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2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12화
연기학원에서 김도한과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김도한은 고맙게도 리딩을 많이 도와줬다. 덕분에 에서 내 연기가 빈틈없이 더욱 치밀해지고 있었다.
“난 고래지. 유유히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멸치든 고래든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건 다 똑같지. 그런데 고래랑 멸치랑 누가 먼저 좆 될까?”
‘폭열단 리더’와 ‘이진홍’이 만나는 장면.
김도한은 자기가 해석한 ‘폭열단 리더’의 모습을 연기했다. 색다른 인물이 탄생했다.
“당연히 고래지. 왜? 우리 멸치는 밟아도 밟아도 또 생겨나거든. 존나 밟을수록 쪽수가 더 늘어난다고. 쪽수로 덤비면 고래 한 마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웃기고 자빠졌네. 고래가 왜 고랜지 한 번 보여줄게.”
한참 연기에 심취해 있는데, 갑자기 오해일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촬영장 가기 전에 뭐 좀 먹자.”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면서 오해일이 말했다. 만나기만 하면 연습을 해대는 우리들이라 이렇게라도 끊지 않으면 밥 때도 놓치기 일쑤였다.
“짜장면이나 먹을까?”
“좋지.”
“쿠폰 모으고 있는데 원빈관 거기 시켜.”
“오케이. 짜장 3개에 군만두 1개···”
해일이가 짜장면을 시키는 동안, 김도한과 나는 텔레비전 앞 소파에 앉았다.
“대본 볼수록 아깝다. 여기 오디션 보는 거 알았으면 나도 지원하는 건데. 연극제랑 겹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오디션 있는 것도 몰랐다. 계속 아쉬워···”
김도한은 또 같은 말을 했다. 의 대본을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아쉬움의 말이었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참, 오늘 촬영장 같이 갈 거지? 현장 분위기 미리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몇 주 전부터 촬영장을 한번 와보고 싶다던 김도한. 그동안 서로 시간이 안 맞아 못 가다 오늘로 약속을 잡았다.
“업어 키운 배우진이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하는지 한번 봐야지. 그럼.”
그때
텔레비전에서 얼마 전에 찍은 핸드폰 광고가 나왔다.
몇 번이나 봤지만 볼 때마다 스스로도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광고의 영상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한 남자가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잠에서 깬다.
거울 속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선율.
남자는 지체 없이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요정으로 변한 남자.
환상의 숲을 거닐다 생명 나무 위로 사뿐히 올라선다.
한가운데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남자가 손을 담그자 연못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안에 감성적인 휴대폰 가 들어있다.
요정은 사랑스런 눈빛으로 핸드폰을 보고 손을 내민다.
‘퐁’하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이 터지면서 요정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
오해일과 김도한이 광고와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는 먼저 소리를 쳤다.
“이거 완전 개 사기네.”
둘이 동시에 나를 바닥에 눕히고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등을 찍고 암바를 걸었다.
“이제 너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들 다 오징어 됐다.”
“책임져. 책임져.”
난 손바닥으로 바닥을 쳤다.
“미안해. 항복. 항복. 잘못했어.”
나의 사과와 항복에 둘은 암바를 풀었다. 그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은 탄식을 질러댔다.
“아, 우린 어찌 살란 말이고.”
“신이시여, 너무 불공평합니다.”
짜장면을 다 먹었을 쯤, 오해일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나, 민혁이 오빠 코디.
“네, 안녕하세요.”
-어디야? 지금 태우러 갈게.
“아닙니다. 오늘은 같이 갈 친구도 하나 더 있고, 저희끼리 가겠습니다.”
코디가 차민혁에게 잠시 상황을 보고 하는 듯했다.
-뒤에 의상 조금만 치우면 자리 있어. 친구도 같이 가자.
“아, 네. 그럼. 여기 역수동의 ‘드림 연기 학원’입니다.”
-10분이면 도착해. 나와 있어.
“알겠습니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나가자.”
“응.”
“그래.”
우리는 빈 짜장면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
10분도 안돼서 차민혁의 밴이 도착했다.
“제 친구 김도한입니다.”
“안녕하세요. 김도한입니다.”
“어, 반갑다. 연기학원 같이 다니나 봐.”
“네, 아 얘도 저번 연극제에서 동상 받았었어요.”
“오, 그래?”
“ 대본도 다 외우고 있어요.”
김도한은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차민혁은 김도한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평범한 듯 개성 넘쳤다. 이런 페이스가 연기 좀만 받쳐주면 롱런하는 거지.
“그럼 나 오늘 촬영하는 거 잠깐 상대해줘 봐.”
차민혁이 말했다.
“제가요? 우진이도 있는데요.”
“이 녀석이랑 하면 기 빨려서 안 돼.”
“그래. 김도한. 너의 실력을 보여줘.”
오해일이 김도한을 떠밀었다. 김도한은 못 이기는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럼 한 번 해 볼게요. 음음···”
톱스타 차민혁이랑 대사를 맞춰 본다는 사실에 김도한은 살짝 상기됐다.
‘최우석’이 ‘이진홍’의 굳은 얼굴을 보고 심상찮은 일을 벌이려고 한다는 것을 짐작하는 장면.
“오늘 날씨가 마이 우중충 하네. 비가 올 긴 갑다.”
‘최우석’ 역의 차민혁이 먼저 대사를 친다.
“올 때도 됐지. 먼지도 좀 씻어내고.”
‘이진홍’ 역을 맡은 김도한이 받아친다.
“··· 야, 진홍아. 나 서울 구경 한 번 시키 도. 암만해도 서울 지리는 모르겄다.”
“다음에.”
“다음에? 오늘 어디 갈기가?”
“오늘은 피곤해서. 가서 자려고.”
“···”
오해일과 코디가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간단한 장면이었지만 김도한의 내공은 장난 아니었다.
‘김도한의 연기 욕심은 대단해. 이러니 앞으로 쭉쭉 뻗지.’
나는 전생에서 봤던 김도한을 잠시 생각했다. 개성 있는 연기로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감초로 승승장구하는 김도한.
“이야. 이것들이, 밑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네. 무시무시한 것들. 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차민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김도한은 그에게 또 다른 자극제가 되었다.
***
촬영장에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류지완 감독의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옆에 조감독이 급하게 통화를 끊으며 말했다.
“수술이 잘 되더라도 2주 후에나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답니다.”
‘폭열단 리더’ 역할을 맡은 나균성의 맹장이 터져버렸다.
오늘은 나균성에게 주어진 딱 한 장면을 찍는 날.
그 한 장면을 위해 촬영이 없는 날에도 촬영장에 나와, 다른 배우들 연기하는 것을 보고, 자기 장면을 연구해온 나균성이었다.
어제까지도 류 감독과 오늘 장면에 대해 의논하고, 준비를 마쳤었다.
류 감독은 오늘 촬영이 왠지 쉽게 끝날 것 같은 기분으로 촬영장에 왔다.
“하필이면 오늘 터지냐.”
류 감독은 머리가 지근지근했다.
그때, 고태현 제작실장이 다가왔다.
“류 감독. 오늘 촬영, 무슨 일이 있어도 진행해야 해. 알았지?”
막바지 촬영에 제작비는 모든 항목에서 다 오버되었다. 오늘 촬영을 하지 못한다면 그 돈을 메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류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오늘 장면이 무너진다면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이 다 수포로 돌아간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2주 정도 미루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실장님··· 오늘 촬영이 ‘최우석’과 ‘이진홍’이 하나로 뭉치게 되는 중요한 씬입니다. 여기가 살아야 영화가 끝까지 힘을 받아요.
그래서 ‘폭열단 리더’를 오디션까지 봐가며 신중하게 뽑은 거잖아요. 아무렇게나 찍어버리면···”
“안 돼, 안 돼. 이번엔 나도 양보 못해. 현실적으로 생각해. ‘폭열단 리더’ 없이 찍던지, 아니면 단역 중에 적당한 사람 하나 뽑아 찍던지···
류 감독. 오늘 오토바이 오십 대에 엑스트라 백 명이 동원됐어. 그리고 여기 장소 대여비에 세트장, 특수효과에 소품까지··· 이거 한 씬 찍는데 얼마가 들어간 줄 알아? 오천이 넘어. 이미 예산 초과야.”
고 실장이 밀어붙였다. 예산, 돈 돈 때문에···
류 감독은 말이 없었다.
“오늘 촬영 잘못되면 영화 후반 작업 올 스톱될 수도 있어.”
고 실장이 엄포를 놓았다.
류 감독의 고심이 깊어졌다. 처음부터 빠듯한 예산으로 시작한 영화라는 것을 안다. 감독의 욕심만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 만에 류 감독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일단 엑스트라 중에서 오디션 한번 보죠. 만약에 쓸 만한 배우가 없으면, 그땐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류 감독이 한발 양보했다. 식은땀을 흘리던 고 실장이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내심 백 명의 엑스트라 중 적당한 한 명이 없겠나 싶었다.
조감독이 엑스트라를 불러 모았다. 오늘 찍을 ‘폭열단 리더’ 대사가 담긴 종이 한 장씩을 나눠줬다.
“연습 시간 30분 드리겠습니다. 30분 후에 선착순으로 즉석 오디션을 보겠습니다.”
즉석 오디션장이 만들어졌다. 간이 책상과 의자가 놓이고, 류지완 감독과 고태현 제작실장이 앉았다.
한 명씩 오디션을 보러 왔다.
첫 번째 참가자는 국어책 읽듯이 대본을 읽었다.
두 번째 참가자는 목소리가 모기만 했다.
세 번째 참가자는 고함을 질러대서 도통 알아듣지를 못했다.
네 번째 참가자는 우물쭈물거렸다.
.
.
.
류 감독과 고 실장의 얼굴이 점차 굳어갔다.
그때, 차민혁의 밴이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분위기가 싸하네.”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다들 표정들이 좋지 않아.”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오늘 잘 못 온 거 아냐? 분위기 살벌한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어수선한 분위기에 김도한은 괜히 주눅이 들었다.
배우진은 오디션이 한참인 공터로 갔다. 조감독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희 왔습니다. 감독님. 무슨 일인가요?”
“응. 나균성 맹장이 터졌어.”
“네?”
“그래서 ‘폭열단 리더’ 즉석 오디션중이야.”
“나균성 선배,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요.”
“안됐지. 그런데 우리 촬영장도 안됐긴 마찬가지야. 오늘 촬영 못하면 영화 후반 작업 못 들어갈 수도 있대. 감독님은 대체할 배우 없으면 오늘 촬영 접는다 하고··· 아이고 머리야.”
조감독은 밀려오는 두통을 막으려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배우진이 뻘쭘하게 서있는 김도한에게 다가갔다.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한아, 너 오디션 봐야겠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김도한의 눈이 동그래졌다.
김도한은 칠십 한 번째 참가자가 되어 류지완 감독 앞에 섰다.
‘폭열단 리더’가 된 김도한은 주변을 한 번 휭 둘러보았다. ‘이진홍’이 아지트에 나타난다.
“아씨 깜짝이야. 귀신이야? 뭐야?”
김도한은 경기들린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극강 고교 같은데요.”
조감독이 똘마니 대사를 쳤다.
“너 그걸 어찌 알어?”
“극강 고교 교복을 입고 있는데요.”
“눈 좋네··· 극강 고교. 오호 맞네, 맞어. 아씨, 난 귀신이 제일 무서워. X팔 악몽 꿀까 봐 예고편도 안 봐. (이진홍을 보는 척하고) 큭큭큭. 아니 난 재들 진짜 웃긴 게 학교는 졸라 가기 싫어하면서 꼭 교복은 입고 다녀.”
“걔들은 출석률 좋습니다. 그냥 공부만 안 합니다.”
조감독을 째려보는 김도한.
“그만.”
류지완 감독이 김도한의 연기를 끊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김도한이 만들어 낸 ‘폭열단 리더’는 건빵 속 별사탕 같은 맛이 났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많이 늦었습니다. 빨리 촬영 시작합시다.”
감독의 사인에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류 감독이 김도한에게 다가갔다.
“연기 맛깔나게 하네.”
“감사합니다.”
김도한은 꿈인지 생신지 얼떨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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