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as the Perfect Narrow-Eyed Villain RAW novel - Chapter (8)
완벽한 실눈 악역을 연기하다-8화(8/300)
8화. 적응(3)
난 속으로 탄식을 내뱉으며 눈앞의 여성과 시선을 마주쳤다.
오드윈의 연보라색 눈이 날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게슴츠레 뜬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심지어 그녀의 머리에는 ‘회색 아지랑이’가 떠올랐다.
<부정의 색>으로 보이는 감정의 색 중 ‘의심’이다.
그게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짐작은 갔다.
평소 자신이 알던 유리안과 다르다는 거겠지.
‘말이 길다…… 존대가 문제인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유리안에게 ‘존댓말’이란 에고의 표출이자 하나의 아이덴티티.
오히려 존댓말을 하지 않았을 경우 의심은 지금보다 커졌을 것이다.
애초에 혼잣말도 존대가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도저히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더는 가만히 있다가는 의심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렇게 된 거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어떤 의미에서 뻔뻔한 것도 유리안의 평소 모습 중 하나이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아니, 유리안…… 평소에는 별말 없이 보고만 끝내고 돌아가지 않았나요?”
그거였나…….
도대체 이 자식은 상급자를 뭐라고 생각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문제라면 다행이다.
이 정도는 어떻게 넘어갈 수 있다.
“부상으로 오랫동안 업무를 쉬지 않았습니까. 그 보고 차원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래요?”
“네. 무슨 문제라도?”
짧게 조소를 흘리며 시치미를 뗐다.
유리안식 대응에 그녀의 의심은 예상대로 사그라들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여전하네요.”
여전하다는 말에 안심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X 같았다.
아니, 유리안이 제정신이 아닌 것도 알고 그걸 충실히 연기하곤 있지만, 저런 평가를 대놓고 들으니 기분이 좋은 게 이상한 거지.
지금까지 만났던 인물들은 그리 생각해도 직접 말로 한 적은 없었다.
오드윈이란 이 여자 적어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유리안을 앞에 두고도 저런 발언을 서슴지 않는 걸 보면 보통 인물은 아니다.
“그럼 보고해주세요. 입단 테스트에서 쓸모 있는 녀석은 있었나요?”
자리로 돌아간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에 대한 보고라면 간단해서 곧바로 대답했다.
“없었습니다.”
“뭐, 그렇겠죠. 그렇게 말할 줄은 알고 있었어요. 무려 검성 하이든 라이히의 제자니까, 웬만한 수준의 기량 따윈 우습게 보이겠죠.”
고개를 끄덕이던 오드윈은 의자에 몸을 기대더니 팔짱을 끼었다.
“그래도, 견습으로 써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는 있었겠죠? 몇 명 정도는.”
“없었습니다.”
“응?”
들썩─!
팔짱을 낀 손을 푼 오드윈은 의자에서 급히 등을 떼어냈다.
“아니, 그럼 한 명도 안 뽑은 거예요?”
“예.”
“한 명도?”
몇 번이나 묻는지 모르겠지만.
내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건지 오드윈의 입이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어요! 지금 ‘감은 눈’은 인력이 그리 많지 않아 한 명이라도 인원을 충원하고 싶은데!”
“인원이 부족하다고 어중이떠중이를 받을 순 없잖습니까. 이번 지원자는 모두 ‘감은 눈’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견습으로 뽑아 굴려보면 사용할 수 있을지 누가 아는데요!”
“시간 낭비입니다. 견습이란 자리도 부족한 자들이었습니다.”
나는 짧게 웃음을 흘렸다.
사실 무안해서 흘린 웃음이다.
결과적으로 모두 탈락시켰지만 그건 희망자들의 기량 때문이 아니다.
단지 내 목적 때문이었다.
그래놓고선 견습 자리도 부족한 녀석들이라 말하다니.
연기지만 나 자신이 뻔뻔하다 느껴졌다.
“하아…….”
골치가 아프다는 듯 오드윈은 관자놀이를 꾹꾹 짓눌렀다.
그사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던지듯 내놓았다.
이를 받아든 오드윈이 뭐냐는 듯 쳐다본다.
“이건 또 뭔가요? 지금 입단 테스트 이야기 중 아니었나요?”
“예, 이것도 입단 테스트와 관련된 겁니다.”
“……뭔데요?”
“이번에 알아낸 입단 테스트의 문제점을 정리해봤습니다.”
“문제점?”
성가신 물건이라는 듯 보며 오드윈이 되묻는다.
“교관과 대련해서 인정받고, 이후엔 면접을 통해 황궁 비서실에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뭐가 문제라는 거죠?”
“대련의 방식입니다.”
“대련 방식?”
고개를 갸웃하는 오드윈에게 미리 준비해두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입단 희망자들은 경각심이 부족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응시 전에도 전속 기관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필요가 있겠죠.”
“뭐, 담당했던 교관이 그렇게 말한다면 맞는 말이겠지만…….”
오드윈은 내가 건넨 ‘입단 테스트 개선안’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할수록 표정은 일그러져갔다.
“……입단 테스트에 응시할 경우, 어떠한 사고가 생겨도 ‘감은 눈’은 책임이 없다?”
“예.”
“이건 대련 강도를 올리겠다는 소리죠?”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은 눈’ 입단 테스트에선 모종의 제한이 잔뜩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교관은 테스트 과정에서 입단 희망자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당연히 희망자가 다치거나 죽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불상사가 발생하면 책임은 무조건 교관에게 있었다.
‘그날 바이엘 아카데미에서 시험을 보던 입단 희망자들도 이 조항은 알고 있었을 터.’
그럼에도 내가 ‘죽이겠다’라는 말에 겁을 지레 먹고, 시험을 포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이 나, ‘유리안 크라이파트 프라손’이었으니까.
설마 규율을 어기겠어?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유리안’이라는 이름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쌓였는지를 떠올린다면 다시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저 미친놈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걸 이용했기에 가능했던 도박수였고.
개선안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오드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윽고 손가락으로 종이를 집어 들어 흔들었다.
“일단 알겠어요. 의회에 올려보도록 할게요.”
“예, 감사합니다. 오드윈 단장님.”
“그런데, 설마 이것 때문에 이번 입단 테스트에서 한 명도 안 뽑은 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릇된 테스트로 등용한 인재는 하등 쓸모가 없을 뿐이죠. 저희는 황실 전속 기관이 아닙니까? 그 고귀한 이름을 더럽히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아, 알았어요. 알았어요!”
질색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난 표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황실’과 관련이 되면 미친 듯이 주절거리는 것.
이 또한 ‘유리안’이었으니까.
***
유리안이 떠나고 난 뒤, 단장실에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현 ‘감은 눈’의 단장, 오드윈 단장은 유리안이 두고 간 서류로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서류에 적힌 것은 ‘감은 눈’ 입단 테스트의 개선안.
원래라면 일개 단원에게는 이 정도까지의 권한이 없다만, 유리안이 ‘감은 눈’에서 갖는 위치는 일개 단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굳이 말하자면, 단장인 자신 바로 아래.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개선 방안을 제출해도 용납이 됐다.
심지어 그의 출신은 방계혈족이기는 하지만 귀족이 아닌가?
“그래도, 이런 식으로 규정에 간섭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오드윈은 흥미로운 눈으로 서류를 살펴보았다.
한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로 가득한 유리안의 필기체.
하지만 이 많은 내용은 중요한 수단 하나를 가리기 위한 연막에 불과했다.
결국 중요한 내용은 하나다.
“어떠한 사고가 생겨도 ‘감은 눈’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
이 새로운 규정이 적용된다면, 말 그대로 입단 테스트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교관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죽더라도 황실의 비호 아래 ‘무죄’가 된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입단 테스트의 본질이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감은 눈’에 응시하는 자들 대부분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 몰락 귀족과 평민뿐이니까.
그들은 힘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이 없다.
그런 자들의 불만은 일축하기 쉽다.
“유리안도 그건 알고 있겠지. 그러니, 이 개선안의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오드윈은 잠깐 눈을 감아 생각을 정리했다.
평소엔 규정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사람이 왜 갑자기 이런 서류를 제출한 것일까?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사실이 생각났다.
바로 입단 테스트에서 벌어진 하나의 ‘모략’에 대해서다.
원로회와 토르소 가문이 작당해 이번 입단 테스트에 수작을 부린 것.
이에 대해서 그녀도 대강 사정은 파악하고 있었다.
황실 전속 기관 ‘감은 눈’의 단장이란 요직에 앉아 있다 보면 듣고 싶지 않아도, 세간의 별의별 소식이 저절로 흘러들어오기 마련이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하등 쓸모없을 ‘개선제안서’를 왜 제출했는지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모여 의미를 갖추었다.
“경고로군.”
그래, 이건 경고다.
유리안이 토르소 가문과 원로회에 보내는 경고.
‘너희들이 계략을 쓴 건 꿰뚫어 보고 있다. 다음에도 똑같은 짓을 한다면, 그땐 지금처럼 넘어가지 않겠다.’
유리안의 속내(?)를 알게 되자 오드윈의 즉시 바깥에서 대기중인 사용인을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하게 단장실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사용인에게 유리안이 작성한 제안서를 넘겨주었다.
“이것 좀 의회 쪽으로 넘겨줄래요?”
“의회 쪽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오드윈 단장님.”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사용인은 서류를 들고 단장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긋이 지켜보고 있던 오드윈은 오른손을 턱에 가져간 후 생각에 잠겼다.
“부상을 한 번 크게 입더니 사람이 달라졌네.”
그녀가 알고 있던 ‘유리안 크라이파트 프라손’이란 인물은 끔찍할 정도로 잔혹하고, 그에 걸맞은 무력을 손에 쥔 검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소름 끼치는 미소와 아무것도 들여다보이지 않는 실눈.
그 탓에 감정을 읽는 게 불가능하다시피 했으나, 지금까진 상관없었다.
유리안은 그저 황실의 명(命)에 충실한 개일 뿐이었으니까.
위에서 떨어진 명령을 실행하며, 상부에 불만을 품지 않는 무감정(無感情)한 검이었으니까.
근데 문제는…… 그런 개가 자신의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