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20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21화
‘비올리체’는 중국계 미국인 ‘란스 그레이’가 설립한 명품 디자인 회사였다.
란스 그레이는 이미 이십 대 중반에 국제 Wool 사무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지미 엘리스의 뉴 패션 탤런트 상까지 수상한 거장으로,
그가 설립한 ‘비올리체’는 남성복을 중심으로 빠르게 정상에 올랐으며,
전 세계 셀렙들에게 명품 위의 명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비올리체’는 패션 브랜드 중 유일하게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
비올리체의 디자인실이 평상시와 달리 어수선했다.
실무 디자이너 엘리스가 배우진 화보 협찬에 대해 불만이 많던 중, 배우진 일행이 의상을 입어보러 매장에 온다는 전화를 받고 폭발한 것이다.
“저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지금까지 쌓아온 저희 ‘비올리체’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겁니다.
화보의 스타일링을 다른 사람 손에게 맡기다니요. 그것도 무명에 가까운 스타일리스트에게 말입니다.
지금 자기들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니까 매장에 방문한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배우진의 스타일링을 우리 쪽에서 맡아서 진행해야 합니다.”
엘리스가 수석 디자이너인 란스 그레이에게 따지듯 의견을 냈다. 란스는 엘리스에게 자기의 뜻을 이해시켜야 했다.
“이번 일은 우리 ‘비올리체’에게 꼭 필요한 일이야.”
“필요하다고요?”
“요즘 ‘비올리체’에 정체기가 왔다는 생각 들지 않나?”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올해도 비올리체는 매출과 이익이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요.”
“그 선두가 문제야. 선두에 집착한 나머지 언제부턴가, 안정만을 추구하고 모험은 전혀 없어.
난 이번 배우진의 화보가 우리 ‘비올리체’에게 터닝 포인트가 돼 줄 거라 믿어.”
엘리스는 란스 그레이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란스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자, 이 배우진의 사진들을 한번 봐.”
란스는 테이블 위에 흩어진 배우진의 사진을 엘리스에게 내밀었다.
엘리스는 배우진의 스타일링을 유심히 쳐다봤다.
“뭔가 저희들이 알고 있는 스타일과는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인데요.”
“잘 봤어. 배우진의 스타일을 보면 평범한 듯하면서, 꼭 한번 비트는 느낌이야.
완벽한 퍼즐에 한두 개가 꼭 어긋나있단 말이지.
그런데 그게 어색하지가 않아.
오히려 사람을 뒤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어.”
엘리스는 이제야 란스의 말을 조금 알 것 같았다.
“··· 대표님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배우진의 전담 스타일리스트만이 알겠지.
그래서 이번 화보에 우리 제품을 넣은 거야. 스타일링도 그쪽에 맡기고.
비올리체 정체에 대한 해답을 배우진을 통해 얻게 되길 바라면서.”
란스 그레이는 다시 배우진의 스타일링을 살폈다.
역시, 대중적이면서 예술적이었다. 파격적이면서도 편안했다.
“해답만 찾는다면 우리 ‘비올리체’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거야.
그러니까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중요해.”
란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 엘리스는 바쁘게 움직였다.
“배우진이 오면 VVIP 실로 모시고,
카탈로그에 있는 의상 미리 잘 준비해 두고.”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들에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시켰다.
***
우진 팀과 설기 팀이 각각의 밴을 타고 ‘비올리체’ 본사 매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 비올리체는 어떤 브랜드야?”
구치, 에르메쓰, 싸넬 같은 브랜드는 많이 들어봤지만. 우진에게 비올리체는 조금 생소했다.
“란스 그레이라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인데,
명품 위의 명품으로 유명해.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는데,
알 만한 사람들에겐 최고의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어.
매장에 가서 ‘아 이거 마음에 드네’ 하고 가방을 하나 집어 들잖아.
보통 삼사 천만 원은 훌쩍 넘는다.
그래서 살까 말까 집에 가서 고민하고, 다음 날 다시 오잖아.
벌써 매진되고 없어.
그런 브랜드야.”
“우와, 정말 대단한 브랜드네. 가방 하나가 몇 천 만원씩 해? 그런데 그걸 서로 사간다고?”
해일이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평범한 세계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지.
근데 이쪽 세계에서는 늘 있는 일이야.
그런 비올리체가 우진이 네 화보에 협찬을 넣다니. 그것도 스타일링까지 맡기고··· 아우.”
현아는 상상도 못 하겠다는 듯 감격에 겨워 한숨을 쉬었다.
두 밴은 나란히 바닷가를 낀 해안 관광지구에 들어서,
세련되게 비튼 피라미드 모양의 건물 앞에 섰다.
그곳이 ‘비올리체’ 본사 매장이었다.
“자, 들어갑시다.”
설기 밴에서 마리가 내려 앞장섰다.
비올리체 본사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우진아 가자.”
“응, 누나.”
현아는 우진을 뒤따르며 정문으로 나아갔다.
〖반갑습니다. 배우진 씨.〗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세련된 남성 안내자가 문을 열어 주며, 우진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안내자는 영어를 쓰고 있었으므로, 우진도 영어로 대답을 했다.
〖저희 매장에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장 VVIP 라운지로 모시겠습니다.〗
안내자는 깍듯한 태도로 우진 일행을 안내했다.
일행은 그를 따라갔다.
‘우진이랑 현아 누나 따라 고급 매장을 많이 다녔지만, 여기가 제일 럭셔리하긴 하네.’
해일이는 고개를 돌려서 매장을 살폈다.
바닥은 흰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천연 대리석으로 빛났고,
벽에는 광택 나는 금색 포인트가 여러 군데 있었다.
미술관같이 넓은 매장에 띄엄띄엄 상품은 몇 개 없었다.
‘현아 누나가 아까 한 말이 사실일까? 설마 가방 하나에 몇 천만 원? 가격표를 한번 확인해 봐도 되겠지?’
해일이는 제품의 가격이 궁금해서,
작고 앙증맞은 가방의 가격표를 살짝 뒤집어 보았다.
‘4만 8천 홍콩 달러. 잠깐 4만 8천 홍콩 달러면 대략 720만 원정도 되는데. 천만 원은 안 되네. 싸넬 제품보다 조금 더 비싼 정도네. 역시 누나가 오바가 심했던 거군.’
해일이는 제품과 가격에 대한 분석을 하며 안심했다.
그런데 그때,
그 작고 앙증맞은 가방 위에 적혀 있는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Dog Carriers]‘뭐? 개 이동가방! 이런 미친!’
순간 해일이는 입에서 나오는 욕을 간신이 틀어막았다.
가방의 크기로 봐서는 작은 강아지나 소소형 견을 위한 제품이었다.
일행은 VVIP 라운지에 들어섰다.
천장에서 나선형 모양의 금색 줄들이 아래로 뻗어 있고,
그 안에 커다란 공 모양의 조명이 주황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중앙에는 흰색의 웅장한 천연 레이어 가죽 소파가 자리하고,
가장자리 유리 선반 위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신상품과 한정판들이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잠깐만 쉬고 계시면 비올리체 수석 디자이너 란스 그레이 님께서 오실 겁니다.〗
안내를 했던 남성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퇴장을 했고,
라운지 안에 있던 다른 직원이 와서 음료를 서비스했다.
“란스 그레이가 온다고?”
“우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냥 의상만 체크하러 온 건데.”
현아와 마리는 란스를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작품들을 살피며 란스 그레이를 기다렸다.
“이거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이태리 최고급 원단을 썼네. 어깨선이 부드러우면서도 슬림핏을 강조했어. 핏으로 캐주얼을 표현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마리가 마네킹에 걸쳐있는 재킷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이태리 원단은 부드러움이 특색이었다.
“원단이 조금 두껍고 빳빳한 걸 보면, 영국의 울 모헤어 같은데요.”
정현아가 다른 의견을 냈다.
“에이 그럴 리가. 비올리체는 이태리에서 수작업으로 만드는 원단을 쓰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건 기본인데.”
마리는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현아를 쏘았다.
“저도 그렇게 알고는 있는데, 이 재킷은 이태리 원단이라고 하기엔,··· 좀 뻣뻣하고 단단해요. 음, 이건 영국 제품이 확실해요.”
현아는 원단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여기 봐요. 하프 캔버스가 가슴 선을 받치니까 부드러운 실루엣의 라펠 롤을 연출되잖아요. 영국 원단으로 이걸 표현할 수 있다구요?”
마리는 ‘역시 현아는 좋은 학교를 못 나와서 기본이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가르치려 들었다.
그때, 중후한 목소리가 입구에서 들렸다.
〖그것은 영국 요크셔 울이 맞습니다.〗
각진 얼굴에 짙은 주름이 인상적인 50대 중반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란스 그레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다니!
〖저희가 사용하는 원단이 주로 이태리 제품이지만, 스타일에 따라 영국 원단도 사용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제품을 직접 만드는 디자이너 빼고는 대부분 잘 모르던데.〗
란스 그레이가 현아에게 물었다.
〖이태리 원단은 그레이 톤에서 둔탁함이 없고 밝은 느낌의 그레이가 나오는 반면,
지금 이 원단은 톤 다운되어 있어요. 빛을 비췄는데도 네이비가 배어 있는 건 영국 원단의 특징이죠.〗
현아는 알고 있는 선에서 똑 부러지게 대답을 했다.
〖대단하네요. 그걸 눈으로만 보고 정확하게 맞추다니.〗
란스 그레이가 현아를 칭찬하며 눈여겨봤다.
〖감사합니다.〗
란스가 현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모두들 소파에서 일어나 란스 그레이와 인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비올리체 대표 겸 수석 디자이너 란스 그레이입니다.〗
란스가 배우진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배우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배우진 씨.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실물로 보니 더 매력적이시네요.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내면의 강렬한 에너지가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희 ‘비올리체’와 너무 잘 어울립니다.〗
〖과찬이십니다.〗
〖전혀 아닙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정말 기대됩니다.〗
마리 앤은 그 순간 초조했다. 란스는 아직 자기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것이다. 가만히 있다간 끝까지 무시당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란스 님, 그럼 제가 배우진 님의 스타일링을 해보겠습니다.〗
마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란스에게 자신의 실력을 빨리 보여줘, 원단을 맞추지 못해 잃은 점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배우진 씨 스타일리스트인가요?〗
란스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마리에게 물었다.
〖음··· 지금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비올리체’ 화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여기 매장에 있는 제품을 모두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카탈로그에 없는 신상이나 한정판들까지도요. 영감을 불어넣기 좋을 겁니다.〗
란스가 관대한 제안을 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 선택해 놓은 제품들이 있어서요. 마침 직원 분들이 준비해 주셨네요. 액세서리 몇 가지만 쓰겠습니다.〗
마리는 자기가 정해 놓은 컨셉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비올리체 매장의 모든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더라도.
‘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려고 했는데, 그것보단 넥타이를 매서 좀 더 클래식한 느낌으로 가야겠다. 딱 떨어지는 신사 핏으로. 그리고 몇 가지 액세사리를 곁들여서 심심함을 없애자.’
마리는 카탈로그에서 보고 선택해 두었던 네이비 스트라이프 싱글 재킷 그리고 드레스 셔츠에다가,
넥타이, 실버 타이핀, 포켓 치프, 커프스 버튼 등 몇 가지 아이템을 더했다. 구두도 클래식하면서도 유려한 라인의 제품으로 골랐다.
〖자, 다 됐습니다. 우진 씨, 이렇게 입어 볼래요?〗
마리가 배우진에게 코디할 의상을 넘겼다.
배우진은 피팅룸으로 들어가 의상을 입고 나왔다.
〖허리가 조금 남는 것 같은데요.〗
배우진이 바지허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마리가 허벅지를 살폈다.
〖괜찮아요. 정장은 허리가 아니라 허벅지 핏을 보는 건데, 지금 허벅지와 바지핏이 딱 맞아요. 허리는 수선을 해서 맞추면 되고요.〗
그다음, 마리는 의상에 액세서리를 하나씩 달고,
양복의 주름을 펴고, 셔츠의 소매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엘리트적이면서도 신사의 품격이 좔좔 흐르는구나.
역시 배우진한텐 클래식한 스타일이 제격이야.’
코디가 끝나자 마리는 먼저 자신의 스타일링을 감상했다.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마리는 자신감 있게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홍콩의 빌딩 숲에 잘 어울리는 비즈니스 룩입니다.〗
음, 괜찮네.
깔끔하네.
짝짝.
라운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산발적인 박수를 쳤다.
딱 떨어지는 클래식한 스타일링에 감점은 없었다.
단 한 사람 ‘란스 그레이’만 빼고.
‘내가 봐왔던 배우진의 스타일링이 아니야.
저건 너무 평범하잖아.
우리 매장 안내원과 똑같군!’
란스 그레이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뭔가를 기대했는데 된통 당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