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05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06화
“자, 배우진 ‘켄’이 닌자 마을에 들어오는 씬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마을 중앙 회관까지 걸어 들어오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까메오 출연의 첫 샷이었고, 마지막 촬영 이후 한 달 만이었다.
카메라 앞에 선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카메라, 조명, 초대형 선풍기의 세팅이 모두 끝나고
“큐!!”
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선풍기가 힘차게 돌아가자 황토 모래 바람이 일어 사방이 뿌옇게 변했다.
그 사이를 ‘켄’이 천천히 걸었다.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고,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은 채,
한 곳만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입은 닫았지만 그렇다고 앙 다물지는 않았다.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있었다.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처럼
어깨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마을 회관 앞, 아키라 ‘하치’가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
‘어? 왜 컷을 하지 않는 거지? 피디님이 정해준 동선까지 모두 이동했는데.’
연기를 모두 끝냈는데, 감독의 ‘컷’ 사인이 없었다.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몇 가지 동작과 표정으로 연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컷’이 나지 않았다.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걸어 들어와서 ‘하치’가 있는 곳까지 이동만 하면 되는 건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감독을 쳐다봤다.
“컷.”
모니터를 보고 있던 감독이 흠신 놀라며 그제야 ‘컷’을 외쳤다.
“피디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나는 피디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내가 놓친 것이 있나 해서였다.
짝
짝
짝
피디는 대답 없이 박수만 쳤다.
“죄송합니다. 모니터로 배우진 씨 연기를 보다가 그만 숨이 막혀 버렸습니다.
제가 이런 연기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아직도 심장이 떨립니다.
후~”
피디가 상기된 얼굴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한국에서 배우진 씨를 천재배우라고 부르는지 딱 한 번만 보고도 알겠습니다.
진짜 대단합니다. 한국 배우의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피디는 나의 연기에 완전히 감동받았다.
일본 배우들의 과장되거나 자극적인 연기만 보다,
제대로 된 연기를 본 것이 얼마만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짝짝
짝짝짝
감동을 먹은 것은 피디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이 나를 둘러싸고 박수를 쳤다.
마음이 뒤흔들리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제, 켄과 하치의 대결 장면만 찍으면 됐다.
“자, 이제 켄과 하치가 대결을 벌이고,
켄의 칼이 하치의 목을 베려할 때,
미치코가 와서 말리는 장면 찍겠습니다.
다들 준비되셨죠?
큐!”
[당신이 켄인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나? 부모의 원수를 찾아서?]켄은 하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기를 정리했다.
[그런 유치한 감정 따윈. 그냥 당신의 명성을 들었을 뿐이지.] [그럼, 그 귀를 씻어 버려. 누군가 자네 귀에 똥을 싼 모양인데.] [대결!]하치의 한마디에,
켄의 눈빛이 야수처럼 번쩍였다.
켄과 하치의 검이 공기를 가르며 치열하게 부딪쳤다.
날카로운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켄의 검결은 화려하면서 변화무쌍했지만,
그의 표정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하치는 켄의 검을 아슬아슬 받아내며 가까스로 견뎠다.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결착의 순간이 오자, 둘은 하늘로 솟았다.
하치는 온 힘을 다해 켄의 옆구리로 칼을 뻗었고
켄은 몸을 틀어 하치의 정수리를 향해 검을 날렸다.
하치의 검이 두 동강 나고
배우진 ‘켄’이 아키라 ‘하치’의 목을 베려할 때,
[켄, 그만 해!]미치코가 달려 들어왔다.
“컷!”
피디는 우렁차게 컷을 외쳤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테이크 하나하나에 실린 배우진의 연기는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열 시가 되기 전에 촬영이 모두 끝났다.
***
도쿄에서 벗어나 2시간을 달려 아시루 온천 특구에 도착했다.
빽빽한 침엽수림으로 둘러 싸여 있는 산골 온천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하천 양 옆으로 온천이 흐르고, 전통 목조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와우. 여기 오니까 진짜 일본 같다.
저기 구름다리랑, 가로등, 안내판들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어.
저 산에서 가져온 나무들인가? 그래서 여기를 나무마을 온천이라고 부르는구나!”
현아가 차창에 딱 달라붙어 마을을 두리번거렸다.
“누나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 이런데 안 와봤어?”
“공부한다고 학교랑 집만 왔다 갔다 했었어.
시간이 나도 일본 물가가 좀 비싸야 말이지.”
“누나,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거 다해. 해일이 너도.”
나는 이번 여행에서 누나와 해일이를 위해서라면 한 푼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진이 너 빈말하기 없기다.”
“빈말 안 해.”
“아, 난 온천 목욕부터 실컷 할래.”
해일이가 뻐근한 목을 돌리고, 뭉친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여기저기 쑤시는 것 같았다.
“돈 걱정 안 하고 이런 곳에서 즐길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다.
여기가 마지막 일정이니까 엔화 남은 거 다 써야지.”
현아는 다이어리를 꺼내 적어놓은 쇼핑 리스트를 훑었다.
차는 마을에 들어서고도 부지런히 달려, 산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그곳에 ‘요조라’ 료칸(전통 숙박시설)이 있었다.
“요조라, 이름 특이한데.”
해일이가 료칸의 간판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조라는 밤하늘이란 뜻이야. 여기 밤경치가 좋은가보다.
겨울에 소복이 눈 쌓인 밤의 료칸, 진짜 멋지겠다.”
현아는 마치 쌓여있는 눈이 눈앞에 보이 듯,
두 손을 모으고 료칸 주변 둘러봤다.
“눈 내린 겨울에 한번 더 오지 뭐.”
나도 하얀 눈으로 덮인 뜨거운 온천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랏샤이마세.”
료칸 종업원들이 마중을 나와 짐을 들어주었다.
“최고급 료칸이라더니 서비스가 다르네.”
맑은 공기와 흐르는 온천수,
깨끗한 료칸에 친절한 서비스,
벌써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가자.”
우리는 신발을 벗고 료칸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 걸을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정겨웠다.
데스크 옆으로 울창한 숲이 보이는 통창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오는 계곡물이 바위를 따라 졸졸 흘렀다.
“와~ 신기하다. 온천수가 흐르는 건 처음 봐.”
해일이가 입을 쩍 벌리고 말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뜨끈해지는 기분이다.”
“저기 앉아서 몸을 푹 담그면 신선이 된 기분일 거야.”
“나갈 수 있겠지?”
나와 해일이는 온천 계곡을 잠시 감상했다.
“당연히 나갈 수 있지. 계곡 온천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송 대리가 알아보느라 애 좀 썼지.”
김 실장이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 정말요. 우진아, 나중에 밖으로 나가자.”
“당연하지. 바람소리도 듣고 새소리도 듣고 좋겠다.”
우리는 힘든 것도 잊고 아이마냥 신났다.
“아, 그리고 여기 료칸 음식이 괜찮은 가보더라. 대표님이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으라셨어.”
김 실장이 덧붙였다.
“어? 밥은 제가 쏠 생각이었는데···”
나는 김 실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고생한 일행을 위해 그 정도는 하고 싶었다.
“안 돼. 대표님이 이미 다 결재 끝낸 거야. 한 푼도 너희들 지갑에서 나가게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다.”
와와.
오예. 신난다.
짝짝짝
대표님의 엄명을 듣고 모두들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약간 아쉬웠지만 밥을 살 기회는 다음에도 널렸으니까 이번엔 대표님께 양보했다.
종업원이 다가와 료칸과 온천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했다.
〖이 건물에는 본관 로비와 리셉션 장,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이 있습니다. 각 객실마다 전용 온천장이 있으며, 노천 온천과 계곡 온천을 모두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계곡 온천을 할 때 특별한 친구들이···〗
이 대목에서 종업원은 살짝 웃었다.
〖특별한 친구들이 놀러 올 수도 있으니, 놀래지 마시고, 또한 그들을 놀래 키지도 말고, 다 같이 온천을 즐겨 주십시오 ···〗
특별한 친구?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게 뭘까 생각했다.
여기 로칸을 예약한 송찬기만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지금 알면 재미없잖아.”
우리들의 시선에 압박을 받은 송찬기가 말했다.
“하긴.”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이 설명을 끝내고 객실 열쇠를 주고 갔다.
김 실장이 우리를 돌아보며 나중 일정을 알렸다.
“오늘 원래 계획은 하네다 공항에서 저녁 8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북경으로 가는 거였다. 근데 아침에 중국 측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어. 자정 12시에 전용기를 보내준다고.”
“전용기요?”
김 실장의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래. 하여튼 우리 비행 시각은 자정 12시로 변경되었으니까,”
김 실장은 손목시계를 한번 봤다.
“지금 시간 12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온천을 맘껏 즐기도록. 이상.”
“네.”
“네!!”
***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나는 종업원을 따라 넓고 쾌적한 다다미방으로 들어갔다.
‘응? 이 냄새는 뭐지?’
들어가자마자 누룩곰팡이 발효하는 것 같은 냄새가 훅 올라왔는데,
묘하게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종업원은 바로 입구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1인용 욕조가 있었다.
〖저희 료칸은 각 객실에서도 유황 온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지금 방안에 퍼져 있는 이 특유의 향이 바로 유황 냄새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24시간 겐센 카케나가시입니다.〗
〖겐센 카케나가시? 그게 뭔가요?〗
〖온천을 받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그대로의 깨끗한 물을 쓴다는 것입니다. 산에서 솟아 내려오는 온천수를 24시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료칸 옆으로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온천이 흐르고 있으니,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종업원은 온천을 즐길 때의 복장과 출출할 때 먹는 음식까지 꼼꼼하게 다 설명하고,
〖혹시 더 궁금하시거나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가요?〗
〖아니, 없습니다.〗
〖그럼 즐거운 온천 되세요.〗
정중히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때맞춰 해일이가 왔다.
“우진아, 배부터 채우자. 찬기 형이 레스토랑으로 내려오래.”
“그래. 출출하다. 가자.”
우리는 함께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김 실장, 송 대리, 이민기, 현아가 자리를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산의 풍경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였다.
우리는 뭘 먹을까 한참을 토론하다,
일본식 샤브샤브와 나베를 시켰다.
본식이 나오기 전 찌게다시 여러 가지가 나왔다.
“여긴 섬나라여서 그런가 생선 요리가 많네.
이건 뭐지? 생선 조림 같은데.”
검은색 소스가 발라진 정체불명의 요리를 보고 해일이가 경계했다.
“그거 마구로 테이루야. 참치 꼬리.
음~ 쫄깃하고 담백한 게 맛있다.
콜라겐이 많아서 피부에 좋아.”
송찬기가 살점 한 점을 떼서 먹으며 설명했다.
“그럼 우진이가 먹어야 되는 거네. 지금도 꿀 피부긴 하지만 앞으로 계속될 아시아 일정을 위해서.”
해일이가 마구로 테이루를 내 앞으로 당겨줬다.
“그런가?”
나는 한 젓가락 가져가 씹었다.
쫀득쫀득 씹히는 질감이 독특했다.
“음, 맛있네. 해일이 너도 피부 관리해야지. 같이 먹자.”
나는 마구로 테이루를 해일이 앞으로 다시 놓았다.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먹어. 대표님이 절대 돈 아끼지 말라셨어.”
김 실장이 마구로 테이루를 서로 양보하는 우리 둘의 모습을 보면서 한 접시 더 주문했다.
샤브샤브 육수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쇠고기를 넣고 살살 흔들어 야채와 함께 입으로 가져갔다.
고기 맛이 진하고 고소했다.
다들 긴장이 풀리며 허기가 밀려들어,
대화보다는 먹는 것에 열중했더니,
어느새 음식이 사라졌다.
“음식도 맛있고 풍경도 너무 아름답다. 이제야 좀 쉬는 것 같다.”
현아는 부른 배를 두드렸다.
“아직 온천이 남았어. 이제 다 먹었으면 온천을 즐깁시다.”
해일이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면서 일어섰다.
“좋지.”
“이제 진짜다.”
“즐겨보자.”
***
나는 방으로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객실 뒤쪽 계곡 온천으로 나갔다.
“우진아, 여기.”
먼저 나와 있던 해일이가 나를 불렀다.
“저기 깊은 곳으로 가자.”
“좋아.”
우리는 물이 많이 고여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이야, 여긴 숲이랑 이어져 있네. 신기하다.”
“숲길을 조금 지나면 더 큰 계곡이 나올 것 같다.”
“가보자.”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깊이 들어갔다.
“야, 같이 가.”
뒤에서 현아가 우릴 불렀다.
현아는 커다란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쫓아왔다.
“어, 어, 누나 빨리 와.”
아, 이거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해일이와 나는 눈 둘 곳을 몰라 허공만 쳐다봤다.
“야, 이상한 생각하지 마. 안에 수영복 입었어.”
현아가 과감하게 수건을 벗어던졌다.
꽃무늬 원피스 수영복이 자태를 드러냈다.
“누나 수영복 여기 풍경이랑 잘 어울린다.”
“정말? 근데 더 깊이 들어가게?”
“응, 시시하게 발만 담글 순 없잖아. 조금만 더 들어가면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탕이 나올 것 같아.”
“그래, 가보자.”
잠깐 숲을 지나 더 들어갔더니 역시나 깊은 계곡이 있었다.
큼직한 너른 바위 사이로 온천물이 부드럽게 흐르고
곳곳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많았다.
말 그대로 자연 탕이었다.
“물이 진짜 맑다. 어떻게 온천물이 이렇게 투명하지.”
해일이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물이 고여 있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온몸을 담갔다.
“우와, 진짜 뜨끈하다.”
나와 현아도 뒤따라 온천 계곡에 몸을 맡겼다.
“와우,”
“아~~”
온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온기에 저절로 눈이 스르르 감겼다.
“기분이 묘하다. 위에는 찹찹하고 아래는 뜨끈뜨끈해.”
“아~ 좋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른함을 즐겼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만 우리 주변을 감쌌다.
“우진아.”
송찬기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네.”
나는 눈을 번쩍 뜨면서 대답했다.
송찬기가 내 앞으로 와 앉았다.
“손님 왔었니?”
송찬기는 미소를 머금고 알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손님요? 아니, 아무도 안 왔는데요. 우리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손님이 누군데요?”
나는 의문에 찬 눈빛으로 송찬기를 바라봤다.
송찬기는 내가 놀라는 모습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때,
“엇, 저기! 저기 봐.”
현아가 계곡 아래 나무 사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