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72)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72화(72/300)
72화. 복잡한 감정(1)
“소문난 귀인께서 이런 오두막엔 무슨 볼일이 있으셔서 오셨나?”
비아냥거리는 사병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손에 쥔 단검을 쳐다보았다.
평소에 사용하던 장검이 아니지만……, 제라르의 일개 사병 정도야 뭐, 어렵지 않지.
“이봐, 왜 말이 없어? 무슨 볼일로 이곳에 왔냐고 묻잖아.”
이전에 보았던 녀석 중 한 명이 얼굴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이자, 뒤에 있는 둘은 언제든지 검을 뽑아 들어도 좋도록, 자세를 잡았다.
‘우선……, 제압하는 편이 좋겠지.’
그리 생각하며, 난 고개를 들어 올려 사병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지금 떠난다면, 뒤를 쫓진 않겠다.”
최대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사실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은 무색해지기는 했으나, ‘검성’의 영향을 받은 몸인지라……, 검술에서 저도 모르게 그의 색이 느껴질 터.
그런 상황에서 온 힘을 다했다간 ‘검은 기사’의 실질적인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러를 담는 것도 쉽게 할…….’
그때, 대치하고 있었던 녀석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젠장, 옷이 또 더러워지겠군.
누가 ‘청결’에 강박증이 있는 ‘유리안’아니랄까 봐, 이런 생각이 먼저 드네.
살짝 짜증이 났지만, 우선 중요한 건 눈앞의 적들.
그들은 꽤나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으나, ‘몬시뇰’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느린 속도다.
‘역시나.’
난 단검을 고쳐잡았다.
짧은 도신 탓에 품속에 뛰어들어야만 유효타를 넣을 수 있었으나, 검을 크게 휘두르는 녀석의 빈틈은 너무나 크기에, 가까이 파고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가 다가가자, 녀석의 얼굴엔 당혹이 서렸다.
“흐, 흐어어억!”
역수로 잡은 단검이 녀석의 몸에 박히자,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다.
녀석은 쓰러지려고 했지만, 혹시나 반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여러 차례 단검을 휘둘렀다.
털썩.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달려든 녀석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특유의 결벽증 탓에 피가 튀는 것에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짜증이 났으나, 둘이 남은 상태라 최대한 신경을 껐다.
‘응?’
하지만, 남은 두 녀석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요하다. 아니, 고요하다 못해 공기가 싸늘하게 죽은 것 같다.
조금 전까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녀석들의 머리 위로 ‘공포’의 색이 뚜렷이 보였다.
갑자기? 내가 뭘 했길래…….
“말했잖나, 지금 떠나면 잡지 않겠다고. 이건 내 말을 거역한 대가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내 입은 ‘유리안’의 생각을 즉각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너희도 덤빌…….”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한 발을 앞으로 내딛자.
“으, 으아아아아!!!”
남은 두 녀석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응? 어디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두 녀석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난 잠시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 거, 검은 기사님?”
뒤에선 겁먹은 듯한 마이어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머리 위로도 똑같이 ‘공포’의 색이 뚜렷이 떠올랐다.
“꾸,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도대체 왜?
처음에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도움을 줬건만, 고마워하지 못할망정.
그러나, 마이어의 눈동자에 비친 ‘검은 기사’의 모습은 실로 섬뜩했다.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얼굴이잖아.’
사람 하나를 단검 가지고 완전 반송장까지 만들어놨으니.
그것도 엄청 잔인하고 처참하게…….
음, 온몸에 칼자국이 없는 곳이 없네.
마이어나 저들이 겁에 질린 게 당연하다.
“쿨럭, 쿨럭…….”
잠깐 사색에 잠긴 사이, 쓰러져있던 녀석이 기침을 토해냈다.
즉사할 수 있는 곳은 피해서 찔렀으니 목숨에 지장은 없겠으나, 움직일 수는 없는지 꿈틀거리는 것이 실로 인상적이다.
“바란은 제라르의 명령으로 죽였나?”
내 말에 공포심이 일렁거리던 녀석의 눈에 당혹이 깃들었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저 표정을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제, 제라르 님을 배신한 놈에게 당연한 결말이다!”
헐떡이는 숨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녀석은 토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배신자라…….’
현시점에서 제라르가 무명객단과의 연결 고리를 끊는 건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빠르다.
그리고, ‘배신자’라는 말에 그 이유를 어느 정도 감 잡을 수 있었다.
‘연회장에서 바란의 이름을 꺼낸 게 문제였나?’
‘무명객단을 창단한 것이 사실은 제라르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단 뉘앙스를 보이는 바람에 제라르가 오해한 모양이다.
바란이 자신을 배신하고 유리안과 결탁해, 그에게 정보를 흘렸다고.
죽은 바란에게 미안하게 됐군.
“우, 웃기지 마. 이 새끼야!”
마이어는 격양된 목소리로 사병의 멱살을 잡았다. 켁켁거리며, 마른기침을 내던 녀석은 그녀를 떨쳐 낼 힘도 없는 모양인지 아무런 대항조차 못 했다.
“바란 오빠가 얼마나 제라르에게 충성을 다했는데! 배신을 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말을 들어보니 마이어는 바란이 제라르가 심어둔 사람이란 걸 진즉에 알고 있던 모양이다.
‘이걸로 무명객단과 제라르의 전면전이 시작될 수 있어.’
그리 생각한 나는…….
“복수하고 싶나?”
이 상황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도 동시에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혈육 같은 오빠를 잃은 그녀에게 연민을 품어야 정상이거늘, 지금의 난 이 상황을 이용하는 쪽으로만 머리가 돌아갔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느낌이…….
가끔은 불쾌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난 ‘유리안’인 것을.
“도와줄 생각도 없으면서, 괜한 말 하지 말아요!”
마이어는 두 눈을 땡그랗게 뜨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말을 잇기 전, 혹시나 내 말을 엿들을까, 쓰러진 사병의 몸을 발로 차 녀석을 기절시켰다.
“나도 제라르에게 빚이 있으니 말이야.”
“빚이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어는 다시금 사병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떻게 하면, 바란 오빠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요?”
물어보는 그녀에게 난 품속에서 상자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건 뭐죠?”
“통신기.”
그 안에는 엘레노아를 지지해준다는 약속과 함께 받은 통신기가 들어있었다.
“지금은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네 의지를 보여라.”
“의지……?”
내 말의 의미를 짐작하지 못했는지 잠깐 마이어의 두 눈동자는 잠깐 방황하는 듯했으나.
“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눈동자에 깃든 의문이 사라졌다.
***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무명객단’의 일원을 포섭했다는 사실에 난 약간 얼떨떨했다.
‘그것도 오색의 유일, 마이어를 말이야.’
얼마 가지 않아, 제라르의 야욕이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 분명하다.
곧 있을 ‘총대주교 승계식’. 공석이 될 아크 비숍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공적이 필요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무명객단의 바란과 검은 기사의 커넥션을 의심해왔는데, ‘검은 기사’의 존재를 그곳 본부에서 확인한 부하들의 증언도 있으니, 확정적이다.
그는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다.
자신이 뿌린 과오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그 뿌리를 뽑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명객단의 해체는 시간문제다.
시일이 앞당겨지기는 했으나, 여기까지는 본래 <지금부터 마왕을 죽입시다>의 스토리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핀텔이 살아남았고, 검성이 제도를 떠났으나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검은 기사를…….
‘내가 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리고 하나 더.
본래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될 사람이 쓸데없이 나를 미행하고 있는 것도.
……변수는 아니겠지?
“고귀한 론드벨 가문의 여식이 뒷골목 빈민가엔 무슨 볼일이 있어서 내 뒤를 그리 쫓으시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연 뒤, 난 ‘솜브라’로 만든 가면을 고쳐 썼다.
절대로 정체가 들키면 안 되는 상대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의 사각에선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금색 머릿결을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린 장발, 그리고 마이어와 같은 녹색의 눈동자였으나, 그것엔 침착함이 깃들어있었다.
“제가 미행하고 있다는 걸 언제부터 아셨죠?”
“처음부터.”
……거짓말이다.
사실, 이 골목에 들어서고 난 이후 알았지만, 내 블러핑이 통했는지 린네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미행하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그리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을 거예요.”
“기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네……?”
“명문 기사 가문의 론드벨이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
그래, 이것도 거짓말이다.
“크, 크흠.”
그러나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린네는 헛기침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건 그렇고, 론드벨의 여식이 굳이 빈민가까지 찾아와, 왜 날 미행하고 있는 거지?”
“당신의 검술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예요.”
약간 움츠러들 줄 알았던 린네는 의외로 당돌하게 미행의 이유를 밝혔다.
검술을 보기 위해서라고?
‘다행히 검은 기사의 정체가 궁금한 건 아닌 거 같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전에 사태 때문에 그녀가 살짝 불편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 검술에서 뭘 알아내기라도 했나?”
“있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그녀를 보자, 나도 호기심이 생겼다.
내 검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갈고닦은 것이 아닌 ‘만들어져 있던’ 것이다.
그 탓에 흥미가 생겼다.
“그게 뭐지?”
“세간에서 말한 것만큼 당신의 검술은 미려한 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 지금의 난 살짝 발끈하고 말았다.
“내 검술을 평가하는 건 좋지만, 미행이나 하던 녀석의 입으로 들으니 조금 불쾌하군.”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당신의 검술은 투박해요. 달빛을 머금은 검술. 그 말은 당신 같은 무법자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린네가 누구를 생각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스승인 검성.
하이든 라이히일 테지.
린네가 상상하는 검술의 끝은 늘 그에게로 귀결되었으니 말이다.
“고작해야 단검을 사용하는 모습만 보고, 그렇게 단언할 수 있나?”
“마음가짐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조금 전 말한 ‘달빛을 머금은 검술’. 그걸 사용하는 자를 직접 본 적이 있나 보군?”
“네, 물론이죠.”
역시…….
저렇게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검성이 확실하다.
‘……화나는데?’
내가 아무리 빙의했다고 하지만, 지금 ‘유리안’의 검술이면 충분히 미려하다고 생각했다.
‘검성의 검술이 이름값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무시를 당할 줄이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언짢기 시작했다.
자신의 역할인 ‘검은 기사’를 나에게 떠넘기고 홀연히 제도를 떠난 검성.
그가 괜스레 미워진 것이다.
“그 사람을 꽤 동경하는 모양이군.”
그래서인지, 평소와 달리 감정적인 말을 입에 담고 싶어졌다.
“‘동경’이란 ‘이해’와 가장 동떨어진 감정이지.”
이 말은 본래 스토리에서 ‘유리안’이 ‘린네’에게 해준 말이다.
‘검성’을 동경하는 것만으로 그를 뛰어넘을 수 없다며. 그림자처럼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린네에게 표독스럽게 내뱉던 말이다.
그 말로 인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네?”
내 말에 린네는 적잖게 당황했는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이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내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그녀는 입술을 꽉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린네를 뒤로 하고, 난 발걸음을 옮겨, 빈민가를 빠져나왔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리고…….
‘빨리 이 지저분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
– ‘그렇다면, 그런 검술을 사용하는 자를 직접 보기라도 했나?’
검은 기사와 말을 섞던 린네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달빛을 머금은 미려한 검술.
그 검술을 사용하는 대상을 물었을 때, 린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말없이 제도를 떠난 자신의 스승, ‘검성’ 하이든 라이히가 아니었다.
– ‘그 사람을 꽤나 동경하는 모양이군.’
그건 바로, 유리안 크라이파트 프라손.
꼴도 보기 싫은 그 남자의 얼굴이 검성보다 먼저 떠오른 것이다.
– ‘‘동경’이란 ‘이해’와 가장 동떨어진 감정이지.’
확실히 그 남자가 대단한 것은 맞다.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검에 진심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그가 다루는 검술은 예술이라 할 정도로 좋은 경지였으니까.
‘그렇지만, 동경은…….’
본래, ‘검성’에게 해야 했을 터인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린네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