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17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18화
“아···직··· 안 잤어요?”
당황한 설기가 계속 말을 더듬었다.
우진은 활짝 미소 지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바람이나 쐴까 하고 나왔어. 평생 이런 적은 없었는데··· 옆방에 누가 온다는 얘길 들어서 그런가.”
우진이 대답했다. 어색한 분위기는 농담으로 푸는 게 제일 좋았다.
설기가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웃었다.
“선배, 머리가 많이 길었네요. 잘 어울려요. 신비로우면서도 거친 분위기가 살아있어요.”
설기는 우진의 외모 변화를 한눈에 알아봤다.
“화보 촬영을 위해서 계속 길렀어. 현아 누나가 생각이 있나 봐.”
우진이 어깨까지 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렀다.
그 모습을 보는 설기의 마음이 아찔했기에, 급 화제를 바꿨다.
“참, 일본이랑 북경 팬미팅은 어땠어요?”
“팬미팅? 엄청났어. ‘아니 나는 어떻게 일본 중국에서도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거야? 내 외모는 안 먹히는 곳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했지.”
우진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젠 대놓고 잘 생겼다고 하네요.”
“뭐, 거짓말은 나쁜 거니까. 큭큭큭.”
우진은 실컷 웃고 난 다음,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실 팬들이 그렇게 많을 줄 상상도 못 했어. 너무 고맙고, 팬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
아, 그리고 일본 마지막 날에 노천 온천 갔었는데, 원숭이들도 온천을 즐기데. 원숭이랑 같이 온천도 했어. 비 오고 무지개 뜨고 정말 멋졌는데.”
우진은 그날 온천을 하면서 설기를 생각했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설기랑 다시 오고 싶다’ 뭐 그런 생각.
지금 설기를 보니, 다시 그날의 온천이 떠올랐다.
“어머, 정말요? 원숭이가 온천을 해요? 아, 나도 가고 싶다.”
설기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겨울에 우리 폴 엔터 가족 모두랑 다시 오자고 해일이랑 약속했거든. 설기 너도 그땐 꼭 같이 가자. 눈 내리는 겨울엔 더 운치 있을 거야.”
“당연하죠. 아무리 바빠도 스케줄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갈 거예요. 날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설기가 의지 가득한 귀여운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표님이 설기 네 자랑 엄청 늘어놓고 가셨어. 조영필 선배님과의 피처링부터, 예능, cf, 화보, 드라마, 영화··· 하여튼 요즘 오설기 빠지면 우리나라 방송이 멈춘다던데.”
“우리 대표님도 뻥이 지나치시네.”
크크크
호호호
하하하
우진과 설기는 실컷 웃었다.
스스럼없는 이런 대화가 얼마만인지.
머리가 맑아지고 어깨가 가벼웠다.
그 순간 설기는 확신이 들었다.
우진과 자신은 운명이라는 확신.
그동안 일 때문에 망설였지만,
더 이상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성공한 인생이니까.
“그런데 저, 선배랑 찍고 난 다음부터, 노래만큼이나 연기도 하고 싶어 졌어요.
오설기가 평상시에 할 수 없었던 말이나 행동을 ‘제이’가 속 시원하게 하니까 너무 신났거든요.
연기라는 게 그런 매력이 있더라고요.”
“설기 넌 연기 재능 있어. 마음먹고 열심히 하면 금방 인정받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야.”
“선배님처럼요?”
“아니. 나처럼은 힘들지.”
크크크
호호호
하하하
이번에도 둘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평생 쌓아둔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난 우진 선배가 정말 좋은데, 우진 선배의 마음은 어떨까?’
설기는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저··· 어··· 선배님··· 죄송한데···”
“뭔데? 무슨 할 말 있어?”
“네, 제가 요즘 관심 있게 보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지금 거기 나오는 대사 연습을 좀 해도 될까요?
막 필이 꽂혀서 참을 수가 없네요.”
“오호 그래? 연기라면 좋지. 한번 해 봐. 내가 봐줄게.”
“어머. 정말요? 고맙습니다.”
순간 부드러웠던 설기의 눈이 왈가닥으로 변하더니,
[야! 넌 정말 구제 불능이다. 구제 불능이야. 맨날 떡집 딸 그 뭐냐, 그래··· 은채 뒤치다꺼리나 하고 좋냐? 좋아?좋아한다고 입도 뻥긋 안 해 봤지. 봐, 봐··· 이거 봐, 봐. 넌 뭐 은채 얘기만 나오면 낮술 먹은 듯 얼굴이 빨개지냐. 딱 보아하니 좋아는 하는데 아무 말도 못 해 봤네.
너 그렇게 주저주저하다 걔 다른 놈이 채가. 눈독 들이는 늑대 같은 놈들이 득실득실하다고.
그러니까 싸나이답게 가서 나 너 싸랑··· 아, 아니. 좋아해. 그러니까 오늘부터 우리 1일 하자. 그렇게 말하란 말이야.
짜샤. 아, 이 누님 얘기를 귓등으로 들었다가 땅 치고 후회한다. 이 누나가 해주는 충고···
절대 잊지 마. 알았지. 알았으면 대답을 해.]
설기가 손날을 세워서 공중으로 팍 들었다.
[어··· 어.]우진이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대사가 뭔가 오묘하고, 설기의 연기는 열정적이었다.
“어때요? 괜찮았어요?”
설기는 다시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게 연기였어? 아우, 난 진짠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설기야 그거 영화야? 드라마야? 너무 리얼하고 재밌다. 제목이 뭐야?”
우진은 설기의 연기를 칭찬했다.
연기랄 것도 없고 그냥 진짜 같았으니까.
“아직 제목은 없어요. 지금부터 잘 만들어 가야 하는 시나리오거든요. 연기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목도 정해지고 분량도 정해지고 장르도 정해지고, 뭐 그런 거예요.”
설기는 양 입술을 꾹 다물고 우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우진 선배는 내 마음을 알았을까?’
고백을 하고 나니 설기는 부끄러웠다.
물론, 우진이는 못 알아들은 것 같았지만.
“선배님. 갑자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지네요.
전 이제 들어가 잘게요. 내일 봐요.”
설기는 더 이상 우진을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래. 내일 봐. 현아 누나가 하자는 대로 하려면 푹 자 놔야 할 거야.”
“앗!”
설기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현아 이야기에 마리 앤의 욕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저, 저 새로 온 스타일리스트가 있거든요.”
“응?”
“좀··· 뭐랄까 그 언니가 자기주장이 강해요.”
“자기주장이 강하면 좋지. 자기 스타일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얘기니까.”
“어··· 그런데 그게 많이 강해요. 어메리칸 스타일 같은 뭐. 어쨌든 많이.”
“그래?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내일 기대된다.”
“전 분명히 말했어요. 선배님은 현아 언니한테 말해 줘요.
이제 그만 들어가 잘게요. 굿나잇.”
“그래. 너도 좋은 꿈 꿔.”
우진과 설기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내일을 맞이하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
룸서비스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하루 스케줄을 살피려는 순간 해일이와 현아가 들어왔다.
둘은 잡지, 화보, 서류, 의상 샘플 등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잘 잤어?”
“응, 푹 잤지. 요가하고 밥 먹고, 스케줄을 살펴보려던 참이야.”
“컨디션 좋고. 좋았어.”
해일이와 간단한 아침 인사를 나눴다.
“저녁까지 의상 정해서 루루에 넘겨야 해. 오늘 일이 좀 많겠다.
새벽에 일어나서 어느 정도 맞춰놓기는 했는데···“
현아는 테이블에 파일을 펼쳐놓으며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근데 어제 설기랑 이야기를 좀 했거든.”
“설기 어젯밤 늦게 들어왔잖아. 어떻게?”
“잠이 안 와서 베란다에 나갔는데 설기도 나오잖아. 그래서 대화를 좀 나눴지.”
“오, 텔레파시가 통했구나.”
“그런가? 어쨌든 설기가 새로운 스타일리스트 좀 강하다고 누나한테 전해 달래.”
나는 설기가 당부했던 이야기를 현아에게 전했다.
“강해? 뭐가 강해?”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그 정도로만 말하더라고.”
“우진이 단독 컷은 내가, 설기 단독 컷은 그쪽이, 둘이 함께 찍는 건 내 주도하에 합의를 이뤄서.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어쨌든 이번 화보는 우진이 네 화보니까, 네 스타일리스트인 내가 주도하는 건 맞잖아.”
이미 일하는 방식이 다 결정 났는데, 강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현아가 말했다. 그건 내 생각도 같았다.
“그건 그렇고, 누나 안 피곤해?”
평소와 다르게 현아의 표정이 많이 굳어있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크게 피곤하진 않는데, 머리는 좀 띵하네. 여기 커피 없나?”
현아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있지. 내가 커피 타다 줄게. 누나는 여기 잠깐 앉아서 쉬어. 해일아 너도 마실래?”
“좋지. 배우진이 타주는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 몇이나 될까?
배우진 매니저라서 행복해.”
“두 사람에게는 매일이라도 타 줄 수 있어.”
호텔방에 있는 미니바에는 고급 커피가 종류별로 진열돼 있었다.
내가 쓰는 방이라 특별히 더 신경 쓴 것 같았다.
그 중 제일 맛있어 보이는 커피를 골라, 세 잔 만들어 거실로 나갔다.
“음, 냄새 좋다.”
“부드럽고 그윽하다.”
“정신이 확 맑아지네. 이제 일 하자. 우진아, 땡큐!”
현아가 디자인 북을 펼치며, 스타일링 컨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긴 홍콩 몽콕 시장.”
현아가 직접 펜으로 그린 스케치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생생했다.
그림만으로도 어떤 분위기가 연출될지 한눈에 보였다.
“몽콕 시장은 활기차고, 좀 거친 느낌이거든.
그 분위기에 맞게, 레트로 스타일의 부츠컷 청바지와 B-2 레드 자켓으로 도시의 야성미를 표현하고, 신발도 거기에 맞춰 라이키 레거시 275를 배치할 거야. 디테일한 부분은 B-2 자켓이랑 레거시 275 컬러가 딱 맞아떨어지게끔 하고.
거친 남자의 스트릿 패션과 이 장발이 잘 어울릴 거야.”
“멋지다. 맘에 들어.”
누나는 디자인 북 다음 장을 넘겼다.
“다음은 소호 거리.
여기는 슬림 핏의 A-3 쟈켓에 베이지 카노 팬츠와 맨디 블랙 토르 워커로 매치를 할 거야. 안은 블랙 셔츠로 톤온톤으로 하고. 액세서리로는 로열 크로노 43청을 쓸 거야.
새벽의 차가운 분위기랑 잘 어울리게.”
나는 현아의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머리를 끄덕였다.
현아의 스케치를 통해 다 알 수 있었기에.
띵동-
띵동-
현아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벨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가 볼 게.”
해일이가 나가서 문을 열었다.
“오, 설기.”
오설기 뒤로 송찬기, 우동훈, 마리 앤, 그리고 이민기와 김동국까지 모두 함께 들어왔다.
“어머, 설기야. 오랜만이다.”
현아가 일어서서 오설기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확 달라진 오설기를 재빨리 스캔했다.
‘전보다 패션이 안정적이고 세련돼 졌네. 오설기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아이템을 배치했어. 그런데 너무 교과서적이다.’
현아는 달라진 설기의 패션을 보며, 자연스럽게 마리 앤에게 눈길을 보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 설기의 스타일리스트?”
현아는 마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반갑네요. 마리 앤 이에요. 정현아 씨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해요.”
마리 앤이 손을 내밀었고 현아도 주저함 없이 그 손을 잡았다.
“자, 자. 모두 앉읍시다.”
김 실장의 말에 모두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간단한 인사와 안부를 묻고 난 다음,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자, 내일 루루 잡지 화보 촬영이 있습니다.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홍콩 관광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화보를 촬영할 예정입니다. 송 대리. 준비는 잘 되고 있나?”
김 실장이 송 대리를 쳐다보며 구체적인 준비 사항을 물었다.
“네, 오후 6시까지 루루 담당자에게, 저희가 선택한 협찬 제품을 알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자료는 이미 정현아 씨와 마리 앤 씨에게 넘겼고,
두 분은 자기가 맡은 부분에 대해서 결정을 내려주세요.
배우진에 대한 의상은 정현아 씨가, 오설기에 대한 의상은 마리 앤 씨가. 그리고 둘이 함께 찍는 장면은 ···”
이 부분에서 송찬기는 잠시 멈췄다.
“정현아 씨 주도하에 마리 앤 씨가 도와주세요.
배우진 60컷, 오설기 10컷, 그리고 커플은 15컷입니다.”
송찬기는 원래 계획대로 말했다.
마리 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기, 커플 컷은 제가 맡고 싶습니다.
배우진 오설기 의상 둘 다 조화롭게 코디할 자신 있어요.
정현아 씨는 배우진 60컷만 해도 많은데, 제가 커플 15컷을 맡을게요.
그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마리 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