소맷자락에 코를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명월관’의 진한 향수 냄새, 그것이 남아 있는 탓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싶군.’
내 몸은 이 냄새를 이상하리만큼 거부하고 있었다. 본래에도 독한 향수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다행히 ‘유리안’도 비슷한 성질인 모양이다.
‘……너무 섣부른 선택인가?’
불현듯, 트알레에게 맡겨둔 ‘부탁’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작은 동물을 사용하는 그녀의 감시가 발각될 확률은 그리 없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다.
‘지금의 하이든 라이히는 원작과 너무나도 달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는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너무 산만하다.
본래라면 해야 할 ‘검은 기사’의 일도 하지 않고, 황실도, 혼석도 모두 내팽개치고 떠났다.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넋 놓고 있다간, 내가 알던 스토리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유리안.”
사념에 잠긴 도중,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다.
여기서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핀텔 경, 꼴이 말이 아니군요.”
‘어스름 불꽃’ 대장간에서 ‘검은 기사’에게 된통 당한 핀텔 아그라드였다.
어쩐지 힘들어 보이는 몰골.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피곤함이 물씬 풍겨왔다.
이전처럼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내가 ‘검은 기사’인 것을 알아채진 못한 모양이다.
“이전에 제게 말했던 일은 제대로 풀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헌병에게 끌려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이제 막 풀려났다.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이지…….”
“그 현장에서 발각된 것 치곤, 꽤나 빨리 풀려나셨군요?”
“귀족이니 말이다. ‘여명회’라는 증거도 없었으니까.”
귀족.
그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것이 함축되어있는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어스름 불꽃’은 제국 최고 장인이 운영하는 대장간이지만, 그래도 결국 평민이니 말이다.
‘하긴, 그 상황만 봐서 핀텔을 여명회의 일원이라 생각할 순 없어.’
단순히 귀족의 폭거라 생각할 뿐이겠지.
“그건 그렇고, ‘그 현장’이라니…… 유리안, 네놈, 마치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아차, 말실수했다.
나는 에둘러서 말했다.
“잠시 그곳에 들를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핀텔 경의 일 때문에 꽤나 소란스럽더군요. 그나저나, 후후. 이번에도 실패하셨군요.”
“큭.”
비꼬는 내 말투에 핀텔은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또 그놈이다.”
“그놈?”
“일전에 내 ‘혼석’을 채간 그놈 말이다!”
“그게 누구입니까?”
누군지 확실히 알고 있지만, 난 능청을 떨며 되물었다.
“검은 기사, 그놈 말이다!”
크윽.
이번엔 내 속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이름을 직접 들으니, 낯이 간지럽군.’
아르투르 녀석도 그렇고, 왜 그렇게 ‘검은 기사’라는 이름을 입에 담을 때, 억양이 강해지는 것일까.
당사자는 생각하지도 않는 건가.
하긴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진 못하겠지.
“젠장, 우리에게 원한이 있는 놈이라는 건 알겠지만, 왜 나만! 이런 망신을 당해야만 것이냐?”
노발대발하며, 핀텔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음, 어찌어찌 납득할 수 있는 불만이지만, 미안하군.’
지금의 ‘검은 기사’는 기이하리만큼, 핀텔의 일을 방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내 앞에서 본인이 버젓이 말하고 다닌 탓이란 걸 모르겠지.’
어쩐지 동정심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본래, 죽어야 했을 녀석이 살아남게 되었으니 이 정도 고난은 극복해야지.
본인이 알 방법은 없겠지만 말이다.
“다음에 만난다면, 반드시 죽여줄 테다!”
끓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부릅뜬 눈으로 핀텔은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네 눈앞에 있다.
“다음이라, 딱 패배한 쓰레기나 입에 담을 법한 말이야.”
핀텔과의 대화 도중 끼어든 투박한 말투에 난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난 속으로 혀를 찼다.
‘제라르 오클레앙.’
여명회에는 현 아크 비숍인 ‘테넬론’에 상응하는 위험을 지닌 인물이 몇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저 ‘제라르 오클레앙’이란 인물이다.
훗날, ‘테넬론’이 ‘검은 기사’에게 죽고, 차기 여명회의 수장으로 거론되는 자들 중 한 명.
‘본래라면, 제국 여명회 서부의 지부를 맡고 있어야 할 놈이 여기는 왜?’
잠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드라탄 제국의 서부에는 ‘신성국 페레난드’가 존재한다.
그리고 최근 ‘검성’은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신성국’으로 향했다.
‘검성과의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제도로 온 건가.’
이 녀석의 호전적인 성격을 생각한다면, 직접적으로 ‘검성’과 맞붙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테넬론’이 직접 호출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긴, 패배한 쓰레기니 할 수 있는 말이겠지. 안 그래? 푸하하하!”
제라르는 자신을 따르던 이들을 보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잇몸을 만개하며, 웃는 덕에 그의 입에는 금으로 덧칠한 어금니가 몇 개 보였다.
“제라르 경, 말조심하시오. 예전과 달리 난 자네처럼 ‘비숍’의 등급이니.”
“비숍? 이 머저리 같은 양반 아직 소식을 못 들은 모양이로군! 그렇게 귀가 어두워서 쓰나!”
표독스러운 제라르의 말투에 핀텔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제라르는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다.
같은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제라르의 몸에서 흐르는 성품은 귀족의 그것이 아닌, 시정잡배의 그것과 흡사했다.
“네놈의 비숍 직위는 박탈되었다.”
“……뭐?”
“혼석 확보에 실패하고, 테넬론 경께 보고도 없이 단독으로 진행한 일도 실패했으면서, 아무런 책임을 물지 않으리라 생각했나?”
크큭, 제라르는 짧게 웃음을 흘렸다.
제라르의 모욕적인 언사에 핀텔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 그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린 제라르는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건 그렇고, 웃는 처형대! 인사가 늦었군. 나 제라르 오클레앙이라고 하네. 서부쪽 지부를 담당하고 있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라르 경. 여기서 뵐 줄 몰랐습니다.”
“하하. 네가 우리와 함께 할 줄은 상상도 못 했군.”
핀텔에게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성큼 다가온 녀석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물론, 그 손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이 녀석.
‘제라르 오클레앙’은 온갖 비겁한 수는 모두 사용하는 비숍으로서, ‘여명회’에서도 특히나 질이 나쁜 녀석이다.
장갑에 마비약을 설치해 악수를 받아들인 ‘린네’가 꼼짝없이 당하는 스토리도 존재한다.
“죄송합니다만, 사내와 악수하는 취미는 없는지라.”
그 덕인지 저도 모르게 말투에선 불쾌함이 섞였다.
“크큭, 매정한 건 여전하군.”
마치 나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제라르는 말했으나, 게임 어디에도 유리안과 제라르가 안면이 있다는 기억은 없다.
신성국의 사건을 제외하면.
“그게 정녕 아크 비숍님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나와 제라르가 이야기하던 도중, 당혹함이 서린 얼굴로 핀텔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다크 서클이 짙게 깔린 그의 두 눈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럴 리 없다! 그런 일이 있을 리…….”
“현실을 봐라, 핀텔. 넌 두 차례나 실패하지 않았나?”
“내가 어떻게 비숍이 되었는데, 그럴 리……!”
핀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살기가 제라르의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녀석은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챙──!
난 검집으로 제라르의 단검을 막았다. 사방에 불똥이 튀었고, 작은 불빛이 핀텔의 어두운 얼굴을 조금은 밝혀주었다.
“히, 히익……!”
놀란 핀텔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걸 보던 제라르는 코웃음을 한 번 치더니,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의왼데?”
불독처럼 생긴 그의 얼굴엔 정말로 ‘의외롭다’라는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어.’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아마도 ‘제라르’라는 인물에 대한 거부감과 살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뚱아리 탓인 듯하다.
“엘레노아나 당테스라면 몰라도, 넌 모른 척 넘어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래 봬도, 동료는 끔찍이 아끼는 편입니다. 아무리 핀텔 경이 덜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동료’가 아니겠습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웃는 처형대가?”
“후후. 제 ‘감은 눈’ 소속인 것도 깜박하신 모양이군요. 버젓이 제도의 대로에서 ‘귀족을 살해하는 것’을 방치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 탓에 난 녀석의 기습을 막은 이유를 둘러대었다.
분명 ‘유리안’스럽지 않은 행동임이 분명했으니까.
“능청스러운 자식.”
그런 나를 보며, 제라르는 한 마디를 덧붙인 뒤 핀텔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던 핀텔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너, 너 이 자식 지금 뭘……!”
“왜 그러나. 핀텔, 단순한 장난이었는데 말이야, 하하하!”
호탕한 웃음과 함께 제라르는 사병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핀텔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힘없이 어두운 골목으로 향했다.
‘……왠지 미안하군.’
제라르의 말대로 비숍 직위를 박탈당한 것이라면 내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테니까.
***
“유리안 경, 혹시 빈민가에 다녀오셨습니까?”
다음 날, ‘감은 눈’의 자잘한 서류 처리를 위해 출근하자 라즈롯이 조심스럽게 질문해왔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순간 당황했다.
이 녀석, 날 미행이라도 하고 있었나? 아니,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어제 빈민가에서 들어선 이후 내게 따라붙은 미행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았지.
“에, 에렌이라는 아이가 알려줬습니다. 겐멜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인지라, 가끔 제 소식통이 되어줍니다.”
아, 날 ‘명월관’까지 안내해준 그 꼬마로군.
“예,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말이죠.”
“개인적인 용무라 함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라즈롯은 당황한 눈치로 입을 열었다.
“최근 여명회의 내부에서 도는 소문과 연관이 있…… 습니까?”
여명회 내부에서 도는 소문?
자세히는 모르지만, 라즈롯의 입에서 ‘소문’이라는 말이 나오자 내 눈 밑이 살짝 흔들렸다.
최근,‘여명회’가 주목할 법한 소문은 여러 개 있지만, 그중 나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띄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검은 기사’.
‘소문과 관계가 있냐고 묻는 것은 설마…….’
현재 여명회 내부에선 내가 ‘검은 기사’와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인가.
“검은 기사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예.”
내 물음에 라즈롯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가 빈민가에 다녀온 것과 검은 기사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게…….”
살짝 대답을 망설이는 라즈롯. 그 모습에 어쩐지 내 손이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 기사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