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7)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7화(7/300)
7화. 적응(2)
어젯밤에 완벽한 ‘월광검’을 습득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침이 밝자마자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했다.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거치된 목인(木人)에 겨누었다.
미완성된 ‘월광검’을 시전 하자 도신 끝에서 달빛이 맺히기 시작한 걸 보고 검을 휘둘렀다.
휘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훈련장에 조용히 울렸다.
곧바로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목인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타고난 검사> 특성, 그리고 <월광검>.
이 조합으로 하루 만에 기사로서 1인분을 할 수 있는 기량을 손에 넣었다.
그래도 아직은 부족하단 느낌이 역력했다.
‘최우선 과제는 ’월광검‘을 완성하는 것이겠지.’
사전에 가지고 있던 게임 지식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 세계에 있는 책을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그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유리안’이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선택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선택지는 하나뿐이군.
“주인님, 손님이 왔습니다.”
사용인의 부름에 현실로 돌아왔다.
손님이라고? 나한테?
설마 유리안에게 친구라도 있었던 건가?
이놈 성격상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도 필시 정상은 아닐 터.
나는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전한 뒤,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허리춤에는 조금 전까지 휘둘렀던 검을 매었다.
검이 걸리적거려서 들고 다니기 싫었으나 완벽하게 유리안을 연기하려면 필요했다.
“유, 유리안 경!”
사용인이 말한 손님은 갈색 머리의 소년 티가 아직 엿보이는 남자였다.
일단, ‘네임드 캐릭터’는 아니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인물이었다.
그래도 낯설지 않았다.
‘어제 본 녀석이었군.’
생각났다.
이 녀석은 어제 ‘감은 눈’ 입단 테스트가 끝났을 때 헤란드와 같이 날 따라온 기사다.
당연하지만 이름은 모른다.
“죄,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내가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자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라, 라즈롯이라고 합니다. ‘감은 눈’의 견습으로 잡무를 맡고 있습니다.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이놈이 그놈이군.
그나저나 견습이면 입단 테스트에는 합격한 모양이다.
물론, 어제의 테스트가 아니라 다른 날의 테스트를 말이다.
“견습입니까?”
“네, 네…… 반년 동안 정식으로 승급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뭔가 하려다 만 것 같은데…… 아무튼.
라즈롯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어제 바이엘 아카데미에서 진행되었던 입단 테스트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들렸습니다!”
“결과라면, 당신도 어제 봤을 텐데요.”
“그게…… 직접 듣는 게 절차라서요. 하하.”
거참 쓸모없는 절차도 다 있네.
속으로 ‘감은 눈’의 비효율적인 행정에 혀를 찼지만, 그래도 절차라고 하니 답해주기로 했다.
“입단 테스트, 합격자 0명. 이렇게 보고하세요.”
“네! 그,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십쇼 유리안 경!”
이럼 직접 황실에 들리지 않아도 되겠지.
귀찮은 일을 하나 덜었다는 생각이 들던 와중이었다.
라즈롯의 뒷모습을 보자,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다시금 크라이파트 가문이 입단 테스트에 계략을 부리지 못하도록, 규정에 손을 써두기로 한 것이.
“아니, 잠깐 기다리세요.”
“네, 네!?”
라즈롯은 소동물처럼 펄쩍 뛰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보고는 직접 하겠습니다.”
“네? 아, 네.”
“제 마차로 같이 가죠. 데려다주겠습니다.”
나는 모처럼 선의를 베풀기로 했다.
황실에서 여기까지 꽤나 멀 텐데 말도, 마차도 없이 두 발로 왔다는 사실에 동정을 품어서다.
“……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라즈롯의 머리 위에 피어오른 보라색 아지랑이였다.
여기서 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누군가의 투명한 선의는 다른 누군가에겐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참 이 자식은 뭘 해도 문제구만.
***
로젠다 대륙에는 자타공인 3개의 강대국이 존재한다.
대륙 최대의 종교인 태양신교를 국교로 삼은 페레난드 신성국.
마신 바르바토스가 봉인된 이후, 피폐해진 국가들을 힘으로 병합한 패권국 아드라탄 제국.
그리고, 강대국 두 개와 인접하고 있던 왕국들이 대항을 위해 힘을 합친 브리만 연합국.
3국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 제일 강한 국가를 뽑는다면 거두절미하게 아드라탄 제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력한 왕권을 통해 다른 국가들을 병합하며 성장했다 보니, 다른 국가보다 강력한 체제 아래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제국의 중추인 황궁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그 거대하다는 바이엘 아카데미조차 코웃음 칠 정도의 규모로, 운영비로만 매년 몇십억 나르가 투입된다고 하니 가히 제국의 국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된다.
물론 단순히 황궁만 대단한 건 아니다.
황궁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관리된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제국의 수도를 완성하는 화려한 건축물들도 상당한 완성도를 보인다.
전문 조경사와 건축가가 동원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국 팔경(八景)인 황궁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 5대 절경(絶境) 중 하나인 황궁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라스롯의 시선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유는 동행하고 있는 인물, 유리안 크라이파트 프라손 때문이었다.
일명 제국의 웃는 처형대라 불리는 인물과의 동행이다.
한가로이 풍경 감상이나 하고 있기 어렵다.
‘무서워……!’
저택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유리안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실눈인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결같은 표정에서 나오는 불길함에 라스롯은 혼란스러웠다.
돌연 황실까지 동행하겠다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보고를 전적으로 자신에게 떠맡겼기에 더 그랬다.
“저기 봐, 유리안이야.”
“……부상을 당해서 기억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멀쩡한 걸 보아하니, 뜬 소문이었나 보네.”
유리안을 본 주변의 반응은 뚜렷했다.
경계와 더불어 몇몇 이들은 두려워하고 간혹 은연중에 살기를 보냈다.
평민 신분과 반년째 견습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받던 시선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라스롯은 느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다.
지금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유리안’이란 인물은 자신이 넘볼 수 없는 계위(階位)의 정점이다.
방계임에도 귀족들도 두려워하게 만드는 남자이자, 황실에서 휘두르는 차별 없는 검.
‘으으…….’
단장 오드윈을 제외하고, ‘감은 눈’에서 제일 위상이 높은 자.
새삼 이를 느끼자 라즈롯은 두 눈이 아찔해졌다.
그런 자와 함께 황실을 거니는 것은 큰 영광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숨이 멎을 듯 버거운 일이기도 했다.
“황실의 풍경은 여전히 장관(壯觀)이군요.”
그때였다.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라즈롯에게 유리안이 입을 연 거다.
“예, 아…… 예!”
“아무래도 목적지는 제2문인 경의문(敬意門)을 통과해야 보이겠죠. 제1문인 경천문(敬天問)은 제국 신민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을 정도니, 황실 내부 행정을 보기엔 적합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예, 맞습니다.”
마치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유리안을 보며 라즈롯은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리안은 이제 황실에 입성한 지 반년이 지난 자신과 달리 제집 들르듯 다녔을 테니까.
근데 왜 모두가 알 법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는가?
‘혹시…… 나, 나를 시험하시는 건가?’
유리안은 어제 입단 테스트에서 단 한 명의 합격자도 남기지 않고 모두 탈락시켰다.
그렇다고 희망자들의 수준이 낮았던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반년이나 정식으로 승급하지 못한 자신보다 뛰어난 자들도 몇 보였다.
그럼에도 모두 탈락시켰다는 건 유리안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달했다는 소리.
어쩌면 지금 이 발언은 운 좋게(?) 입단 테스트를 합격한 자신이 ‘감은 눈’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걸 돌려 말하는 걸지 모른다.
굳이 다 아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라즈롯은 쫓겨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언행을 더욱 주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유리안의 발언은 라즈롯을 시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게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크잖아? 그리고 ’감은 눈‘의 건물이 황실 어디에 있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군.’
정말로 길을 몰라서 확인차 물어보는 거였다.
***
황실의 거대한 구역을 나누는 3개의 문들 중, 제1문인 경천문(敬天問)과 제2문 경의문(敬意門)을 지나자 하얗게 빛나는 건물들이 맞이한다.
균일하게 심어진 푸른 나무들과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 절경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나는 몹시 고양감을 느꼈다. 예술을 보며 충족감을 느껴서는 아니다.
단지 게임 화면 너머로만 봤던 광경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다.
“그, 그럼 유리안 경! 저는 다른 곳에 들를 곳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죄, 죄송합니다!”
이곳까지 안내해주던 라즈롯은 다른 업무가 있다며 도망치듯 떠났다.
근데 도대체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나는 발길을 돌려 ‘감은 눈’의 본부로 향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단장실.
“유리안 경, 오드윈 단장님께서 안으로 들어오셔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곧장 단장실로 향했다.
황실 전속 기관, ‘감은 눈’은 황실을 모시는 기관이었기에 기본적으로 단원들끼리는 수평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딱 한 사람이 책임자로 단원 위에 있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만날 단장 오드윈 발라디르란 여자였다.
‘몰락한 발라디르 가문의 여식.’
이전에도 말했지만 ‘감은 눈’에 입단하기 위해선 정치적인 중립 신분이어야 한다.
따라서 귀족 출신은 ‘감은 눈’의 입단이 힘들다.
특별한 케이스로 유리안처럼 가문과 동떨어지거나, 그게 아니면 이름만 귀족 신분인 몰락 귀족 정도다.
현 ‘감은 눈’의 단장인 오드윈은 그런 몰락 귀족 중 한 명이다.
단장실에 앞에 선 나는 노크를 두 번 했다.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와요.”
허락을 맡은 나는 옷매무새를 한번 매만진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안, 어서 와요. 오랜만이군요.”
담담한 태도로 반기는 은발의 여성.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한 발, 두 발 그녀가 가까워지자 나의 시선은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그 이유는 ‘감은 눈’의 단장, 오드윈 발라디르의 키가 몹시 작았기 때문이다.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괜찮나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전에 아일린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유리안이 각 인물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번에는 특히나 예상하기 어렵다.
상대는 단순하게 적대, 또는 공포를 심어야 할 대상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내뱉은 말 한마디가 어떤 파급을 일으킬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잘못하면 내 정체가 들통날지도 모르고.
‘……여기선 상식적으로 이야기하면 되겠지?’
‘오드윈 발라디르’는 유리안의 상급자다.
천하의 유리안이라 해도 단장인 그녀에게 예를 갖추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상이 경미하진 않았지만, 황실에 대한 제 충성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평소보단 점잖고, 거기에 아주 약간의 정중함을 더해 답했다.
이거면 상급자에 대한 예의로는 충분하겠지.
“……이상하네요.”
응?
“평소에도 그런 식으로 말했나요? 그게 아니면…….”
손을 턱으로 가져간 그녀는 흐음─ 하며 짧은 신음을 흘린 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저거 100% 의심하는 눈이다.
젠장! ……이게 아닌가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