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1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11화
번쩍-
알람을 5시에 맞춰 놓았지만, 4시 30분이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새벽 운동으로 하루를 상쾌하게.
음식은 정량만 먹고 인스턴트, 술, 담배는 노노.
회귀하고 하루도 거른 적 없는 바른생활 덕분에 몸에 생기가 넘쳤다.
침대에서 튀어나와 체육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하암~ 나왔냐?”
어김없이 오해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식 매니저가 되고부터 오해일은 새벽 요가반까지 따라나섰다.
며칠하고 말겠지 했는데 녀석의 근성은 진짜 알아줘야 한다. 반쯤 감긴 눈으로 꾸벅꾸벅 졸면서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가자.”
우리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요가 학원으로 달렸다.
학원은 케이블 광고 후 회원수가 많아졌다. 배우진과 함께 요가를 하려는 사람들로 새벽반은 폭발하고 말았다.
새벽반 앞에 새벽반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5시 새벽반이 하나 생긴 것이다.
5시 새벽반은 온전히 배우진을 위한 반이었고, 다섯 명 정도의 회원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5시에 운동하러 나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용히 하루를 빨리 시작할 수 있어 배우진에겐 더 좋았다.
“새벽은 항상 새로움을 줍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우리 몸도 새 몸이 되는 거죠. 이 넘치는 에너지를 오롯이 여러분의 마음과 몸에 깊숙이 담아 두는 것이 새벽 요가의 장점입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 명상의 시간.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새벽 기운을 흡수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렸다.
“아, 왔네요. 이리로 오세요.”
강사의 말에 매트를 들고 누군가 내 옆으로 와 자리를 잡았다.
‘새벽 5시에 새 회원이 왔구나. 오랜만이구만.’라고 생각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헉!
박은하다.
은광여고 외모 탑.
전생에 내 첫 여친.
회귀 첫날, 버스에서 나랑 사귀자고 했었던 바로 그 박은하.
그런데 쟤가 여긴 왜 왔지?
당황한 내 얼굴을 보며 박은하가 씽긋 웃었다. 박은하의 외모는 꼭두새벽에도 빛나긴 했다. 꾸벅꾸벅 졸던 오해일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로.
“자, 이제 수업 들어가겠습니다.”
강사는 스트레칭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팔을 깍지 껴서 뒤로 쭉 뻗어주세요. 팔 구부리지 말고. 네 쭉 폈으면 이제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굽힙니다.”
***
수업이 끝나고 학원을 나왔다. 겨울이라 밖은 아직도 깜깜했다.
박은하가 우리 뒤를 바짝 따라왔다.
오해일은 박은하가 신경 쓰이는지 힐끔힐끔 뒤를 돌아봤다.
“야, 너 왜 자꾸 우리 따라와?”
“따라가는 거 아냐. 우리 집도 이쪽이야.”
“집이 어딘데?”
“야, 수상하게 남의 집을 왜 물어?”
박은하는 인상을 팍 쓰며 오해일을 노려봤다. 오해일은 기가 죽어버렸다.
“야, 배우진.”
박은하가 나를 불렀다.
“너 왜 저번에 버스에서 내말 씹었냐?”
“···”
“그때 정말 쪽팔렸어. 너 내리고 버스 안에 사람들이 얼마나 나 불쌍하게 쳐다본 줄 아냐?”
“아, 그건···.”
살짝 당황스러웠다.
“됐고. 내일도 올 거야?”
“새벽 요가 수업은 하루도 빠진 적 없어.”
“그래. 알았다. 그리고 너!”
박은하가 다시 오해일을 노려봤다.
“진짜 우리 집 이 쪽이야.”
박은하가 오해일을 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거침없는 박은하의 행동에 오해일은 움츠러들었다.
예쁜 외모에 저런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박은하의 매력이긴 했다.
추운 겨울 새벽, 오해일과 나는 박은하와 함께 걷는 듯, 함께 걷지 않는 듯, 함께 걸었다.
***
오전 8시
나와 오해일은 광고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해일이의 조언을 듣고 나는 외모에 조금 신경을 썼다. 아무렇게나 하고 가면 무시당한다고 어찌나 성화를 부리던지,
깔끔한 세미 정장을 입고 흰 운동화를 신었다. 머리는 살짝 드라이 넣어주고.
메이크업, 의상. 촬영, 특수효과 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핸드폰 광고는 판타지라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팀 레퍼런스 확인해 주세요.”
“네. 에프디님. 그런데 모델은 언제 와요.”
“지금 도착했데. 늦어도 오전 9시 30분까지는 마무리 해주세요.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오늘 컨셉 ‘요정’입니다.”
FD가 나가자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번 모델은 누구야?”
“그냥 신인이라는데.”
“신인 정도도 아닌가 봐. 그냥 일반인이래요. 감독님이 국밥 먹다가 발견했대.”
“국밥? 그럼 국밥 모델이야? 촌스러워.”
바쁜 와중에도 그들은 뒷담화를 열심히 깠다.
“좀 심했다. 그래도 메이저 회사 신제품인데 그런 모델을 쓰다니, 좀 그렇네. 금별이 제품은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최유나가 하잖아. 우리도 하지운 정도 써 줘야 되는 거 아냐.”
“테스트 제품인가 보죠. 뭐.”
“하여튼 오늘은 우리가 힘 좀 바짝 써야겠네. 능력을 좀 보여줘야겠구만.”
메이크업 담당자들은 오늘 고생 좀 할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모델 도착했습니다.”
FD가 배우진을 들여보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배우진이 대기실에 들어섰다.
빛이 났다.
대기실 안의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 버렸다.
‘뭐냐?’
‘스타일링을 다해서 오면 난 뭐하라고?’
‘연예인 수백 명 봤지만, 이 외모는 정말 찐 이다.’
스태프들은 배우진의 외모에 빠져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뭐합니까? 빨리 시작 안 하고. 시간 없어요.”
FD가 다그치자 스태프들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스피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 앉으세요. 여기.”
배우진이 거울 앞에 앉자, 초고난이도 복화술이 시작되었다.
[미쳤어. 미쳤어. 초대박. 초대박.] [엘프를 데리고 와놓고선 레퍼런스가 엘프 분장이라고. 오늘은 그냥 놀아도 되겠다.] [언니. 나 떨려서 빗질을 못하겠어.]모두들 웃음가스라도 마신 듯 입 꼬리가 천장 끝까지 올라갔다. 어떤 스태프는 자기도 모르게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매일 이렇게 즐겁게 일하면 얼마나 좋아.
분주한 대기실로 여운진 감독이 콘티북을 들고 나타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떠오르던 분위기가 순간 가라앉았다.
“우진아. 잘 봐. 이번 제품의 콘셉은 신비로움이야. ‘미지의 세상에서 너를 만나다’ 이런 느낌.
처음에 신비로운 숲에서 언뜻 요정이 보이고. 그 요정이 환상적인 빛에 이끌려 숲을 헤치며 뭔가를 찾으러 가는 장면.
여기에서 나무 꼭대기에 올라서는 장면 나올 거야. 와이어 액션이 들어가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 무조건 안전하게 갈 거야.”
여운진 감독은 한 장면 한 장면 어떤 표정과 동작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신비로운 샘물에서 물방울 하나가 튀어 오르고 그 물방울 안에 우리 제품 가 있는 거지.
마지막 라스트는 를 아주 사랑스러운 눈으로 요정이 쳐다보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콘티북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 진행 사항이 쉽게 정리되었다.
“혹시 봤어?”
“톰 행크스 제가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그래. 그때 톰 행크스가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의 여심을 흔들어 놓았지. 그런 눈빛이 필요해.”
“네, 톰 행크스처럼··· 해볼게요.”
“그럼 잠깐 연습해볼까?”
배우진이 감정을 잡았다. 순진해 보이던 소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한 여인을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
배우진은 고개를 돌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헤어디자이너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머리를 손보던 헤어디자이너는 뜨끔했다. 눈빛 속에 불화살이라도 들었나. 얼굴이 뜨거워졌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하나의 별을 보는 듯 애틋한 눈빛을 헤어디자이너를 향해 계속 쏘았다.
헤어디자이너는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 요동치고 얼굴이 빨개졌다. 호흡이 가빠져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운진 감독의 마음은 통쾌 상쾌했다.
완벽하고 완벽하도다.
감독은 걸어 나가면서 헤어디자이너에게 한마디 던졌다.
“쟤, 아직 고등학생이야.”
요정으로 변신한 배우진은 촬영장을 환하게 비추었다. 조명이 없어도 될 정도였다.
블루 스크린 앞에 정교하게 만든 요정의 숲 사이로 들어선 배우진은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요정 그 자체였으니까.
큰 키에 마른 몸, 가는 팔과 다리, 넓은 어깨, 뽀얀 피부, 가느다란 눈매에 속 쌍꺼풀, 오똑한 코, 작고 도톰한 입술, 브이라인이 살아있는 턱선.
그냥 숨이 막혔다.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입을 살짝 다물고 뭔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은 신비롭고 몽환적이었다.
“아니, 블루 스크린 앞에서 저 정도야. 여 감독 눈썰미는 진짜 알아줘야 한다니까.”
최 피디가 화면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NG없이 술술 찍다 보니 금방 마지막 와이어 촬영만 남게 되었다. 넓은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다. 와이어 촬영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거 잡아당기면 날아서 저기 발판에 살짝 내려앉으면 돼. 거기가 거대한 생명나무야.”
여 감독은 건물 3층 높이쯤에 설치돼 있는 발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설명을 듣던 배우진이 잠깐 멈칫거렸다.
“왜? 혹시 고소 공포증?”
“···”
배우진은 공간을 자세히 살폈다.
“그래도 그렇게 높지는 않을 건데···”
여 감독은 ‘마지막 촬영에서 고생 좀 하나’ 생각을 했다. 배우진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붕 떴다가 나뭇가지에 앉으면 어색할 것 같아서요. 공중에서 걸음을 걷듯 나무를 밟아 올라가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와이어 액션팀은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배우진의 아이디어는 그림으로는 좋지만 연기하기가 만만치 않은 동작이었다. 자칫하다가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었다.
“안 돼요. 그거 너무 고난이도예요. 프로도 몇 달 연습해야 합니다. 위험해요. 위험해.”
액션팀이 반대했다.
“저, 할 수 있습니다.”
배우진은 단호했다. 장면이 어색한 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일직선으로 나무에 오른다면 앞에서 찍어 놓은 장면들과 어울리지 않아. 정말 요정처럼 나무를 밟으며 타고 올라가야 해.’
몸은 충분히 단련돼 있다. 액션 스쿨에서 일주일 두 번씩 무술을 익히고 있고, 매일 새벽 요가로 균형감각과 유연성도 기르고 있다.
“할 수 있어요. 작품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죠. 한번 하게 해 주세요.”
배우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한 번 해 봅시다. 모델이 이렇게나 원하는데···”
배우진의 고집에 액션팀과 여 감독이 승낙을 했다.
와이어 담당은 공중 걷기에 맞게 와이어 장비를 재조정하고, 바뀐 콘티에 맞게 동작을 다시 짜 맞췄다.
준비가 끝나고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졌다.
“자, 갑니다. 큐~”
나는 앞으로 달렸다. 스태프들이 와이어를 당겼다. 나는 허공에 붕 떴다. 자연스럽게 뭔가를 짚듯이 두 발을 뻗었다.
“바짝 당겨.”
몸이 위로 조금 더 올라섰다. 다리를 뻗었다. 발레리노가 발레를 하듯 한발 내디뎠다.
“더 땡겨.”
내 몸은 더 위로 올라갔고, 나는 또 한발 내디뎠다.
요정이 거대한 나무를 바람처럼 밟아 나아갔다.
밑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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