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16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17화
마리 앤은 고개를 흔들면서, 다음 사진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이번엔 배우진이 신고 있는 하이탑 운동화가 눈에 밟혔다.
“설기야? 배우진 하이탑 좋아해?”
마리는 한참 작곡에 열중인 설기에게 물었다.
“하이탑? 잘 모르겠는데. 그러고 보니까 그런 종류를 많이 신었던 것 같기도 하고···”
설기는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으음. 내가 보기엔 배우진은 단화가 더 어울려. 하이탑은 정말 아웃이야.”
마리는 설기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배우진에게 열중했다.
마리 앤에게는 패션에 대한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과 고집이 있었다.
여전히 찝찝한 표정으로 마리는 사진을 넘겼다. 이번엔 배우진의 팔목이 눈에 들어왔다.
“정현아 씨는 실 팔찌 레이어드 좋아하네. 아까 사진에도 있던데 이 사진에서도 하고 있어. 뭐 크게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배우진의 전체적인 톤을 생각하면 뱅글 골드가 낫지.”
마리는 쉴 새 없이 배우진의 스타일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혼잣말을 내뱉더니,
갑자기 배우진의 사진을 오설기 옆으로 갖다 대었다.
“어··· 언니 뭐야?”
뭔가 눈앞에 쑥 들어오자 설기가 깜짝 놀랐다.
“아, 미안. 둘이 어떻게 어울리나 맞춰 보려고. 의상 선택을 해야 하니까.”
마리는 머릿속으로 배우진과 오설기에게 수많은 옷들을 입히고 벗겼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두 사람의 케미를 발산할 수 있는 아이템을 구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 속 배우진과 실제 오설기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둘이 올라운드 검정 가죽 재킷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설기 너 한 번씩 도발적인 데가 있거든. 배우진이야 어떤 스타일도 소화하는 얼굴이고.”
마리 앤이 툭 내뱉었다.
“응? 내가?”
설기는 도발적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평범하다 청순하다 귀엽다 예쁘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도발적이란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몰랐어? 너 노래할 때 가끔 눈빛이 싹 달라져.”
“도발적으로?”
“하긴 너 노래 부르는 모습을 너는 못 보지. ··· 그··· 특히 어떤 가사더라.
그래, ‘내 눈에 깊게 들어와 봐. 내 눈을 피하지 말고. 조금만 더 내 눈을 쳐다봐 줘.’ 이 부분 말이야. 너 이 가사에서 눈빛이 도발적이야.”
설기의 스타일링을 맡은 이후, 마리는 설기의 성격, 감정, 내면을 자세히 관찰해 오고 있었다. 하루라도 실패 없는 스타일링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했다.
“정말 그래? 내가?”
“누굴 간절히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지. 그 가사 누구 생각하면서 부르는 거야?”
“누굴 떠올리긴! 그런 거 없어.”
설기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사실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배우진을 생각했었는데, 마리에게 그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뭐. 귀까지 빨개질 건 없잖아.”
마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는,
다시금 배우진의 사진을 들고 스타일링을 연구했다.
‘아, 이 정현아라는 사람 나랑 좀 안 맞겠는데. 뭔가 과감하긴 한데 기본이 너무 안됐어.’
학교에서 정식으로 패션을 공부한 마리에게 현아의 스타일링은 너무 불안정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성에 차지 않았다.
“설기야. 이번에 화보 찍을 때, 너 스타일링은 내가 하는 거 맞지?”
“그렇지. 협찬 들어온 의상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다고 했으니까. 내 단독 컷은 언니가 골라야겠지.”
“그래.”
마리는 안심했다. 그리고 더 욕심이 났다.
“그럼 너랑 배우진 같이 찍는 샷은?”
“그건···”
정현아의 몫 일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설기는 일단 참았다.
“그것도 내가 스타일링을 맡았으면 좋겠는데··· 배우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
마리는 욕망을 드러냈다.
배우진이 너무나 탐이 나서, 자기 손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우진이 선배 담당은 현아 언닌데··· 그쪽이 경험이 더 있으니까, 그쪽에서 담당하지 않을까?”
설기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마리에게 넌지시 말했다. 마리가 김칫국을 더 마시기 전에 말려야 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난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했고, 뉴욕 베스트 디자이너 루키상도 받았는데. 다들 내가 스타일링하는 거 보면 깜짝 놀랄 걸.”
마리 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 실력으로든 학력으로든 정현아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우진 선배는 현아 언니 엄청 신뢰해. 그리고 현아 언니 실력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고.”
설기는 마리가 걱정되었다.
“뭐,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니까. 내 능력을 보면 배우진도 아니 그 누구도 거부 못할 거야.”
설기의 진실한 충고에도 마리는 거침이 없었다.
***
자정이 훌쩍 넘어 설기를 태운 비행기가 무사히 홍콩에 도착했다
공항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 흔한 팬이나 기자도 한 명 없었다.
홍콩 언론과 팬들에게 극적 효과를 주려고
설기 일행은 일부러 극비리에 홍콩으로 들어온 것이다.
“설기야, 여기!”
입국장에 나와 있던 송찬기가 설기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빠, 정말 오랜만이에요.”
설기가 송찬기에게 손을 흔들며 달려갔다.
설기의 매니저 우동훈과 스타일리스트 마리 앤이 뒤따랐다.
송찬기는 설기에게서 뭔가 변화를 느껴, 가만히 설기를 쳐다봤다.
“왜··· 왜요? 오빠.”
“어··· 그··· 아니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
“그래요? 어떻게요?”
“뭐랄까 세련되면서도··· 뭐··· 뭔가···”
“그걸 섹시해졌다고 하는 거죠.”
송찬기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헤매자, 마리 앤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 네. 그렇네요. 학생 같기만 했었는데,”
“안녕하세요. 오설기 전담 스타일리스트 마리 앤이에요. 송찬기 대리님 맞으시죠?”
마리 앤은 배우진 일행이 투어에 나서고 난 후 폴 엔터에 입사를 했기에, 송찬기를 비롯한 모두와 초면이었다.
“···네···네. 안녕하세요. 송찬기 맞습니다.”
마리 앤과 송찬기가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우리 설기가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에만 갇혀 있어서, 제가 욕심을 내 봤어요. 하이 웨스트 미니스커트에 허리를 강조한 상의 크롭으로 섹시함을 더했죠. 어때요 눈길이 가죠?”
마리는 거침없이 자신을 어필했다.
“네··· 눈길이 갑니다”
송찬기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언니. 뭘 그런 걸 다 얘기해. 부끄럽게.”
설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산되는 마리의 당당함이 당황스러웠다.
“너, 설기. 패션은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라고 했지. 패션의 시작과 끝은 당당함이야. 입는 사람이 부끄러워하면 이미 그 패션은 생기를 잃은 죽은 패션이라고. 꼭 명심해.”
‘다나를 능가하는 개성파가 우리 회사에 또 하나 들어왔구나!’
송찬기는 마리 앤을 결론지었다.
“대리님. 가방은 어디에 실을 까요?”
설기 매니저 우동훈이 가방을 들면서 물었다.
“아, 밖에 차 대기돼있어. 피곤할 텐데 빨리 숙소로 가자.”
“네.”
오설기 일행은 밴에 올라탔다.
“아무리 극비리에 들어왔다고 진짜 팬이나 기자가 한 명도 없네요.”
우동훈이 아무도 없는 썰렁한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왜? 좀 섭섭해?”
“섭섭하다기보다는, 어딜 가나 사람들 고함 소리, 사진기 소리에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막상 아무도 없이 조용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해서요.”
“맞아. 그동안 너무 정신없었어.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니까. 그러고 보면 우진 선배는 나보다 열 배는 더 바쁠 텐데, 그 일들을 어떻게 다 소화해 내는 거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
오설기는 배우진을 진심으로 존경을 했다.
“우진이는 뭐···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고 할까? 퍼펙트 하지.”
송찬기가 오설기의 말에 동의했다.
“우진 씨,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데요. 정말 욕심나는 모델이거든요. 스타일리스트들에겐.”
마리는 배우진을 스타일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 송 대리님. 이번에 화보 촬영 때 저희가 직접 코디를 하잖아요.”
마리가 눈을 반짝였다.
“아, 네. 그렇죠. 루루에서 우리 쪽 스타일리스트를 믿으니까.”
송찬기는 정현아를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어, 그럼 배우진과 오설기 커플 화보 찍을 때,
두 사람 다 제가 코디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영감이 많이 떠올라서 그래요. 멋진 커플 화보가 될 거예요.”
마리는 브레이크도 없이 쑥 들어왔다.
지금까지 쭉, 머릿속에 그 생각만 가득 차서 참을 수도 없었다.
“어 ··· 그래도··· 음, 그건. 정현아 씨도 있고.”
송찬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왜요? 정현아 씨가 배우진 씨랑 오래 해서?”
마리는 실력으로 정현아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 자신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면,
모든 기회는 정현아에게 가게 될 것이므로,
과감하게 의사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 우진이 스타일링은 현아 씨가 맡았으니까요. 항상 성공적이었고요.”
송찬기는 정신을 차리고, 정현아가 일을 맡게 될 것임을 드러냈다.
“에이,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요?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그 길로 가야죠.”
“··· 배우진의 매력을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일을 맡아야 하지 않겠어요? 현재로써 그 사람은 정현아 씨고요.”
송찬기는 정현아 편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 스카이라운지에서 이 일에 대한 논의도 다 끝냈다.
전체 틀은 정현아가 잡고. 마리 앤은 의견을 보태는 정도로.
사실 이번 화보는 배우진이 주인공이고, 오설기는 배우진의 보조 역할로 분량도 적었다.
그러므로 화보의 처음과 끝의 결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모든 샷이 정현아의 책임 아래 가는 것이 맞았다.
“배우진만 화보를 찍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오설기는 그럼 뭐 꿔다 놓은 보릿자루예요?”
배우진 파워에 밀리자 마리 앤은 오설기를 걸고넘어졌다.
“어··· 언니. 나는 괜찮아. 이번 화보는 우진이 선배 화보잖아···”
오설기가 화들짝 놀라서 자신은 주인공이 아님을 밝혔다.
“아니. 넌 괜찮을지 몰라도 난 안 괜찮아. 네가 들어간 화보는 내가 책임져야지.
그리고 제가 볼 때 현아 씨는 아직 기초가 많이 부족해요.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됩니다.
이제 아시아가 좁은 배우진에게 아메리카 스타일을 잘 아는 제가 나서는 게 맞습니다.”
마리 앤은 자기 피알을 끝도 없이 늘어놓았다.
“그 문제에 대해선 지금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이 아니네요. 내일 현아 씨와 의견을 조율해보죠.”
송찬기가 마리의 의견을 유보했다. 마리 앤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차는 홍콩의 밤길을 부지런히 달려 IFG 빌딩 호텔에 도착했다.
***
송찬기가 오설기 일행과 함께,
IFG 빌딩 호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32층 33층 버튼을 눌렀다.
“엄청나게 높은 빌딩이네요. 그런데 빌딩 안에 호텔이 있어요?”
우동훈이 물었다.
“8층 까지는 쇼핑몰이고, 12층부터 35층까지가 호텔 객실이야.”
“그럼 그 위에는 뭐예요?”
우동훈은 홍콩이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거기는 각종 사무실이 있지. 홍콩이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라 그런지, 금융 회사가 많이 들어와 있더라”
32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여기서 동훈이와 마리 씨는 내리면 됩니다. 설기 가방은 저에게 주시고요.
아침 7시에 조식 먹고 8시 30분까지 33층 3313호로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설기야, 내일 봐.”
“응. 내일 봐.”
설기와 찬기는 한 층 더 올라가 33층에서 내렸다.
둘은 3313호를 지나쳐 3314호 앞에 섰다.
“설기 네 방이 여기 3314호고, 옆방 3313호는 우진이 방이야. 둘이 의논할 게 많을 테니까 방을 붙여 놨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아, 네.”
“설기 네가 온 걸 알면 우진이가 무척 반가워할 텐데,
지금은 자고 있을 거니까 내일 보도록 하자.”
“네.”
송찬기는 3314호 문을 열고 짐을 현관까지 넣었다.
“고마워요. 피곤하실 텐데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푹 쉬고 내일 보자.”
송찬기가 손을 흔들며 떠났다.
설기는 3313호를 잠시 쳐다보다 문을 닫았다.
시계는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용한 방에 혼자 남으니 피곤이 사정도 없이 밀려들었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
낮엔 분명히 서울에 있었는데 지금은 홍콩이라니.’
설기는 뜨거운 물에 샤워부터 했다.
‘옆방이 우진 선배 방이라고 했지.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것만도 얼마만이야?’
샤워를 마친 설기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이 말똥 해졌다.
‘왜 이렇지.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베란다로 나가 바람이라도 쐐 볼까?’
설기는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도시의 바람이 한 차례 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헉!
엇!
“··· 설기야. 왔어?”
옆 베란다에서 우진이 설기를 보고 있었다.
“서··· 선, 선배.”
놀란 설기가 말을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