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24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25화
누굴까?
하얀 손을 따라 시선을 쭉 올리자 내 눈이 저절로 커졌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로망 워너비 여신,
‘천년유혼’의 ‘왕초현’이 상큼한 미소로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풀나풀 거리는 빨간색 원피스에 긴 생머리, 아련한 눈매. 가지런히 뻗어 내리다 봉곳이 솟은 코. 수줍게 벌어진 붉은 입술.
왕초현은 ‘천년유혼’ 속 매력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저랑 춤 한번 추실래요?
“아, ··· 어···.”
당황한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잠깐 우진 씨 데려가도 되죠?”
왕초현이 소율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히 괜찮지. 우진 씨, 왕초현이랑 춤 한번 추시는 게 어때요? 숙녀가 먼저 저렇게 손을 내밀고 있는데.”
“아.”
아시아 최고 미녀의 손이 내 코앞에 대기된 상태였다.
왕초현이 입술을 앙다물며 어깨를 흔들었다. 빨리 나가서 춤추자는 의미였다.
“영광입니다. 최고의 미녀와 춤출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셔서.”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왕초현에게 매너 있게 인사를 하고, 가녀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왕초현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아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우리에게 꽂히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도 우리의 모습을 보려고 자리로 돌아갔다.
밴드의 음악이 더욱 힘차게 흘러나왔다.
왕초현은 스윙 리듬에 맞춰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몸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얇은 원피스가 공중으로 힘차게 펄럭였다.
왕초현의 열정에 내가 밀릴 수는 없지. 나도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서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우리의 호흡은 찰떡같이 척척 맞았다.
와와
짝짝
사람들은 신나게 박수를 치며 리듬을 맞췄다.
“춤을 진심으로 즐기시는 것 같아요.”
내가 왕초현을 빙그르르 돌리며 말했다.
그녀의 빨간색 원피스가 만개한 꽃처럼 활짝 퍼졌다.
“파트너가 최고니까요.”
왕초현이 내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왕초현 씨와 이렇게 춤을 추고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중학교 때 책받침으로 간직한 적 있거든요.”
“호호호. 저도 배우진 씨 팬인데, 우진 씨 책받침 있으면 저도 하나 사야겠네요.”
“아, 그래요? 책받침 만들어달라고 대표님께 부탁드려야겠어요.”
“호호호.”
춤을 추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던 그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테마곡 ‘맘보’로 음악이 바뀌었다.
음악이 바뀌었으니 춤도 바뀌어야겠지.
왕초현의 눈빛도 나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무대 양끝으로 떨어졌다. 무대에는 어느새 우리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무대 가장자리로 나와 빙 둘러쌌다.
나는 맘보 스텝을 밟으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왕초현도 경쾌한 맘보 스텝으로 내게 다가왔다.
왕초현의 숨결이 들릴 만큼 충분히 거리가 좁혀졌을 때,
나는 그녀의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하듯 왕초현과 나는 몸을 부딪히고, 서로를 꽉 껴안았다가 다시 분리되었다.
맘보!!
와아아아
오오오오
휘익~ 휘이익!
짝짝짝짝
숨이 막힐 정도야.
너무 아름답고 멋져요.
최고다 최고야. 진짜 예술이 따로 없네!
음악과 함께 우리의 춤도 끝났다.
사람들은 나와 왕초현의 환상적인 커플 댄스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우리는 두 손을 잡고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숨이 목까지 찬 왕초현이 가슴을 크게 움직이며,
“너무 즐거웠어요. 아마 오늘 이 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내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차있었다.
“그건 제가 할 말인 걸요. 함께 춤을 출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대한민국 남자들 모두 쓰러질 겁니다.”
왕초현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꼭 껴안고 뺨에 키스를 했다.
“그럼 나머지 파티도 즐기세요. 소율의 파티는 언제나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 나거든요.”
“네, 그럴게요. 초현씨도 즐거운 파티 되세요.”
왕초현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녀가 자리에 착석하자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소율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정말 감동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 춥니까? 전문적으로 배우셨나요?”
소율이 내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 기립박수를 쳤다. 나의 춤 실력에 감탄해서 칭찬을 마구 쏟아내며.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영화 촬영 때문에 잠깐 배운 적이 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잠깐 배웠는데 그 정도라니. 아까 림보도 그렇고 ··· 배우진 씨는 정말이지 상상 이상의 사람이군요. ··· 혹시, 시가 피우시나요?”
소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시가를 피우냐고 물었다. 나는 회귀 이후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시가를 피우지 않았다.
“아뇨. 담배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아, 그래요. 저는 좋은 시가를 수집하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데 취미가 있는 사람입니다. 배우진 씨께 보여드리고 싶은 시가가 있는데,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시가를 태우러 가자고? 어떡할까?’
나는 조금 생각해 본 뒤,
“좋습니다. 대신 구경만 하겠습니다.”
소율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시가가 있다는데 그것까지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좋습니다. 3층으로 올라가시죠.”
소율이 앞장 서 걷다 다시 뒤돌았다.
“혹시 이런 말 들어 보셨습니까?”
“어떤?”
“시가를 피우면 인간에 대한 철학을 알게 되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는 시가만큼 좋은 게 없다.”
“들어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멋진 말이네요.”
***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검은 썬그라스를 끼고 있는 보디가드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소율이 다가가자 그들은 자동으로 입구를 열었다.
3층의 분위기는 한층 차분하고 조용했다. 손님들도 거의 보이질 않았다. 2층 갑판 위의 파티 소음들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3층은 고요하군요.”
“네. 여기는 허가받은 사람만 올라올 수 있습니다. 중요한 말들이 오가는 곳이라 보안에 신경을 써야 해서요.”
‘소율이 내게 중요한 말을 하려나?’
파티로 들떴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선실에 들어가자 주연발, 유덕하, 유연걸, 황금보, 양차경 등 홍콩 영화 스타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카드 게임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소율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배우진 씨 파티는 즐거운가요?”
주연발이 웃으며 물었다.
“네, 너무 재밌습니다. 림보 경기에서 곰인형도 따고, 왕초현과 춤도 췄습니다.”
“역시 파티를 즐길 줄 아는 멋쟁이시군요.”
주연발이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엄지 두 개를 척 꺼내보였다.
‘주연발 선생님 여기 계셨구나. 어디 갔나 했네.’
“배우진 씨. 시가 방은 좀 더 안쪽에 있어요.”
“네, 가시죠.”
소율과 나는 사람들을 지나쳐 안으로 더 들어갔다.
“여기입니다.”
중후한 오크 나무 문이 선실 끝에 붙어있었다.
문을 열자 벽 바닥 천장 모두가 아늑한 오크나무로 둘러싸인 서재가 나왔다. 책상 하나와 책장 하나 일인용 가죽 소파 두 개가 놓여있고, 그 앞으로 테이블이 있었다.
“여기는 다른 세상 같습니다. 아늑하고 신비로운 데요.”
“머리가 복잡하거나 생각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제가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죠. 수집한 시가를 보관하고 가끔 피우기도 하고요. 저기 소파에 앉으세요.”
소율은 소파를 가리키며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나는 가죽으로 된 커다란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단단하고 묵직한 질감이었지만 편안했다.
소율은 책장 서랍에서 은빛 글자가 새겨진 검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귀한 자식 보듯 흐뭇한 미소가 소율의 입가에 퍼졌다.
소율이 내게 다가와 자랑스럽게 시가를 보였다.
짙은 갈색의 시가 열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몸통에 ‘베티케’라는 금색 글씨가 선명했다.
“이게 쿠바의 영웅 체게바라를 기리기 위해 베티케 34 한정판으로 나온 겁니다. 정말 구하기 어려웠는데 가까스로 손에 넣었습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어요.
시가 애호가들은 이 예술품을 손에 넣기 위해서 가히 천문학적인 돈을 부르기도 한답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금 이 시가 한 개비에 4만 홍콩 달러(한화 600만 원) 정도 하지요.”
‘음, 600만 원.’
600만 원이라는 가격이 시가를 600만 원으로 보이는 효과를 낳았다. 나는 시가의 매력에 빠져들 것 같았다.
소율이 소파에 앉아 시가 상자를 테이블 위에 놓고, ‘베티케’ 한 개비를 꺼냈다.
“한번 맛보지 않겠습니까?”
내 앞으로 ‘베티케’를 내밀었다. 땅콩, 꿀, 그리고 몰트 향이 묘하게 조화를 이뤄 코끝을 자극했다.
“아니, 전 괜찮습니다. 담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연기를 시작할 때 저와의 약속이거든요.”
나의 거절에 소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럼, 저는 한 개비 피겠습니다. 그동안 아끼느라 눈으로 보기만 했는데, 우진 씨와 함께 있으니 왠지 피고 싶어지네요.”
소율은 베티케를 일단 코로 가져갔다.
“향이 굉장히 매혹적이면서도, 복잡합니다. 자기를 쉽게 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애연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키스를 해보고 싶은 녀석이에요.”
나도 베티케의 향에 취하고 있었으므로, 소율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베티케를 만져 보고 싶다. 녀석의 마력에 사로잡힌 기분이다.’
육감과 감정이 나를 유혹했지만, 의지와 이성으로 정신줄을 붙들었다.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전생의 삶으로 충분히 깨달았기에 나는 굴복하지 않았다.
“사실 이건 제가 가장 아끼는 녀석이라 제일 친한 사람에게도 아직 권한 적이 없습니다.”
한참을 시가의 향만 음미하던 소율이 결심이 섰는지,
시가를 집어 들어 과감하게 펀치로 앞부분에 구멍을 냈다.
그런 다음 빅시져로 뒷부분을 짧게 커팅했다.
“까다로운 녀석이라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절대 석유 라이터로 불을 댕겨서는 안 됩니다. 시가 본연의 맛이 변질되기 때문이죠.
가스라이터를 이용해 입으로 드로우하면서 불을 붙여야 합니다.”
소율은 내게 시가 피우는 순서 하나하나를 시범 보이며,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후~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베티케’를 느꼈다.
서재는 연기로 가득 채워졌다.
“일분에 한 번씩 쭉 빨면 됩니다. 이 시가가 다 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30분쯤.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죠”
“그러네요. 대화를 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네요.”
나는 사라져가는 시가의 연기를 바라보며, 소율과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상상했다.
시가를 깊이 한 모금 더 빨아들인 소율이 결심이 섰는지 나를 바라봤다.
“지금 기획 중인 제 영화에 주인공을 맡아 주십시오. 오늘 우진 씨를 보고 확실히 결심이 섰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배우진이다.
일생일대의 대작을 함께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소율이 내게 영화 출연을 권했다.
‘을 말하는가 보구나. 소율이 제작 감독 극본 주연까지 맡아 세계적으로 대박을 친 정통 무협영화였지···
옥에 티라면 중년의 소율이 청년의 고수를 연기했던 것이었고.’
주인공 오디션을 수십 번이나 봤지만 끝끝내 적합한 배우를 찾지 못해,
소율이 직접 연기했다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진 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