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ng fanatic's genius actors RAW novel - Chapter 14
찐 배우 연기에 미치다. 14화
촬영장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SP 스튜디오’와의 계약상 문제는 없었다. 신비주의 컨셉을 최대한 지켜달라고 했을 뿐, 영화 홍보를 위한 인터뷰까지 막는 조항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리얼 패치」 신해수 기자입니다. 오늘 이렇게 인터뷰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신해수 기자는 자신을 소개했다.
“아닙니다. 저를 취재하려 이 먼 곳까지 와주시고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인사 후,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실까요?”
“신인 배우 배우진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신인이라고 하셨는데 최근에 광고를 찍으셨잖아요. 광고가 전국적으로 광풍인데 인기를 실감하나요?”
“아직은 체감이 잘 되지 않습니다. 오늘 기자님이 인터뷰하러 오신 걸 보니까 이제야 조금 실감이 되네요.”
“호호, 그렇군요. 연극제에서 대상을 타셨는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또 지금은 촬영이 한창인데,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르거든요. 어떤 모습이 실제 배우진에 가까운 가요?”
“저는 무색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맡은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하려면 자신의 색을 계속 지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확실한 연기관을 가지고 계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신해수 기자는 준비해온 메모를 잠시 살피더니 ‘파도’에 관한 질문을 시작했다. 이것은 사전에 약속한 부분. ‘파도’의 홍보가 아니었다면 나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촬영하고 계신 ‘파도’는 어떤 영화인가요?”
“거친 파도가 되어버린 십대들의 방황을 그린 영화입니다. 파도끼리 서로 부딪혀 얽히고설키는. 하지만 언젠가는 바다를 떠나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간단하면서도 임펙트있게 영화를 설명했다.
“배우님께 갯바위에 부서지는 거친 파도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최고의 칭찬을··· 감사합니다.”
“류지완 감독님은 상업영화는 처음이지만, 독립영화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어땠어요? 첫 만남이?”
“무서웠어요. 혹시 배역을 안 주시면 어떡하나 하고··· 알고 보면 굉장히 섬세하고 츤데레 하십니다.”
“츤데레? 츤데레가 뭐죠?”
아! 맞다. 아직은 1998년. 지금은 츤데레가 없다.
나는 얼른 말을 바꿨다.
“아. 겉은 엄하실 것 같은데, 실은 잘 챙겨주세요.”
“네, 그렇군요. 차민혁 씨가 주연을 맡았는데 서로 잘 맞는 편인가요? 어때요?”
“차민혁 선배님과는 호흡이 잘 맞는 편입니다. 살갑게 잘 대해 주시고··· 제가 아직 차가 없는데 촬영장 오갈 때 태워주세요. 덕분에 톱스타 밴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요? 민혁 씨가 차도 태워줘요?”
“네. 시간 되면 밥도 잘 사주세요.”
이 대목에서 신해수 기자는 깜짝 놀랐다.
차민혁이 ‘연예인병 말기’라는 건 연예부 기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혹시 불화가 있지 않을까 싶어 던진 질문이었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요?”
“옥상에서 싸우는 장면을 찍는데, 좁은 장소에서 뒤엉키니까 조금 힘들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림이 너무 멋지게 나와서 보람은 있었습니다.”
“오호. 기대가 되네요··· 큼큼.”
말을 이어가던 신 기자가 목을 만지작거렸다. 말을 많을 해서 건조한 것 같았다.
오해일이 타이밍에 맞춰 따뜻한 우엉차를 건넸다.
“어, 이것 좀 마시고 하세요.”
“엇. 고마워요. 목이 많이 뻑뻑하던 참이었는데··· 음. 향이 좋은데요. 고마워요. 매니저님.”
해일이는 나에게도 우엉차 한잔을 건넸다. 따뜻하고 고소한 향에 피곤이 녹아내렸다.
아침부터 보온병을 꼭 껴안고 있더니···
꼼꼼한 자식!
인터뷰가 다시 시작됐다.
“특별히 하는 몸 관리는?”
“기본 체력 단련에 요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오, 요가? 저도 배우려고 했는데 태생이 몸치라 포기했어요.”
“명상 위주로 하면 괜찮아요. 눈감고 숨만 잘 쉬면 됩니다.”
“오호. 그래요. 오늘 당장 가서 해봐야겠네요.”
“참, 소속사가 아직 없던데··· 연락은 많이 오죠?”
“급하게 소속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매니저가 너무 잘해주고 있고, 아직은 스케줄이 많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과 맞는 소속사가 있다면 들어가야겠죠.”
“어떤 소속사를 원하시는 가요?”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회사.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주고 힘들 때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회사. 저의 장단점을 잘 알고 진지하게 고민해주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회사라면, 무조건 오케이입니다.”
“까다로운데요. 그런 곳이 있을까요?”
“아마 어딘가에 있질 않을까요?”
“시간을 너무 많이 뺏으면 감독님이 화내실지 모르니까, 이제 마지막 질문드릴게요. 앞으로 활동은 어떤가요? 독자분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입니다.”
“아직 특별히 정해진 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기를 더 많이 배우고 싶고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배역이든 도전할 생각입니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상당하시네요.”
“오직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가 되는 게 꿈입니다.”
“그런 멋진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공식적으로 인터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네, 감사합니다.”
영화 홍보를 겸한 공식 첫 인터뷰를 무사히 마쳤다.
‘장성태 대표님도 기사를 읽으시겠지.’
나는 전생의 소속사 대표를 생각했다. 이 기사를 읽고 빨리 연락하길.
사진 기자가 앞으로 나와서 몇 가지 포즈를 요구했다. 나는 요구에 맞는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의 눈빛 연기 가능할까요?”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듯 카메라를 응시했다.
“이번엔 의 ‘이진홍’으로 포즈 한 번 취해 주세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비딱하게 서서 카메라를 째려봤다.
“좋아요. 좋아.”
사진 기사는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
김도한과 함께 나균성의 병문안을 갔다.
“507호. 507호 여기 있다. 나균성.”
나는 507호 앞에 붙어있는 이름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2인실 창가 끝에 너덜 해진 대본을 읽고 있는 나균성이 보였다.
영화 출연이 아쉽게 무산되었음에도 대본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마음이 짠했다.
김도한의 표정이 미안함으로 물들었다.
“선배.”
나는 밝은 목소리로 나균성을 불렀다.
나균성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어? 어떻게 왔어? 촬영은?”
“새벽 촬영 끝내고 왔어요. 민혁 선배도 함께 오고 싶어 했는데, 뒤에 촬영이 있어서 못 왔어요.”
“많이 피곤하겠다.”
“버스에서 푹 잤어요. 이거. 이제 밥 먹는다고 해서 맛있는 거 사 왔어요.”
나는 한과 상자와 음료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야, 그냥 오지 뭘 이런 걸. 입원하고 한과 선물은 또 처음이다.”
“비싼 겁니다. 많이 먹고 힘내시라고.”
“그래. 잘 먹고 건강할 게. 그런데 친구야?”
나균성이 내 옆에 서있는 김도한을 보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김도한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응?”
뜬금없는 김도한의 사과에 나균성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곧 자기를 대신한 ‘폭열단 리더’라는 걸 알아봤다.
“아, 이 친구가 네가 말했던 그 친구구나. 내가 고맙지. 네가 죄송할 게 뭐냐? 너 아니었음 영화 다 엎어지고 난리 날 뻔했는데. 너 때문에 살았다. 정말 고맙다.”
“아닙니다. 빨리 나으셔서 복귀하시면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네가 우리 영화 살린 거야.”
나균성은 김도한의 손을 잡았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순간. 나는 밝은 목소리로 너스레를 좀 떨었다.
“내가 전에 말했나? 나 손금 잘 보는데. 오늘 특별히 선배 손금 좀 봐 줄게요. 손 줘 봐요.”
나균성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사실 손금은 전혀 못 보지만, 나균성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전생의 기억을 조금 털어서.
“선배의 직업운은 두뇌선에서 시작해요. 아직은 고생을 좀 더 할 팔자네. 엑스트라나 단역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뭐냐? 악담이냐?”
“아직 안 끝났어요. 그런데 몇 년 후에 드디어 일이 제대로 터지네요. 돈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대박 나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연기 계속하셔야겠습니다.”
나는 농담처럼 나균성의 미래를 읊었지만, 그것은 진실이었다.
“으이그 이 자식. 고맙다. 나. 연기 그만 안 둬. 세상에 그렇게 즐거운 일이 없더라. 그 좋은 걸 왜 안 해? 성공하든 말든 계속 할 거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
나균성이 낙담하고 있음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는 그렇게 약하지 않았다.
“참, 병원에 간다니까 감독님이 전해 달래요.”
“응? 뭘.”
“감독님 다음 작품 땐 선배 프리패스래요. 오디션도 안 본대. 진짜예요.”
류 감독의 메시지에 나균성의 눈가가 빨개졌다.
“야, 야. 빨리 가. 빨리. 나 환자야. 쉬어야 해.”
“그럼, 한과 먹고 몸조리 잘하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우리는 손을 흔들며 병실을 나갔다.
***
“감독님,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여자 모델 자료입니다.”
캐스팅 담당이 여운진 CF 감독에게 몇 장의 사진을 건넸다.
‘페어리’ 후속편은 크리스마스 후에 촬영해 새해에 바로 나가기로 했다. 일정이 빠듯했기에 직원들은 야근까지 해가며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많은 사진을 모은 거야?”
“모델 관련 커뮤니티에 번개 콘테스트를 요청했습니다.”
“참, 편리한 세상이군. 인터넷이란 게··· 보자, 모델 경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추렸지?”
“네. 순수 일반인입니다. 학교에서 얼짱 위주로 뽑아서 비주얼은 보장합니다.”
“배우진의 외모와 가장 잘 어울리는 모델로 찾아야 돼.”
여운진 감독은 사진 하나하나를 배우진의 사진 옆에 갖다 대고, 촉을 곤두세웠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여 감독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많은 사진들이 1초도 안 돼 탈락됐다.
“이 사진은 괜찮은데···”
어울리는 사진 한 장이 여 감독 눈에 들어왔다. 깨끗한 도화지처럼 맑고 깨끗한 페이스. 그 사진은 책상 위에 따로 떼어 놓았다.
그리고 다음 사진들로 넘어갔다.
“패스”
“패스”
한 참을 넘긴 후에 여 감독은 한 번 더 멈췄다. 잠시 생각하다,
“이것도 합격.”
백장이 넘는 사진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책상 위엔 최종적으로 뽑힌 사진 두 장이 올려져 있었다.
“봅시다. 둘 중에 누가 더 어울리려나. 신상은?”
“사진 뒤에 적혀 있습니다.”
은광여고 박은하. 19세. 수채화 같은 투명함에 단아한 외모.
무악여고 이은진. 18세. 귀엽고 애교 넘치는 외모.
둘 다 매력 있고 예뻤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감독은 다시 한번 둘의 사진을 배우진 사진 옆에 놓았다. 이리저리 돌려놓으며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여 감독은 눈을 감고 가상의 cf를 찍기 시작했다.
‘험난한 길을 뚫고 배우진이 구하러 왔을 때, 누가 더 애틋하게 보일까?’
머릿속에서 영상을 돌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완벽한 그림이 나올 때까지. 상상력의 끝까지 밀어붙였다.
잠시 후, 결심이 선 듯 여 감독이 눈을 번쩍 떴다.
“결정했다.”
여 감독은 박은하의 사진을 들었다.
“박은하다.”
배우진의 사진 위에 박은하의 사진을 다시 한번 겹쳐 올렸다.
‘이번에도 일내겠어. 내 촉은 틀린 적이 없어.’
“비밀유지 잘하고. 촬영까지 5일밖에 안 남았어. 차질 없이 잘 진행해.”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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