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19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20화
오설기는 울고 있는 마리를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
창문부터 열고 마리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시원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언니, 열 좀 식혀.”
“응.”
마리는 눈물을 닦으며 소파에 앉아,
정현아가 뱉어 낸 말들을 되새김질했다.
생각할수록 분했다.
‘뭐? 내가 담당 모델을 이해 못한다고. 내가?’
마리는 퉁퉁 부은 눈으로 오설기를 관찰했다.
‘이런! 정현아 말이 다 맞잖아.’
설기의 체형은 현아가 말한 그대로였고,
스타일링은 판에 박힌 듯 뻔했다.
‘아, 짜증나. 정현아 말이 맞다니!
내 나름대로 설기를 분석한다고 했는데,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잡아내지 못했어.
정현아는 자기 배우도 있으면서,
남의 가수까지 언제 그렇게 다 신경 썼대?’
그 순간, 파슨스 디자인 스쿨 재학 당시 지도 교수였던, 매츠 교수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마리, 넌 라인배커야 (linebacker). 공격수들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대는 최고지.물 샐 틈 없는 수비. 누구도 너에게 쓴소리 못하도록 방어하는 데는 천재적이야.
그래서 넌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를 못해. 과감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어.
팀이 오직 수비수로만 이루어져 있어. 모두 남의 것이야.]
매츠 교수는 마리를 미식축구 수비수들을 가리키는 라인배커라 부르며, 그녀의 한계를 지적했었다.
‘아니야! 아니야!’
마리는 그 말들을 흩어 놓으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지만
그럴수록 말들은 더욱 마리의 귀에 달라붙었다.
매츠 교수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마리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절실했다.
“언니, 좀 괜찮아?”
설기가 생수 마개를 따서 건넸다.
“설기야! 이번 화보 프로젝트는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거야.
각 협찬 제품들이 내로라하는 명품들이라고.
그 제품들을 엉망으로 만들 순 없잖아.”
“응, 그렇지.”
“그만큼 패션 업계가 이번 프로젝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스타일리스트뿐만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 헤어 디자이너,
심지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까지.
또 연예계와 관계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 전부 다.
일반인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나 스타일리스트들은 단번에 알아차려.
기본기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이 배우진의 스타일을 맡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아마 모두 비웃을 거야.”
마리는 정현아는 적합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설기에게 어필했다.
설기는 기분이 얹잖아졌다.
“언니. 미안하지만 이쯤에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어.
내 앞에서 현아 언니 뒷말은 참아 줘.
그리고 현아 언니. 그렇게 실력 없는 사람 아니야.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게 인정도 받았어.”
“그게 아니라···”
마리는 뭐라 말을 하려다,
설기의 서늘한 눈빛을 보고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들을 도로 집어넣었다.
“나 이렇게 불편한 거 싫어.”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설기가 단호하게 나오자, 마리는 살짝 당황했다.
삐이-
삐이-
“응? 누구지?”
설기가 현관으로 나가 밖을 쳐다봤다.
현아가 문 앞에 서있었다.
“현아 언니야.”
설기는 문을 열면서, 마리에게 현아가 왔음을 알렸다.
“칫.”
마리는 현관에서 고개를 돌렸다.
“언니, 괜찮아요? 마리 언니는 아직 그대로예요.”
설기가 현아를 맞이하며 분위기를 살폈다.
“내가 알아서 할 게.
너한테 까지 불똥 튀기게 해서 미안해.
우리가 우진이랑 설기 너를 편하게 해줘야 하는 사람들인데,
뭔가 거꾸로 된 것 같다. 미안해.”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죠.”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
현아가 설기의 손을 잡았다.
“내가 마리 씨랑 얘기해 볼 게.
넌 우진이 방에 잠깐 가 있을래?”
“네,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저는 우진이 선배 방에 있을게요.”
설기가 현아와 마리를 위해 자리를 비켜줬다.
현아가 마리에게 다가갔다.
마리는 여전히 현아 쪽을 보지도 않았다.
“우리 화해해요.”
현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요.
이 화보의 주인공은 배우진과 오설기입니다.
우리 때문에 우진이와 설기가 힘들어지면 안 되죠.”
“뭐··· 그렇긴 하죠.”
마리는 여전히 현아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내일 당장 화보 촬영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무작정 뭉개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마리 씨 원하는 대로 해요.
전 배우진 60컷만 맡을게요.
마리 씨가 오설기 컷과 커플 컷을 책임지세요.”
현아가 깔끔하게 양보했다.
현재로선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저··· 정말요?”
마리가 벌떡 일어나 입을 쩍 벌렸다.
“네. 그렇게 해요.
그러니까 빨리 털어 버리고 일을 시작할까요?”
“네. 일을 시작하죠.
고마워요. 현아 씨. 내가 정말 잘할게요.”
언제 말싸움을 했냐는 듯, 마리는 현아를 꼭 껴안았다.
‘배우진을 직접 스타일링하게 되다니, 너무 좋아.
두고 봐. 내가 배우진을 끝장나게 스타일링 해 낼 테니까.
나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거고. 호호.
이번 기회를 통해서 확실히 경력을 쌓아 올려야지.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선생님들과 동기들이 깜짝 놀라겠지.’
마리는 뜻대로 일이 풀리자 기분이 너무 좋아 주체할 수 없었다.
***
정현아와 마리 앤은 세미나 실로 자리를 옮겨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기본 의상에 액세서리까지 빠짐없이 체크를 하고, 혹시 놓친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여기 배경이 사무실이 즐비한 빌딩 숲이니까 비즈니스 룩으로 갈게요.
그렇다고 너무 전형적인 스타일은 그러니까 약간은 댄디한 스타일로.
우진 씨가 잘빠진 근육질이라, 넥타이 없이 셔츠 단추 두 개 정도 풀면,
세련되면서도 도발적으로 보일 거예요.”
마리 앤이 공책에 적으면서 현아에게 말했다.
“터크 온 스타일로 가는 건가요?”
터크 온은 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었다.
“셔츠가 빠져나오면 자기 관리가 안 된 모습이잖아요.
저는 단정한 스타일로 할 거예요.”
“네.”
자기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마리에게 양보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점심도 대충 때우고 정신없이 일을 한 결과,
2시쯤 되어 마무리에 들어갔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네요. 송 대리에게 자료 넘기죠?”
현아가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
“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것 같기는 한데···”
“뭐, 아직 더 남았나요?”
“화보의 주 의상이 될 ‘비올리체’는 매장을 방문해서,
직접 한번 입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제품은 조금 잘못돼도 수습이 가능한데,
비올리체 수트나 슬랙스, 액세서리는 조금만 틀어져도 큰일이거든요.”
마리 앤은 조금이라도 빈틈없이 처리하고 싶었다.
“마음에 걸리시면 그렇게 하죠.
제가 우진이와 해일이한테 연락을 할 테니까
마리 씨는 설기와 동훈이에게 연락하세요.”
“네, 오늘은 다른 스케줄 없이 화보 준비만 하는 날이니까, 그렇게 하죠.”
“네. 시간도 충분해요.”
현아와 마리는 각각 우진과 설기에게 전화를 넣었다.
***
배우진과 오설기는 현아와 마리가 화해를 하는 동안, 우진의 방에 함께 있었다.
배우진이 차분하게 앉아 ‘Lulu’ 잡지를 살펴보고 있는 동안,
설기는 안절부절못하고 거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했다.
“괜찮을까요?”
설기가 벽에 귀를 갖다 대고,
혹시 옆방에서 싸움 소리가 들리지는 않나 체크했다.
“설기야. 그 벽 두꺼워서 아무것도 안 들려.”
“선배는 걱정이 안 돼요? 현아 언니랑 마리 언니가 또 막 싸우면 어떡해요?”
“현아 누나 그런 사람 아니야.
화통한 면이 있어서 한번 양보한다고 했으면 그걸로 끝이야.
뒤끝이 없어. 아마 지금쯤 잘 풀고, 일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여기 앉아서 좀 쉬어.
너 그러다 얼굴 까칠해지면 내일 메이크업 안 받는다.”
“그럴까요?”
설기가 자리에 앉았다.
“근데, 우리도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 포즈 연습해야지.
저녁에 리허설이 있긴 하지만,
시간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연습해두는 게 좋겠지.”
“아, 맞다. 포즈 연습! 너무 정신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네. 내 코가 석잔데.”
설기는 더 이상 현아 마리 싸움에 휘둘린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우진이 방으로 들어가서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왔다.
“설기야, 일단 네 느낌대로 포즈를 취해볼래? 내가 찍어볼게.”
“네, 선배님.”
설기는 나름 자신 있는 포즈 이것저것을 취해 보았다.
그런데 몸이 뻣뻣해서 쉽지 않았다.
“아, 선배,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아직 몸이 안 풀려서 그래. 계속하다 보면 술술 풀려.
일단 계속 찍을 테니까, 마음 푹 놓고 해 봐.”
“네, 선배님.”
우진의 격려에 설기는 힘을 내보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몸은 계속 삐그덕거렸다.
“큭큭.”
우진이 웃고 말았다.
“아이. 선배 왜 웃어요?”
“아, 미안. 미안.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우진은 설기에게 조언을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설기야, 짝다리를 한 번 짚어볼래? 힘은 쭉 빼고.”
“왼쪽 다리? 아니면 오른쪽 다리?”
“음, 아무 쪽이나 상관없어. 네가 편한 쪽으로.
몸의 중심을 한쪽 다리에 모두 싣는 게 포인트야.”
“이렇게요?”
설기는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어 짝다리를 짚었다.
몸의 곡선이 살아나면서 제법 근사했다.
“오케이, 좋아,”
찰칵.
찰칵.
짝다리를 이후 설기의 포즈는 안정이 되었다.
“이제 찍어 놓은 사진들을 한번 볼까?”
우진이 텔레비전에 디지털 카메라 잭을 연결시켰다.
처음에 찍은 평범하게 서 있는 오설기가 나타났다.
“아이. 선배. 이거. 너무 못나게 나왔어요. 지워줘요.”
“알았어. 잠깐만 확인하고 지워 줄 게. 자, 그다음 사진.”
배우진이 사진을 넘기자, 짝다리를 짚은 설기가 나왔다.
“와아. 이게 뭐예요? 느낌 있다.
짝다리 하나 짚었을 뿐인데 이렇게 차이나요?”
“신기하지. 짝다리를 짚으면 여기 들어가는 커브 선이 생기고 힙이 나와서 S 라인이 살아. 그래서 사진이 웬만해선 멋지게 나오지.
설기야, 포즈가 안 나온다 싶을 땐 짝다리를 잊지 마.”
“우와. 원 포인트 쪽집게 강의!
감사합니다. 선배.”
설기는 자신감이 붙었다.
벌떡 일어나 짝다리를 짚어가며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해보았다.
“어때요? 느낌 있나요?”
“느낌 있어. 거기 튀어나온 힙에 손을 살짝 올려 봐.”
“··· 이렇게요?”
“그리고 어깨를 그쪽으로 조금만 내리고.”
설기가 힙에 손을 올리고 어깨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좋았어. 바로 그거야.”
우진은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찰칵 찍었다.
“선배 내일 컨셉에 도발적인 포즈도 있지 않나요? 그거 연습해 볼까요?”
자신감이 붙은 설기가 어려운 포즈에 도전했다.
“그래, 연습해 보자.
자, 우선 몸을 살짝 뒤로 돌려 봐.”
“이렇게?”
“아니.”
우진이 설기의 양 어깨를 잡고,
예쁜 뒤태가 나올 수 있도록 각도를 맞췄다.
설기는 균형이 맞지 않아 넘어질 듯 위태위태했다.
“됐어. 이 각도야. 몸은 그대로 두고 시선만 나를 쳐다봐.”
“이렇게?”
“음. 조금만 더.”
우진은 설기의 몸을 잡은 상태에서 턱을 자기 쪽으로 더 당겼다.
“오케이. 그 상태에서 어깨를 살짝 더 올리고 턱과 입술은 조금 가리고.”
“이렇게?”
“눈빛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데 조금 부족해.”
우진은 설기의 몸 여기저기를 교정했다.
“좋았어. 그 상태에서 눈꺼풀을 조금 내리고···”
“이렇게?”
“그래. 좋아. 완벽해. 이 포즈가 딱 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진은 설기를 감싸 안아 눈을 맞추고 있었다.
두근두근!!
두 사람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때,
위이이잉~
위이이잉~
어머!
헉!
배우진과 오설기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둘은 화들짝 놀라며 동시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우진아, 지금 ‘비올리체’ 매장에 가 봐야겠어.”
“비올리체 매장에는 왜?”
“커플 화보 메인 의상이라 직접 가서 입어봐야 하거든.
일이 빨리 끝나서 시간도 있어.”
“알았어. 바로 내려갈게.”
우진이 전화를 끊고 설기를 쳐다봤다.
“선배 저랑 같은 전화받은 거 맞죠?”
전화를 먼저 끊고 우진을 보고 있던 설기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런 것 같네. 비올리체 매장 가자는 거?”
“네, 현아 언니랑 마리 언니 완전히 화해한 것 같아요. 잘됐다. 그죠?”
“응, 무지무지 잘됐다. 내려가자.”
“네.”
우진과 설기는 함께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