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25
천재배우 연기에 미치다 126화
“그러니까 소율 씨의 영화에 제가 주연으로 출연해 달란 말인가요?”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영웅정검’은 대륙의 영웅에 관한 이야기로 중화사상이 짙게 깔려있는 영화였다.
그런 영화의 주인공을 중국 배우가 아닌 한국 배우가 맡는다는 것은,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위험한 일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네. 그렇습니다.”
소율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내년이면 제가 데뷔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저도 이 영화판에서 활동할 일이 얼마 남지 않았죠.
그동안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사람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파티와 미녀를 즐겼고,
이런 비싼 시가부터 이런 호화 유람선까지 다 가져봤습니다.
그럼 그게 끝일까요?”
소율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즐겁고 호탕했던 소율은 사라지고,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품고 있는 한 중년 사내만이 남았다.
“일생일대의 대작을 내 손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것이 배우로 살아온 나 자신의 업적이고, 팬들에 대한 의무입니다.
저의 30년간의 모든 역량을 털어,
웅장하게 서사가 흐르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겁니다.”
소율은 시가를 깊이 빨아들이며 두 눈을 감았다.
나는 꺼림칙한 의문을 풀어야 했다.
“죄송합니만,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소율이 두 눈을 벌떡 뜨며 나를 바라봤다. 무엇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빨리 말해달라고 재촉하듯.
“중화권 젊은 배우들이 해변의 모래만큼 많을 텐데,
왜 굳이 외국인인 저에게 그런 배역을 제안하는 겁니까?”
홍콩 영화가 8,90년대에 비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하더라도,
그 콧대 높은 홍콩 영화가 나에게 정통 무협의 주연을 맡아 달라니···
‘영웅정검’이라는 영화에는 큰 호감이 갔으나 나는 신중해야 했다.
“네.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소율은 충분히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 씨 말씀대로 우리 중화권에는 많은 배우들이 있습니다. 연기도 어느 정도 되고 액션도 수준급인 배우들이 많지요··· 그런데 제 영화의 주인공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비공개 오디션도 몇 번 보았고, 배우들의 프로필도 빠짐없이 다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 머릿속에 그린 영웅의 모습과 일치하는 연기자는··· 없습니다.”
소율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육지책으로 제가 직접 할까도 고려하고 있지만···”
전생에서는 주인공을 소율이 직접 연기했었다. 그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티였고.
“그러던 차에 배우진 씨를 보게 된 겁니다. ‘프린스 앤 플라워’, ‘파도’ 그리고 광고까지. 제가 생각했던 영웅 이미지 그대로였어요. 아니, 제 머릿속에서 그냥 튀어나온 줄 알았어요.
우진 씨를 안 봤으면 모를까, 본 이상 배우진 아니면 이 영화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시가 연기 사이로 언뜻 소율의 굳은 표정이 드러났다.
소율의 뜻은 충분히 알았다. 하지만 내 스케줄은 이미 앞으로 6개월 후까지 다 차있었기에, 이 자리에서 출연 여부를 섣불리 약속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설강오와 약속한 차기작이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
“제가 이미 다른 영화를 차기작으로 약속해 놓은 상태라서 힘들겠습니다.”
나는 일단 거절을 했다.
거절당할 줄 몰랐는지 소율은 크게 당황했다.
“그··· 그렇습니까? 무슨 영화입니까? 촬영은 언제 들어가시나요? 한국 영화인가요?”
소율이 한꺼번에 질문을 퍼부었다.
“네, 당연히 한국 영화입니다. 다음 싱가포르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들어가면, 바로 감독님을 만나 뵙고 촬영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쪽도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저의 스케줄만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못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그 영화에 집중할 듯합니다.”
정통 무협영화.
욕심이 생기기는 했지만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년 상반기까지요? 그러면 괜찮습니다.
저희 영화도 지금 막 구상을 막 끝낸 거라, 이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갑니다.
물론 제 머릿속에 이야기는 다 완성되어 있긴 하지만요.
···영화는 내년 하반기쯤 들어갈 것 같습니다.
배우진 씨가 원한다면 더 늦춰져도 되고요.”
소율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왔다.
무작정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여지를 조금 남겼다.
“그럼 구상하고 있는 영화 내용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직 아무런 얘기도 듣지 않은 것 같아서요. 좀 더 구체적으로 안다면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영웅정검’은 한 고수가 다른 여러 고수를 만나 대결을 벌이고 그들을 패배시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전생의 나는 한참 망나니 시절을 보내던 때라···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소율의 입으로 명확히 다시 듣고 싶었다.
“네. 그럼 제가 구상한 전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영화에 관심을 보이자 소율이 안도했다. 그는 한 템포 숨을 죽이고 입을 열었다.
“몽골제국 5대 칸이자 원나라 시조인 ‘쿠빌라이’ 칸은, 불리함 속에서도 절대 후퇴하지 않은 남송 장군 ‘진가령’의 무공에 반해, 그의 어린 아들 ‘진백’을 거두게 됩니다.
배우진 씨가 맡아줬음 하는 배역이 바로 주인공 ‘진백’입니다.
‘쿠빌라이’ 칸의 총애를 받고 자란 ‘진백’은 칸의 비밀 암살 부대 ‘적림’에 들어가게 되고, ‘쿠빌라이’의 적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하는 일을 맡게 되죠.
결국 ‘쿠빌라이’ 칸이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 원나라를 세우자 칩거해 있던 송나라 전국의 고수들이 들고일어납니다.
그중 ‘쿠빌라이’ 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은둔형 ‘절대 고수 5명’을,
‘진백’이 먼저 찾아내어 대결로 한 명씩 처치해 나간다는 구성입니다.”
소율은 잠시 멈추고 회상에 젖었다. 고수들의 대결 장면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듯, 표정을 찡그리고 고개를 털어냈다.
“일대일 대결 장면이 압권이겠네요.”
소율의 말을 듣다 보니, 영화 장면이 생생하게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소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검이 걸려있는 벽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내게 검을 던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받아 들며 일어섰다.
모양은 그럴듯했지만 소품용 가짜 검이라 위험하지는 않았다.
소율은 아무 말 없었지만, 나는 그의 의도를 알았다.
그는 지금 자기 눈앞에 펼쳐진 고수들의 대결 장면을 나와 재연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검과 친했고, ‘영웅정검’의 장면도 생생히 생각났으므로 소율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소율은 책상 뒤쪽으로 가서 항아리에 꽂혀있던 소품용 창을 꺼내 들었다.
“가령, 태풍이 심하게 몰아치는 날, 어부로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검신 ‘유자홍’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미친 듯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진백’은 칼로, ‘유자홍’은 낚싯대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게 되죠.”
소율은 낚싯대를 들어 나를 내리쳤고,
나는 칼로 낚싯대를 막으며 소율의 목을 향해 찔렀다.
소율이 빙그르르 돌며 가볍게 피했다.
슬로우비디오처럼 우리는 천천히 동작을 맞췄다.
“배경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 흑백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강렬하게 부서지는 파도도 흔들리는 배도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서죠.
서로에겐 오직 대결 상대만이 존재할 뿐.”
검과 낚싯대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여러 합 부딪혔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요?]소율이 대사를 쳤다.
나는 지체 없이,
[내 이름은 검속에 있소. 한번 맞춰 보시겠소?]대사를 맞받았다.
소율의 대사를 듣자, 다음 대사가 저절로 생각이 났다.
[당신의 원수는 안에 있는데 어찌하여 검은 밖으로 향하는 것인가?] [이 검의 뜻은 내 주군에 있다.]나는 뱃머리에 올라서듯 탁자 위로 올라섰다.
소율도 함께 따라 올랐다.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치다,
나는 마지막 검을 회전시켜 소율의 배를 찔렀다.
소율은 내 칼을 잡으며 속삭였다.
[백아, 이··· 검은 계속해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이 말의 뜻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백의 눈동자가 모닥불의 잔상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어느새 ‘진백’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짝짝짝!
소율이 먼저 영화에서 빠져나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배우진 씨의 실력이 이 정도라니··· 정말 소름이 돋습니다.
왜 배우진 씨를 천재배우라고 하는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진백’의 깊은 내면까지도요.”
“역시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 뒤의 내용은 어떻게 됩니까?”
“유자홍과의 대결 후 ‘진백’은 자신이 끝까지 원에 저항했던 송나라 장군 ‘진가령’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칼끝을 돌려 ‘쿠빌라이’ 칸을 암살하러 가는 것으로 마무리될 겁니다.
사실 결말에 대한 여러 가지 안이 있는데, 아직 확실히 결론은 나지 않았습니다.”
전생의 ‘영웅정검’에서는 ‘진백’이 ‘쿠빌라이’ 칸의 목전에서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됐었다. 그를 암살하면 다시 내전이 발생해서, 죄 없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내용이 이렇다면 더욱 중국 배우를 써야 하는 게 아닐까요?”
나는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왔다.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에 명확한 해답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네. 맞습니다. 그렇겠죠. 아마 언론이나 여론은 그 부분을 물고 늘어지겠죠.”
소율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배우진입니까?”
“네, 그럼에도 배우진입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두 가지 이유?”
“첫째, 배우진의 표정에는 날이 선 검의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검을 휘두르지 않고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분위기. 특히 ‘파도’에서의 마지막 길거리 싸움에서 저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압도적인 포스로 적들을 향해 걸어가는 배우진은 절대 고수의 기운 그 이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배우진의 뛰어난 연기력입니다. 한국 배우라는 이름표를 떼고도 충분히 남을 정도이지요. ‘프린스 앤 플라워’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이라면, 위화감 없이 한족의 영웅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라 장담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확인도 했고요.”
소율의 목소리와 눈빛은 진심을 담고 있었다.
나의 연기력과 포스로 부가적인 한계를 다 누를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소율 씨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저를 알아주시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진심이 전해졌다니 다행입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승낙하고 싶지만, 함께하는 식구들이 있으니 저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소속사 대표님과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아, 당연히 그래야지요. 배우진 씨 일정도 있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요.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신다는 대답만으로도 꽉 막힌 체증이 싹 사라졌습니다. 혹시 끝까지 거절하면 어떡하나 정말 걱정했습니다.”
생각해 보겠다는 내 말에 소율은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게 시가의 마지막 부분이 다 타서 사그라들었다.
마지막 연기를 내뿜으며 600만 원짜리 시가가 한 시간 만에 사라졌다.
사라진 연기와 함께,
소율은 다시금 즐겁고 호탕한 파티의 주인으로 돌아왔다.
“아, 지금쯤이면 마지막 이벤트를 할 시간이군요. 밖으로 나가서 마지막 파티를 즐깁시다. 파티를 즐기러 오신 손님을 제가 너무 많이 잡아 뒀네요.”
“네, 오늘은 파티를 즐기는 날이지요.”
우리는 서둘러 서재를 나왔다.
3층 선실에 있던 배우들은 이미 보이질 않았다.
“모두 마지막 이벤트를 즐기러 내려간 것 같습니다.”
소율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만 들어도 뭔가 흥미진진한데요.”
“은근히 손님들이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좋아하시더라고요.
배우진 씨도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멋진 선물도 걸려있고요.
자, 마지막 이벤트를 즐기러 내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