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22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23화
란스 그레이와 정현아가 마주 앉았다.
〖말을 돌리지 않겠습니다. 지금 비올리체가 ‘포스트 밀레나’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 중에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패션을 선도할 장기 프로젝트죠.
현재 그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맡아줄 팀장이 아직 공석입니다.
제 생각으론 현아 씨가 그 자리에 적격입니다.〗
란스는 현아에게 스카웃 제의를 했다. 그것도 팀장으로.
〖제가요? 전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데요.〗
현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오늘 배우진 오설기의 스타일링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란스는 현아가 당연히 제안을 수락할 것으로 생각했다. 정현아의 나이와 경력으로 봤을 때 비올리체의 팀장급 제안은 파격 그 이상이었으므로.
란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에서 파일을 꺼내고, 안경을 썼다. 이 자리에서 연봉 협상까지 마무리하고 싶었다.
〖‘포스트 밀레나’의 팀장으로 비올리체에 들어오시면 연봉 60만 홍콩달러에 보너스 600%를 지급하겠습니다.〗
약 1억 원이 넘는 연봉이라.
지금 현아가 받고 있는 연봉의 두 배가 훨씬 넘었다.
그 외 비올리체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와 보이지 않는 가치까지.
정말이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하지만,
〖제안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전 배우진의 스타일리스트입니다. 앞으로 배우진과 함께 해쳐나가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 모든 가능성을 팽개칠 생각은 없습니다.〗
정현아는 란스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현아가 돈과 명성을 쫓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현아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해주는 그런 일자리가 더 좋았다. 배우진의 스타일리스트가 바로 그런 직장이었다.
〖현아 씨. 미래의 가치를 본다면 배우진 보다는 비올리체이지 않을까요?〗
란스가 현아를 설득했다.
오늘을 놓치고 후회할 현아를 위해서.
〖저에게 배우진은 미래 가치 그 이상입니다!〗
현아의 마음은 확고했다.
배우진의 순수한 열정은 현아에게 있어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 열정과 떨어져 지금과 같은 성과를 계속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도 없었다.
〖그럼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란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아 씨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혹시 해고를 당하신다면, 언제든 연락을 주십시오.〗
〖네, 그런 날이 오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둘은 가볍게 농담을 하며 작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나는 비올리체 매장을 돌아다니며 시선은 수석 디자이너 실에 두고 있었다. 현아가 조금 전에 란스와 들어간 곳이었다.
‘란스는 현아에게 무슨 말을 할까?’
현아를 바라보던 란스의 눈빛을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그 해답은 뻔했다.
‘스카웃 제안을 하고 있겠지?
현아의 선택은 뭘까?’
나는 초조하게 현아를 기다렸다,
곧 수석 디자이너 실의 문이 열리고 현아가 나왔다.
“누나.”
“어, 우진아.”
“얘기 다 끝났어? 무슨 얘기 했어?”
나는 현아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헤어질 때가 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인연을 억지로 붙들어 놓을 수는 없으니까.
“데이트 신청하던데? 내가 자기 스타일이래. 근데 말이 안 되잖아. 나 겨우 25살이야.”
현아가 농담으로 딴청을 피웠다.
나는 현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누나, 고마워. 내 곁에 남아줘서.”
“우진아. 난 정말··· 너 떠나지 않아. 이건 진심이야.”
***
화보 촬영은 새벽부터 타이트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트레이닝복 촬영을 시작으로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홍콩 역사박물관인 헤리티지 1881,
없는 것 빼고 다 판다는 몽콕 시장,
백만 불짜리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빅토리아 피크.
자정까지 이어진 화보 촬영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설기는 화보 촬영 다음날 이어진 팬미팅에 게스트로 나와 노래 몇 곡을 부르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의 스케줄이 밀려있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바쁘게 헤어졌다.
“선배, 그럼 한국에서 봬요.”
“응, 설기야. 조심해서 가. 한국 가면 연락할게.”
***
홍콩에서의 마지막 일정만이 남았다.
그것은 홍콩이 낳은 월드스타 ‘소율’의 선상파티였다.
사람 좋아하고 호탕한 성격의 소율은 이삼 년에 한 번씩 전 세계 영화인들을 위한 파티를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번 파티에는 나도 초대받았다.
마침 홍콩 투어 시기와 겹치기도 해서, 나는 고민 없이 파티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파티엔 기자나 언론이 전혀 없었으며, 매니저 동반도 불가했다. 순수 영화인들이 모여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이 파티에서 인연이 되어 할리우드에 진출하거나 홍콩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는 공식 일정인 듯 사적 일정인 파티를 가볍게 즐길 생각이었다.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 입고, 나는 파티가 열릴 침사추이로 가고 있었다. 침사추이는 홍콩 주룽반도 남쪽 야침몽지구 번화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저 배인 것 같은데.”
해일이가 바다 한 복판에 떠있는 커다란 유람선을 가리켰다.
밝은 조명으로 둘러싸여 있는 유람선은 그 일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라이브 밴드의 경쾌한 재즈 음악이 밤바람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맞는 것 같다. 갑판에 라이브 밴드랑 파티복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유람선을 자세히 바라보며 해일이에게 대답했다.
차가 선착장에서 멈췄다. 파티 손님들은 선착장에 대기되어있는 보트를 타고 유람선까지 가야 했다.
“보트를 탈 손님들이 저기 모여 있네.”
“응. 그러네. 늦지 않고 잘 온 것 같아.”
“우진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늘 재미있게 놀다 와. 기자도 없고 매니저도 없고 팬들도 없고. 자유네.”
“응, 완전 기대 중이야.”
“홍콩 배우들은 다 오겠지? 우리 예전에 비디오테이프 늘어지게 봤던 ‘영웅본좌’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주연발을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운 사람이 나다.”
“오늘 오시려나?”
“모르지. 주연발도 스케줄이 엄청날 거야.”
해일이가 선착장까지 나를 따라오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지점에서 멈췄다,
“다녀와.”
“응, 걱정 말고 너도 쉬고 있어.”
나는 해일이에게 손을 흔들고 보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과 깔끔한 턱시도의 남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대기하고 있었다.
보디가드들이 그 주변을 철통방어하고,
행사 진행요원들은 손님들의 신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구숙청이에요〗
〖생년은요?〗
〖77년〗
〖초대장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구숙청은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내 요원에게 건넸다.
요원은 초대장을 면밀히 살펴보고 난 다음,
〖얼굴 좀 확인할게요.〗
구숙청의 얼굴과 손님 명단에 올라있는 그녀의 사진을 면밀히 대조했다.
세 명의 요원이 모두 오케이 할 때까지 신분 검사는 철저히 이루어졌다.
〖좋습니다. 구숙청 씨. 보트에 오르시고, 오늘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엄격한 신분 확인을 마친 구숙청은 가까스로 보트에 올라탔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나는 요원이 말하기 전에 미리 초대장을 꺼내 놓으려 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 배우진 씨! 어서 오십시오.〗
초대장을 꺼내기도 전에 진행요원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 어, 저··· 초대장〗
나는 초대장을 꺼내며 요원이 검사해주기를 바랬지만···
그는 무전기로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배우진 씨 지금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 그럼 지금 배우진 씨를 선착장 아래로 안내해.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진행 요원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일을 맡기고 나를 직접 안내했다.
〖배우진 님은 저를 따라오십시오. 따로 모시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요원을 따라나섰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손님들을 지나쳐, 선착장 아래 따로 있는 보트로 갔다.
그 보트는 아까 봤던 보트와는 달랐다. 날렵한 유선형에 흰색 광택이 도드라진 대형 고급 보트였다.
아마도 내가 VIP 명단에 올라 특별 대접을 받는 듯했다.
대형 보트에 유니폼을 차려입은 직원이 따로 있었다. 나를 그곳까지 안내했던 요원이 그곳의 직원에게 나를 인계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배우진 님.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직원은 깍듯하게 인사하며 전망 좋은 2층 선실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의 바닥은 티크 재질로 걷을 때 탄력이 있었고,
시트는 마린 전용으로 가공된 천연 가죽이었다.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한국 홍콩 일본 중국뿐 아니라 헐리우드에서도 인정받는 소율이라 그런지 정말 스케일이 다르구나!’
중국 특유의 무술 영화에서 코믹하면서도 강렬한 액션을 선보이는 소율의 위엄이 느껴졌다.
나는 배를 구경하며 이 파티의 주최자인 소율을 생각하느라 선실 안에 먼저 와 있던 한 남자를 뒤늦게 발견했다.
그를 태우고 바로 출발하려던 보트가 안내요원의 연락을 받고 나를 기다려 줬던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쳐다봤다.
‘어? 이분은?’
나는 순간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전 세계 홍콩 영화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웅본좌’의 주인공 ‘주연발’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중학교 때 ‘영웅 본좌’ 비디오를 늘어지게 보고 난 후,
집에 있는 성냥을 일주일 만에 작살냈었던 추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배우진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팬입니다. ‘프린스 앤 플라워’ 뿐 아니라 ‘파도’까지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주연발은 ‘영웅본좌’에서 보여 주었던 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악수를 청했다.
‘패··· 내 팬이라고!’
〖안녕하세요. 주연발 님. 영광입니다.
저도 선생님께서 출연하셨던 영화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습니다.
‘영웅본좌’에서 선생님의 연기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우기도 했고요.〗
나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연발에게 나도 그의 팬임을 알렸다.
〖그래요? 이거 영광인데요. 저도 요즘 배우진 씨 덕분에, 제 연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거든요.〗
주연발이 멋쩍게 웃었다.
나는 내가 그의 진정한 팬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저는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합니다. ‘형은 새 삶을 살 용기가 있는데 넌 왜 형을 용서할 수 없는 거야? 왜! 형제란···’〗
나는 주연발 앞에서 수없이 봤었던 ‘영웅본좌’의 마지막 장면까지 재연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주연발이 박수를 짝짝 치며 내 연기를 칭찬했다.
〖어린 나이에 선생님의 연기는 충격이었습니다. 슬픔과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그 표정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쑥스럽군요. 저희 아내랑 저도 우진 씨를 정말 좋아합니다. ‘프린스 앤 플라워’를 아마 열 번은 넘게 봤을 거예요. 디테일한 연기와 감정을 억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공유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더군요. 저 또한 많이 배웠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죠?〗
주연발이 밖에 있는 안내요원을 불렀다.
〖네. 필요하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혹시 사진 좀 찍어 줄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직원은 선실에서 카메라를 꺼내왔다.
〖오늘의 만남을 기념해서 사진 한 장. 어때요?〗
〖당연히 영광입니다.〗
나와 주연발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포즈를 취했다.
〖자,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김치.
치즈.
우리 둘은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나중에 이 사진 2장을 뽑아서 저와 배우진 씨에게 보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직원은 인사를 하고 나갔다.
〖아마, 저희 아내가 이 사진 보면 무척 좋아할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배우진 씨 팬이거든요.〗
〖네, 저희 부모님도 이 사진을 본다면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그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유람선에 도착했습니다. 2층 갑판 위에 유람선과 연결된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를 타고 유람선으로 올라가십시오. 조금 출렁일 수 있으니 조심히 건너세요.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우진 씨와 얘기하다 보니 벌써 도착했네요.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나가지요.〗
〖네.〗
우리는 유람선과 연결된 사다리를 건너 유람선으로 올라갔다.
이 파티의 주최자 ‘소율’이 나와 있었다.
그는 먼저 주연발과 가볍게 인사한 후, 나를 돌아봤다.
〖오! 배우진! 반갑습니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소율이 나를 껴안으며 격하게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